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콤플렉스

나는 어이없게 돈을 몇 번 떼였다. 나는 그때마다 성격이 워낙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내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아해 했었다.
나는 그 흔한 빚보증 한번 서지 않았다. 실망하며 뒤돌아서는 사람들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나는 돈에 얽매이기 싫어!’
내가 돈을 떼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가 확고하게 믿은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자주 당부하셨다. ‘너는 귀가 얇아 남에게 속기 쉬워. 항상 조심해라!’ 역시 부모만큼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맞나보다.  
돈의 단위가 클 때는 정말이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가슴이 턱턱 막히는 고통을 당하며 나는 서서히 깨달아갔다.
‘아, 내게 큰 문제가 있었구나!’  

자라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네 눈은 늘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쓸쓸했다. 무언가가 애타게 그립고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나만 유독 ‘갈구증’이 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안장애’라는 병에 걸리면서 나는 남과 다른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앓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병이 나기 전에 똑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유아시절 같은데 가도 가도 빈집만 나타났다. 나중에는 꿈을 꾸면서도 ‘아, 또 그 꿈이구나!’하고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라면 선명히 그릴 수 있다. 신작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다 왼쪽 샛길로 빠져들면 마을이 나타나는데, 초가집이 십여 채 있다.
나는 그 마을이 어딘지 안다. 내가 태어나 3살 때까지 자란 골테. 부모님께서는 그 마을에 무일푼으로 들어오셔서 남의 일을 해주시며 사셨다. 그때 부모님은 어린 나를 떼어 놓고 일을 많이 나가셨다고 한다. 그때마다 이웃집에 나를 맡기셨다고 한다. 어린 나는 자주 집에 가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빈집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내 ‘갈구증’의 근원을 어렴풋이 느낀다. ‘부족한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나는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나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비로소 ‘나’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내 눈이 많이 안정되어 보인다’고 한다.
나는 이제 ‘내 안의 울고 있는 아기’를 뜨겁게 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