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데 저  한미희 역  비룡소  1999.2.9



미하엘 엔데

1929년 남부 독일 가르마슈 파르텐키르헨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역시 화가인 루이제 바르톨로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치 정부로부터 예술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모의 예술적 감수성은 엔데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소설, 시, 동시, 동화, 희곡 등 다양한 문학 장르뿐만 아니라 회화, 연극을 넘나들었던 엔데의 재능은 회화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연금술, 신화에도 두루 정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2차세계대전 당시, 발도르프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아버지에게 징집 영장이 발부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나치의 눈을 피해 도망했다. 전후에는 연극 배우, 연극 평론가, 연극 기획자로 활동하다가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1960년에 첫작품 <기관차 대여행>을 발표하여 독일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그 뒤 세계 어린이문학사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를 계속 발표하여, 뛰어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1995년 위암으로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줄거리

모모라는 소녀가 작은 원형극장의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다. 그 소녀는 남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재주가 있어서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마을사람들은 유쾌해지고, 지혜로워졌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모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회색 신사들이 불현듯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일만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회색신사들에게 빼앗긴 시간이 저축해 놓은 것인 줄 알고 시간을 더 아끼려고 했다. 모모는 그들의 비밀을 알아내서 호라 박사에게 갔다. 호라 박사를 만나 시간의 꽃을 얻어 마을로 돌아온다. 모모가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자 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다시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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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나면
아프겠지 남겨둔 안식처럼
상처가 쑤시겠지 통증이 한 번
크게 파도칠 때까지 기다리면
손목을 긋는 충동이 달려와주겠지

           - 이상희의 시 <시간이 나면>중에서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언젠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다. 아팠을 땐 아프지 않기를 원했고, 바쁠 땐 한가하길 원했고, 배고플 땐 배를 채우길 원했다. 그 소망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를 붙잡지 못하고 ‘미래’에 희망을 거는 한 우리의 삶은 실패한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과거에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 찬란하게 모여 있는 순간이다. 그 찬란함을 누려보자. 마음껏. 나를 옥죄고 짓누르던 것들에게서 서서히 풀려날 것이다. 자유, 해방. ‘나’는 이 세상의 큰 가락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나’는 어느새 우주의 춤에 동참하고 있을 것이다. 호흡은 기쁨에 겨워 산들바람처럼 감미롭고 피는 개울물처럼 졸졸졸 흐를 것이다. 행복이 따뜻한 햇살처럼 온 몸을 감쌀 것이다.

  이 세상의 본질은 춤이다. 우리는 춤 속에서 태어났고, 춤 속에서 살다가, 춤 속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가락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시간이 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회색 신사들이 빼앗아 간 것이다. 회색이란 산업 혁명이 이룩한 거대한 공장의 굴뚝 연기가 아닐까. 우리는 그 연기를 보고 얼마나 환호했던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우리는 그것들에게 우리의 삶을 일임했다. 우리의 모든 몸짓은 그 회색 연기가 움직이는 기계의 움직임에 맞춰졌다.

  우리는 모두 기계의 부품(회색 신사)이 되어버렸다. 좋은 부품이 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기계의 시간을 몸에 익혀갔다. 이제 우리의 몸은 기계의 훌륭한 부품 하나가 되었다. 낡고 헐거워지면 실업자가 되어 버려졌고, 즉각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되었다.

  이제 지식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기계의 부품이 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는 시간을 몸 안으로 불러들이는 사람을 원한다. 창의성과 감성은 시간을 매음대로 부리는 사람에게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시간에 대해 강박증을 갖고 있다. 시간이 나면 안절부절 못한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몸이 아닌 시간을 부리는 몸을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그냥 내버려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멍청하게 있을 때 우리는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남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우주의 춤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삶의 주인이 되어 보자. 세상은 꽃으로 가득 피어난다. 우리는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한 시간 속에 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