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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호 시집 『붉은 발자국』

 

 

 

유재호 시인의 시편들은 각종 소음과 오염과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냇물 속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에게 자연은 인간 삶과 별개가 아니다. 이 둘은 서로를 넘나들며 깊이를 얻고 넓이를 확보한다. 그는 자연 사물들에서 현실계 너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머니, 그 바깥의 현존하는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또 그들 속에서 삶의 정도를 배우고 헤아린다. 그에게 자연 사물들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성찰하기 위한 한 계기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그의 삶 전부를 구성하기도 한다. 나아가 그는 삶의 연속으로 자연을 사유한다. 자연의 이법 내지 질서 속에서 인간 삶의 지향을 읽고 실천하는 시인의 삶과 시세계는 충분히 값지고 고귀하다. 덧붙여, 지나치게 낭비되고 배설되는 요설의 시대에 시인의 언어에 대한 엄격한 절제는 상찬 받아 마땅하다. _이재무(시인)

 

소년처럼 발그레한 미소로 세상을 걸어가는 유재호 시인은 늘 행복해보인다. 깔끔한 한 폭의 풍경화로 산뜻하게 서 있다가 문득 한 조각 분노로 세상을 꾸짖는 거리에 서 있다가 어느덧 무채색 일상으로 돌아와 땀을 흘리는 그를 자주 밭에서도 만나고 논에서도 만난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밀쳐두지 않고 내 것으로 끌어안는 그는 어디에 서 있어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참 너른 세상을 두루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시 앞에서도 어울리고 기타를 안고 있어도 자연스럽다. 물이 넉넉한 논 앞에 서면 나락보다 외려 풍성하다. 이쯤에서 그의 진솔하고 알찬 삶을 풍성하게 만나게 됨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_이상훈(시인)

 

 

 

차례

 

제1부

바람·11/겨울 서시(序詩)·12/아버지의 새벽·13/어머니와 매화나무·14/아버지·15/할미꽃·16/늦가을비·17/찔레꽃·18/어린 풀잎·20/봉화 가는 길·21/잘려진 나무·22/숲이 어두운 까닭·23/불은·24/외딴방 홀몸노인·25/가을날 오후·26/겨울 산사·27/공존·28/단풍계곡·29/가을 바다 산책·30/내 거울·31

 

제2부

새잎·35/꽃병 이야기·36/겨울날·37/대웅전에서·38/꽃샘바람·39/김씨의 새벽·40/눈은·41/바랭이·42/수수밭·43/태풍경보·44/키질하는 할머니·46/붉은 잎·47/낙엽도 밟히면 아프다·48/바람이 불 때·49/갈대·50/진달래·51/논갈이를 앞두고·52/논을 갈며·53/보습·54/써레질·55

 

제3부

붉은 등대 1·59/붉은 등대 2·60/붉은 등대 3·61/봉숭아·62/이 봄날·63/봄·64/그해 봄·65/화첩·66/가을 초입·67/비원·68/그림자·69/저녁 산길·70/겨울 아침·71/깊은 우물·72/오솔길·73/밤길·74/능소화·76/암연(暗然)·77/철쭉꽃·78/향기·80

 

제4부

과원(果園)에서·83/초승달·84/시간·85/밤비·86/밤새·88/퇴근길 1·89/퇴근길 2·90/우울한 까닭·92/봄 바다·94/발자국·96/소유의 슬픔·98/어머니, 그리고 기다림·100/유년 겨울·101/정물화·102/새벽, 산마을·104/눈·105/묵은 옷가지·106/길의 끝·107/낯익은 계절·108/소리·109

 

해설·111

시인의 말·123

 

 

 

 시집 속의 시 한 편

 

  논을 갈며

 

 

   새벽

   둔덕길은

   찔레향이 하얗다

 

   간밤을 설치게 했던 하우스재배 사과 배 포도나무 공포감도 위기감도 자꾸만 무뎌지는 수입 농산품, 선대(先代) 긴 한숨 같은 들바람이 불어올 때 경운기 코를 잡고 힘껏 시동을 건다 눈부신 쟁깃날로 검은 땅 독초 잡초 깊이깊이 갈아엎어 남아있어 죄가 된 아픔도 설움도 갈아엎어 갈아엎어

 

   지친 넋

   켜켜이 일어서는

   봉답마다 흙의 파도여

 

 

 

시인의 말

 

   바람은 형체도 냄새도 없지만 바람이 불 때 나뭇잎이며 풀잎은 비로소 살아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내게 있어 시(詩)란 바람과 같은 것이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그 모든 것은 시화(詩化)되었을 때 생명을 얻게 된다.

   지난여름 폭염에 지친 바람은 말을 잃고 자취마저 감췄다. 이제 단풍나무숲에 숨은 바람의 붉은 심장을 찾으러 나서야 할 때다. 스러져 누운 풀들을 일으키며.

 

                                                                2013년 9월 봉강산방에서

                                                                                          유재호

 

 

유재호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였다. 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 들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