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A2F42529FD2F025FAAD

 

 

                      이상훈 시집 『나팔꽃 그림자 

 


선생님과 가끔 만난 상주의 들은 남으로 더 넓게 강을 끼고 흐르고 있었습니다. 텃밭에는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모종을 가꾸고 저만치 푸른 소나무도 한 그루 심으셨더군요. 동구 밖에는 커다란 당나무가 있었는데 온갖 새들이 날아와 울고 갔댔지요? 이 가을엔 다시 곱게 물든 산천의 단풍을 굽어보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선생님의 뜰에 알알이 반짝이는 바람들이 부럽습니다. 아이들에게 끝없이 닿아가는 선생님의 시심에 작은 손뼉 하나 보냅니다. 선생님의 고스란 삶과 고단한 참교육의 역정에 우러러 긴 고개 숙입니다. _김두년(시인)

 

언제나 쾌활한 웃음으로 먼저 다가와 친구가 되어주셨던 선생님께서 틈틈이 들문학회를 통해 발표해온 시를 묶어 『나팔꽃 그림자』를 출간하시게 됨을 축하드립니다. 오랜 교육 철학이 담뿍 배어있는 이 시들을 읽고 느끼는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것 하나만은 알고 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 슬픔을 나누면 절반, 또 그것을 나누면 희망이 된다는 것을요. 아이들과,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선생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나팔꽃 그림자』가 나팔꽃 줄기처럼 희망이라는 담벼락을 타고 온 세상으로 널리 널리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_류예지(1995년 용궁중학교 제자)

 

7년 전 15살 때 처음으로 거벙이를 만났다. 거벙이는 동그란 안경에,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고, 한 손에는 국어책을, 다른 한 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꿀단지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 피고 지는 어리고 여린 꽃들을 보다듬는 거벙이는 아이들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꿀단지에 있는 꿈, 사랑, 믿음, 행복, 용기를 나눠주었고, 나는 그 꿀단지에서 ‘시’도 꺼내 읽었다. 거벙이의 시는 꽃밭 같다. 나를, 우리를 꽃으로 만들었던 거벙이는 시도 꽃으로 만든다. 나는 이제 나만의 이름을 가진 꽃이 되어, 거벙이가 만든 또 다른 꽃밭에서 꽃집을 읽는다. _정영미(2007년 상주여중 제자)

 


 

차례

 

제1부
우산재·11/강·12/학교·14/시골 운동장·16/만남·18/나팔꽃 그림자·20/소풍 가는 버스 안에서·23/참교육 장터·24/아름다운 동행·26/홍시 하나·28/찔레꽃 하나·30/산다는 것·31/연필·32/나뭇가지·33/복숭아 빛깔·34/단풍 하나·35/나무·36/감꽃·38/얼굴·39/옹달샘·40/수선화처럼·42/해바라기·43/반지·44/엄마·46/소망 하나에 엄마를 담아·48/조약돌·50

 

제2부

제비꽃 하나·53/꽃·54/수선화·56/꽃마리·58/민들레·59/산수유·60/진달래·62/개나리·63/난·64/개망초·65/봄날 새벽·66/새벽을 열면·67/소리·68/괴불주머니·70/나락·71/씨앗, 그 여물어가는 삶·72/단풍·74/늦가을 단상·75/초겨울·76

 

제3부

배경·81/아버지 1·82/아버지 2·84/아버지 3·85/낙동강·86/돈호법 인생·88/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90/산벚나무도·92/은척 갈라만 우예 가여·93/끄트머리·94/기도·95/반달빛 웃음 한 자락으로·96/이별·98/엔터(Enter)·100/화로·102/장날·103/명주·104/묘사·106/비 내리는 바닷가에 서면·108/갈선대·109/그들 앞에서·110

 

해설·113
시인의 말·135

 

 

 

 시집 속의 시 한 편



반지

 

 

10년도 훨씬 전
촌학교에 있을 때
아이가 주워주던 반지 하나를
나는 아직도 손에서 빼지 못하고 있다
둥근 모양이 무너지고,
긁힌 자국이 낭자하고,
색깔이 바래어 할매 손톱처럼 누래도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그 아이 얼굴이 살갑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아빠 없이도 늘 당당하던 아이는
동생이 집을 나갔을 때도
모란 꽃잎처럼 껌벅껌벅 동구 밖을 지켰다
마치 세상이 둥글고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이 둥글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반지처럼 방그레
둥근 웃음으로 환하던 그 아이가
순간 반지가 되기도 했다
순간 다시 웃다가
다시 반지가 되었다가
다시 웃다가
반지가 되었다가
웃다가

 

 

* 아빠 없이도 씩씩하게 자라던 선영이가 어떤 때는 나보다 훨씬 자유스러워 부럽기도 했다.

 

 

 

시인의 말

 

   어릴 때부터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혹시 이렇게 쓰면 시가 될까?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되고 싶다는 간절함이 짙어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이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 삶의 조각들이 제 색깔에 취해서 빛을 낼 때마다 나는 그 풍경에 감탄사 하나씩 붙여나갔고 그렇게 모인 부호들이 이제 나의 마음 밭에서 꽤 여럿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아직도 어떨 때는 그 모습이 대견스럽다가 어떨 때는 부끄러워 숨기고 싶다가 다시 기특해지다가 안쓰러워지고……. 시가 될 것 같은데 시가 되지 못하고 머리 언저리에서 생각만 고추잠자리처럼 어지럽게 맴돌 때면 다시 삶을 되돌아본다. 삶에서 나오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라고 스스로 다그치기도 한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인이 되는 날을 꿈꾸며 산다. 모든 사람들의 삶이 시의 가슴으로 걸어 들어가고 시가 삶의 품 안에 안겨 드디어 하나가 되면 시인들의 세상, 아름다운 시가 풍성하게 자라는 찬란한 세상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2013년 늦가을
                                                      이상훈

 

 

이상훈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쳐왔으며 4년 반 전교조 해직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년 동안 상주들문학회,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