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의 등뼈     

 

박승민 저 | 푸른사상

 

 

 

책소개

2007년『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한 박승민의 첫 번째 시집.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폐경기 앞둔 여자가 첫 애를 낳은 심정”이라고 고백한 바 있듯,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을 내지만 삶의 조밀한 무늬 속에서 건져 올린 그만의 독특한 시적 문법으로 일상에서 낡거나 혹은 소멸되어가는 삶의 편린들을 쓸쓸한 목소리로 불러내고 있다. 특히 어린 아들을 세상 저편으로 보내면서 겪은 상흔들이 시집 곳곳에 상처로 얹혀 있어 죽음의 문제에 관한 한 근래에 보기 드문 감동적 시편들을 보여분다. 386세대였지만 이제는 40대 후반에 접어든 시인이 아직도 이웃 혹은 타자의 삶에 대해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결언을 통해 세상에 대한 소통의 끈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요즘의 젊은 시인들과 다른 그만의 소중한 미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 박승민

경북 영주에서 출생해 숭실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목차

제1부
십칠 나한상(羅漢像)
늦가을 볕은 늦가을도 어쩔 수 없어
메모
명자 씨
무릉(武陵)에서 길을 잃다
날개 없는 새들
행로
삼월의 눈보라
빨래
파불(破佛)
면경(面鏡)의 얼굴
미선이
빈 수수대궁 속
거울 앞에서

제2부
지붕의 등뼈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의 출근
화문석(花紋石)
첫차
붉은 꽃
부드러운 산소
역류성 식도염
사라지는 시어들
연리목(連理木)
나들이
겨울별

제3부
됫병
가흥동 마애불
목련 사내
산수유꽃
하류(下流)의 시
늙은 의자
소백벌에서
강변아파트 밑
단풍
저녁, 안양루에서
마흔
집중호우
등꽃
사북역에서
꽃자리

제4부
비단공장 폐업
대미골 목간통
봄비
가족 사진
바람꽃
피의 온도
화기
불륜
느티나무
잉어를 기다리며
너에게
낙동에서
살구나무의 길

해설 ‘당신’이라는 타자-고봉준

 

 

출판사 리뷰

박승민의 시는 ‘나’의 내면보다는 ‘타인’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타인’이 그가 건너감의 초월을 통해서 마주하게 되는 존재들이다. 그에게 시는 무엇보다도 타인에게도 건너감이고, 타인에게로 건너가 그의 삶을 증언하는 것이며, 증언을 통하여 ‘나’의 외부에 타인이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고 언어화하는 것이다. 물론, 박승민의 시에서 ‘타자’가 항상 ‘타인’이라는 인간적 존재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에서 ‘타자’는 비단 타인이라는 인간적 형상에 그치지 않고 사물과 자연의 세계까지 포함한다.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겠다

지금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밑줄 그어진 외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벼랑 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허리가 끊긴 채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
지렁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나 없어도
나 앉았던 자리에서 꽃이 피고 눈이 내리는 쓸쓸함에 대해서
아니, 그 아무렇지도 않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 「메모」 부분

시인은 ‘나’와 ‘당신’들이 공속하고 있는 이 세계를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메모」)으로 바라보겠다고 말한다. 그 ‘눈’이란 어떤 것일까? 추측컨대 그것은 “허리가 끊긴 채 온몸으로 바닥을 치는/지렁이”의 치열하고 처절한 삶을 말하는 것이고, 삶의 ‘희망’이 아니라 ‘밑줄 그어진 외줄’과 ‘벼랑 끝’이 암시하는 절망과 위기를 말하는 것이며, 또한 ‘나’의 부재 이후에도 내가 머물던 세계에 자연의 질서가 순환하는 그 존재의 고독과 허무를 말하는 것이다.

노인성 척추 측만증을 앓는/지붕의 등뼈는 난감하다//너무 오래 비를 맞아/가벼운 새의 발놀림에도/얇은 비스킷처럼 부서진다/어떤 기와는 살갗이 벗겨져/갈비뼈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수많은 모래와 모래가 만나/물이끼 같은 한 세월 이루었으나/밤새도록 내리는 장대비를 맞고 있는/한사코 제 등으로 비를 막는/어머니의 등뼈,//낡은 빨래줄처럼 위태롭다
- 「지붕의 등뼈」 전문

폐교 운동장 구석에/서 있는 의자//일생을 누군가의 엉덩이만을/받아주던 의자//정작 자신은 한 번도 누군가에게/앉아보지 못한 늙은 의자//세월은 강 밑으로 흐르는 모래 같아서/뼛속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소리는/정작 자신도 듣지 못했다//그래서 그런가, 오늘 따라/왼쪽 어깨가 자꾸 한 쪽으로 기운다.
- 「늙은 의자」 부분

박승민의 시에서 ‘타자’는 비단 타인이라는 인간학적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자신의 바깥을 향해 감각의 통로를 열어두는 존재, 그리하여 ‘나’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들의 세계에서 열악한 생존의 조건 하에서도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들”(「소백벌에서」)에 이르기까지, 존재론적으로 ‘나’와 평등한 관계인 타인에서 사물과 자연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 아닌 것들의 존재를 증언하고 그것들의 운명을 대신 말해주는 존재, 그것이 박승민의 시가 보여주는 시인의 존재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박승민의 시에서 존재론적 공동성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를 넘어 생명이 갖는 공동체적 성격에까지 확대된다. 두 편의 인용시는 이른바 시적 대상으로서의 사물에 대해 말하고 있거니와, 여기에서 사물은 ‘나’의 주관적 능력에 의해 사물화된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시인이 자신의 외부에서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타자’의 형상들이다.
「지붕의 등뼈」에서 타자는 ‘등뼈’의 형상을 하고 있는 건물의 지붕이다. 그 지붕이 세월의 풍상을 이기지 못해 약간 휘어져 있는데, 시인이 이 모습을 “노인성 척추 측만증”을 앓는 인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지붕, 어떤 곳은 가벼운 새의 발놀림에도 바스러지고, 또 어떤 곳은 겉면이 벗겨져 속살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그 낡은 지붕은 지금 밤새도록 내리는 장대비를 맞고 있다. 시인은 이 안타까운 풍경에서 “제 등으로 비를 막는/어머니의 등뼈”와, “낡은 빨래줄”이 환기하는 위태로움을 읽고 있다. 이 낡고 위태로운 지붕의 형상은 「늙은 의자」에서 “폐교 운동장 구석”에 방치되어 버려진 ‘의자’로 변주된다. 일생동안 타인을 받아주었으나 자신은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의지한 적이 없는 의자. 지금 이 의자는, “낡은 빨래줄”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위태롭듯이, 수평을 잃어버리고 “왼쪽 어깨가 자꾸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풍(風)으로 입원한 노모(「무릉에서 길을 잃다」)에서 낡은 지붕(「지붕의 등뼈」)과 버려진 의자(「늙은 쟀자」)까지, 시인이 주목하는 타자들의 절대다수는 세월의 속도를 이기지 못한 낡은 것들,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늙은 존재들이다. 

 

 

추천평

박승민은 화음처럼 반짝이는 슬픔의 글자로 시를 쓴다. 저무는 강물 속으로 가라앉는 막막한 돌의 심정으로 시를 쓴다. 아들을 불치병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더 내려갈 계단도 없는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천천히 걸어 올라오는 아픈 발자국 소리로 시를 쓴다. 그러나 박승민의 시에는 운명에 쓰러지지 않으려는 질긴 힘과 힘찬 가속력으로 파도치는 몸짓이 있다. 그러면서도 원색의 질박한 화기(花氣)가 있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려는 가식 없는 목소리가 있다. - 도종환(시인)


박승민의 시는 믿음직스럽다. 흔한 재주나 재치로 시를 익혀가지 않고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삶의 원칙과 신념으로 발효시켜 시를 완성해가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삶에서 빚어진 시에는 넉넉한 해학이 봄철 어린 새싹처럼 옴지락거리고 싸워나가야 할 사람들의 관계에서 생성된 시에서는 선비적 결기가 의연하게 빛나되 품격을 잃지 않는다.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풍경에 문득 허기가 느껴질 때 그의 시가 건네주는 위로와 지혜를 맛본 사람들은 우리들의 시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행복하게 알게 된다. 박승민의 시에서 이루어낸 삶과 시의 절묘한 형상은 우리 시에서 이루어야 할 한 전범이 될 것이다. - 강형철(시인,숭의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