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하게 엎드려 세상과 축을 이루고 합을 맞추는 시

김주애 시인의 첫 시집 『납작한 풍경』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김주애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현재 ‘느티나무시’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하며 아이들 글쓰기 지도교사로 일하고 있다.

우리는 다들 세상을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보고 있는 걸까? 엄밀히 말해 보통 사람들은 세상을 보지 않는다. 자신의 망막에 비치는 것들을 볼 뿐이다. 그것을 자신의 마음대로 해석할 뿐이다. 하지만 시인은 다르다. 항상 그의 마음은 그의 몸을 탈주한다. 하늘을 날며, 땅 위를 달리며, 물속을 헤엄치며, 세상 곳곳을 누빈다. 그의 눈은 항상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 시인은 공터의 힘을 본다. 버려진 땅. 그래서 그는 가장 강한 힘의 소유자가 되었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존재.

어둠 속, 아파트 옆 공터가 소란스럽다//유물이 발견되었을 무렵만 해도/한 톨 먼지마저 쓸어내어 윤을 내던 땅/행여 돌무더기 부서질까 먼 길 둘러가게 만들더니/갇혀있던 시간을 들어내자/몇 년째 발길이 끊겼다//버려진 땅은/떨어지는 모든 걸 품어 늪이 된다/멋모르고 자라는 풀들은/언제나 허리가 꺾여있었다//또 봄은 와서/벙실벙실 부푸는 흙/기어이 부러진 허리를 후벼서/씨앗들 쏟아진다
―「공터」 전문

노자는 말했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하지 않음’은 못할 게 없다. “아파트 옆 공터”는 아파트의 미래라는 듯, 잠시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고는 다시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모든 유위(有爲)는 끝내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공터에 잠시 서 있어 보면 될 것이다. ‘공터의 말씀’이 들려올 것이다.

시인은 잠수함의 토끼라고 한다. 사람들은 둔감해 오랫동안 물속에 있어도 산소가 부족하다는 걸 쉬이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엔 잠수함에 토끼를 태워서 항해를 했단다. 토끼는 산소가 조금만 부족해도 숨을 헐떡인단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잠수함의 산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시인은 바로 이런 토끼의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산소가 부족한지도 모르고 즐겁게 먹고 마시고 놀 때 시인은 숨을 헐떡인다. 그런데 이제 시인이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아, 얼마나 치명적인 시대인가! 시인은 흐린 날 철길 옆에 있는 집 한 채를 본다. “기적소리”가 없는 “철길 옆 집 한 채”는 얼마나 슬픈가!

철길 옆 비탈길 위/식어버린 연탄재 같고/갈 곳 없는 노인 같고/부모 잃은 아이 같고/말라비틀어진 풀포기 같고/ 빈 밥그릇 같은/집 한 채/기도 중이다/텅/텅/텅/빈 하늘/기적소리도 울리지 않는/철길 옆 집 한 채
―「흐린 날」 전문

우리는 언제부터 기적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기적소리 없이도 철길 옆을 태연히 지나가게 되었을까? ‘핵폭발 후의 한 장면’이 아닌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건 ‘침묵’일 것이다. 언어라는 건 얼마나 무서운가!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이다. 삼라만상은 누군가 호명하여 탄생하였다. 누구나 한번 이름을 불리면 그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운명이란 누군가의 호명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침묵해야 한다. 누군가가 내게 붙인 이름은 진정한 나의 이름이 아니다.

삼일 동안 비운 방//남쪽 창 아래, 청개구리 한 마리//앞발 가지런히 모으고//하늘 향해 침묵 중//꼿꼿하게//눈물 한 방울도 없이//살뜰히 말라버린//온몸으로 던지는 한마디//텅 빈 방 개구리//말문이 막히다
―「묵언수행」 전문

시인은 개구리의 ‘묵언수행’을 본다. 개구리의 이름을 버린 거룩한 한 존재를 본다. 우리도 저렇게 자신의 이름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눈부신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개구리는 한평생 자신이 개구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멋있게 입적할 수 있었다.

시인이야말로 니체가 말하는 초인일 것이다. 시인을 만난다는 건, 초인이 되어보는 일이다. 최후의 인간, ‘막장 인간’을 잠시 벗어나 보는 일이다. 그래서 자신도 초인을 예감해보는 일이다.

김주애 시집 『납작한 풍경』약평

김주애 시인의 시는 상주 토박이 냄새가 난다. 시의 행간마다 박제된 시어가 아니라 금방 살아 독자들 앞에 내려앉을 것만 같은 흙, 바람, 나무, 강이 맨얼굴로 스며있다. 눈만 뜨면 만나는 이웃과 궁색한 골목과 엉성한 가로등이 있다. 덩굴 콩이 담장을 덮고 있는 텃밭과 논두렁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들판이 모두 시의 터전이다. 억지로 꾸미지도 않고, 그렇다고 애절함이나 궁상스러운 호소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흙이다. 윤이 나도록 깎지 않은 팔분도 쌀이다. 땀 냄새와 함께 잘 끓고 있는 된장이다. 질박한 접시에 막 썰어 나온 한 포기 김치다. 그리고 지천으로 피고 지는 들꽃이다. 이제 그의 시에 즐거이 잠겨드는 일만 남았다.  김재수(시인)


제1부
세상에서 가장 큰 삼각형·11
폭염·12
고들빼기·13
그늘·14
럭셔리·16
안부를 묻다·18
모과나무·20
목공소 이야기·22
안개 잦은 지역·24
쓴맛·26
진달래장의사·27
잠을 밟고·28
나는 발바닥에 가시를 품고 산다·30
흐린 날·31

제2부
원을 그리다·35
의성 탑리 오층석탑·36
정월 대보름·37
개구멍·38
의자바위·40
늙은 호박·41
행렬·42
골목이 늙어간다·43
저물녘·44
공터·46
닭들이 모여서 잠을 잔다·47
묵언수행·48
버스정류소에서·50
탱자나무·51

제3부
넝쿨·55
납작한 풍경·56
꽃·58
백지, 괜히·60
오누이·61
겨울 홍시 하나·62
넘어지다·63
제삿날·64
냉이꽃·66
건조주의보·68
세 갈래길·70
시래깃국·71
빈집·72

제4부
꽃이 피었다·77
오래된 꿈·78
눈 깜빡하는 그 사이·79
사고 치다·80
초승달·82
모깃불 피워놓고·83
안개·84
논에 물을 대다·85
콩깍지 씌다·86
부리·88
6월·90
강버들·91
겨울 국화·92
봄비·93

해설·95
시인의 말·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