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사랑 시인선 86번 한보경 시집 『여기가 거기였을 때』 출간

 

2335CC3E5212FD5F276335

 

한보경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났고, 2009년 {불교문예}로 등단했으며, 현재 웹 월간시 {젊은 시인들}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보경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인 {여기가 거기였을 때}는 ‘여기’와 ‘거기’, 또는 ‘이것’과 ‘저것’의 경계와 차이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며, 모든 삶의 질서와 가치관이 전복되고 새롭고 낯선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여기와 거기, 또는 이것과 저것의 구분은 인식론적 오류에 지나지 않으며, 사회 자체가 거대한 혼돈의 제국일는지도 모른다. “천국으로 드는 건/ 거부할 수 없는 복음”이지만, “자고 나면/ 천국 건너 또다른 천국이 새로 문을([김밥천국24시])” 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를 몰랐고

거기도, 나는 몰랐다

 

여기에서 나는 비로소

두고 온

거기를 기억했다

 

거기가

다시 여기가 될 때

 

거기에서 나는 또

여기를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 내리고 있는 비와

거기에 쏟아지던 햇살

 

여기로 불어오던 바람과

거기로 흘러가는 해거름의 구름들

 

한때는

모두 거기였던

 

여기는

지금, 한때의 거기로 가고 있다

---[여기가 거기였을 때] 전문

 

 

거짓말탐지기 같은

꽃나무 그늘을 통과 한다

 

문이 열릴 때마다

천국의 맛이 의심스러운 그늘이

쪽으로 기운다

 

천국으로 드는

거부할 없는 복음

 

자고나면

천국 건너 다른 천국이 새로 문을 연다

 

앞치마를 두른

새벽이

구름 같은 잠을 돌돌 굴려 꽃잎을 만다

 

길게 말린 허구들

벽시계의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진다

 

천국의 메뉴판은

개의 이름을 가진 꽃잎들로 빼곡하다

 

 

벚나무가 꽃을 피우든 말든

천국은

천국을 표절한 맛으로

 

천국 건너

다른 천국으로 건너가고 있다

----[김밥천국 24시] 전문

 

현재는 새로운 현재로 가는 길목이다. 그의 시작행위는 어느 면으로든 참신한 감각의 날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길목으로 지향하려는 시적감수성과 참신성이 돋보인다. 치열한 시정신은 관습에 일그러진 진부한 상투성에서 과감하게 탈피하여 새로운 세계창출을 위한 끈질긴 미래지향으로 변신한다.

『여기가 거기였을 때』는 은근히 불교적인 여운을 띠고 있으나 그 여운에 그치지 아니하고 새로운 여운에의 길을 탐구하는 감각적인 탐구정신으로 충만되어 있다. 이는 시심의 웅숭깊은 상상력의 샘에서 길어 올리는 새로운 길에의 갈망이라고 보아 좋을 것이다. 시는 제자리걸음이 아닌 새로움을 모색하려는 도저한 정신의 뿌리라는 것을 그의 시가 말하고 있다. 새로움은 수시로 충돌하는 충격과 부딪친다. 그 충격을 뛰어넘는 길 또한 시정신의 일관된 보폭으로 승화된다. 그러한 보폭을 견지하는 시적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은 시인의 혜안은 타성에 젖은 일상적인 사물의 때를 벗겨 새로운 일상성으로 갈아엎기를 즐겨 한다.

욕창처럼 번지는 시의 통증을 벅벅 긁는 통쾌감을 음미하려는 그는 한 좌표에서 다음 죄표로 지향하고자 뚫어진 무릎을 마다않는다. 그런 처절한 시의 메신저는 숭고한 시정신의 곧은 면모를 시를 통하여 여일하게 보여준다.

----유병근 시인

 

이제까지 본 것처럼, 한보경의 세심한 관찰과 비범한 언어적 자질은 일상적 삶의 다양한 체험을 시적 대상으로 하면서 그것을 적확한 언어와 참신한 비유로 형상화한 데서 가장 빛난다. 그는 부산 기장군의 ‘철마한유식육식당’에서 쇠고기와 부속품을 파는 여주인의 본질을 “등골을 파먹는 여자, 휘어진 등줄기가 휘청하다”(「등골 파먹는 여자」)고 한 마디로 규정하고, 오래되어 방치된 항구의 등대를 보고 “그곳에 가면/ 등근육이 실한 사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황동으로 빚은 햇살을 등에 걸머지고/ 한 일자로 멈추어 서 있는, 입술이 두터운 그 사내”(「오래된 항구에 대한 편견」)로 형상화하는 탁월한 비유와 묘사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직관력과 어휘 구사력을 지닌 시인이 곁말의 단순하고 통속적인 재미에 함몰되면 문학의 “살갑게, 애틋하게, 서럽게/ 온몸 오그라드는 진저리”를 느낄 수 없게 될지 모른다. 문학의 웅숭깊고 “은근한 울림”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한곳만을 응시하는/ 깊숙한 습관”(「뚜벅뚜벅」)을 몸에 익혀 “뚜벅뚜벅” 제 길을 걸어야 할 터이다.

---장영우, 동국대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