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자 시집 - 『붉은 꽃에 대한 명상』(문학의전당 , 2013)  

 

 

 

책소개

시집에는 특히 바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시 제목만 보더라도 ‘갈치’, ‘고래’, ‘조개구이집’, ‘뱀장어’, ‘부두 어시장’, ‘홍어’ 등등 싱싱한 비린내 끼치는 바다의 풍경이 보이는 듯하다. 시인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을 법한 이 소재들은 시집에 녹아들어 시인의 격정적인 서정과 지향점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자유’라는 두 글자를 강하게 떠오르게 하는 시편들이 다수 눈에 띈다.

 

 

저자 소개

저자 : 권순자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외 2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3년 『심상』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우목횟집』 『검은 늪』 『낭만적인 악수』 등이 있으며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시인의 말

제1부

미꾸라지의 상상
나무의 장례
발칙한 사막
사과꽃향기 날릴 때
갈치 낚시
고래
먼 곳
사슬에 대하여
달과 개
춘천호 매운탕
용유도 조개구이집
삼촌의 창고
양계장에서
춤추는 뱀장어
부두 어시장

제2부

소금
실종
복숭아밭의 달
바람의 뒤편
목련정진
사막의 여자
홍어
장수하늘소
매화
새들, 어둠을 털어내다
산책
북재비
아카시 난동
이슬의 언어
의자

제3부

하모니카
붉은 꽃에 대한 명상 1
붉은 꽃에 대한 명상 2
붉은 꽃에 대한 명상 3
숭어의 여행
물레따
표류하는 새
향어
서늘한 영혼
안개
집어등
갈치집 아줌마
아프리카의 뿔
구름의 눈동자
울지 마라, 바람이여

제4부

눈물의 무게
닭집 여자
꽃가루 날리던 날
복날
참치꽃
바람의 혀
수중 꽃
우기의 끝
낙엽을 미행하다
햇살 연인
초록 사과
등나무
거미
항해보고서
세탁소 박씨

해설 자유를 욕망하는 소금의 유전과 숭고한 봉헌
윤의섭(시인)

 

 

책속으로

미꾸라지의 상상

시장 어귀에 함지박을 내려놓고
사내가 미꾸라지를 판다
싱싱한 놈들 가져가요
맛 좋고 몸에 좋은 놈들이요
미꾸라지는 철체 위에서 이리저리 꼬물거리다가
얼른 빠져나간다 함지박 속으로 미끄러진다
미꾸라지는 구름처럼 흐르고 싶었을까
함지박에서 요동치는 몸놀림이 곧 구름 사이로 들어갈 것 같다
부풀어 오르는 상상으로 삶의 경계를 넘어
무한의 허공으로 스며들 기세다
상처투성이 될지라도 기어코 오르고 말겠다고 함지박을 기어오르는
저 몸부림!
외로운 투지는 바닥을 드러낼지언정
이 상황을 변환시키겠다고 발버둥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홀홀히 가지는 않을 것이다
붉은 꽃보다 더 붉은 피를 흘리며
시간은 자신의 족적을 남길 것이다
미꾸라지를 파는 사내는
미꾸라지처럼 파닥거리는 자신을 본다
차디찬 섣달그믐 날 빈손으로 귀가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진동하는 빛이 되어
유한한 시간에 꺾이면서 밝아지는 연습을 한다
삶을 향한 욕구가 강할수록 피비린내 진해지는
함지박 세상,
자아, 미꾸라지 사가세요, 참 맛있어요.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에서 보이는 일상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그 일상은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보여주며 온갖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시공간이다. 그러므로 시에서의 일상은 오히려 비일상에 가깝다. 한가로운 산책자의 시선으로 봐도 일상은 감동과 깨달음으로 만연되어 있다. 그와 함께 세심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일상은 항상 들끓고 있다. 이번 권순자 시인의 시집에 생생한 삶의 기록으로 담아놓은 일상 역시 평범한 일상은 아니다. 거기에는 자유에 대한 욕망이라는 본능적 담론이 표출될 수밖에 없는 걸쭉한 삶의 면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시집에는 특히 바다와 관련된 온갖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시 제목만 보더라도 ‘갈치’, ‘고래’, ‘조개구이집’, ‘뱀장어’, ‘부두 어시장’, ‘홍어’ 등등 싱싱한 비린내 끼치는 바다의 풍경이 보이는 듯하다. 시인의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을 법한 이 소재들은 시집에 녹아들어 시인의 격정적인 서정과 지향점을 드러낸다. 그 가운데 ‘자유’라는 두 글자를 강하게 떠오르게 하는 시편들이 다수 눈에 띈다. 어쩌면 이 ‘자유’에 대한 욕망이 권순자 시인의 시생(詩生)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기(元氣)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 시인에게 심겨진, 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유전인자처럼 새겨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렇게 이번 권순자 시인의 시집에는 시인의 본질적인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듯이 보인다.

[시인의 말]

모든 아름다운 것들,
생명이 짧아 더 강렬하게 빛나는
어린 것들,
언어 이전의 침묵으로
더 깊은 것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추천평

그녀와는 1980년대 우울하던 시절에 공단 도시 포항에서 외롭게 시를 품던 청춘의 한때가 함께 녹아 있다. 그녀는 우리가 꿈꾸던 세계를 향해 고투를 벌일 때 언제나 묵묵히 뜻을 함께해주던 성정, 구애 없는 모성애를 지녔다. 어떤 증오나 분노도 그의 시 속에 들면 고요하고 자애롭게 다시 태어나게 하는 힘, 나는 그녀의 이런 너그러움을 보살행의 가장 큰 미덕으로 묻어두고 있다. 그의 이런 성정이 지금처럼 다급한 시대의 거친 수레바퀴를 온전히 받아내는 편에 서리라 믿는다. “그물에 달빛이 걸려” “재빨리 그물을 올려라 외마디 소리 지르는 바람처럼”, “그물은 힘이 세서” “자주 밀어낸 상처도 건져 올려주듯”, “달빛을 은폐한 사각어항의 출구가 하늘로 열려” 있는 것처럼.
- 정원도(시인)

권순자 시인은 자연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혁명을 꿈꾸는 동식물을 연출한다. 한낱 미물도 꿈이 있고 분노가 있기에 늘 세상은 꿈틀거린다. 즉, 자연의 생태는 “죽은 개 속에 들어 있는 벌레를 먹고, 벌레 속에 들어 있는 풀을 먹고, 내가 나를 먹고”(「복날」)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낮고 고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강렬하다. 그녀의 시선은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그리며 세계를 인식한다. 그렇게 뭇 삶을 천형처럼 견디고 “죽어서야 꽃으로 피어”(「붉은 꽃에 대한 명상 2」) 마침내 불멸의 “붉은 꽃” 신화를 창조하는 중이다. 21세기 루소의 모습처럼……
- 김선주(문학평론가, 건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