[문학웹진]문학마실~...113호...
   2019년 1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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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문창길 시집 『북국독립서신』 file
편집자
122 2019-08-06
문창길 약력: 1958년 전북 김제 출생. 1984년 <두레시동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철길이 희망하는 것은> <북국독립서신>. 현 계간 ,창작21> 주간. 한국작가회의 회원. 창작21작가회 대표. 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 ┃책머릿글┃ 첫 시집 이후 18년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낸다. 남다른 감회를 갖는다. 또한 올해로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이번 시집을 선보이기 위해 나름대로 분투적 노력을 다했다. 내 시가 있게 한 몇몇 뜨거운 사랑들이 곁을 지켜주기도 하고, 희망이 되어 주기도 했다. 한없이 감사를 드린다. 사실 현대시가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 의심해 왔다. 따라서 이에 대해 필자도 상당한 고뇌의 시간과 함께 깊은 반성과 성찰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나름대로 민족문학의 새로운 전망과 문학적 통합성을 숙제로 안고 좀더 노력해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다. 끝으로, 이 시집이 나오는데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드린다. 2019년 5월 문 창 길 ┃북돋우는 글┃ 굳세고 굳센 살과 피와 뼈로 김 준 태┃시인·전 광주대, 조선대 초빙교수 문창길 시인의 시(노래)를 읽으면… 저 식민의 세월 속에서도 끝끝내 뿌리 뽑히지 않고 맥박을 치며 살아온 백두에서 한라까지의 남부여대男負女戴의 사람들과… 지금껏 우리들 몸속으로까지 불어 닥친 모질고 모진 검붉은 바람을 뚫으면서 성장을 거듭해온 이 땅 한반도의 질기고 질긴 쑥풀과 엉겅퀴꽃들이 궁극으로 ‘향기’를 잃지 않고 굳세고 굳센 살과 피와 뼈로 일어서왔음을 가슴 벅차게 감지하게 한다. 시집 제목부터가 [북국독립서신]이라! “하늘도 무심하게 푸른 계절 / 동갑내기 가시내들이 보는 앞에서 / 옥선이년 아니 도미코년 아카다년으로 / 검정치마 하얀저고리 벗겨진 채 / 사쿠도 안쓴 인간도 아닌 흉악한 일본군들에게 / 옥색같은 알몸을 뺐기고 또” 빼앗겼던… ‘일본군 위안부’로 내몰려 끌려갔던 일제강점기 시절의 저 수많은 이옥선할머니, 김순덕할머니, 문옥주할머니, 황금주할머니들이… 반쪽해방 1945년 이후, 분단 70년을 넘어서 오늘은 ‘녹두알처럼 단단한’ 한 노래꾼 시인의 쇠나팔 꽹과리 시(서사)를 통해 우리들의 몸뚱이에 칭칭 휘감기면서 철삿줄처럼 아프게 읽힌다. 바로 그런 역사적 각성과 정서적 깨달음을 통하여 ‘촛불을 들고’ 통일의 그날을 당차게 노래하는 문창길 시인은 이제 “남자는 떠난 여자와 / 여자는 떠나지 않은 남자와 / 세월이 함께 흐르는 곳에서 / 물 같은 또는 피 / 피 같은 또는 물 // 통일역으로 가는 몇 량의 객차에 / 그만큼의 밀어를 실어 보낸다 // 우우 바람 속에 서서 // 여자의 가슴 밖으로 그려지는 / 북국의 그림 한 점”(남남북녀)을 비롯하여 건강하고 억센 서사(이야기들)를 여기 심약한 시단에 무릇 “봄들판”처럼 펼쳐놓는다.■ ┃북돋우는 글┃ 진정성 있는 문학사적 가치를 지향 박 남 희┃시인 문창길 시인의 두 번 째 시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로 쓰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가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는 주제나 대상은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 금정굴 학살 사건, 외국인노동자, 분단과 통일, 광화문 촛불, 고 노무현 대통령, 노숙자, 원양어선 어부, 에어컨 수리기사, 태백광부 등 다양하다. 그의 시는 우리의 뇌리에서 이미 잊혀졌거나 쉽게 잊혀질 근현대사의 주제들을 시인의 서사적 의지로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우리 문학사적으로 보면 이 시집은 1920~30년대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했던 임화를 필두로 한 카프문학과 해방공간 문학, 1960~70년대를 지나 80년대의 민중시에 이르기까지 면면이 이어오던 리얼리즘 문학이 크게 약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그 맥을 이어주고 있는 중요한 시집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가 낳은 늦둥이 아들을 소재로 한 「어린화가 겨레군」 같은 시를 보면 시인의 이러한 시정신은 어린 아들에게까지 전승될 정도로 절실함과 치열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의 시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인의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다. 이러한 시정신은 그의 시가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학적 기교를 훌쩍 뛰어넘어 진정성 있는 문학사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북돋우는 글┃ 민초와 더불어 사는 민중시인 이 재 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문창길 시인이 보내준 작품 몇 편을 읽자마자 먼저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 원망스럽다. 왜 이런 시를 나에게 보내 괴롭게 만드는가. 정치학을 공부하는 터라 우리나라의 모진 역사를 좀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뼈저린 아픔을 잘 안다. 한국전쟁 중 고양 금정굴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도 조금 안다. 광주학살과 세월호 참사, 이주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이없는 죽음 등은 아직도 여전히 신문에 오르내린다. 몸서리칠 정도로 끔찍한 사연들을 책이나 신문에서 읽을 때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꽃보다 아름다운 조선 누이”들의 검정치마와 무명저고리가 벗겨지는 처절한 사연이나, 고양과 광주에서 어린 소녀들이 무고하게 학살당하는 참혹한 모습 등을 시를 통해 접하게 되니 왠지 모르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맛보게 된다. 둘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1998년 10월 첫 방북 길에 황해북도 사리원의 한 육아원 (고아원)에 들렀을 때다. 그 무렵 신문을 통해 마치 살아있는 해골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적잖게 본 터였다. 카메라를 꺼내들고도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생김새와 달리 독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지만. 그러면서 사진기자들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문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시인들도 사진기자들 못지않게 잔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영혼 없는 서정시인이 아니라 민초와 더불어 사는 민중시인이라면.■ ┃작품해설┃ 조선 누이를 위한 씻김굿, 그리고 이 땅의 대의 - 문창길 시집 『북국독립서신』을 읽고 임 금 복┃문학평론가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와 빨갱이라는 이름의 빨간 수사법은 20세기와 21세기 근현대사, 두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오고 있지만 아직도 미완의 과제이다. 즉 이 두 코드는 아직도 일제 강점 한국과 분단 한국의 현실이란 그 시대와 이 시대가 복합되어 함장되어 있는 한국의 미완의 현실이자 역사적 유산이다. 문창길 2시집 『북국독립서신』에는 이 두 코드를 포함해서 동학횃불, 척왜척사의 운동, 3·1 만세, 그리고 중일 전쟁 이후인 1937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일제 강점기 말기의 식민지 현실인 1940년 어느 날, 1942년 7월, 해방 이후 분단, 한국전쟁, 좌우익 이념 논쟁인 빨갱이, 치안대, 태극단, 보도연맹, 빨간 완장, 그리고 4·19혁명, 5·18광주학살, 6·10민주항쟁, 6·15공동선언, 10·4선언, 416광장, 병신년 촛불혁명 등이 시어로 나오고 있어,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21세기를 포함한 120여 년의 시간이 공존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집에서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고도로 압축 성장되어가는 과정 중 누적된 모순의 사회 폭발 및 청산, 그리고 국제화 시대의 삶까지 이어져 오는 작금의 현실까지 아우르고 있다. 특히 문창길 시인은 통시적 시간의 역사태와 그 시간들 속에 실존한 희생양들과 아픔의 소유자들에 남달리 시선을 주목하고 있다. 즉 시인은 파란한 만장의 역사 속에 일 개인이나 집단의 삶 속에 폭력을 당하고 희생양들이 되어 버렸지만 그들은 망각되어 지워져 버렸고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에 재평가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럼, 역사와 민족을 위한, 시대와 사회를 위한, 그리고 희생자를 위한 대의는 무엇일까? 이런 흑암의 역사의 축을 통찰해내고 관통해내 적어도 그들의 영혼과 넋을 문창길 시인은 무당이 되어 불러내어 제대로 자리매김하려고 했다. 그것이 시인의 몫이 아닐까? 희생자들의 역사적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시인은 한 축에 실제했던 어두운 과거사, 피폐한 모순의 역사, 핏물진 역사 등을 통찰해 내고 있다. 반면에 다른 한 축으로 시인이 선 자리에서 시인이 꿈꾸는 역사관은 광명의 역사, 새로운 빛의 역사, 꺼지지 않는 촛불의 역사, 푸르고 청청한 높은 빛의 역사로 지향하고 있다. 즉,망각의 장에 덮어버리고 싶은 마비되고 박제된 의식이 아닌 어둠의 역사 속에 송두리째 희생양이 되어 사라져버린 몸과 넋을 시인은 무당처럼 불러내 그들을 위해 살풀이와 씻김굿으로 해원하고 있다. - 이하 생략 대표시 북국독립서신 블라디보스톡의 밤은 유난히 차고 어둡다 이따금 석탄차들이 탄가루를 흩날리며 인민들의 희미한 삶을 덧칠하기도 한다 그 검은 안개 사이로 가로등 몇 개 움츠린다 구멍 숭숭한 담장 안에선 무언의 대화가 녹슨 영혼의 창틀을 흔든다 털모자를 깊숙이 끌어내린 채 북국의 어느 고샅을 지난다 아니 조선땅 충청골 살미진 유년의 고샅을 꿈처럼 운명처럼 척왜척사를 외치며 척박한 걸음을 옮긴다 게걸스러운 로스케의 취기에 찬 그림자가 전선의 팽팽한 혈맥을 더듬는다 내 슬픈 식민의 동포여 무명의 흰 옷자락을 흔들어라 척왜의 바람이 북국에서도 일었느니 한번쯤 아니 몇겁으로 스친 백의의 인연들 힘 좋은 조선사내의 무등에 희망찬 아이들을 솟게하라 저 순결한 앙가슴을 움켜쥐고 하냥없이 기다리다 흰 살결을 꼬집는 우리의 아낙들을 위하여 북국의 쨍쨍거리는 얼음강처럼 깨어 일어나라 이제야 다가올 독립조국의 아침을 우리 눈빛으로 숭고히 지켜야 하리니 고 김순덕할머니의 난중일기·1 - 찌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지리산 산청에서 태어난 순덕이 가난한 농삿꾼 넷째딸년으로 송이버섯을 따고 담배잎을 엮으며 순박쟁이 덕스러운 열두살 가시내로 컸다 어느날 담배잎 줄에 엮다 시름겨워 마른 연기 한모금 내뿜던 아버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모진 매질을 당했다 우리가 키운 담배잎이 우리 것이 아닌 왜놈 것이라고, 몰래 빼돌려 피운 죄라고 했다 살집이 터져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그 풍진 세상 토끼새끼 다섯자식과 청상 마누라쟁이 놔두고 떠났다 그것이 참으로 가벼운 아버지의 역사였다 식민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 여름철 푸른 콩잎 따 말려 겨울 끼니로 삶아 먹었다 나무뿌리도, 시래기도 조선민의 양식은 그것이었다 물죽이고, 풀죽이고 닥치는대로 먹고 살다 어느덧 열일곱 가슴 봉긋한 무명저고리 검정치마 조선처녀 다 되었다 1937년 음력 정월 보름날이었다 일본에 취직시켜 돈 벌게 해 주겠다고 간살스런 조선남자 하나 처녀 공출하러 동네 고샅 뒤지며 돌아 다녔다 이 철딱서니 없던 순덕이년 돈 벌게 해 준다는 그 헛셈에 속아 그냥 따라 나섰다 몇 명의 또래 가시내들과 함께 정암마을 다리를 건너며 울고 또 울었다 큰 돈 벌어 오겠다고 서로를 부둥키며 울었다 그 것이 지 운명의 슬픈 서막인 줄도 모르고 철컹거리는 완행열차에 올라 부산 부두로 갔다 저 넓고도 깊은 바다 건너엔 청청 푸른 내 꿈을 이루어줄 세상이 있을거라고 순덕이년 나카사키행 연락선에 올랐다 처지가 비슷한 조선여자들 선창에 올라 하얀 손수건을 흔들고 흔들었다 어떤 이는 나보다 어린 동생뻘이었다 어떤 이는 돈 벌겠다는 욕심으로 젖먹이를 뿌리치고 달려 나왔단다 우리는 서로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언니, 동생으로 말없이 흔들리는 파도를 따라 낯선 이국의 땅에 발을 디뎠다 바람도 눈빛도 차가운 나가사키항 부두가 여관에 우리는 노예처럼 부려졌다 아니 일본군 보초병 총구 앞에 철저히 감금 되었다 나는 물었다 “왜 우리를 여기에 가두나요?” “우리는 무슨 일을 할 것인가요?” 고 김순덕할머니의 난중일기·2 - 검정치마 무명저고리 벗겨지던 날 왜국의 첫날밤 무언가 이상한 바람이 흘렀다 아니 무서운 명령이 금방이라도 왜군놈의 입에서 터져 나올것만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계급이 높은 군인에게 순덕이년 끌려나갔다 억센 팔걸이에 꼼짝 못하고 검정치마 무명저고리 벗겨져 나갔다 그리고 아 나는 이 순덕이년은 조선처녀의 순결한 알몸을 밟히고 또 밟히었다 아 그 날 그 날부터 이 순덕이년 조선 딸년이 아니었다 그 날부터 조선아낙으로 살 수 없었다 아 어머니 아버지 이제 이 년은 누구의 딸년으로 살아가야 되나이까 채송화보다 아름다운 백옥보다 하얀 낭랑 십칠세 조선가시내 순덕이년 긴 칼끝보다 더 날카로운 왜군놈의 그것이 가랑이를 찌를때마다 더 쓰라린 이름 일본군정신대로 또는 위안부로 불려 나갔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다 아니 이름이었다 또래 가시내들과 우리는 매일 밤 군대 막사 안에서 조선 진달래 붉게 지는 줄도 모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혼이 내려다 보는 줄도 모르고 거친 숨 몰아쉬며 꽃사슴같은 슬픈 짐승으로 홍익의 어진 조국을 위해 백의의 어진 백성을 위해 승냥이 왜군들을 상대하고 싸워야 했다 우리의 꿈은 이렇게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참으로 무지렁한 조선가시내들이었다 고 김순덕할머니의 난중일기·3 - 산청 평촌리 생각 내 고향 산청 평촌리가 생각났다 보리쌀 묽은 죽 쑤어 먹어도 내 핏줄 내 살붙이 함께 부대끼며 살던 순정한 시절이 엊그제인데 할일없이 생각난다 내 나이 열두살적 친구 가시내가 소개해준 은행원집 식모살이는 지금보다 나았다 하루 종일 남의 디딜방아를 찧어주고 딩기를 얻어다 시래기 섞어 끓여먹던 궁휼한 시절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았다 나는 물었다 아니 왜군놈에게 따져 물었다 뭐 이제 살맛 죽을 맛 가릴 것도 없었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이 무엇이에요?” “권총 찬 저 승냥이 군인들과 자는 일이에요?” 고향 떠나 나가사키로 온지 일주일 순덕이년 세상 다 산것 같았다 조선서 살아온 날 보다 긴 역사였다 그러나 이 것이 끝이 아니었다 왜놈보다 더 치떨리는 조선인 인솔자를 따라 또래 처녀들과 함께 산만한 배를 타고 상해로 실려갔다 아 정말 목숨이 길어 슬픈 짐승으로 빠져 들어갔다 차라리 저 푸르고 깊은 바다 속으로 검정치마 뒤집어 쓰고 심청이처럼 몸을 던질까도 생각해 보았다 역시 내 목숨은 목숨이 아니었다 내 몸은 몸이 아니었다 저 조선인 감시자의 눈초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생각나고, 형제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지돌이할머니를 추모하며 할머니는 아무런 말없이 웃기만 하셨다. 푹 눌러 쓴 검정 털모자 속에서 할머니의 어두운 과거사가 삐죽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 언저리에 2월의 늦은 눈발이 설설 내리고 동구밖 어귀엔 혹시나 동생이 들어서지 않을까 내내 귀 쫑긋 올리며 눈시울을 적신다 그보다 더 낭랑 십팔세 꽃다운 나이에 순정을 바친 우리 서방님 이제나 저제나 오시려나 늘상 그리움에 주름진 얼굴 감추던 할머니 소시적 꿈 많은 청춘을 살라먹고 아니 왜놈들에게 빼앗긴 무명치마 흰저고리의 어머니같은 혼을 이제야 맘 놓고 훠이훠이 휘날리는 할머니 그렇게 지고지순한 할머니가 이제 날개를 펴고 살아남은 자가 그리워할 먼 머언 나라로 가시는군요 그곳에는 참기름같은 사랑이 있나요 그 먼 나라에는 헤어지지 못할 서방님 하나 기다리고 있나요 그래요 가시려거든 내 짝사랑 같은 마음도 아니 우리의 아리랑 같은 어깨춤도 그 가슴에 맘껏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이옥선할머니의 자분자분한 귓속말도 김군자할머니의 그렁그렁한 타박거림도 박옥련할머니의 맛깔나는 춤맵씨도 배춘희할머니의 섹시한 그림솜씨도 문필기할머니의 조용조용한 말동무도 강일출할머니의 애교스런 질투도 김순옥할머니의 알 듯 모를 듯 노랫말도 박옥선할머니의 잔병치레로 힘든 발걸음도 와락 껴안고 웃음바람으로 하늘바람으로 가시어요 그것이 내 어머니 같은 지돌이할머니의 희망이라면 또는 왕생하는 극락이라면 그곳이 경상도 경주군 안강면 양월 창마을 고향이라면 소작농 딸년으로 태어나 지지리도 못나게시리 단단한 삶을 살아낸 우리의 지돌이할머니라면 가시는 걸음걸음 붉은 꽃 진달래 즈려밟고 가시어요 저 눈망울 맑은 퇴촌유치원 아이들의 고사리같은 손짓을 따라 그렇게 할머니를 보내옵나니 마냥 푸르러 곱디고운 십칠세 처녀로만 그곳에서 사시어요 다시는 지긋해서 생각도 싫은 안강보통학교에서 조선말보다 일본말을 더 배우지도 말고 꽃사슴 같은 슬픈 짐승으로 콩밭 매고 밀을 심어 가을 추수때면 지주에게 다 바치고 남은 쭉정이 걷어다 무솥에 푹푹 삶아 식솔 배 채우지 말고 꿈 많은 가시내 어느덧 앞가슴 봉긋한 열일곱 지돌이 처녀로만 영원하시어요 가끔은 이 어리석은 시인도 잊지 마시고 자나깨나 걱정 많던 안 사무국장도 잊지 마시고 불심으로 원력을 펼치시는 원장스님도 잊지 마시고 목소리도 청청하게 시를 읽던 이기형시인도 꼭 기억 하시고 검정치마 흰저고리 살랑이며 고구려적 그 기상으로 가시다가 고이 머무는 그곳에서 우리를 지켜보세요 우리는 기어이 왜놈을 물리치고 우리의 자주 독립을 이룰겁니다 비정규직 김용균 아우여 김용균 아니 다시 불러도 희망어린 만국의 노동자 김용균 아우여 그대가 컨베이어로 나르는 석탄으로 저 거대한 자본의 체온을 덮히는 동안 그대의 지친 몸은 자꾸만 검은 늪으로 빠져드는 것을 하늘을 우러러 참 부끄러운 나는 몰랐네 모른 것이 아니라 검은 눈을 뜨지 못했네 나는 내가 아닌 듯 망국의 문장 노동자도 되지 못했네 그렇게 시 나부랭이나 끄적대는 시인이 무슨 대수이겠나 그러나 아우여 김용균이여 만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여 나는 반성하네 불굴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 눈으로 내가 보지 못하는 내 가슴으로 나를 뜨겁게 달구지 못하는 이 땅의 나들과 함께 용균이 자네의 아직도 뜨겁게 살아있는 가열찬 심장을 멈추지 않게 하겠네 문창길 시집 /북국독립서신/164면/값8,000원 문창길 시인 사진 ■ 이 시집은 3·1 운동 10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민간공모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경기문화재단으로 부터 문예진흥지원금을 보조 받아 발간되었습니다.  
117 동길산 시집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file
편집자
161 2019-06-07
책소개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동길산 시인의 신작 시집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가 출간되었다. 자연 속에서 자유자재로 깨달음과 허무를 마주하는 시인은, 어쩌면 자신의 풍경 속에서 오랫동안 삶에 대해 속삭여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번 시집에서는 ‘비어감’에 대한 시선을 드러내고 ‘애잔함’과 동시에 찾아드는 ‘평온함’까지로 나아간다. 해설을 쓴 백인덕 시인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아의 모습에서 시인은 드디어 ‘앎’을 말한다. 해의 변화와 삶의 가지의 굴곡이 결국은‘사람을 사람에게 바짝 붙어 서도록 한다는 걸/사람과 사람을 가장 가까이한다는 걸’ 말이다.” 자연과 인간과 그 모든 풍경의 총합에서 느낄 수 있는 ‘거리감’은 결국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수단인 셈이다. “살아생전 억양은 세었지만/알아듣지 못한 말 하나도 없었듯이” 이번 시집은 독자 누구에게나 가닿을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이면서도 동시에, 동길산 시인만의 억양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볼 수 없는 미지의 풍경 속에서 건져 올리는 삶의 실체가 그리 나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희망을 근거로, 꽃이 지는 슬픔을 우리는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접기 저자 동길산 저자 : 동길산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뻐꾸기 트럭』 등 시집 다섯 권과 『우두커니』 등 산문집 다섯 권을 냈다. 1992년 경남 고성 산골로 이사해 지금은 산골과 도시를 오가며 지낸다. E-mail: dgs1116@hanmail.net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접기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자연(自然) 13 사람의 하루 14 비인간 15 낙법 16 나는 왜 18 새는 19 감나무 요가 20 어느 꽃도 어느 잎도 22 꽃잎의 막 23 새는 왜 우는가 24 하세월 26 창백한 꽃잎 27 날갯짓 28 강물 벚꽃 30 노을 31 텃밭에서 32 홍시 34 제2부 꽃 진 자리 37 잎인지 꽃인지 38 울컥한 날 39 그늘 40 꽃 몸살 42 비 43 매화 44 나무뿌리 계단 46 내 속 47 속세 48 임도 49 한밤 50 압화 52 금목서 53 여백 54 빗방울 꽃망울 56 잘린 나무 57 윤슬 58 제3부 면벽 61 저놈의 귀뚜라미! 62 넘어진 나무 63 빈집 64 남향집 66 빈틈 67 큰재 벚나무 68 저수지 71 갈천저수지 72 눈사람 74 빗방울 75 언 저수지 76 비 오는 밤 77 잡냄새 78 훈수 80 보름달 81 등대 82 지구는 둥글까 84 제4부 낙동강 87 지독한 통증 88 우물 89 총소리 90 밑창 92 우리는 하나 93 삼팔선 94 산 그림자 95 동해물 96 길천등대 98 돌꽃 99 통영 바다 100 곧거나 굽은 102 풍경 소리 103 등 104 송창식 105 편법 106 해설 내밀(內密)과 외화(外華) 사이에서 107 백인덕(시인)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펼쳐보기 책 속으로 보이는 새만큼 보이지 않는 새도 많을 텐데 나는 왜 보이는 새만 보는 걸까 멀리서 보면 소멸하기 직전의 아득한 이곳 잎 다 떨군 가지 붙들고 새는 숨넘어갈 듯 오열해대는데 ―「나는 왜」 부분 새벽에 새는 운다 어둠과 밝음 그 경계에서 새는 운다 얼마나 울어대는지 우는 소리에 콕콕콕 쪼여 경계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달랑거린다 나뭇가지 또는 새 둥지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더 높은 데서 보고 사람이 보는 것보다 더 멀리 보는 새 새 우는 소리가 어쩌다 한번 아주 어쩌다 한번 참고 참다 어쩌다 한번 우는 사람에게 스민다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어둠과 밝음 그 경계인 사람에게 스민다 ―「새는 왜 우는가」 중에서  
116 최기종 시집 ≪슬픔아 놀자≫ file
편집자
556 2018-10-22
책소개 “슬픔과 아픔으로 엮은 시의 집” b판시선 27번째로 최기종 시인의 ≪슬픔아 놀자≫를 펴낸다. 1992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시대의 아픔을 겪어내면서 모은 여섯 번째 시집이다. 기쁨이 아닌 슬픔은 그동안 극복하거나 잊어야 하는 대상으로서 회피되어 왔는데, 시인은 표제시인 [슬픔아 놀자]에서부터 도리어 슬픔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걸고 있다. “손잡고 놀자” “얼싸안고 놀자” “동무하며 놀자” “신랑각시되어 놀자”라고. [세상의 아픈 것들이] [내가 그렇다] [삶의 이유 1] [갈대밭에서]를 보면, 평범한 이들의 애환을 신파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가 때론 희극적으로 때론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맛깔스럽기 그지없다. 이훈 교수는 이 시집의 ‘슬픔’에 대해 “슬픔은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솔직한 인정, 불쌍한 존재들에 대한 동정,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깊은 공감 등을 그 바탕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너’는 곧 ‘나’가 된다. ‘너’에게 말하고 있지만 궁극은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시선을 맞추고 발걸음을 맞추어 천천히 나가자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못나고 외로운 존재들이나 생명들에게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힘을 북돋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세상/왜 사느냐 물으면/그냥 사람, 사람이고 싶어서”인 것이다. 시집 ≪슬픔아 놀자≫는 운율적인 아름다움도 갖추고 있다. 특히 마야 연작시편에서는 더욱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일정한 수의 음절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마야 1]~[마야 7]), 똑같은 문장구조로서 대구와 대조를 반복하고([마야 8~마야 10]), 음보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마야 11]~[마야 12]), 시행의 끝자리에 같은 소리나 음절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여([마야 14~마야 15]) 리듬감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이는 이번 시집에 대한 시적 인상을 더욱 깊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어조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철송 시인은 발문에서 “그가 세상에 자신의 가슴을 활짝 열어둔 채 살아가고 있음을…더 정확히는 세상의 ‘아픔’에 가슴을 항상 열어두고 있음을…저 ‘물렁물렁한 가슴’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가슴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아픔을 ‘느끼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품는’ 그런 가슴이다. 형은 그런 사람이다, 형은 그런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이번 시집 ≪슬픔아 놀자≫에 실린 대부분의 시가 그렇게 ‘물렁물렁’한 가슴으로 형이 껴안은 세상이다. 아니 세상의 아픔이다”라고 각별한 신의를 표하고 있다. 최기종 시인은 “물질적으로는 넘쳐나는데 정신적으로는 빈곤하기만 하다. … 일상에 베이고 찔려서 피 흘리는 사람 많다. 그늘에 가리고 묻혀서 얼굴 없는 사람들 많다. … 아픔도 슬픔도 나에게서 비롯된다. …아픔도 껴안으면 새로운 아픔이 된다. 슬픔도 친구하면 새로운 슬픔이 된다. 슬픔아, 놀자”고 말을 건넨다. 즉 불안한 존재들에게 극진한 예의를 표하고 있다. 저자소개저자 : 최기종 저자 최기종 1956년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 1992년 교육문예창작회지 ≪대통령의 얼굴이 또 바뀌면≫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나무 위의 여자≫ ≪만다라화≫ ≪어머니 나라≫ ≪나쁜 사과≫ ≪학교에는 고래가 산다≫가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며 전남민예총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시인의 말 5 제1부 슬픔아 놀자 13 예쁜 빛 14 슬픈 리셋 15 꽃불 16 세상의 아픈 것들이 18 내가 그런다 20 내가 그렇다 21 벌거숭이 23 삶의 이유 1 24 삶의 이유 2 26 저 구름 28 신명나는 것 30 물렁물렁한 가슴 32 셋째야 34 이옥수전 36 제2부 마야 1 41 마야 2 42 마야 3 43 마야 4 44 마야 5 45 마야 6 46 마야 7 48 마야 8 49 마야 9 51 마야 10 53 마야 11 55 마야 12 56 마야 13 58 마야 14 60 마야 15 62 마야 16 64 제3부 유아독존 69 혈거시대 70 혼자라는 게 72 개똥벌레 74 항변 76 우안거 77 금선탈각 79 통회하다 81 아, 옛날이여 83 귀틀집 85 벌떡증 87 천수라는 것 89 의문문 91 요법 93 우주의 소리 95 제4부 미소 99 일출 100 등대 101 뿌리가 궁금하다 102 구례사람 104 갈대밭에서 105 심해어 107 금당에서 109 집 한 채 지으려면 110 거룩한 소음 112 버리는 마법 114 하늘바람지기 116 그 옛날의 기차 118 우리에게 겨울이 없었다면 120 발문ㅣ이철송 123  
115 안민 시집 『게헨나』 file
편집자
743 2018-09-23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안민 시인의 첫 번째 시집 <게헨나>가 출간되었다. “해일처럼 밀려오는 상상력의 파고를 보면 황홀함이 느껴지고, 언어의 숲을 뚫고 나가는 저돌적인 돌파력을 보면 아찔한 느낌”이라는 황치복 평론가의 해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시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개념들의 어울리고, 정반대의 사건들이 충돌하며, 낯선 장소들과 사물들이 포개지는 독특한 시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이 공간은 파국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곳이다. “유계幽界”, “실크로드”, “갠지스강”, “블랙홀”, “화이트홀”, “사건지평선” 등의 근원적 의미를 지닌 공간을 가리키는 시어들을 통해 시인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얼마나 참혹한지, 그 참혹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천체의 움직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인의 우주는 인간 개개의 삶에 뿌리내려 있다. 안민의 시에서는 “우울은 화이트홀까지 계속될 테지만 그곳은 천체망원경으로도 관찰된 바 없다 그러나 소멸 안쪽에서도 움찔대며 태어나는 입자들, 흘러가는 나는 사건지평선에 근접해 있다”(「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내가 속한 별은 어두운 구석이고 네 혈액형은 람다(,Λ)」), “음률은 대체로 기차의 내면에 속한다 음률은 예술을 위해 어느 구간에선 천천히 죽어가고 어느 구간에선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흐느낀다”(「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와 같이 “소멸”하고 “태어나는” 무수한 세계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개인의 미시적인 삶은 무수한 “입자”들의 충돌로 말미암아 거시적인 우주가 되고, 이는 “혁명을 꿈꾼 이들”(「시안」)의 “음률”이 되는 것이다. “나는 윤리를 증오한다고 외쳤지만, 비겁하게 윤리와 타협하며 여기까지 온 것”(「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이라는 시인의 외침은 고착화되고 변질되어버린 세계의 “윤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경계하고 파멸하면서 새로운 “윤리”의 세계를 마주하려는 행동에 다름 아니다. 목차제1부 나와 나의 분인分人과 겨울에 갇히던 ─ 12 사건지평선까지의 거리 ─ 14 피아노 ─ 16 비어秘語 혹은 비어悲語 ─ 19 어둠론 ─ 34 큐브 ─ 36 당신을 향해 달리는 당신 ─ 38 제2부 사춘기에서 그 다음 절기까지 ─ 42 계단 ─ 45 도로적道路的 강박관념 ─ 48 속화俗畵의 발 ─ 51 바라나시 겅가 ─ 54 뼈의 기원 ─ 56 사막의 풍경 ─ 60 제례의 구간 ─ 62 제3부 모래시계 ─ 70 스노우 볼 ─ 72 게헨나 ─ 74 유리 고양이 ─ 76 다음에서 머리카락을 바르게 설명한 것을 전부 고르시오 ─ 78 실조 ─ 81 안개보다 더 흐린 새벽의 레퀴엠 ─ 84 어제 ─ 86 천칭좌―Zubenelgenubi ─ 87 제4부 최초의 정의 ─ 96 그림자극 ─ 98 눈 없는 얼굴 ─ 101 낯선 유전자 Pool로 ─ 103 한 마리 사막 ─ 105 사이클에 관한 견해 ─ 107 시안 ─ 110 ▨ 안민의 시세계 | 황치복 ─ 129 [ 시인의 말 ] 기억 앓는 곳마다 흐르는 잿빛 입자들, 그 속에서 수없이 많은 나의 얼굴이 나를 보고 울고 있었다.  
114 권숙월 시집 『민들레 방점』 file
편집자
927 2018-09-07
권숙월 시인의 열세 번째 시집 『민들레 방점』은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스스로 실천하는 합일과 화해의 시정신을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 보여준 산문시 형식은 그가 이 세계를 더욱 핍진하게 사유하는 양식으로 성공하였다. 시인의 눈길이 비 젖은 벚꽃잎이 그린 “비의 발자국”(「봄비 발자국」)을 지나서 “가슴 촉촉이 적셔주던 달”(「낮달」)의 빛을 받으며 은행나무가 간행한 책 속에 깃든 “빛나는 문장”(「빛나는 문장」)에 이르는 과정은 얼마나 실감나는가! 시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그윽한 샘물이 흐르고 찬란한 바람이 불어 그가 노래하는 곳마다 시의 성전이 펼쳐진다. 마침내 “바람의 글씨, 물의 문장, 구름의 책”(「민들레 방점『)을 읽어내는 물아일체의 시정신이야말로 권숙월 시인이 다다른 천의무봉의 내면구조를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그가 보여준 정갈한 영혼의 향기가 한국문학사에 널리 퍼지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 김종태(시인, 평론가, 호서대 교수) 저자소개저자 : 권숙월 경북 김천 출생. 1979년 《시문학》 등단. 시집 『동네북』 『예수님은 나귀 타고』 『무슨 할 말이 저리도 많아…』 『젖은 잎은 소리가 없다』 『왜 나무는 서 있기만 하는가』 『이미지변신』 『그의 마음속으로』 『하늘은 참 좋겠다』 『옷고름 푼 복숭아나무』 『하늘 입』 『가둔 말』 『새로 읽은 달』이 있다. 김천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김천지부장, 한국문인협회 경상북도지회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 김천문화원과 백수문학관에서 시 창작 강의, 김천신문 편집국장. 시문학상, 경상북도문화상, 경북예술상, 김천시문화상 등 수상. 목차1부 : 봄비 발자국 봄비 발자국 15 일찍 온 꽃 16 산수유꽃 17 영산홍 18 할미꽃처럼 19 민들레 방점 20 은기리 산벚꽃 21 자두꽃 그늘 22 김천 꽃 23 바보 꽃 24 채송화 25 도라지꽃 26 능소화의 여름 27 연꽃 28 백일홍 개화 29 코스모스 30 구절초 31 쑥부쟁이 꽃 32 겨울 목련 33 2부 : 산의 마음 산의 마음 37 정말 38 바다의 말 39 갈대의 말 40 나무의 말 41 울림이 큰 말 42 별로라는 말 43 모자란다는 말 44 낮달 45 그믐달 46 도둑눈 47 새해 첫 해 48 해돋이 사진 49 햇빛 약 50 우듬지에 짓다 51 시작 노트 52 경기장 53 발견 54 마노아 생각 55 3부 : 산소발전기 산소발전기 59 보고 싶다는 말 60 맛있는 시 61 금메달감 62 민수 꿈은 무지개 63 윤슬이 꿈 참 곱다 64 꿀잠 65 가벼운 구두 66 봄나물 향기 67 아내의 자전거 68 학위모 69 남편의 위치 70 머리 염색 71 오래된 흉 72 반듯하게 걸어볼까 73 연골의 오버랩 74 개성적 인사법 75 내 몸의 1자 76 아버지 생각 77 4부 : 감동 주는 법 감동 주는 법 81 미안해서 어쩐담 82 골목 끝집 83 밤잠 84 잠에 대하여 85 실수의 빛 86 사소한 실수 87 시라는 종교 88 하늘같아서 89 독거노인 90 산십 년 91 사이좋게 92 철새 똥 93 몰표 94 고백 1 95 고백 2 96 노을 97 점 하나 98 문자 메시지 99 5부 : 신성한 숲 신성한 숲 103 꽃샘추위 104 봄 냉이 105 입춘 106 선물 107 늦은 봄 108 소쩍새 시인 109 한 폭 수채화 같은 110 멧비둘기 책 읽는 법 111 대나무의 항변 112 주홍날개꽃매미 113 벼가 익는 시간 114 황금빛 손편지 115 빛나는 문장 116 자두나무 선수 117 직지천의 겨울 118 겨울 연 119 낯익은 문장 120 눈의 힘 121 [해설] ‘두엄’으로 피워 낸 들꽃 향기 125 - 백운복(문학평론가)  
113 고창근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imagefile
편집자
765 2018-08-29
고창근 서사시집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 서지정보 국판변형: 148*220 발행일:2018년 8월 25일 쪽수:283 글쓴이 고창근 펴낸 곳: 문학마실 ISBN: 979-11-89480-00-4 (03810) 가격: 15,000원 ◕ 책소개 어우동에 대한 재해석을 하다! 남성중심의 엄격한 유교사회의 법도를 거부하고 주체적인 삶과 성을 향유하다 여성의 욕망은 죄라, 음행으로 몰려 사형당한 어우동! 역사서를 보면 어우동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 남성이자 권력자들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의 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알려졌던 것과 다른 점이 많이 느껴진다.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 왕실종친에게 시집을 갔으나 기생에게 빠진 남편의 모함으로 친정으로 쫓겨 온 어우동. 오히려 이 사건으로 어우동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기회를 잡는다. 어머니에게 유산을 물려받아 분가한 어우동은 남성중심의 유교사회였던 조선의 법도를 무시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성에 대해서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였다. 뭇 남성들의 성노리개가 아니라 당당하게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남존여비 삼종지도라는 남녀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몸의 해방을 통해 삶의 해방을 추구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이나 생명보다 왕권강화와 권력유지가 더 소중했던 성종은 어우동에게 사형을 내렸다. ◕ 저자 소개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 장편소설『누드모델』『존재의 이유』『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갈대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 서사시집『아리랑 아라리요』 개인전 3회 웹진 문학마실 편집인 ◕ 작가의 말 自序 남성중심의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 조선법도를 거부하고 주체적인 성을 향유했으나 음행이라 하여 사형당했던 여인 여자의 욕망은 죄라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 이제야 그 뜻을 기리나니 2018년 8월 주막듬에서 고창근 ◕목차 自序.../5 서(序)/7 제1부... 정4품 혜인(惠人)에 봉직되다/9 제2부... 쫓겨나다/18 제3부... 새 삶, 현비(玄非)로 살다/49 제4부... 사랑, 사랑, 사랑하다/75 제5부... 열락의 세계에 빠져들다/123 제6부... 사랑은 외로움이더라/181 제7부... 사랑이 꺾이다/228 제8부... 사랑에, 죽다/257 結 ... 그 이후/278 참고문헌.../282 ◕ 출판사 리뷰, 추천평 새로운 구별이 필요하였다. 서정과 서사의 분리라는 문학의 형식적 분류 기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변주로 이뤄진 서정의 내력을 써내려간 서사였기 때문이다. 곧 몸의 본질을 수호하기 위한 인간 내면의 역사를 기록한 서사시로 읽혔다. 어우동이 ‘타협하지 않는 것’을 자신의 몸의 본질이라고 깨달았던, 그 ‘몸의 본질’은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입을 다문다. “입을 다무니/ 눈이 뜨거워”진 시각으로 인간의 내면을 지켜본다. 아프다. “내 몸이/ 노예”였던 시대는 지금도 그리 멀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고창근의 장편서사시 ‘사랑하다 죽은 여인, 어우동’은 수많은 미투 사건 등으로 여전히 난삽한 오늘날 ‘몸의 본질에 대한 개안’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 -박관서(시인)  
112 강규 시집 『내설악 소백산 홍콩』 file
편집자
797 2018-08-28
목숨가진 모든 것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수많은 서정시를 쏟아낸 강규 시인이 인제 설악산자락에서 적어내려간 글들을 묶어 시집으로 냈다.‘내설악 소백산 홍콩’은 시인이 인제에 머물며 보고 느낀 만물을 소재삼아 가녀리고 섬세한 시선으로 표현했다. 몇 장의 사진을 함께 실어 그가 바라본 세상을 독자도 공유하게 했다. 강규 시인은 2003년 산문집 ‘평창이야기’로 등단, 한국작가회의 시분과, 시에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인제에서 내린문학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서울대와 대학원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현재 인제에서 가축병원을 운영중이다. 남미영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http://www.kado.net)>  
111 박은주 시집「귀하고 아득하고 깊은」 file
편집자
810 2018-08-28
삶의 향기가 가득한 박은주 시 모음 향기 /박은주 사람이 꼭 똑똑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으냐 셈은 느려도 헤아릴 줄 알고 걸음이 느려도 가면 되지 사람이 꼭 말을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말 다 못하는 게 얼마나 많으냐 이 말은 아끼고 저 말은 버릴 줄 알면 되지 사람이 꼭 잘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울려 가는 길에 길이 있듯 서로 통하면 되지 웃을 때 웃고 울어야 할 때 울 줄 알면 되지 때로는 변덕과 상처로 폐 끼치며 그렇게 살면 되지 서로 그러면 되지 씨앗이 저를 잃지 않는 소명을 다하듯 내가 그저 나로 사는 일이나 그대가 그대로 사는 일 어디, 그만한 향기 있으리 벗 /박은주 멀리 있어도 나무의 목소리를 듣는 건 새뿐이다 한달음에 날아와 가지를 차지하고 앉는 것을 보면 안다 가까이 있어도 나무의 숨소리를 듣는 건 새뿐이다 이파리 하나 헤치지 않는 몸짓을 보면 안다 잠시 지나가는 길 위에서 고요한 시간을 깨트리고 휘파람을 불며 나무를 흔들고 가는 바람을 보면 아무래도 나무의 눈물을 보는 건 새뿐이다 주저리 주저리 지저귀며 나무를 달래는 걸 보면 안다 하모니카 부는 남자 /박은주 그 남자가 발코니 창가에 앉아 하모니카를 분다 들 향기 그윽한 들녘에 누워 들꽃에 취한 듯 흙냄새 나는 남자가 하모니카를 분다 지붕 위에 별이 많던 날 그 남자 태어났다 지 어머니 겨드랑이에 감겨들던 황구렁이 아름다웠다 지 고향이 그리운 남자가 하모니카를 분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늙어가는 남자 못 잊을 그리움이라도 있다는 듯 그리운 첫사랑이라도 있다는 듯 도시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하모니카를 분다 들꽃이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자란 그 남자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기다리며 하모니카를 분다 그 남자가 눈가에 주름을 접으며 하모니카를 분다 귀하고 아득하고 깊은 /박은주 무너져 내린 흙더미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씨앗 누가 그의 숨, 소리 들었는가 어느 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에 그 숨, 소리 누가 들었는가 깊이가 깊이를 더해 깊어지는 그 일을 누가 아는 가 창밖에 나뭇잎은 흔들리는데 늙은 어미를 놓지 못해 마지막 숨줄을 잡고 있는 병상에 저 젊은 목숨 하나 누가 그의 숨, 소리 들었는가 그 아득한 숨, 소리 누가 들었는가 창밖에 나뭇잎은 지고 있는데 아득여 슬픈 그 숨, 소리 어미의 눈물로 줄인 키의 길이 속에도 살고 있어 굽어버린 등뼈의 곡선 따라 흐르다가 닳아버린 무릎 위에 피고 있네 네가 쉬는 숨 내가 받고 내가 쉬는 숨 네가 받으며 그 아득한 숨, 소리 숨줄로 주고받는데 무엇이 이보다 더 귀할까 무엇이 이보다 더 깊을까 들꽃 /박은주 순희 할머니가 밭에 풀을 메면 꽃밭이 생긴다 쓰러진 잎들 다시 화르르 일어나고 젖은 잎들 자주 벨벳 그 빛처럼 따스해져 풀이 저를 베고 누운 자리마다 꽃들이 일어선다 순희 할머니 풀을 멜 때 꽃 핀 것들 메지 않는 걸 밑동 아래로 살살, 흙을 긁어 덮어주는 걸 그때 꽃밭이 생기는 걸 보았다 꽃잎들 화르르, 화르르 일어날 때 그 꽃 보며 웃는 걸 냉기가 서리처럼 스민 뼛골마다 들어앉은 쓸쓸함이 그 꽃 보며 웃는 걸 어느 날 보았다 일흔, 고쟁이 속에 꽃잎 하나 후끈, 다시 웃는 걸 순희 할머니 한 송이 꽃으로 밭에서 피는 걸 감은 눈 뜨게 하고 닫힌 문 열게 하는 들꽃을 보았다 결핍 /박은주 -욕망에 대하여 꽃이 필 때 꽃나무가 핀 듯 눈이 속았다 나무 이파리가 흔들릴 때 나무가 흔들리는 듯 눈이 속았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속인 일은 없었다 제철 아닌 꽃에 마음 주고제철 아닌 과일로 허기를 달래려 했다 그러나 애당초 무엇이 무엇을 채울 수는 없었다 잡힐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결여와 좌절의 간극에서 눈이 멀었을 뿐 무엇이 무엇을 어떻게 한 일은 없었다 다만 꽃이 피었다 지고 바람이 부는 동안 혼돈의 허기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 결핍2 /박은주 -허무에 대하여 못 잊을 사람도 없고 지켜야할 맹세도 없는데 쓸쓸함이 물길처럼 드나드는 동그라미 하나 어느 날은 눈물 속을 걷고 어느 날은 공허 속을 걷네 때로는 슬픔 같고 때로는 바람 같아 젖었다가 흔들리다가 하는 동그라미 하나 어느 날은 불길에 꿰이고 어느 날은 서리에 꿰이네 바람이 물길처럼 드나드는 동그라미 하나 아무것도 머물지 못하는 동그라미 하나 영원히 빠지지 않는 마법의 반지가 되어 숙명처럼 가슴을 꿰고 있는 동그라미 하나 그, 동그라미 하나, 어쩌지 못해 나방은 죽을 줄 알면서도 불로 뛰어들고 사람은 사랑에 기대려, 기대려 하네 결핍3 /박은주 -결백에 대하여 마흔 아홉 개의 마디가 살던 그녀의 피는 선명하지 않은 건 용서치 않는다는 듯 온도계의 눈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중인데 곧 지어질 쉰 개째의 마디는 몇 도쯤에 눈금을 그을까 그녀의 피는 차양처럼 내부를 실루엣으로 그리지만 비틀거린 흔적이 역력한 마디마다 뚜렷한 상흔은 깊은 수심 속에 발을 내린 뿌리처럼 저를 보이지 않는다 허나, 흔들리는 수심 속에서도 뿌리는 결백하여 너무나 결백하여 가문을 이룬다 뿌리의 결백에는 내력이 있으므로 담장 안에 하얀 그림 같던 외할머니 늘 댓돌에 기대어 키를 재던 하얀 코고무신 위로 순백한 햇살의 시간들 쏟아지면 하얀 그 머리카락 비녀로 말아올린 일생 더 하얗게 태어나곤 했지 담장 안, 결백에 기대어 키를 재던 외할머니의 외부는 티끌 하나 침범하지 못하는 성지처럼 벙어리 개망초 하얀 꽃만 피었다 지고 피었다 졌지 그 결백의 내부에서 여든 세 개의 마디가 하얀 피를 흘리며 서로를 맞추다 떠나간 후 어머니는 당신의 여든 마디를 햇볕 아래 말리고 있다 외로운 눈 /박은주 산수유 열매가 떨어진다며 부음나무 이파리들이 소곤대는데 꽃술을 여미던 개망초 강아지풀과 눈을 맞춘다 호박넝쿨이 잎을 더 넓혔다고 부추가 꽃대를 올렸다고 텃밭에 사는 풀들이 사각사각 떠들고 있다 세상에 살 때 몰랐다 소리가 없이도 소리를 내는 것들이 서로 닿아 소리가 되는 걸 꼼짝도 않던 고구마 이파리들이 발자국 소리에 사라지는 황구렁이 뒤에서 터줏대감 오랜만에 몸을 말리러 나온 거라며 늘어진 가지나무 이파리와 말을 섞는다 하늘가에 파란 구름 도랑가에 물풀들 서로 닿아 흐르는데 바람에 스치운 박하 향기 서로 만나 구르는데 벌 두 마리 공중에서 꽉, 껴안고 있다 윙윙, 서로를 보듬고 있다 사람의 눈동자에도 외로움이 산다는 걸 그 외로움 사이로 망막이 빚어내는 눈의 그리움은 작고 여리고 가늘며 투명한 것들 다 볼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살 때 몰랐다 낙하落下 /박은주 나뭇잎이 지고 있다 지지 않으려, 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며 돌아갈 곳 없는 나뭇잎이 지고 있다 나무는 벌써 가지를 털고 흔적을 지우는데 아직은 낙엽이 아니라고 아직은 그럴 일이 아니라고 돌아갈 곳 없는 나뭇잎이 몸부림치고 있다 푸른 날의 명예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 부귀와 권세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어 누구나 돌아가고 싶은 시간들이 피는 나뭇잎 같고 누구나 돌려놓고 싶은 시간들이 지는 나뭇잎 같네 그러나 시간은 굴절을 모르고 과거는 멈춰버린 기억일 뿐 어제는 푸르게 웃고 있던 이파리 오늘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허공을 헤매고 있다 사인암 /박은주 바위가 소나무를 품고 있다 어쩌면 소나무가 바위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누구를 품고 있든 온전히 한 몸일 수 있다니 남을 위해 제 몸 저렇게 열어 줄 수 있다니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몸짓이다 누가 뭐래도 고고하게 뿌리가 없던 바위에도 뿌리가 생겼으리라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를 꽉, 잡았으리라 세상 온갖 복사본들을 만들어 내느라 세상 온갖 공해를 만들어 내느라 사람들이 서로 사랑할 시간도 없이 바쁠 때 빙하가 자꾸 녹아 홍수가 나는 걸 단층이 흔들려 지진이 나는 걸 걱정하는 듯 더 깊이 서로를 꼭, 안으며 괜찮다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부둥켜안았으리라 체온과 체온이 닿으면 얼마나 따뜻한지 고요와 다정이 만나면 얼마나 평온한지 은혜와 절개가 만나면 얼마나 든든한지 그들만이 아는 것처럼 태고 적에 떨어진 씨앗 하나 꽉, 바위를 껴안은 태초부터 절개는 세상에 생겨났다 눈물을 읽다 /박은주 눈물은 그냥 눈물이 아니다 말 대신에 쏟아 놓는 말 마음 대신에 쏟아 놓는 마음이다 눈물은 그냥 흐르는 게 아니다 울고 난 뒤 허기가 붙잡고 있는 삶의 의지가 눈물을 따라 나오는 것이다 인생은 눈물 속에 길을 숨겨 놓고 딴청을 피우지만 발이 제 발을 밟으며 걸어갈 때 눈물은 저의 냄새를 저으며 길을 터주는 것 그러나 길은 선명한 것이 아니므로 눈물은 가벼운 것이 아니므로 눈물을 읽어야 한다 한량 없는 사람의 사연을 읽듯 무량한 세월의 고해를 읽듯 운다는 건 그냥 우는 게 아니다 옷을 입고도 발가벗는 일이다 고유한 그루터기가 살아 있는 그 길을 따라가 보면 눈물에는 숨이 붙어 있다 눈물에는 길이 숨어 산다 세상에 가로되, /박은주 박하가 여름 내 뻗어간 뿌리를 쳐내며 뜨끔했다 누가 내 머리를 아니 내 몸이나 손이나 코끝 같은데를 쳐 낸다면 어찌하리 무성하게 뻗어간 딸기 줄기를 쳐 내려다 그만 두었다 누가 나를 쳐 내려다가 그만두기를 빌며 땅콩 이파리를 건드리는 고구마 줄기를 쳐 낼 때도 고구마를 갉아 먹는 두더지 구멍을 막을 때도 미안했다 그들의 삶에 내가 자꾸 관여하는 것 같아서 주렁주렁 매달린 열매를 보며 오래 살고도 열매 맺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칠 것 안 칠 것 너무 쳐 버린 것 같아서 나와 남의 생에 대하여 무단히 쳐 내려온 내 속 좁은 역사를 들여다보며 누가 나를 하릴없이 쳐 내는 일 없기를 빈다 저, 잘려나간 뿌리와 줄기와 눈들이 아아, 가위 눌리는 일 없기를 내 두 번째 손 /박은주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내 그릇을 씻어주던 고무장갑에 물이 샌다 물의 갈키로부터 나를 보호하던 고무장갑 그 고무장갑에 물이 새다니 허전하기 그지없다 그런 고무장갑을 훌렁 벗어 던질 수가 없어 손 안으로 들어오는 물기를 만지며 설거지를 한다 가끔은 설거지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전화를 받기도 하는데 그러니까 고무장갑은 내가 음치에 욕쟁이에 방귀까지 잘 뀐다는 걸 다 아는 것이다 손톱은 얼마 만에 깎는지 밥은 얼마나 먹는지 커피는 몇 잔이나 마시는지 핸드크림은 어떤 향이 나는지 나보다 더 훤히 나를 아는 것이다 그런 나를 고무장갑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손을 대신해 두 번째 손이 되어주던 그 정든 손을 떠나보내는 건 쓸쓸한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떠나가는 일이나 정이 정을 떠나보내는 일은 참 쓸쓸한 일이다 누가 이름을 불러주면 /박은주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는 한낮의 바람 같은 훈훈함이 있는 것 같고 오래 입은 스웨터의 편안함이 있는 것 같고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는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이 있는 것 같고 돌아보면 언제나 기다리는 자리가 있는 것 같고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에는 같이 걸어가는 길이 있는 것 같고 함께 나누어 온 이야기가 있는 것 같고 귀뚜라미가 가을을 부르듯 누가 이름을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는 들어도 들어도 듣고 싶은 노래가 있는 것 같네 다정한 벗이 이름을 불러주듯 밥은 먹었느냐고 별일은 없느냐고 물어봐 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네[출처] 박은주 시집「귀하고 아득하고 깊은」 (2018)도서출판 한우, 출간 시 모음 25편|작성자 벼리  
110 김은령 시집 『잠시 위탁했다 』 file
편집자
1050 2018-05-04
책소개 대구에서 활동하는 중견 여류시인의 세번째 시집. 목차005 시인의 말 1부 011 반성 012 수마노 014 무릎의 계보 016 동굴 018 쥐새끼 019 패목牌木 020 조우 022 밀회 024 복사꽃을 빌리다 025 하현달 아래서 울다 026 능소화는 또 피어서 027 국어공부 028 엉덩이 전법 030 궁금하다 2부 033 지극히 소극적인 삶 034 억수, 라는 036 칼의 집 037 세신 038 당최 설명되지 않지만 040 네다바이 042 시인, 들 044 전원일기 045 봉림역 046 간절 049 목련, 그 피안 050 아득한 몸 051 관계 052 참, 미안타 053 이미 늦은 배웅 054 굴강의 기슭 3부 057 Cosmos 058 고양이처럼 060 순장의 역사 062 브리핑 063 꽃무릇 같으니라고 064 아름다운 것들의 행방 066 바람의 말 068 와중에 070 봄날은, 그렇다 072 그 후 074 애국가를 불렀다 076 무꽃을 보았다 4부 079 小寒에 꽃을 보다 080 돈오 082 접견하다 -2 084 연자蓮子 085 면목에 대하여 086 곁 087 點心 088 거조의 괘를 뽑다 089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090 그저, 091 딜deal 092 경을 치다 093 겁외사 094 그 나무에 걸리다 095 해인으로 가는 길 096 귀소 ■ 해설 ∥ 고증식 097 우연히 만나고, 문득 깨닫고, 오래 두고 닦다  
109 권선희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 file
편집자
1044 2018-05-04
책소개 권선희의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 이 시집은 권선희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소개 춘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며 2000년 봄, 작정하고 들어간 구룡포에서 살며 글을 쓴다. 1998년 [포항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첫시집 『구룡포로 간다』가 있으며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거점으로 포구의 역사를 다룬 다큐 「구룡포에 살았다(2인 공저)」, 해양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제 1회 해양영토대장정’ 기록작가로 참가해 2100km 바닷길을 항해하고 항해기 『우리는 한배를 탔다』를 묶었다. 또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한 서해, 남해, 동해에 이르는 해안길을 안내한 도보여행기 『바다를 걷다, 해안누리길(공저)』와 경북해양문화집 『뒤안』 등 주로 바다와 관련된 작업물들을 발간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한다. 목차제1부 해파리는요/ 노을/ 복자 언니/ 부적符籍/ 숙주宿主/ 팔자/ 11월의 저녁 식사/ 수장水葬/ 소낙비/ 추석/ 마지막 연하장/ 쉰 살/ 생흔화석 제2부 누가 더 불쌍한가/ 다시, 구만리/ 꿈일 뿐이었을까/ 참 나쁜 위로/ 작명/ 방생일화/ 칸나의 자살법/ 짝다리/ 오래전 열쇠를 잃었다/ 사램이 고래만 같으믄/ 골방블루스/ 원기소에 대한 기억/ 서로/ 비상구 제3부 꽃마차는 울며 간다/ 빈집/ 뜨거운 말/ 종기를 짜는 일도 쉽지 않아/ 적조赤潮/ 폐교/ 물고기도 운다/ 쨍/ 구름의 손목/ 충분한 슬픔/ 태풍/ 갱년기/ 거짓말 제4부 둘째 발톱/ 가을, 구룡포/ 씨바씨바/ 돌림노래/ 어떤 배려/ 목포집 덩실이/ 관풍대/ 과메기/ 암연?然/ 흉어기/ 알뜰수선 그 너머/ 오해를 풀다/ 숙희 이야기/ 꼬리  
108 윤임수 시집 『절반의 길』. file
편집자
1021 2018-05-04
책소개 윤임수의 시집 『절반의 길』. 이 시집은 윤임수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첫 시집 『상처의 집』 이후 한층 성숙된 시의식을 보여주는 이번 시집은 시인이 생활인으로서 담아낸 이야기들을 시로 형상화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건네고 있다. 저자소개 1966년 7월 21일 충남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1998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고, 철도청 고속철도본부에서 근무했다. 목차제1부 하늘 강 13 3월 14 봄 15 봄비 16 얼레지의 봄 17 발걸음 소리 18 절뚝절뚝, 강아지 19 괜찮다 20 늦가을 단상 21 저 달 22 후미진 곳 23 가을 24 새벽달 25 말의 잠 26 서촌 27 겨울 숲 28 곡선 29 제2부 절반의 길 33 나의 시 34 이다음에 우리는 36 칠불암 37 채송화 38 거미줄에 걸리다 39 게으름쟁이 40 내 구름 41 맛있는 밥상 42 근황 43 그 술집 44 독작 46 쉼표 47 저 맷돌 48 잠시라도 49 무의도 노을 50 제3부 사람 53 스미고 번지다 54 운주사 와불 55 청계사 가는 길 56 불티나게 58 석류 59 관악사지 60 가을밤 62 깍두기 63 보따리 64 교동도 대룡시장 65 그냥가게 66 무작정 67 재채기 68 헛개 69 제4부 단풍 73 북한산 짐꾼 74 꽃 75 겨울 석양 76 왕송호수의 겨울 77 노숙 78 누워서 사는 소나무 79 양촌집 80 조남희 여사 81 격렬비열도 82 반달 83 내 술집이 사라졌다 84 세밑 86 출근을 하네 88 한 노동자가 있다 90 촛불이 타올랐다 92 촛불의 겨울 94 작은 것 95 해설 김현정 탈각脫殼과 유랑의식 96  
107 이필호 시집 『눈 속에 어린 눈 』 file
편집자
1044 2018-05-04
책소개 이필호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치열한 존재확인과, 세상에 대한 폭넓은 공부 그리고 가족과 관련한 애잔한 그리움에 대해 치열한 파고듦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목차004 시인의 말 1부 011 적과의 동거 012 잠시 이별 014 오늘 016 씽크대를 깨다 018 웃음 020 초대 022 군위장 속으로 024 어떤 母子 026 보물찾기 028 이탈 030 소통 032 주름들 033 정신병동 034 갑자기 035 소나기 036 새 038 일요일 040 춘곤증 041 그 말 042 들꽃 044 목걸이 구출작전 046 다시, 산책길 2부 051 송림지 052 방문 054 동피랑에 서서 056 물은 네게로 흐르고 058 그림자 060 이동 062 가을, 잘가요 064 토끼풀 066 순덕이 068 감자 070 바지랑대 072 눈 속에 어린 눈 -예일이에게 074 배웅 076 둥지 078 어록 080 4박 5일 082 미완의 노래 -예진이에게 084 난 잘못이 없는데 086 그 자리 087 그 날 088 엄마의 우산 090 가계부 092 풍경 3부 095 배려 096 고모네 집 098 검은 눈 100 그 여자 탐구 102 지갑 104 낙타 혹 106 성전 -스페인 시편 108 생각의 자리 110 옷핀을 타고 바다로 112 Race 113 거룩한 생존 114 하얀 마을에서 116 고흐를 생각하며 118 안면도 120 정선, 영월 122 청강호수 124 우편물 126 백야 127 숲에 대한 단상 128 해설 - 김용락  
106 김환재 시집 『친구를 잊기 위하여』. file
편집자
1137 2018-05-04
김환재의 시집 『친구를 잊기 위하여』. 39년 교사 생활을 한 시인이 등단 후 펴내는 첫 시집이다. 저자소개저자 : 김환재 저자 김환재는 · 본명 김재환 ·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 경북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 39년 간 경북지역 중등교사 지냄 · 2001년 「작가정신」에 시 「친구를 잊기 위하여」로 작품 활동 시작 · 산문집 『사람은 얕고 강은 깊다』 목차1부 010 친구를 잊기 위하여 012 개미 신문 014 로프공의 참선법 016 가을의 방어벽 017 광장 018 부엉이 나라 020 소 이야기 022 안개 마을 024 촛불이 달린다 026 폐광 마을 -귀향 028 폐광 마을 -부음 030 오래 전 항구, 후포 032 11월의 귀가 034 정전 036 김천역에서 2부 038 공룡능선 길 040 고개 마루 넘어서 042 남고비 신의 새, 욜 044 사막에 뜨는 별 046 홍고린 엘스의 염소 048 엉겅퀴 049 장백폭포 앞에서 050 붉은 동굴 052 벽을 잡은 담쟁이처럼 054 빈집 056 푸른 빈집 058 영일만 -누런 바다 060 영일만 -묵은 집은 없다 062 영일만 -폭우 064 새 -거창 추모공원에서 3부 066 울릉도 -첫눈 068 울릉도 -고래 070 울릉도 -나물 섬마을 072 울릉도 -눈 내리는 날의 나리촌 074 울릉도 -돌봉의 가을 076 울릉도 -새벽 동백 077 울릉도 -별 079 울릉도 -갈매기 집 080 울릉도 -섬에서 난 겨울 082 울릉도 -일몰 084 울릉도 -해국 086 울릉도 -일주 4부 088 리어카에 대한 기억 089 벚꽃 아래 앉아서 꿈꾸다 090 천리향 화분 092 가을 편지 094 가을밤 095 까치의 참선법 006 여기, 그림, 절규 098 문비 100 다림질 102 운제산 -참꽃 피는 마을 104 민둥산 억새 107 해설Ⅰ삶을 다해 모신 수신(修身)과 평천하(平天下)의 길 -박승민  
105 정선호 시집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 file
편집자
1308 2017-11-21
■ 도서 소개 정선호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가 <푸른사상 시선 82>로 출간되었다. 과거에는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고 오늘날엔 다국적 거대 기업에 지배되고 있는 이국의 낯선 땅에서 시인은 주체적인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다. 칠 년 세월에 반은 필리핀 사람이 되었다는 그는 오늘도 우기와 건기가 교차하고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 사는 그 땅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시인 소개 정선호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금오공과대학교 생산기계공학과와 창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 몸속의 지구』 『세온도를 그리다』가 있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바다 위에서의 저녁 식사 / 영화관 앞 흔들의자 / 타잔은 살아 있다 / 바다 정류장 / 올랑가포 운동장 트랙을 달리다 / 우기를 지내는 일 / 노래하는 두 성자에 대한 경의 / 다국적 커피점이 있는 휴일의 저녁 / 공동묘지를 지나다 / 패스트푸드점에서 시를 쓰다 / 등(燈)을 걸어놓다 / 닭싸움을 읽다 / 골프라는 운동 / 춘향휴게소에서 머물다 / 수녀들의 만찬 제2부 우기에 가을을 맞다 / 번함 공원에서 점을 보다 / 얼굴을 만지다 / 막걸리를 마시다 / 파라바얀 공원의 저녁 / 고국에서 온 제비 / 푸른빛을 마시다 / 카와그 밀림 속을 달리다 / 내 몸속의 우물 / 이별 / 봄꽃의 감각 / 주인 없는 카페에서 놀다 / 입국자를 기다리다 / 고구마 남자 / 광장에서의 글쓰기 제3부 모롱비치를 기억하는 태양 / 나무들 사이에서 놀다 / 낯선 골목을 서성이다 / 적도에서의 성탄절 축제 / 챔피언 / 자전거 타는 공원의 휴일 / 해변을 달리다 / 억새풀의 기억 / 적도의 섬나라에서 제주도로 보내는 통신 / 손목시계를 고치다 / 불륜에 대한 변명 / 호수에서 전화를 걸다 / 건기(乾期)를 말하다 / 응답하라 2016년 제4부 요절한 가수의 노래를 부르다 / Without you / 그 시내버스의 야간 운행 / 풍선 / 세상에 이런 일이 / 어머니의 신발 / 난을 치다 / 봄은 네 갈래다 / 초봄, 천주산을 오르며 / 바다 묘지 / 쉰 즈음에 / 폐선 / 벚꽃 핀 거리 / 한여름에 겨울을 노래하다 / 노(老)시인의 선인장 작품 해설:필리핀의 시학 - 맹문재 ■ 작품 세계 정선호는 한국 시문학사에서 필리핀을 선구적으로 노래한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시인은 필리핀의 역사와 현재의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단순히 작품의 제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을 통해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필리핀의 전반을 폭넓고도 깊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필리핀의 사람들 얼굴은 여러 종류”라고 밝히고 있듯이 필리핀은 혼혈 민족이다. “원주민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온 말레이족, 그들과/스페인, 미국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과의 혼혈인이/필리핀 사회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의 형제끼리도 피부색과 얼굴이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필리핀인은 그걸 따지거나 화젯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피부가 하얀 서양인과 황색인 동양인, 검은 피부의 사람들과/그 혼혈인들이 섞여 트랙 위를 달”(「올랑가포 운동장 트랙을 달리다」)릴 정도로 세계의 민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필리핀 “수비크시 아이얀몰 안에” 있는 “다국적 커피전문점에 갔다”가 자본주의를 실감한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엄청난 자본을 발판으로/세계의 곳곳에 공장과 상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에 따라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공장과 상점은 제 나라의 자영업자를 퇴출”하고 “많은 이들을 다국적 기업의 노동자로 만들”며, “가격을 올려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품의 화자가 살아가고 있는 “수비크시” 역시 “다국적 기업이 많은 자유무역 도시라서/외국 기업의 현지인 노동자와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젊은 현지인 여자와 외국 중년 남자가 만나고/상점 밖의 택시들은 계속 그들을 태우고 가곤” 한다. “몇몇의 은퇴한 외국 노인들도 젊은 여자와 대화 후/자가용을 타고 어디론가 향하곤” 한다. 자본의 위력으로 필리핀의 “젊은 여자”들을 농락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의 화자는 “해는 그것을 눈치챘는지 귀가를 서둘렀다”라며 타락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강압에 “적도 지방에서 우기를 지낸다는 것은/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항상 젖어 있”을 수밖에 없다. “마음속엔 빗물 가득해 거기서 허우적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세계화의 심화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다.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이 증대되지만 자본의 이동이 용이한 데다가 위력이 강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지배받는다. 따라서 그 산업에 몸담고 있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노동을 강요받을 뿐만 아니라 일자리마저 불안한 처지에 놓인다. 따라서 자본주의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데, 작품의 화자가 “야자수 한 그루 옮겨와 키”우는 것이 그 모습이다. 자본주의가 연장 근무를 지시하고 작업량을 채우기를 요구하는 행동에 비해 화자가 야자수를 키우는 것은 주체적인 행동이다. 단기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화자는 궁극적으로 “나무는 자라 내 정수리에 뿌리를 내”릴 것을 믿는다. 그리하여 “열매 맺자 빗물을 정제해 열매에 넣어”준다. 결국 “적도 지방에서 우기를 지”내기 위해 “원시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창조자는 적도 부근엔 사계절을 주지 않고/우기와 건기만 허락하였”기 때문에 “바람과 구름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듯이 화자 역시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화자의 이와 같은 행동은 단순히 자연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마음속에 “야자수 한 그루 옮겨와 키”우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행동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의 강요에 의해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주체성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결국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는 창조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정선호 시인은 “2차 대전 때 일본군과 미군이/교전 중에 방어벽으로도 사용했으며/지금은 술 취한 남자들의 방뇨막이 되기도” 하는 “바탄시의 골목들”을 걸으며 필리핀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국의 낯선 골목을 서성이며 나는/세계의 모든 골목은 안녕한지 문득 궁금”(「낯선 골목을 서성이다」)해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적도 지방엔 12월에도 햇볕이 강렬했지만/거리엔 성탄절 트리가 세워지고 전등에 점등되고/성탄절 노래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한다. “눈 내리는 성탄절을 상상하며/집집마다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파티를”(「적도에서의 성탄절 축제」) 열며 함께 노래하는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면서도 주체성을 추구하는 필리핀 사람들의 개방적인 태도를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주목하는 것이다. 필리핀은 민중들의 항쟁으로 정권 교체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두 엘리트 정치의 한계, 군부의 갈등, 빈곤, 종교적 대립 등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리핀은 1907년에 근대식 선거를 실시한 정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된 정권이 분열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강고한 통합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필리핀들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다국적 기업의 침투가 국가를 퇴조시키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국민들이 국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오랜 역사를 통해 자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점점 심화되는 세계 자본주의 시대에 맞서 개방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인의 말 밥벌이 때문에 칠 년 동안 머무는 필리핀에서 내 피부는 검어지고 체질도 많이 바뀌었다 고국에서 오십 년을 지내면서 만들어진 몸의 체질은 점차 열대지방화되었다 식사는 한국 식단으로 했으나 간식과 과일은 열대지방의 것으로 먹고 마셨다 고국과 필리핀 사람들의 생활은 너무 달랐다 필리핀에선 일 년에 두세 차례 벼농사를 짓고 많은 과일나무 덕분에 굶는 이가 거의 없다 일 년 내내 더운 날씨라 두꺼운 옷이 필요 없어 옷값이 적게 들고 얼어 죽는 이 없다 먹고사는 걱정이 적어 아이를 많이 낳았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지 않았고 심하게 경쟁도 하지 않으며 과외 활동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들은 기능직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일해 소득이 적었으나 소수의 자본가들은 재산이 많다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와 정부 정책의 부실로 사회보장제도가 적어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지냈다 건강보험제도가 부실해 사람들의 병원비 부담이 커 평균 수명이 한국보다 십 년 정도 짧았다 몸 한쪽은 한국인, 다른 한쪽은 필리핀인인 내가 필리핀인과 부대끼며 한 시대를 살았다 ■ 추천의 글 그렇다. ‘카와그 밀림’을 달리는 일이나 ‘올랑가포 운동장’을 뛰는 일이나 ‘바기오시 만손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이나 혹은 ‘수비크시 아이얀몰 안’의 다국적 커피 전문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일이나 ‘번함 공원’ 호숫가에서 늙은 여자에게 점을 보는 일이나 ‘바탄시 바닷가’ 노천카페에서 수녀들이 저녁을 먹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나 더러는 ‘바탄시의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이나, 어느 날 날아온 한 통의 전자 메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한 시인이 아직 고독하게 살아 있다는, 그래서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는 구체적인 표징들이다. 얼마나 다행한가. ― 오인태(시인) 시간의 문을 열어 10여 년 비행을 한 시인(詩人)이 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 살고 있다. 늘 마음에 담고 살지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비움의 공간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곳에도 시인의 눈길을 원하는 생(生)들이 파닥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나, 떠나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공간이나, 돌이켜보면 하나의 시간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의 세 번째 시집 시편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누구나 살기 위해 공간을 떠나게 되면 생을 담보로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시인이 놓을 수 없는 것이, 비에 젖은 사람들이다. 정선호 시인은 또 다른 공간에서 그걸 품고 있었다. ― 김희정(시인·대전작가회의 회장)  
104 권천학 시집 『길에서 도를 닦다』. file
편집자
1324 2017-10-06
권천학의 시집 『길에서 도를 닦다』. 이 시집은 권천학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크게 5부로 나뉘어 있으며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시인의 말 1 나의 길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 모란에게 그놈 목소리 짐승의 시대 살 빼기 프로포즈의 추억 이름값 가을 참회록 배신의 축배 하지제 운두령 봉평 가는 길 수타계곡 태기령 가산공원에서 효석의 생가 터에서 2 대한민국의 길에서 무궁화 대한민국에게 보내는 밥상 한글로 짓는 영혼의 집 7월 장미 신의주 세미나에 가는 아침 가자, 참 민주의 길로! 용오름으로 쇠바퀴의 꿈 철도 중단점 바람의 이정표엔 →표가 없다 용왕님 전 상서 4월, 팽목항의 절규 진도의 약속 3 역사의 길에서 역사는 침묵의 반대편에 고창의 고인돌군 강화도 고인돌 폐허를 찾아서 나비되어 날아라! Become a Butterfly and Fly! ▲가 ■에게 731부대의 실험현장 6월의 시 June Poem 꽃으로 피는 사랑의 혼 The Spirit of Love That Blooms as a Flower 축복의 꽃 4 낯선 길에서 예원의 돌담장 양자가 보내는 황사 지팡이 산안개 그냥 그렇게 새 없는 숲 문 신선 짐꾼 이승의 마지막 꽃 흙꽃 양귀비 하비루에서 바람나고 싶은 밤 5 그대, 세상의 길에서 천지에 장경 누구라도 나이아가라 폭포 기쁜 슬픔 슬픈 기쁨 지식은 똥 소록도가 사라졌다 오호라, 단양 수의 슬픔 뒤에 오는 슬픔 우이동에 가면 의홍이 형 가을 뜻풀이  
103 김상출 시집 『부끄러운 밑천』. file
편집자
1135 2017-10-06
김상출의 시집 『부끄러운 밑천』. 이 시집은 김상출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008 자서 1부 011 2012년 추석 012 날궂이 013 동백꽃 014 문 015 믿을 수 없는 이야기 016 부잣집 잔칫날 018 벌초記 019 산길에서 020 생일 1 021 생일 2 022 세수하다가 023 오늘 한 일 024 식탐 026 죄 027 죽고 사는 이야기 028 코피 029 회갑 2부 033 5분 034 귀경길에 036 나무못 038 뉴스 039 무서운 말 040 목젖 바위 042 병신년에 쓰는 시 043 상실의 역사 044 수달에게 046 얻어맞은 이야기 048 연말에 050 장마 052 저승의 필요성 054 기르마재 사는 명주 056 소연이의 공부법 3부 055 11월 056 가끔은 경건하게 057 매미의 주검 058 가을 밤비 060 김치 국물 062 명호반점 1 064 버스 대합실 065 소인 씨 손 066 철옥 씨 손 071 축제장 은어 072 폐계 073 효자 1 074 효자 2 076 효자 3 077 효자손 4부 081 거 봐 082 그대에게 083 나도 어려운 시 084 늦가을 085 묵호 가는 길에 086 봄 폭설 087 봄 088 사랑이라고 했나? 089 산길에서 090 손 092 술집 끝순네 094 짐짓 096 청주집 변소 098 추수 099 욕실 저녁을 맞다 5부 103 궁금증 104 부음 105 비 오시는 알 106 새벽에 인생을 생각다 108 살다보면 109 수염을 깎다가 110 연애를 꿈꾸며 111 연주는 이쁘다 112 작문 시간 114 昨醉未醒 115 차이 116 태양미용실 117 하루 118 폐교에서 120 후회라 쓰고 절망이라 읽다 122 해설 | 권서각  
102 고창근 장편서사시 『아리랑 아라리요』 imagefile
편집자
1306 2017-09-06
고창근 서사시집 『아리랑 아라리요』서지정보, 보도자료 ◕ 서지정보 국판변형: 148*210 발행일:2017년 9월 01일 쪽수:248 글쓴이 고창근 펴낸 곳: 문학마실 ISBN: 979-11-951187-0-0 (03810) 가격: 15,000원 ◕ 책소개 고창근 작가가 상주에 정착하여 현지 문학인들과 창작을 겸한 현실비판 활동을 맹렬히 전개해온 지도 어언 20여 년이 흘렀다. 그 치열성이 이룩한 획기적인 업적이 이번의 장편서사시 <아리랑 아라리요>이다. 농민운동으로 유서 깊은 고장인 경북 상주를 중심으로 가족사 2대에 걸친 농민 수난과 저항의 실상을 민중사관의 시각으로 대중성 있게 풀어낸 장편서사시. 상주에서는 19세기 후반에만도 임술농민항쟁(1862년)부터 함창농민항쟁(1891년)을 거쳐 동학농민항쟁(1894년)까지 세 차례나 처절한 농민항쟁이 있었다. 작가는 이를 아버지-아들에 이르는 2대에 걸쳐 좌절당한 농민항쟁을 재기시키려다 잡혀 효수(梟首)당한 인물의 고백형식으로 서사구조를 풀어나간다. 고창근 작가는 이 서사시를 통하여 19세기 상주의 농민항쟁을 한유하게 담론하려는 게 아니라 그 항쟁을 통하여 오늘의 한국 농민이 직면하고 있는 민족사적인 투지의 절실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 저자 소개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소도(蘇塗)』『아버지의 알리바이』『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 장편소설『누드모델』『존재의 이유』『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갈대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다』개인전 3회 ◕ 작가의 말 自序 조선시대에선 소위 '난’을 일으킨 사람은 모두 효수형에 처해졌다. 목을 잘라 긴 장대에 머리를 매달아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을 끊임없이 일으켰으니 지배층의 노예로 살기보다 인간으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겠는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오늘날 촛불을 든 국민들 모두 이 또한 지배계급의 노예로 살기보다 삶의 주체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겠는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17년 늦여름 주막듬에서 고창근 ◕목차 自序 서시 007 제1부 농민이 난을 일으키다 017 -1862년 임술농민항쟁 제2부 농민이 수령을 고을 밖으로 들어내다 085 -1891년 함창농민항쟁 제3부 농민이 읍성을 점령하다 165 -1894년 동학농민항쟁 맺음시 235 발문/ 2대가 효수 당한 상주 농민항쟁의 현대적 의미 241 임헌영(문학평론가, 민족문제연구소장) 참고문헌 246 ◕추천평, 출판사 리뷰 2대가 효수 당한 상주 농민항쟁의 현대적 의미 - 고창근 장편서사시 <아리랑 아라리요 –농민이 새 세상을 꿈꾸다> 임헌영(문학평론가, 민족문제연구소장) 고창근 작가는 이미 <나는 날마다 칼을 품고 산다> 등 3권의 창작집과 <신윤복, 욕망을 욕망하다> 등 장편 4권을 낸 중견이다. 그가 상주에 정착하여 현지 문학인들과 창작을 겸한 현실비판 활동을 맹렬히 전개해온 지도 어언 20여 년이 흘렀다. 그 치열성이 이룩한 획기적인 업적이 이번의 장편 서사시 <아리랑 아라리요>이다. 농민운동으로 유서 깊은 고장인 상주를 중심으로 가족사 2대에 걸친 농민 수난과 저항의 실상을 민중사관의 시각으로 대중성 있게 풀어낸 노래가 이 결실이다. 상주에서는 19세기 후반에만도 임술농민항쟁(1862)부터 함창농민항쟁(1891)을 거쳐 동학농민항쟁(1894)까지 세 차례나 처절한 농민항쟁이 있었다. 고창근 작가는 이를 아버지-아들에 이르는 2대에 걸쳐 좌절당한 농민항쟁을 재기시키려다 잡혀 효수(梟首)당한 인물의 고백형식으로 서사구조를 풀어나간다. 농민항쟁의 발생과 경과 및 결말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다 엇비슷하다. 지방장관의 수탈과 억압을 견디다 못해 들고 일어나 그 고을의 수령(대개 시장 군수급)과 핵심 탐관오리들을 차마 죽이지(혹은 죽이기도) 못하고 쫓아낸다(혹은 도주한다). 중앙에서는 이내 신임 수령이 나타나 적폐 청산은커녕 도리어 농민운동 주모자를 잔학하게 처단하며 여전히 탐학을 일삼는다. 이에 격분한 농민들은 2차 봉기를 일으켜 처음에 당했던 분풀이로 과격한 보복행위를 하게 되지만 이내 국가 권력 차원의 진압군에 압도당하고 만다. 관군은 언제나 훨씬 잔혹무비하다. 농민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로운 저항을 꿈꾸지만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서 상주(뿐이 아니라 지구 위에 농민이 있는 어디서나)에서는 세 번(뿐 아니라 더 많은)이나 농민항쟁이 일어났으나 역시 좌절당한 채 오늘에도 새로운 항쟁을 꿈꾸고 있다. 제1부 <농민이 난을 일으키다-1862년 임술농민항쟁>의 화자는 아버지다. 화자는 효수당한 상태에서 자신이 듣고 보고 겪었던 일들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절절히 호소하는 형식을 취한다. 제2부 <농민이 수령을 고을 밖으로 들어내다 –1891년 함창농민항쟁>의 시적 화자는 제1부에서 효수당한 아버지의 아들이 어머니에게 호소하는 형식을 취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잃은 뒤 외갓집 신세를 많이 지고 성장했다. 마침 외가가 있던 함창에 갔을 때 큰 외숙부가 병환으로 부역엘 못나가자 대신 나갔다가 농민항쟁이 일어나자 휘말려들었다. 순진한 농민들은 항쟁 초기에는 수령을 공격하지 않은 채 농민들에게 직접 폐를 끼치는 자들만을 응징하려 했지만 일이 커지면서 점점 수령도 나쁜 무리의 우두머리임을 깨닫고 차마 죽이진 못한고 추방해버린다. 그러면서도 농민들은 국가체제는 믿었던 지라 예로부터 고을의 수령이 없으면 인근 수령이 겸직한다기에 함창과 가까운 문경현감에게 의탁했다. 그런데 이런 농민의 뜻을 거스르고 문경현감은 농민항쟁에 앞섰던 인물들을 가차 없이 처단해 버린다. 제3부 <농민이 읍성을 점령하다-1894년 동학농민항쟁>은 이 서사시의 클라이맥스로 바로 상주지역의 동학농민전쟁을 다룬다. 화자는 효수당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호소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상주 동학에 영향력을 끼쳤던 최시형이 초기엔 농민항쟁보다 내부 조직 강화에 치중하다가 1894년에야 본격적인 투쟁에 나선 경위를 항일애국운동으로 풀이한다. 그 항쟁이 일본군의 무자비한 학살로 좌절당하는 과정을 통하여 작가는 그때까지 농민군이 철석같이 믿었던 국가와 왕권에 대한 신뢰마저도 무너져 내리는 계기로 설정한다. 농민들의 요구조건은 언제나 생존권과 평화로운 삶인데, 그게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의 제주 강정마을은 미 해군 기지 철폐가 되며, 밀양에서는 송전탑 이전이 되고, 성주에서는 사드 배치 반대가 되는 등 지역과 시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농민은 언제나 항쟁하지 않으면 안 될 요인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고창근 작가는 이 서사시를 통하여 19세기 상주의 농민항쟁을 한유하게 담론하려는 게 아니라 그 항쟁을 통하여 오늘의 한국 농민이 직면하고 있는 민족사적인 투지의 절실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101 김재순 시집 『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imagefile
편집자
1347 2017-09-01
김재순 시집 『복숭아 꽃밭은 어디 있을까』 ◕ 서지정보 국판변형: 148*210 발행일:2017년 8월 20일 쪽수:142 글쓴이 김재순 펴낸 곳: 문학마실 ISBN:979-11-951187-9-3 (03810) 가격: 8,000원 ◕ 책소개 55편의 주옥같은 시들은 복숭아 꽃밭을 찾아가는 길이다. 묵묵히 무릉도원을 향한 발걸음을 옮겨왔다. 무릉도원은 전쟁이 없고 질병이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말한다. 그러한 세상을 향해서 걸어온 김재순 시인의 마음 또한 무릉도원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 이 세상이 너무나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무릉도원으로 가는 꿈들을 김재순 시인은 시 속에 풀꽃으로 피워 놓았고 정으로 묶어 놓았고 추억으로 그려 놓았다. ◕ 저자 소개 김재순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2003년 작가 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현재 대구경북 작가회의, 상주작가 회원이다. ◕ 시인의 말 복숭아 꽃밭을 찾아 떠돌던 나의 시들이 남루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들을 씻기고 먹이고 아늑한 방을 내어준다 이 세상에 복숭아 꽃밭이 어디 있으랴 그래도 내일 미명이면 또다시 나서리라 내 팔을 이끌어 늘 함께 가는 고창근님과 조용히 챙겨주시는 임술랑님과 가까이서 멀리서 미소를 보내주시는 선생님들과 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멀어진 내 그리운 사람의 이름도 가만히 불러본다 아침 햇살이 감나무잎과 어우러지는 2017년 여름 녹향정에서 김재순 제1부 그에게 가다. 013 슬픈 장미 . 014 은행나무의 분신(焚身) . 016 오라버니 . 018 뿌리를 내리다 . 020 이십만 원의 힘 . 022 붉은 어깨 도요새 . 024 동학교당에 간다 . 026 채용의 조건 . 028 녹두꽃, 만발하다 . 030 낮술의 힘 . 032 포장마차 아줌마 . 034 어떤 노부부 . 036 이삭 줍는 할머니들 . 038 제2부 봄 7. 043 예언의 노래 . 044 국제 꽃집 . 046 가극을 보다가 . 048 충주호 물길을 따라가다 . 050 네온의 꽃밭을 보다 . 052 서민 아파트 . 054 감 . 056 산이 준비하다 . 058 꽃등을 거는 일 . 060 패랭이꽃 . 062 명절날의 ㄱ 씨 . 064 복숭아 꽃밭을 찾던 여자 . 066 축제문(祝祭文) . 068 제3부 지팡이 소리. 073 고향은 지상에 없다 . 074 절필을 생각하다 . 076 빗살무늬 토기 . 078 가시가 박히다 . 080 어버이날 . 081 그녀의 연애편지 . 082 대보름달 . 084 반야사에서 . 086 봄 6 . 088 그 집 아지매 . 090 그리움의 변천사 . 092 귀성(歸省) . 094 위층에는 누가 살까 . 096 칠석이 다가오다 . 098 제4부 매미소리 . 101 그리운 화개리 . 102 오늘의 스타 . 104 느티나무 그늘 . 106 벚꽃 . 107 바람은 어디 . 108 새로운 주민등록표 . 110 설날 아침에 . 112 영국사 가는 길 . 114 햇볕 계곡에서 . 115 어느 골목을 지나다 . 116 풀꽃을 냇물에 던지다 . 118 해설/이 세상의 또 다른 무릉도원 임영석(시인, 문학평론가) 119 ◕추천평, 출판사 리뷰 복숭아꽃밭은 어디 있을까? 번쩍이는 불빛 속에 숨었을까? 클럽 황태자에서 밤을 지새우는 여자의 가슴 속에 숨었을까? 김재순 시인은 환락과 욕망과 음모가 도사린 캐피탈리즘(자본주의)을 경계하면서 새로운 이상향의 세계를 농촌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그 농촌은 삶의 공동체가 무너지고 노동과 생산이 정지된 불임의 땅이 되어 있다. 시인은 물장구치던 시냇물도 없고 텃밭의 댑싸리도 없고 돌담도 살구나무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아니, 아니요. 그 곳은/ 내 심중에 들어찬 고향이지요/ 환삼덩굴까지도 그리워라 그리운″ 이라며 폐허 속에서 피어나는 꽃다지를 찾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정말로 해야 할 일/ 어두운 창문마다 꽃등을 거는 일″이라며 새로운 다짐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복숭아꽃밭은 노동과 생산이 살아 숨 쉬는 시인의 시적 고향인 것이다. - 최기종(시인, 전남민예총 이사장) 김재순 시의 대상은 뿌리가 연약한 사람들이다. 흔들리거나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그들은 순박하지만 자본화된 사회 구조에 밀려나 있는 변방인. 소외되고 가난하고 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 그들의 삶은 척박하며 소외되어 있다. 몸을 파는 여자(슬픈 장미)이거나 이 땅에 뿌리를 내리려고 발버둥 치는 이주민과 수몰민(뿌리를 내리다), 폐지줍기와 청소로 삶을 영위하는 기초수급자(이십만의 힘, 어떤 노부부), 떠돌이 생활자(붉은 어깨 도요새), 그리고 농촌을 떠나지 않고 끝내 지키는 가족들(오라버니와 어머니 관련 시편들)에 대한 시선은 애틋하고 따뜻하다. 시인은 안타까워한다. 4대강, FTA, 외래종 수입 등으로 고향 마을이 부서지는 것을. 부서지는 것들은 시인을 아프게 찌른다. 어린 시절의 푸근하고 아름다웠던 농촌마을은 이제 없다. 시골 마을에 어린 아이들이 없다. 할머니, 늙은 딸, 나이 든 농민들만 남은 농촌 도시. 그래서 그의 시는 회복을 꿈꾼다(서민 아파트). 어린 아이들이 사라지는 공동체를 복원하고 싶어한다(산이 준비하다). 그의 시편 곳곳에 드러나는 복원의 의지, 회복의 소망은 그의 시를 농촌에 대한 사랑의 근원성을 갖게 한다. 삶에 대한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의 시가 사라지거나 부서지는 것을 되살리는 생명력을 얻는 이유이다. -김재환 ( 시인 )   
100 남효선 시집 『꽈리를 불다』.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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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3 2017-08-25
책소개 남효선의 시집 『꽈리를 불다』. 이 시집은 남효선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있으며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저자소개저자 : 남효선 저자 남효선은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안동대학교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공부했다. 1989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둘게삼』, 사화집 『길 위에서 길을 묻다』, 민속지 공저 『도리깨질 끝나면 점심은 없다』, 『남자는 그물치고 여자는 모를 심고』 등이 있다. 현재 아시아뉴스통신 기자로 일하며 울진군축제발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목차시인의 말ㆍ05 제1부 탱자꽃ㆍ13 원추리꽃 붉다ㆍ14 임진년 섣달 열아흐레ㆍ16 찬(讚) 몽유도원도ㆍ18 협객 백동수와 놀다ㆍ20 여민락(與民樂)ㆍ22 답여여산방주인(答如如山房主人)ㆍ24 눌천재(訥川齋)ㆍ25 꽈리를 불다ㆍ26 대낮 1ㆍ28 대낮 2ㆍ30 마당 1ㆍ32 마당 2ㆍ33 마당 3ㆍ34 무시래기를 엮다ㆍ36 밥상ㆍ38 운명ㆍ40 제2부 지네ㆍ43 배냇저고리ㆍ44 산속서 돼지고기 먹다ㆍ46 부레옥잠ㆍ48 양말 한 켤레ㆍ50 자작나무숲에 들다ㆍ52 잔설(殘雪)ㆍ54 초상(初喪)ㆍ56 풍경ㆍ58 가지치다ㆍ60 간재미ㆍ62 귀리범벅ㆍ64 달동네 원천식당 아지매ㆍ66 대목장ㆍ68 할매 생각 1ㆍ70 할매 생각 2ㆍ72 할매 생각 3ㆍ74 제3부 상사풀꽃ㆍ77 22번 중매인ㆍ78 씀바귀 꽃길 따라ㆍ80 백구와 봄비ㆍ82 선암사 넘어가는 길ㆍ84 답운재(踏雲峙) 자작나무ㆍ86 소식ㆍ88 고아면 살던 사내ㆍ90 심곡항 가는 길ㆍ92 오징어와 해국ㆍ94 창호를 바르며ㆍ97 울진읍내 발 시내버스ㆍ98 장계장터 돼지국밥ㆍ100 정구지꽃 1ㆍ102 정구지꽃 2ㆍ104 첨찰산서 꽃을 줍다ㆍ106 화절령을 가다ㆍ108 제4부 단하(丹霞) 동천(洞天)을 찾다ㆍ113 내가 가진 것들ㆍ114 느릿느릿, 그러나 흐트러짐 없는 발걸음ㆍ116 명달리 보름달ㆍ118 물병골 기행ㆍ120 서설(瑞雪)ㆍ122 십이령을 가다ㆍ124 별어곡, 별어곡(別於曲)ㆍ128 유영국 절대 자유ㆍ131 팽목항 죽사발ㆍ132 느티나무 베다ㆍ134 싸드가 참외 종자 이름이여 뭐여ㆍ136 안녕하십니까, 갑오년ㆍ138 초콜릿ㆍ140 2017년 3월 23일 팽목항ㆍ142 시인의 산문ㆍ145  
99 김종인 시집『희망이란 놈』 file
편집자
1814 2017-08-25
1983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하여 그 동안 <흉어기의 꿈>, <아이들은 내게 한 송이 꽃이 되라 하네>, <별>, <나무들의 사랑>, <내 마음의 수평선> 등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던 김종인 시인이 작품 활동 35년만에 새 시집 <희망이란 놈>을 펴냈다. 가을도 다 가려는데 문득, 돌아보니 그대가 없네 그래, 우리 두어 달만 헤어지기로 하자 정녕, 봄이 올 때까지 나무마다 연초록 새잎이 날 때까지 희망이란 놈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게냐 꿈이란? 사랑이란? 새로운 세상이란? 우리 사는 세상에 있기라도 하는 게냐! 그래, 우리 꼭 두 달만 헤어지기로 하자 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지친 영혼을 적시는 봄비같이 그대가 올 때까지 희망이여. 섣불리 헤어지지 말자 살을 에는 눈보라가 몰아치더라도 올 겨울에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아프게 하지 말자 '희망이란 놈'에서 시인은 희망의 기운이 흐릿한 기간이 '두어 달'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희망이란 놈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으며, 우리 사는 세상에 있기라도 하는 겐가 하고 의심하기도 하지만, '두 달만' 참으면 봄이 온다고 말한다. 시인이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 '올 겨울에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아프게 하지 말자'라고 당부한다. 이는 사람에게 근본적으로 따스한 본성이 있다는 인식이 전제된 표현이다. 시인은 생명 있는 것들이 눈보라를 이기지 못해 봄이 와도 되살아나지 못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아픔에 젖는다고 말한다. 시인이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라고 한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수인 사람은 시인 본인으로 볼 수 있겠지만 복수인 '사람들'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일반화된 인간을 의미한다. 이는 '겨울비 목련'을 보면 알 수 있다. 겨울비가 내린다. 이 비 그치면 만산의 홍엽(紅葉)도 사라지고 앙상한 나무들 바람 앞에 맨살로 서리라. 겨울은 한 걸음 더 빠르게 목덜미 사이로 스며들고, 빗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온누리 꽁꽁 얼어 붙겠지 이 비 그치면, 김장김치라도 푸짐히 담고 소담스레 내리는 눈을 바라볼 수 있을까, 봄이 오기 전에,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들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추운 것이 많은 오랜 세월 겨울비 내리는 창밖을 보다 문득 고개 들어 맨몸으로 찬비 맞는 목련을 보네 아뿔싸, 가지마다 어느새 꽃눈송이 맺혀 있는 것을, 보송보송 솜털마다 다시 오는 봄을 예비하고 있거늘 왜 나는 가슴으로 겨울비만 맞는가 겨울비 오는 풍경(風景)만 바라보는가. 시인은, 목련은 찬비 속에서도 보송보송 솜털마다 다시 오는 봄을 예비하고 있는데 왜 '나는' 가슴으로 겨울비만 맞는지 자문하고 있다. '희망이란 놈'에서 '참을 수 있을 때까지만 / 지친 영혼을 적시는 봄비같이' 희망을 가지자고 했던 인식이 이 시에 와서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특정 개인은 절망에 젖고 슬픔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희망을 심으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네' 평생을 교사로 살았던 시인은 '다시 퇴임 이후'에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아프던 / 해직 후의 일상은 다 추억'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명퇴를 하고 난 뒤 / 일 주일도 되기 전에 모두 잊었네 / 내가 언제 학교에 살았던가 /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네'라고 스스로 놀란다. 시인은 '교단에 선 채로 죽으리라 / 무슨, 그런 헛된 맹세를 / 하던 때가 있었단가? // 최루탄이 튀어 오르는 포도(鋪道)에서 / 신문지를 태우며 쓰라리게 / 눈물 흘리던 때가 있었던가? // 지난 세월 / 햇빛 짱짱한 날, 언제 있었던가 / 비 오다가, 천둥 치다가 / 눈 오다가, 바람 불다가 / 그래, 그게 다 인생이지 // 학교 앞을 지나가도 / 종소리 들리지 않고 / 교복 입은 아이들을 봐도 /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네'라고 탄식한다. 생애를 바친 학교도 '언제 (그곳에서 교사로) 살았던가' 싶을 만큼 아득하다. 학생들을 봐도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살아온 삶이 문득 '헛된' '추억'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스스로에게 말한다. 눈물 아롱아롱 노래도 말고 한 목숨 바칠 것을 맹세도 말라 (중략) 무정한 사랑은 떠나가네 서러워 마라, 그대 슬픈 강물이여 '헛된', '추억'이니 당연히 '무정'하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 놀라움 앞에서 '그게 다 인생'인가 싶어 자조한다. 왜 시인은 슬픈가? '천일 약전(略傳)'이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해준다. 부산 메리놀병원 장례식장 처형이 돌아가셨다 이십 몇 년 전에 사별한 목포 출신 남편 사이에 한 점 혈육, 아들이 상주가 되었다. 가파른 70년대 영문과를 나왔다 보수적인 대구, 고성이씨 집안의 처녀가 목포의 눈물을 잘 부르던 호남 청년 천씨 집안의 사내를 만나 눈물과 설움에 깊이 빠졌다 눈물 젖은 옷자락 마르기도 전에 목포의 남편은 암으로 쓰러져 압해도에 묻혔다. 청상으로 이십여 년 고혈압에 신부전증, 투석으로 버티다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남편을 따라가니 가까운 친척들이 남아 밤을 새운다 서로 부등켜안고, 혀 끌끌 차며 왜 그렇게, 구박했던가 미워했던가, 반대했던가,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른다. 영락공원 화장장, 한 줌 재로 남아 공원묘지 천상원에 안치되었다. 천하에 홀로 남은 자식 하나 그의 이름은 천일(千一)이다. 시인은 '비 오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아마, 운동장의 물은 며칠 동안 빠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아마'는 시적 수사일 뿐 현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며칠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운동장의 물은 반드시 마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객관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운동장의 물이 '며칠 동안' 고여 있듯이, '서로 부등켜안고, 혀 끌끌 차며 / (죽은 이를 박대했던 지난 날을) 뉘우치며 /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치른' '가까운 친척'들의 슬픔 또한 며칠이 지나면 삭아 없어질 것이다. 시인은 망자가 한 줌 재로 안치되고 나자 아들 천일이 '천하에 홀로 남은' 존재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시인은 세상의 맷돌 같은 존재 김종인은 '대저 시란 무엇인가?'에서 '세상의 거친 껍데기들을 모조리 벗겨 / 알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 연자방아, 맷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시라고 강조한다. 시를 쓰는 일은 '온몸으로 세상을 갈아내는 / 이 순수한 노동의 / 절차탁마(切磋琢磨)!'와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김종인은 '기약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금오산의 봄')'면서 세상의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삶은 슬프게 노래한다. 김종인은 그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온몸으로' 맷돌을 가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본다. 김종인은 이번 시집의 권두에 '시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자서'를 실었는데, 무려 19쪽이나 되는 분량이다. 사실은 '자서' 수준이 아니라 시론 한 편을 수록한 특이한 편집을 선보이고 있는 형상이다. 그만큼 시인은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었던 듯하다. 시론도 시도 읽을 만한 김종인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을 감상하며 무더운 여름의 하루를 보낸다. 시집을 덮고 난 뒤에도 시인의 '광장을 메우고 거리로 흘러넘치는 어둠 속, / 스스로 타올라 세상을 밝히는 촛불은 황홀하다!'라는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의 어법을 빌자면 '시인은 촛불을 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