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민숙 시인의 신작 시집 『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가 애지시선에서 출간되었다. 전남 순천 출생인 그녀는 1998년 「사람의 깊이」 창간호에 ‘가족’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4년 첫 시집「나비 그리는 여자」를 상재한 이후 십여 년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의 간극이 길었던 데는 어느 날 그녀에게 휘몰아쳐 온 회오리바람, 백척간두에 서서, 절망이란 극한 체험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괘적도 한몫한다. 그 극복의 과정이 이번 시집의 탄생배경이다. 그런 연유인지 이번 시집의 시들은 생명이란 우주의 카오스만큼이나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발 딛고 선 시공간이지만 결코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밀들, 그것의 고갱이를 표현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미세한 아름다움,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것들, 사소해서 거대 물질 속에 매몰되어가는 것들, 그러나 끝내 우리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들. 그건 적어도 마천루보다는 위대하다는 걸 그려내고 있다.

 

시 <동그라미>는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면서, 결코 그 자체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어떤 소중한 관계에 대한 깨달음을 그려내고 있고, <선암매>는 천연기념물인 선암사 매화나무가 경이롭게 육백 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의 이유가 됨을, <또아리>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상징물이 차지하는 유년의 절대적인 시간과 기억의 집적물에 대한 노래이다. <그 산에 시가 있다>를 통해서는 화자의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을 때 그 고통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가게 해 준 산, 산의 도처에서 시를 생각하고, 몸의 소생을 향한 새롭고도 강건한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생의 비의(秘意)>는 이 시집을 관통하는 시정신의 대표작이다.

 

이러한 시편들을 두고 이민호 평론가는 “붙같이 뜨거워 마음을 상하지 않으며 밋밋한 시법에 지루해하지 않아도” 되고 “형식과 내용의 조화를 이루며 ‘풍골’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해설하고 있고, 김해자 시인은 “소멸을 통해 삶을 지피며 고요히 타오르는 아궁이여, 온전히 찍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평민의 비밀스런 찰나여, 도도한 잡년들의 꽃피는 섬이여, 우리가 나오고 우리가 다시 돌아갈 텅 빈 동그라미여”라고 헌사하고 있다.

 

이민숙 시인에게 앞으로의 시창작의 방향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지금까지의 시편들이 좀 더 내면적이고 소소한 개인적인 것들이라면, 앞으로는 그 개인의 영역을 둘러싼 문화적이고 집합무의식적인 더 깊은 내면을 표현해보고 싶어요. 나이면서 나의 의식을 살짝 비켜있는 구조적인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어요. 정면으로 그것들을 끌어당겨 시로 육화시켜볼 생각입니다. 문화적인, 민족적인, 그래서 우리에게 얽혀서 모든 일상의 서사를 끌어가고 있는 여러 소재들을 어떤 하나로 단순화시켜 그 안에 녹여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김치’와 같은 소재에 깃들 내 정체의 복합적인 모습들입니다.”

 

지난한 체험과 극복의 과정을 지나왔으니 이후 그녀의 시세계는 원대무변하리라 기대해본다.

 

 

  책속에서

 

토마토는 붉게 동그랗다

수박은 초록으로 동그랗다

나팔꽃 나팔 주둥이는 분홍으로 동그랗다

나팔꽃에 입 맞추는 네 입술은

고요히 동그랗다

구름이랑 보름달은 뭉게뭉게 동그랗다

쥐눈이콩은

새알보다 더 콩 만하게 동그랗다

강물을 살짝 떠올리는 물수제비는

날아갈듯 온몸으로 동그랗다

엄마의 정수리에서 대가족을 봉양했던 또아리는

철철이 누런 가난으로 동그랗다

남북으로 왔다 갔다 하는 탁구공은

콩닥콩닥 대책도 없이 동그랗다

바다 한가운데에 묻힌 아이들의 눈동자가

가만히 있어서 처절참담 동그랗다

스스로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동그라미

보듬어서 서로, 기대어 살아야 할 동그라미

뾰족할 수 없어 기어이 동그랗다

                                                       ― 「동그라미」 전문

 

 

  추천글

 

이민숙 시인이 체득한 시세계 혹은 그만의 아이콘은 뾰쪽한 모서리가 아닌 그 모서리를 둥글게 하는 ‘동그라미’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 또한 즐거워한다. 산에 시를 놔두고 왔다는 <그 산에 시가 있다>, 몸의 언어와 리얼리즘을 발견한 <지리산에 갔다>, 옛시절 어머니들의 머리에 얹혀지곤 했던 짚으로 만든 <또아리>,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단연 수작으로 꼽을 수밖에 없는 <동그라미>가 앞으로 이민숙 시인이 애정을 다하여 밀어붙일 시세계가 아닐까 하고 마음을 주어본다. “뾰쪽할 수 없어 기어이 동그랗”겠다는 시적 선언이 눈물겹다. 서정성과 서사성을 두루 갖추기 시작하는 이민숙 시인의 ‘동그라미의 미학’에 봄편지를 대신하여 멀리 하얀 손수건을 흔들어준다.

_김준태(시인)

이민숙의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