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각시



줄거리

외롭게 살던 한 노총각이 들에서 커다란 우렁이를 발견해 집으로 가져온다. 그날 이후, 들에서 돌아와 보면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하루는 몰래 숨어서 지켜보았는데, 우렁이가 예쁜 색시로 변해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 후 노총각은 우렁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임금님이 우렁이 각시한테 마음이 빼앗겨서 세 가지 내기 - 나무 베기, 말 타고 강 건너기, 배 타고 바다 건너기 - 를 제안했다. 그때마다 우렁이가 꾀를 내어 이겼다. 두 사람은 왕과 왕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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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 최승자의 시 <여성에 관하여> 중에서
  

내 젊은 시절에도 우렁이가 몇 번 나타났었다. 하지만 나는 우렁이를 내 각시로 만드는데 실패했다. 왕과의 내기에서 번번이 패했기 때문이다. 우렁이가 파리로 변신해 도와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고, 여러 꾀를 내어 도와주었지만 그 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을 이기려면 왕과 전혀 다른 생각(우렁이의 생각)으로 맞서야 하는데 나도 왕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남이라 우렁이가 나타날 때마다 ‘맏며느리 감’으로서만 바라보았다. 이 우렁이는 이래서 안 되고 저 우렁이는 저래서 안 되고...... 그녀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들을 온전히 받아들였어야 그 중에서 맏며느리 감을 알아볼 수 있었을 터인데.

왕과의 싸움에서 수없이 패한 후 지쳐 쓰러져 있다가 만난 우렁이가 지금의 아내다. 완전히 패했으니, 새로이 만난 우렁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왕과의 싸움은 쉽게 끝났다. 우렁이의 지혜만이 왕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오랫동안 수렵시대에서 사냥을 해 왔기에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힘이 강하다. 목표를 정하면 옆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다 농경을 하게 되면서 남자들은 가부장(家父長)이 되었다.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데 ‘남자로만’ 살아야 하는 삶은 실패한 삶이다.

왕과의 대결이란 실은 마음속의 왕과의 대결이다. 왕이 상징하는 ‘권력’을 절제할 수 있어야 성공한 삶이 된다.

나는 장남이라는 ‘작은 태자’였던 것이다. 이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내 삶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권력’의 허망함을 깨닫기 위해선 우렁이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우렁이의 지혜만이 이 ‘왕자병’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렁이 각시’는 가부장 사회에 의해 세뇌된 한 남자의 구원기(記)다.

우렁이는 남자들의 일터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