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그려낸 우리들 삶의 현실

`바닷가 부족들` 김만수 지음

도서출판 애지 펴냄, 128쪽

 

 

 

 

“고라니고라니고라니/ 고라니라고 중얼거리다보면 보인다/ 보현산 참새미/ 굴러오는 물방울 더미// 저쪽 고구마밭머리 멀뚱하니 선 채/ 먼 하늘/ 아득히 따라가는/ 눈 맑은 수수꽃다리 너// 보급투쟁 내려온/ 어린 파르티잔 같다”

- `고라니` 전문



포항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만수 시인의 7번째 시집 `바닷가 부족들`(도서출판 애지)은 우리들 삶의 구체적인 현실을 시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특히 육친의 사별에 대한 경험과 통증이 인간의 존재론적 사유로 나아가면서 곡진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것은 또 이웃과 마을과 바다로 외연을 넓히고 종종 막막하고 고독한 자아에 대한 성찰로 귀결되곤 한다.



“생젖 흐르는 소리를 기다렸으나/ 아무것도 고여 들지 않았고/ 더 깊이 갇혀버린/ 젖 창고”를 기다리거나 “꿈꾸던 사랑과 혁명과 구원이/ 선명한 불꽃으로 타오르던/ 강 언덕에서/ 아직도 막막하고 질긴 문장을 떼어내며/ 간절히 낡은 묵주를 넘기고 있”(`북한강`)기도 하다. 또는 “눈을 따지 않은 알갱이로/ 그대 좁은 뒤주에 들어/ 천년을 눈 뜨고 엎드렸다가/ 몇 홉 씨앗들과 함께/ 아직 푸른 눈의 설렘으로/ 너의 몸에 싹틔우고 싶다”(`현미`)는 바람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쉰`에서는 자본의 사회에서 잘 소비되지 않고 잘 읽혀지지 않고 있는 자아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 누구도 이러한 자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나를 떠메고 가는 내가 보였다”는 진술처럼 좌절과 상실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의지를 낳는 동력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 시인의 장점으로 보여진다.



김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젖창고` `북한강` `아구` `현미` 등 서시가 많다.

이번 시들은 `바닷가 부족들`이 울리는 북소리다. 그들이 지닌 `오래된 물통`에는 `바람칸이 무너진 하모니카며 `놋종`이랑 `은빛 자전거` 등 온갖 것들이 `정박`해 있어 시인은 오늘도 몇몇 도막을 꺼내들고 화톳불을 지핀다. 이를테면 `별싸라기 한줌`을 조몰락거리다가 `토끼 교미 날짜가 적힌 공책`을 들춰보고는 `가슴이 뜨거운 새`들을 하늘 멀리 놓아 보내는 것이다.

그의 시들은 오래 걸어온 자의 깨우침이요, 다시 멀리 나아갈 필경(筆耕)의 보습 갈아 끼우기다. “새들이 찍고 가는 울음의 무늬”와 “생젖 흐르는 소리”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생명의 강보를 짜고 있다. 그가 펼쳐놓은 시의 조붓한 길을 따라가다가 `표준전과`, `샛강`, `사진` 등의 시를 만나면 문득 옥수수 삶는 냄새처럼 칭얼거리고 싶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의 마을로 보급 투쟁 내려온 어린 고라니처럼 생명에 대한 발원이 가득한 이 시집을 두고 차영호 시인은 “바닷가 부족들이 울리는 북소리다”라고, 이정록 시인은 바다의 너울과 파도의 “고해에서 작살에 피 흘리는 고래의 숨소리와 광어의 뱃가죽 같은 순백을 끌어올린다” 라고 헌사하고 있다.



“나는 잘 소비되지 않았다

신화가 얽혀지던 불의 축제

뜨거운 페이지 뒤란에서

젖은 나무토막으로 웅크린 시간들

비춰지지 않았으므로

반사되지 않았고

나는 읽혀지지 못했다



사소한 서사에도

밀려났다 캐스팅되지 못했다

햇살이 낮게 굴러와 죽었다

찰방거리는 물길을 만들며 빛이 사랑이

번질 거라 믿었다 거짓이었다

수없이 개복하고

길을 만들고 성을 쌓았다 늦은 나무를 심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성 위에는

찢긴 깃발이 더 깊이 죽었다

나를 떠메고 가는 내가 보였다”



― `쉰`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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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만수

1955년 포항에서 태어난 김만수 시인은 1987년 `실천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포스코 건립 당시를 다룬 장편 서사시 `송정리의 봄`을 발표했으며 `소리내기`, `햇빛은 굴절되어도 따뜻하다`, `오래 휘어진 기억`, `종이 눈썹`, `산내통신`, `메아리 학교` 등의 시집을 냈다.

경북매일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