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우듬지, 보수는 줄기

 

 

나의 친구 정수, 잘 계신지 그리고 가내 두루 안녕하신지.

전번 중락이네 사위 보는 잔치에 가서 재경 친구들을 만나 잘 대접받고 놀다 왔지만 그날 자네를 못 뵈어 좀 서운했네.

여류세월, 시간은 흐르는 물이라더니 벌써 2012년 초여름이 진하네.

오랜만에 자네 이름으로 온 메일이어서 반가웠네. 며칠 전에 서울 가 머물다가 어제 오전에 안동으로 내려오기 직전에 도착한 반가운 자네의 메일,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서 잠깐 열어보았네. 내려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아래와 같은 점이 눈에 걸리더군. 비록 견문과 식견이 부족한 시골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하찮은 말이지만 불쾌하시더라도 일독하여 주시면 고맙겠네.

 

먼저, 자네가 보내온 문서의 제목은 <FW: 정당 국기계양대에 조기가 왼말?>였네.

사진 두 장, 하나는 4월6일 금요일 오후3시경 막말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통합당 노원구갑 김용민 후보와 민주당사에 걸린 태극기 사진이고, 또 하나는 지난해 5월 한명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짖밟고 헤맑게 사진촬영’을 한 사진이더군.

 

장황하지만 거기에 쓰인 글을 먼저 살펴보겠네.

 

《민주통합당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대한민국 제 1야당원들에 의해 태극기는 무참히 능욕당했다. 4월6일 금요일 오후3시경 막말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통합당 노원구갑 김용민 후보와 사과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민주통합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애국여성들의모임 레이디블루가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순간 행사 참가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위를 쳐다보니 믿기 어려운 장면이 보였다. 민주통합당 당사 옥상에 걸린 게양대에 태극기가 조기로 달려있는 것이었다. 바로 옆 자신들의 당 깃발은 당당하게 달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태극기를 자신들의 당 보다 못한 취급을 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주위에 있던 국민들은 분노했다. 우리 대한민국의 얼굴인 태극기가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제1야당 본거지에서, 태극기가 능욕 당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분노였다.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통합당을 강력히 규탄하자 한참 후에 관계자들이 나와서 부랴부랴 태극기를 다시 계양했다. 애국 시민들의 정의로운 목소리가 없었다면 민주통합당은 계속해서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모독했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태극기 능욕은 상습적이다. 지난해 5월 한명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짖밟고 헤맑게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얼굴을 짖밟는 자가 전 총리였고 제1야당의 대표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태극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홍모 제공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 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아 46:28)》

 

자네가 보낸 메일의 사진 두 장과 글을 읽고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네.

 

(1) 우선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선전문인데 오자가 몇 있더군

계양 < 게양 揭揚, 왼말 < 왠말, 헤맑게 < 해맑게, 짖밟고 < 짓밟고 등이 표준 철자법에 맞는 어휘가 아닐까 하네.

(2) 제목이 ‘선거에 졌다고 조기가 왼말’인데, 항의 집회가 4월 6일이면 선거가 4월 11일이니 5일 전 아니가?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는가? 제목 넣을 때 간과한 것 같군.

(3) 첫 번째 사진을 보니 의도적으로 조기를 달았다기보다는 태극기 게양할 때 소홀한 것 같아. 조기는 깃폭만큼 내려야 하는데 한 1/3정도 내려오지 않았나? 아마 집회 참가자들의 감정이 매우 과격한 상태이다 보니 그것이 오버 랩 된 것이 아닐까 하네만.

(4) 두 번째 사진을 보니 나도 태극기 위에 서있는 게 일단 눈에 거슬리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故 노무현대통령 2주기 추모식으로 중간에 추모비가 있는데, 한명숙 대표가 헌화하는 모습이 찍힌 것 같네. 추모식과 추모비 개념을 적용하면 가능한 장면이지만 태극기를 신성시 하는 군중들로 보면 하자가 되지.

하지만 요즈음 시대적 풍조는 태극기를 공공장소에선 국가의 상징으로 신성시하지만 옷이나 모자 스포츠용품 등에 디자인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줄 아네. 모양도 좀 변형시키기도 하더군. 그게 몇 년 전엔가 법률로도 공표된 줄로 아네.

그러니 태극기를 바탕으로 한 전직 대통령 추모비와 제1양당 대표의 헌화는 자연스러운 장면이 아닐까 하네.

(5) ‘민주통합당에 대한민국은 없었다’라는 말과 ‘태극기가 능욕 당했다’라는 말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지나치게 내세운 선동문구가 아닐까 하네. ‘민주통합당’, ‘대한민국’, ‘태극기’, ‘능욕’이란 말은 서로가 생소할뿐더러 의미 단절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네. 민주통합당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반은 되는데, 그들이 정말 그렇다면 절단 날 일이 아니가. 몰라 혹여 일부 사람들이 그럴지는 몰라도 다수는 건강한 대한민국의 건강한 국민임은 분명하지 아니한가.

이 땅에 삶의 발을 딛고 사는 사람치고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없네.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비하, 무시하는 자들은 종북주의자들과 극좌 모험주의자들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측들의 사주를 받아 과격하고 선동적인 말과 행동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반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민주당을 비방하는 것은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이 평화롭게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하네.

민주주의는 건전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여론에 따른 다수결 원칙을 존중하면서 성장하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 해도 미흡하면 질책해야 하고, 내가 반대하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잘하는 점이 있으면 칭찬해 주어야만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성장하네. 혁명은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지만 건강한 정치는 말과 글로서 이루어지네. 규탄할 것이 있다고 해서 극우파인 어버이연합과 레이디블루처럼 우르르 몰려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하네. 물론 극좌파들의 불법집회와 시위도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것도 당연하네.

5월 내내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문제로 나라가 소란하네. 이석기, 김재연, 이상규, 이정희 등 구당권파 사람들 나름대로는 제대로 조사받지도 못했는데 과장되게 마녀 사냥을 당하는 억울한 분기가 있겠지.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회의방해와 폭력사태가 인터넷 중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시청됨으로서 대다수 국민들이 그들의 반민주주의 행패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네. 민주주의의 생명은 절차 중시 아닌가. 어떠한 명분으로도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종북과 반국가, 비사회적인 극좌 모험주의가 폭로되고 말았네. 이번에 우리 국민들은 진보에도 참과 거짓이 있음을 알았네. 물론 보수에도 참과 거짓이 있을 걸세.

이념 문제는 20세기 내내 우리 겨레의 정신과 생활을 혼란하게 하여 상쟁하도록 하는 요인일세. 이번 사태를 통해서 크게 진보와 보수라는 두 진영에도 양쪽 가에 각각 5% 정도의 극우와 극좌가 있고 다음으로 각각 10% 정도의 강우와 강좌가 있고, 중간을 기준으로 70% 정도의 중도층이 있음이 확연해 졌네. 이 70% 정도의 중도층이 극좌와 극우를 견제하면서 확실한 무게 중심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네. 과격한 극좌와 극우 사람들은 서로가 빙탄물상용이라서 “ 몽땅 쓸어버려라, 척결하라, 숙청하라” 등등 말을 함부로 내뱉는데, 이념과 생각이 다르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이해와 용인을 도모해야지 폭언과 폭력을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평화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6) 홍모의 제공이더군. 에레미아 46:28을 언급한 걸 보니 목사 또는 장로가 아닌가 싶네.

예수는 그 당시로서는 굉장한 진보주의자였네.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 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적 고통을 가장 가슴 아파하며 자기 민족에게 생명의 길을 개척해주기 위해 헌신한 선각자였네. 나도 1976년 9월 초에 여산 제2하사관학교를 마치고 용산역에서 선교하는 아주머니로부터 휴대용 성경을 한권 증정 받아 육군종합학교 시절에 찬찬히 읽어보았네.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깊은 감명을 받았네. 33년 동안 세상에서 산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더군. 결국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위협받는다고 여긴 유대교단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선각적 진보주의자로서의 진리 추구와 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네.

오늘날 대중 종교들이 물신주의, 배금주의, 대형주의 등에 탐닉하고 있는 것은 예수나 석가모니, 공자 등의 성현들이 제시한 진리의 길하고는 생판 다르지 않을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보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예수의 삶을 오늘과 미래에 부활하는 길이 아닐까 하네.

 

정수,

번잡한 변명만 늘어놓았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한 세대가 훌쩍 흘러갔다보니 서로가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이젠 모습이 다르고 이젠 생각이 다르고 이젠 이념이 다르네. 특히나 우리의 향토인 영남, 그 중에서도 경북, 그 중에서도 경북북부 지방은 아주 단단한 보수 풍토이지. 이 지역에 살면서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여서 섬처럼 참 고독하다네. 자주는 못 만나지만 가끔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 카페에 오른 글들을 살펴보면 재경 동창들은 90% 이상이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더군.

진보든 보수든 그것들은 생각의 차이일 뿐이 아닌가. 그것이 가족이나 이웃, 친지나 친구들의 사이에서 장애로 작용해선 안 되네. 서로의 생각과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가치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는 나무의 우듬지로서 하늘을 향하여 자라는 부분이고 보수는 그 우듬지가 단단해져서 무게를 갖춘 줄기가 아닌가. 우듬지를 부정하거나 줄기를 부정해서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지 아니한가.

우리가 이 나이 되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을 잘 준비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어버이연합과 레이디블루 회원들의 마음도 이와 같음은 분명하네. 그분들이 무슨 돈과 명예를 위해서 행동 대열에 참가하였겠는가.

단지 이 나이 되어서 우리들이 경계하여할 할 점이라면, 나만이 옳다 우리만이 옳다라는 아집이 아닐까 하네. 장강이 지류를 받아들이고 대하가 세상의 모든 강을 받아들이듯 노년기엔 청년기보다 더 머리와 가슴과 마음을 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네. 그래야 지혜로운 노인으로 아름답고 편안하게 나의 생애를 마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네나 나나 지향하는 목표는 동일한 것은 분명하네.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

건안하시게.

 

 

2012년 5월 24일 안동에서 양백산인 박희용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