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4호...
   2019년 12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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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질투는 너의 힘/강태규 file
무궁화
1718 2012-06-01
질투는 너의 힘 미워하는 마음은 제대로 바라보는 시야나 올바른 판단을 방해한다. 그러나 때로는 질투와 욕망이 버무려진 마음은 어떤 일을 추진하게 하는 (사람을 포함한 생물진화의 우점종 속에 계대되어 강화되어온 현재 작동중인 유전자에 의한) 힘이 되기도 할 것이며, 그것의 순방향과 역방향은 스스로 선택과 폐기를 반복하면서 아슬하게 생태계와 문명을 이때껏 지켜온 동인들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불경이나 성경에 견주어 볼 때, 불온한 발상이거나 지극히 유물론적 사고의 경도인지도 모르나, 본시 사람은 부처나, 거룩함의 아들이라고 아무리 전파를 하여도, 지금껏 지구라는 행성의 우점종으로 남은 내력을 곱아보면, 오히려 이기적이고 사악한 고등유전자의 생물로 ‘살아 남아 번성한 지금’ 으로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요즘이다. 총선의 결과분석 중에 드러난 현상인, 가난한 계급이 어찌하여 양의 가면을 하고 있는 야수의 계급에 투표했는 지가 ‘기억하고 의심하는 능력’ 을 퇴화시킨 우리와 주변의 기득권층임을 부인할 수도 없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차라리 터놓고 소담을 하는 술자리라고 해보자. 웃는 얼굴로 고민없이 부처님 같은 소재가 일견 폼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문화단체 운영비를 요구할 때나, 교육계나, 공적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폼나는 (좀 의심스럽더라도) 정부정책 동화적 사업계획서가 우선적으로 예산배정되고 있고, 그 앞줄에 서서 추진하는 대표자에게 힘이 쏠린다. 중요한 포탈에 있는 의사결정권자도 더 큰 욕망을 위해서는 어떤 결정들을 하고 있는지 뻔하게 보인다. 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스레 쓰는 것도 멋 적지만, 20세기를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점점 더 사악해지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달, 필자는 구제역 때문에 지연된 과제 하나를 마무리 했다. 가축의 기생충연구 중에 하나를 발표했는데, 뻔한 결론이지만, 기생충을 안전한 식육을 유지하면서 피해를 효율적으로 최소화하자는 취지로 이러저러한 증거를 동원하여 백신을 개발하자는 게 요지였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이따금씩 생각하고 여러나라의 과학적 자료들도 참고하다보니, 기생충에 대한 미움은 사라지고 기생충의 마음속으로 들여다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지구 껍질의 상판이 이동하기 전부터 버텨온 지극한 생명체에 대한 경외감도 생겼다. 생태계가 열악해질수록 몸집이 큰 생명체는 개체수의 포화점 도달이 빨라, 일찍 소멸한다는 것이다. 보잘것 없이 보이는 미물들은 적은 에너지로 살아남거나 버티면 그 열정 하나로 기어코 남는다는 것. 나는 이 소망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50키로그램도 채 안되는 몸집으로 살아남았다. 방송사 진짜노조는 공룡의 편에서 구축된 논리에 기대는 한편의 방송인들과 균열 되거나 구획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즈음에 이 대결국면은 의도적으로 연장되어 진행될 것이다. 시를 공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필자도 일견한 장면이지만, 자유실천에 뿌리한 현재의 작가회의 소속 지역문단 시인(다른 단체도 겹가입하였는 지도 모르나)인, 나보다는 젊은 시인의 차에 동승한 적이 있었는데, “사대강 개발을 반대하는 빨갱이 문인이 있다” 라는 그의 의견을 듣고, 이런 작가도 작가회의 홈페이지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사실에 대한 나의 경악과 경의가 동시에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알것도 같다. 그런 지식인 또는 작가가 왜 지금 번성하는 토양인지를. 나는 아직도 소망한다. 내 아들이 삼성직원일지라도, 큰 공룡은 포화점이 빨리 도달할 것임으로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 지금, 힘이 있는 계급 또는 부류는 더 큰 결속력으로 왼손이 모르는 악행을 당연한 정의라고 구역예배를 할 것이고, 백일 불공을 드릴 것이다. 바퀴벌레여, 좀 더 힘써 열망과 분노를 키워 버텨라. 10억년 후 태양계가 팽창하기 훨씬 전까지 너의 세계가 올찌니.  
101 진보는 우듬지, 보수는 줄기/박희용 file
편집자
1746 2012-05-25
 진보는 우듬지, 보수는 줄기 나의 친구 정수, 잘 계신지 그리고 가내 두루 안녕하신지. 전번 중락이네 사위 보는 잔치에 가서 재경 친구들을 만나 잘 대접받고 놀다 왔지만 그날 자네를 못 뵈어 좀 서운했네. 여류세월, 시간은 흐르는 물이라더니 벌써 2012년 초여름이 진하네. 오랜만에 자네 이름으로 온 메일이어서 반가웠네. 며칠 전에 서울 가 머물다가 어제 오전에 안동으로 내려오기 직전에 도착한 반가운 자네의 메일,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서 잠깐 열어보았네. 내려와서 찬찬히 읽어보니 아래와 같은 점이 눈에 걸리더군. 비록 견문과 식견이 부족한 시골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하찮은 말이지만 불쾌하시더라도 일독하여 주시면 고맙겠네. 먼저, 자네가 보내온 문서의 제목은 <FW: 정당 국기계양대에 조기가 왼말?>였네. 사진 두 장, 하나는 4월6일 금요일 오후3시경 막말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통합당 노원구갑 김용민 후보와 민주당사에 걸린 태극기 사진이고, 또 하나는 지난해 5월 한명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짖밟고 헤맑게 사진촬영’을 한 사진이더군. 장황하지만 거기에 쓰인 글을 먼저 살펴보겠네. 《민주통합당에 대한민국은 없었다. 대한민국 제 1야당원들에 의해 태극기는 무참히 능욕당했다. 4월6일 금요일 오후3시경 막말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통합당 노원구갑 김용민 후보와 사과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민주통합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과 애국여성들의모임 레이디블루가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순간 행사 참가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위를 쳐다보니 믿기 어려운 장면이 보였다. 민주통합당 당사 옥상에 걸린 게양대에 태극기가 조기로 달려있는 것이었다. 바로 옆 자신들의 당 깃발은 당당하게 달려있는 모습을 보면서 태극기를 자신들의 당 보다 못한 취급을 한 것은 우연이나 실수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주위에 있던 국민들은 분노했다. 우리 대한민국의 얼굴인 태극기가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것도 제1야당 본거지에서, 태극기가 능욕 당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분노였다. 분노한 시민들이 민주통합당을 강력히 규탄하자 한참 후에 관계자들이 나와서 부랴부랴 태극기를 다시 계양했다. 애국 시민들의 정의로운 목소리가 없었다면 민주통합당은 계속해서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모독했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의 태극기 능욕은 상습적이다. 지난해 5월 한명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2주기 분향소에서 태극기를 짖밟고 헤맑게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얼굴을 짖밟는 자가 전 총리였고 제1야당의 대표였던 것이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태극기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홍모 제공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 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아 46:28)》 자네가 보낸 메일의 사진 두 장과 글을 읽고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보았네. (1) 우선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선전문인데 오자가 몇 있더군 계양 < 게양 揭揚, 왼말 < 왠말, 헤맑게 < 해맑게, 짖밟고 < 짓밟고 등이 표준 철자법에 맞는 어휘가 아닐까 하네. (2) 제목이 ‘선거에 졌다고 조기가 왼말’인데, 항의 집회가 4월 6일이면 선거가 4월 11일이니 5일 전 아니가?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는가? 제목 넣을 때 간과한 것 같군. (3) 첫 번째 사진을 보니 의도적으로 조기를 달았다기보다는 태극기 게양할 때 소홀한 것 같아. 조기는 깃폭만큼 내려야 하는데 한 1/3정도 내려오지 않았나? 아마 집회 참가자들의 감정이 매우 과격한 상태이다 보니 그것이 오버 랩 된 것이 아닐까 하네만. (4) 두 번째 사진을 보니 나도 태극기 위에 서있는 게 일단 눈에 거슬리네. 그러나 주변을 살펴보면 故 노무현대통령 2주기 추모식으로 중간에 추모비가 있는데, 한명숙 대표가 헌화하는 모습이 찍힌 것 같네. 추모식과 추모비 개념을 적용하면 가능한 장면이지만 태극기를 신성시 하는 군중들로 보면 하자가 되지. 하지만 요즈음 시대적 풍조는 태극기를 공공장소에선 국가의 상징으로 신성시하지만 옷이나 모자 스포츠용품 등에 디자인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줄 아네. 모양도 좀 변형시키기도 하더군. 그게 몇 년 전엔가 법률로도 공표된 줄로 아네. 그러니 태극기를 바탕으로 한 전직 대통령 추모비와 제1양당 대표의 헌화는 자연스러운 장면이 아닐까 하네. (5) ‘민주통합당에 대한민국은 없었다’라는 말과 ‘태극기가 능욕 당했다’라는 말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지나치게 내세운 선동문구가 아닐까 하네. ‘민주통합당’, ‘대한민국’, ‘태극기’, ‘능욕’이란 말은 서로가 생소할뿐더러 의미 단절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드네. 민주통합당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그래도 대한민국의 반은 되는데, 그들이 정말 그렇다면 절단 날 일이 아니가. 몰라 혹여 일부 사람들이 그럴지는 몰라도 다수는 건강한 대한민국의 건강한 국민임은 분명하지 아니한가. 이 땅에 삶의 발을 딛고 사는 사람치고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 없네. 대한민국과 태극기를 비하, 무시하는 자들은 종북주의자들과 극좌 모험주의자들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진 측들의 사주를 받아 과격하고 선동적인 말과 행동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반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민주당을 비방하는 것은 우리들과 우리 자녀들이 평화롭게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하네. 민주주의는 건전한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여론에 따른 다수결 원칙을 존중하면서 성장하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 해도 미흡하면 질책해야 하고, 내가 반대하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잘하는 점이 있으면 칭찬해 주어야만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성장하네. 혁명은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지만 건강한 정치는 말과 글로서 이루어지네. 규탄할 것이 있다고 해서 극우파인 어버이연합과 레이디블루처럼 우르르 몰려가 소란을 피우는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하네. 물론 극좌파들의 불법집회와 시위도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안 되는 것도 당연하네. 5월 내내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문제로 나라가 소란하네. 이석기, 김재연, 이상규, 이정희 등 구당권파 사람들 나름대로는 제대로 조사받지도 못했는데 과장되게 마녀 사냥을 당하는 억울한 분기가 있겠지. 그러나 그들이 저지른 회의방해와 폭력사태가 인터넷 중계를 통해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시청됨으로서 대다수 국민들이 그들의 반민주주의 행패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네. 민주주의의 생명은 절차 중시 아닌가. 어떠한 명분으로도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종북과 반국가, 비사회적인 극좌 모험주의가 폭로되고 말았네. 이번에 우리 국민들은 진보에도 참과 거짓이 있음을 알았네. 물론 보수에도 참과 거짓이 있을 걸세. 이념 문제는 20세기 내내 우리 겨레의 정신과 생활을 혼란하게 하여 상쟁하도록 하는 요인일세. 이번 사태를 통해서 크게 진보와 보수라는 두 진영에도 양쪽 가에 각각 5% 정도의 극우와 극좌가 있고 다음으로 각각 10% 정도의 강우와 강좌가 있고, 중간을 기준으로 70% 정도의 중도층이 있음이 확연해 졌네. 이 70% 정도의 중도층이 극좌와 극우를 견제하면서 확실한 무게 중심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네. 과격한 극좌와 극우 사람들은 서로가 빙탄물상용이라서 “ 몽땅 쓸어버려라, 척결하라, 숙청하라” 등등 말을 함부로 내뱉는데, 이념과 생각이 다르면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 이해와 용인을 도모해야지 폭언과 폭력을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평화야말로 인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닌가. (6) 홍모의 제공이더군. 에레미아 46:28을 언급한 걸 보니 목사 또는 장로가 아닌가 싶네. 예수는 그 당시로서는 굉장한 진보주의자였네.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유대 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적 고통을 가장 가슴 아파하며 자기 민족에게 생명의 길을 개척해주기 위해 헌신한 선각자였네. 나도 1976년 9월 초에 여산 제2하사관학교를 마치고 용산역에서 선교하는 아주머니로부터 휴대용 성경을 한권 증정 받아 육군종합학교 시절에 찬찬히 읽어보았네.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깊은 감명을 받았네. 33년 동안 세상에서 산 예수의 말씀과 행적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이더군. 결국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위협받는다고 여긴 유대교단으로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선각적 진보주의자로서의 진리 추구와 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네. 오늘날 대중 종교들이 물신주의, 배금주의, 대형주의 등에 탐닉하고 있는 것은 예수나 석가모니, 공자 등의 성현들이 제시한 진리의 길하고는 생판 다르지 않을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보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예수의 삶을 오늘과 미래에 부활하는 길이 아닐까 하네. 정수, 번잡한 변명만 늘어놓았네.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한 세대가 훌쩍 흘러갔다보니 서로가 살아온 방식이 달라서 이젠 모습이 다르고 이젠 생각이 다르고 이젠 이념이 다르네. 특히나 우리의 향토인 영남, 그 중에서도 경북, 그 중에서도 경북북부 지방은 아주 단단한 보수 풍토이지. 이 지역에 살면서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여서 섬처럼 참 고독하다네. 자주는 못 만나지만 가끔 만나서 나누는 대화와 카페에 오른 글들을 살펴보면 재경 동창들은 90% 이상이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더군. 진보든 보수든 그것들은 생각의 차이일 뿐이 아닌가. 그것이 가족이나 이웃, 친지나 친구들의 사이에서 장애로 작용해선 안 되네. 서로의 생각과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가치를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진보는 나무의 우듬지로서 하늘을 향하여 자라는 부분이고 보수는 그 우듬지가 단단해져서 무게를 갖춘 줄기가 아닌가. 우듬지를 부정하거나 줄기를 부정해서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지 아니한가. 우리가 이 나이 되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세상을 잘 준비해 주는 것 아니겠는가. 위에서 언급한 어버이연합과 레이디블루 회원들의 마음도 이와 같음은 분명하네. 그분들이 무슨 돈과 명예를 위해서 행동 대열에 참가하였겠는가. 단지 이 나이 되어서 우리들이 경계하여할 할 점이라면, 나만이 옳다 우리만이 옳다라는 아집이 아닐까 하네. 장강이 지류를 받아들이고 대하가 세상의 모든 강을 받아들이듯 노년기엔 청년기보다 더 머리와 가슴과 마음을 열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네. 그래야 지혜로운 노인으로 아름답고 편안하게 나의 생애를 마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네나 나나 지향하는 목표는 동일한 것은 분명하네.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 건안하시게. 2012년 5월 24일 안동에서 양백산인 박희용 드림  
100 불가사리/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1543 2012-05-07
 불가사리 줄거리 깊은 산 속에 사는 외로운 할머니가 어느 날 때를 뭉쳐서 새까만 때 뭉치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새까만 때 뭉치가 벌레가 되어 돌아다니며 쇠붙이를 먹다가 산처럼 커져 괴물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벌레를 도저히 죽일 수가 없어서 불가사리라고 이름을 붙였다. 할머니가 나타나 불가사리한테 왜 이리 장난이 심하냐며 등을 탁탁 쳤다. 그러자 불가사리는 본래의 자기 모습인 때 뭉치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때 뭉치를 가지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 1 301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요리사다. 아침마다 그녀의 주방은 슈퍼마켓에서 배달된 과일과 채소 또는 육류와 생선으로 가득 찬다. 그녀는 그것들을 굽거나 삶는다. 그녀는 외롭고, 포만한 위장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잠시 잠시 잊게 해준다. 2 302호에 사는 여자. 그녀는 방금 301호가 건네준 음식을 비닐봉지에 싸서 버리거나 냉장고 속에서 딱딱하게 굳도록 버려둔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먹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녀는 외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허기만이 그녀의 외로움을 약간 상쇄시켜주는 것 같다. - 장정일의 시 <요리사와 단식가> 중에서 외로운 할머니의 때 뭉치가 세상의 쇠붙이들을 다 먹어버리며 거대한 괴물이 되었다. 인간의 외로움과 쇠붙이가 만나면 괴물이 된다. 청동기 시대까지만 해도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러다 철기 시대가 되면서 부족과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국가가 생겨나면서 신권을 가진 왕이 탄생하였다. 그래서 신동엽 시인은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고 노래했다. 인간 세상에 사랑과 연대가 아니라 재물과 권력이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 인간은 점점 더 외로워졌다.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큰 적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모래알처럼 땅바닥에 떨어진 인간은 쇠붙이가 이룩한 것들을 다 먹어치우려 한다. 이런 게 잘 안 되면 그것들 대신에 밥을 꾸역꾸역 먹는다. 밥은 사랑이다. 우리는 어릴 적 엄마가 주던 밥을 잊지 못한다. 외로울 때면 밥을 찾는다. 하지만 밥은 밥일 뿐이지 사랑이 아니다. 그의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는다. 아예 밥을 끊어 사랑 없이 살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괴물(욕망의 노예)이긴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끝없이 부풀어 올라 결국은 펑 터지고 말 욕망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겉보기엔 거대해 보여도 사실은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욕망은 망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아귀처럼 먹는다. 배가 다 채워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수저를 놓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이 아이의 천진난만함, 망각이다. 불가사리는 ‘장난 그만 쳐라’며 할머니가 등을 탁탁 치자 삽시간에 자그마한 때 뭉치로 바뀐다. 우리가 몹시 화가 났을 때 화난 자신을 무심히(아이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화가 가라앉는다. 우리가 길러야 할 것은 이 아이의 힘이다. 아무리 억누르려고 해도,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도 욕망은 오히려 그것들을 먹으며 더 커진다. 우리 안의 아이- 그것은 신이다.  
99 광우병을 말한다 / 강태규 file [1]
무궁화
1739 2012-05-01
광우병을 말한다 필자는 수의학 분야를 상당한 정도로 수학하기도 하고 연구하기도한 학자였으므로 소견을 제시해야한다고 판단하였으며, 또한, 나름 인문학적 통섭적 훈련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가,를 고민 할 줄도 알게된 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자제위께 글형식으로 게재한다.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특허관련사건의 전개과정과 과학적 논란의 치열논쟁과 결말을 통해 종국의 의문점은 “누가 이익을 보았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때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답변은 이러하다. 첫째, 다국적 제약회사가 있고 두 번 째는 한국의 의학계로 볼 수 있다. 과정의 흠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결론을 내리자면, 미래를 먹여살릴 만한 황금 알을 낳는 오리였음은 자명하고, 그 미래이익을 한국을 위해 구획을 설정할 때, 이미 적들은 생산되고 있었다. 과학분야의 비전에 대한 국민적 공론이 이후로 다시 없을 정도로 커다란 이른바, 에픽(Epic) 적인 소재요 사건이었다. 가장 치열한 화공을 날린 영역은 주지하다시피 카이스트가 주축이 된 과학토론 사이트(BRIC)에서 논문에 대한 예공이 집중포화로 가격되었으며, 이는 생물학 중에서도 발생학, 유전학, 생화학 분야의 석박사 과정학생들도 그들의 뇌를 뜨겁게 달구며 과학평론을 양산해 내었다. 필자는 지난해 최고의 상복을 누린 이영광 시인과의 식사자리에서 이 사건을 영문판 소설로 발표하면 괜찮겠다, 라는 데 동의까지 한 바 있었다. 그 뜨거움이 식은 지금도 줄기세포 연구는 미래 과학의 주제로 자리잡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동물(동물 세포유래 포함)실험에서 사람세포의 실험을 하기위해서는 우스꽝스럽게도 사람의사, 여야한다고 못 박았고, 이제, 상당한 수입의존 줄기세포들로 병원들은 살림을 꾸려나갈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 각설하고, 광우병을 논해보자. 필자는 가능한 이 글을 피하고 싶었다. 이 글을 쓰기위해 등장시켜야하는 과학자들과 지난 연분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필자는 과학의 최전선에서 본인의 부족한 치열함으로 뒤켠으로 스스로 물러난 사람이며, 다행히도, 글을 좀 쓰는 열정이 있어 이나마 객기를 부려 이 글을 쓴다. 시인으로서 글을 써야할까 과학자로 쓸까, 걱정이 앞선다. 또, 각설하자, 어제 오늘, 여러 논쟁이 광우병 소재로 달궈지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 심판의 휘슬도 없고, 중재자도 없다. 이 혼전을 지켜보는 일반 사람에게 어떤 방법으로 광우병의 위험을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과욕이라고 느끼기도 하지만, 짧은 문학경력으로 배우고 있는 열정으로서 설명하고자 한다. 언론에 드러내 놓고 논쟁을 할 만한 인물은 사실 없다. 있다면 Y교수, 또는 H대학의 Y 교수 정도 되겠다. Y교수는 필자와 같은 학번으로, 신입생 시절부터, 그의 일본 D대학 유학시절 까지 자주 접촉하였지만, 그 후 미국 H 대학 의학연구소에서의 연구업적을 볼 때, 뛰어난 과학자가 틀림없다. 그리고 지난 논쟁 중에 H 신문의 칼럼을 통하여 의사들과 맞짱을 놓을 정도로 배포도 있다. 한 때, 학회에서 사소한 오해로 면박을 준 것을 이 지면으로 사과하고 싶다. 왜, Y교수의 논지가 중요하냐며는, 그는 면역학자요, 생화학자이다. 즉, 작은 분자 수준의 변이와 전개, 그리고 숙주의 반응을 수준있게 연구한 내공이 충분한 학자다. 그렇기 때문에 변형 프리온이 아주 미량이라도 숙주의 전체세포에 영향을 끼치고, 그러므로 ‘후추’ 알갱이 정도 미량으로 섭취하여도 광우병의 발현이 가능하다는 나무랄데 없는 과학적 추론과 최근 미국의학계 연구결과를 제대로 인용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지식인이다. 척수나 뇌신경만 피한다고 다른 근육을 먹는다 하더라도 광우병 감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자, 문제는 이것이다. 당장 발병 증거를 내 놓으라고 윽박한다. 과학이라는 것이 뭣인가?. 몇 광년 떨어진 혹성이 지구를 때릴 수 있는 것을 예측하여 방비를 하자는 것이 과학이 아닌가. 진행 과정이 수년에서 20 ~ 30년 이상 걸리는 질병을 두고서, 당장 증거를 내 놓으라니. 미안하지만, 다분히 진행중인 질병일 가능성이 많다, 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유일한 대안은 쇠고기와 그 부산물들을 피하는 것이 좋으나, 백마리 중에 하나, 광우병 유발인자에 오염된 골분을 포함한 (수입)사료를 섭식시킨 소라며는 상황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소규모 유기농 축산, 또는, 집에서 닭 몇 마리 기르며 사는 모델들이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P교수 경우, 또한 내 후배이며 지방대학 교수로 있다. 그는 보건대학원에서 석사를 했고, 전공은 역학분야이다. 병의 원인과 전개를 통계학적 방법으로 연구하고 예측하는 분야다. 그런데 근일, 묘하게 언론에서는 그 확률을 최소화 시켰다. 이 사고의 큰 흠은 알려진 데이터만을 입력하여 추론한다는 학문의 결함이라고 본다. 왜냐면, P교수는 ‘상당량’ 광우병 인자를 섭취해야 발병한다는 견해이고 Y교수는 그 반대다. 역학적 분석이 어느정도 되기 위해서는 20 ~ 30년 소요되는 것을 지금 예단한다는 것은, 지금 멀리 날아오는 혜성이 지구와 부딪힐 가능성이 없다는 이야기와 뭐가 다른가. 게다가, C대와 일본 D대 농대 출신에다, S대 단과대학장, 식약청장 까지한 또다른 Y 박사는 근일 방송 대담에서 톡톡히 챙피를 당했다. 그 분의 특유의 과장화법에 단정적인 안심 발언의 근거가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마당발도 유분수지, 그 분은 전공이 너무 많아 탈이다. 술자리 학자요 비즈니스 학자임은 반경에 있어 본 학자들은 아는 이야기다. 그래도, 이 분야를 아는 필자가, 명색이 시를 공부하고 문학하는 지인들이 많아 최소한 예를 갖추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소규모 자영 겸업 축산이 대안이다. 육류를 피하되, 닭고기로 대체하거나, 집에서 소규모 텃밭과 농사를 통해, 그 부산물로 닭과 계란을 소비하는 구조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며, 둘째로, 축산농가에는 매우 죄송스럽지만, 유기농 축산업으로 가지 않으면 먼 거리에서 볼 경우, 매우 힘들 것이다. FTA 로 축산업은 붕괴될 가능성이 많다. 사료가 자급자족 되지 않으며, 카킬과 같은 대규모 사료생산, 대기업농에 유리한 신대륙 국가의 농산물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우리밀, 우리 콩, 우리 쌀, 우리 사료, 우리 고기로 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생계유지로는 험난할 것이다. 다행히도, 재료의 원산지 표사나, 이력제 등으로 원료 추적이 가능한 체계는 미국 보다 낫다는 것은 사실이다.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광우병 사태를 무마시키면 누가 이익을 보는가? 첫째, 미국 대선에서 부시 가문을 비롯한 축산 농업분야의 유권자들로부터 오바마 대통령은 표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미국과, 중국과, 종국에는 별종국가인 북한 까지도 선린관계를 유지해야하는 극동의 나라입장에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 하지만, 미국친화적 제스처로 종국은 정치적 이익을 향유할 기득권자가 유형무형의 이익을 볼 것이다. 쇠심줄로 연결된 듯한 힘쎈 압력과 회유에 익숙한 우리의 지도자는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논리싸움에서 즉, 이미지 전쟁에서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절한 소재이기도 하다. 즉, 우리의 대선까지 굵게 연결되는 논란종식을 위하여 일찍 김을 빼야하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극단적 예를 하나 들고자 한다. 담배는 암을 유발시키기 때문에 피지말 것을 권고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담배를 생산하고 판매하며, 광우병을 별 거 아닐 수 있다고 까지 대비시킬 수 있다. 현재의 내려진 증거로는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담배의 유해함을 충분히 잘 알고 선택적으로 소비하고 있다. 광우병 우려 고기의 수입 문제는 솔직하게 이러이러한 위험이 있다고, 하기에는 고민이 되는 식품이다. 다행히도 담배인삼공사는 아주 기호성이 많은 담배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쇠고기의 생산단가는 국내 담배생산 단가에 견주어 볼 때 휠신 더 경쟁력이 없다. 즉, FTA 의 대표적 상품이 수입고기인 것이다. 광우병 위험관리는 한우에서는 뛰어 날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지만, 의외로 미국의 육류생산체계는 허술하다. 여기에 그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향후 10년 동안 우리의 경제는 어려울 것이고, 안전한 먹거리에 지출해야 되는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은 육류 소비의 억제일 수 밖에 없다. 자동차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고기를 수입해 줘야 하는 논리와 충돌 중이다. 우리는 어째야 하는가. 힘쎈 나라와 힘쎈 지도자에게 직언을 하며, 고언을 하며, 최고의 지략으로 외교전을 펼쳐야 함에도 어쩔 수 없이 안방 내주고, 말로 주고 되로 받는 형국으로 본다. 세칭 전문가들이라는 학자들은 은행원과 다름 없어서, 개인 이익(국가 주도 연구예산 따기), 이익 집단(약사협회, 의사 협회, 곡류 협회, 육류수출입 협회, 유통협회의...) 뒤치다꺼리도 솔직히 힘에 부칠 것이다. 먹거리 사슬에 사욕에 가득차거나, 진실을 말하는 자를 싫어한다. 결국은 힘겨루기와 이익의 교환에 다름 아니다. 내 병은 내가 고치고, 내 먹거리는 내가 챙겨야 하는 고단한 자연주의가 대안이라니. 좀 더 정련되지 못한 글을 올려 필자로서 부끄럽다. 우리 문인들이라도 너그럽게 일독해 주심에 감사한다 (끝). .  
98 인간은 감각적 현상을 이성으로 고착하기 위해 신을 만들었다/박희용 file
편집자
1861 2012-04-23
 인간은 감각적 현상을 이성으로 고착하기 위해 신을 만들었다 唯物과 唯心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인간에 가장 가까이 있다. 인간의 생활과 마음은 유물과 유심의 경계를 괘종시계의 추처럼 하루 종일 오고간다. 이렇듯이 인간의 삶이 유물과 유심의 합체인데도, 지식인들의 관념에서 유물과 유심이 상충하는 까닭은 신을 인격신으로 보느냐 물신으로 보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현상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현상의 외형을 보기 때문이고, 물과 심의 개념을 신의 종속변수, 이분법적 사고로 보고 예단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불교, 이슬람교 등 모든 고등종교의 근본주의자들은 신의 의지가 우주와 삼라만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신은 절대적으로 추앙 받아야 한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유대인이었고 일상생활에서 귀족스러움을 자랑하고 싶어 한 인간이었지만, 무질서하고 빈곤한 세계를 방치하는 신의 무관심과 직무유기에 대한 분노가 그로 하여금 기독교적 신을 부정하고 마침내 감각적 현상의 물적 토대와 그 작용이 바로 정의로운 신임을 선언하게 하였다. 일상의 고급 사유활동에서, '靈的 인간' 라는 말은 순박한 인간 마음의 변화를 지칭하기보다는 신의 의지가 투사된 종교적 몰입 상태의 인간 정신을 말하는 데 사용된다. 일단 종교적 상태에 몰입하면 개체적 인간은 풀어지고 집단적 인간, 신의 의지에 충실한 도제들의 껍질만 남게 된다. 인간이 사라지고 신의 의지만이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그러한 태풍 속에서는 삼라만상과 인간이 안온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안온한 삶을 위해선 이제 '靈的 인간' 이란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제자리에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인간 마음의 효과적인 변화' 라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 되찾는 방법은 '아주 미묘한 幾微의 시작과 진행'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우주와 그 속 한 점 지구, 천변만화의 변증법으로 만들어지는 삼라만상, 그 변화의 총체인 ‘인간’이 갖는 의미를 잘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 감각적 현상을 어떻게 이성으로 고착하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은 한시적 생명과 통제하기 곤란한 생리욕구가 내재하고 있는 나약한 존재이다. 개체 인간은 근본적으로 깊은 외로움과 두려움을 갖고 있고, 그것을 서로 달래고자 짝을 찾아 성교를 하고 가족을 이룬다. 봄철 낚시에 걸린 암붕어의 찬란한 산란에서 보듯이 인간의 성교와 산아 행위는 생물적 본능이다. 개체 인간은 횡적 연결과 종적 연결 -배우자와 가족, 사회와 국가-을 통해 원초적 외로움과 두려움으로부터 탈출하려고 노력한다.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자기만의 가족을 조직함으로써 위안을 받는다. 사회적 집단 속에서 공동체가 되어 함께 노동하고 놀이를 함으로써 두려움을 망각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불안을 위로 받을 수 없는 인간은 기어코 신을 만든다. 정신의 마지막 우상인 신을 만들어 유일한 도피처로 삼고자 한다. 개체 인간으로서의 생물적 존재가 사후에도 보장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신을 더 크게 만든다. 신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 현세 행복과 내세 행복을 담보 받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자기 암시의 늪에 더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나 '아주 미묘한 幾微의 시작과 진행'을 통찰하는 인간은 개체이면서도 고독하지 않으며 오히려 집단속에서 고독하다. 그는 개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개체일 때나 집단일 때나 물적, 심적으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개체일 때는 더욱 그 빛이 반짝이고, 군중 속에 들어서도 恒心할 수 있다. 신의 부축 없이도 그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늘 열린 마음으로 幾微의 시작과 진행, 그 변화의 행방을 관찰하고 있다. 절대고독을 통찰한 자는 감각적 현상을 이성으로 고착시키기 위해 인격신이나 물신을 이용하지 않는다.  
97 투표하기/권석창 file
편집자
1570 2012-04-17
 투표하기 권석창 후보자님들은 늘 ‘사랑하고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개인적으로 매우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하는데 천심이 이러하다면 천심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아는 투표는 나의 생각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내가 직접 정치를 할 수 없으니까 나의 말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투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도덕적인 사회를 원하면 도덕성이 있는 사람, 내가 잘 살고 싶으면 나를 잘 살게 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통일을 원하면 통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 투표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은, 나는 잘나지 못했을지라도 나보다 잘난 사람, 나보다 학벌이 좋은 사람, 나보다 부유한 사람, 나보다 똑똑한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투표하면 그들은 나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잘난 사람을 위해 일합니다. 가재는 게 편이기 때문입니다. 더러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가령 김구 선생 같은 분을 말함이지요. 그러나 그런 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막말을 했다고 텔레비전 방송과 조중동의 집중포화를 맞은 서울 노원구에 김용민 후보는 낙선을 하고,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했다고 박사가 아닌 복사라는 이름을 얻은 부산의 문대성 후보는 당선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막말을 한 것은 도덕적으로 부적절한 것이므로 사과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논문을 표절한 것은 처벌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친애하는 유권권자들은 막말을 한 김용민을 낙선시키고 논문을 표절한 문대성을 선택했습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더러 막말을 하기도 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도 막말을 했던 기억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논문표절은 막말과 다릅니다. 남의 지식을 훔치는 지식의 절도 행위입니다. 친애하는 유권자 여러분이 지식을 절도한 사람을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투표가 나의 생각을 대신해 주는 사람을 뽑는 행위라는 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지식의 절도 행위를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유권자는 바보이거나 부도덕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사랑하고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이라는 말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또한 이번 선거에서 우리 경북지역은 특정정당을 열렬하게 지지하여 선거지도를 완전히 빨간색으로 물들였습니다. 저는 우리 지역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 지역 유권자 여러분의 투표하기는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강남 사람들이 지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어촌에 사는 사람들이 지기의 이익에 반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96 반쪽이/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1759 2012-04-08
 반쪽이 줄거리 옛날 옛적 노부부가 살았는데, 자식이 없어 산신령에게 빌어 세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막내는 반쪽이었다. 과거를 보러 가던 형은 반쪽이가 따라나서자 사람들이 놀릴까 봐 반쪽이를 바위에 꽁꽁 묵어 놓는다. 그러나 힘이 장사인 반쪽이는 바위를 아예 들어올렸다. 그래서 형들은 칡덩굴로 칭칭 묶어서 호랑이가 많이 사는 산속에 던져놓고 가버렸다. 반족이는 호랑이들을 잡아 가죽을 벗겨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도중에 부잣집 영감과 마주친 반쪽이는 딸과 호피를 걸고 내기 장기를 하였다. 영감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늦은 밤, 영감의 집에 찾아간 반쪽이는 꾀를 내어 하인들, 노부부, 며느리들을 제압하고 마침내 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친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 최승호의 시 <인식의 힘> 중에서 인간은 완전한 존재일까? 불완전한 존재일까? 타고날 때는 완전한 존재인데, 이 세상에 살면서 불완전하게 되어 버린다. 이 세상 자체가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타고난 대로 완전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스스로를 불완전한 존재라고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길을 가도 불완전하게 살 수밖에 없다. 항상 전교 수석을 하고 명문대를 나와 사자 직업을 가져도 불완전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전하게 태어난 인간으로서 완전하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그것은 항상 자신을 결핍된 존재로 느끼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 이렇게 마음으로 다짐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궁극적 진리를 깨치게 될 것이다. ‘반쪽이’는 타고나기를 반쪽으로 태어났다. 즉 자신을 철저하게 결핍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엔 완전한 인간(다른 반쪽을 만나)이 되는 것이다. 온갖 난관을 물리치는 힘은 이런 자기 인식에서 나온다. 완전하게 태어난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참으로 많다. 가족이라는 작은 집에 우리를 가두고, 형제라는 틀에 우리를 꿰맞추고, 온갖 규범이 우리를 옥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우리를 가두는 것들의 상징들이다. ‘반쪽이’는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낸다. 자신이 ‘반쪽이’임을 알기에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작아지는가? 평생 부모 그늘을 못 벗어나 부모 원망만하다가 일생을 허비하고, 형제간의 갈등의 늪에 빠져 한평생 허우적거린다. 이 세상의 온갖 사상, 규범은 어쩌면 그리도 부조리한가? 그것들은 우리를 끝내 꼭두각시로 만들고 만다. 꼭두각시가 되어 한 세상을 살다가 허망하게 사라져간다.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은 자신의 오만을 깨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간단한 진리를 깨닫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세상은 우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오만을 부추겨 우리를 완전히 이용하고는 내팽개쳐버린다. 아예 타고나길 ‘반쪽이’라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자신의 결핍을 철저히 인식할수록 우리들 삶은 그만큼 풍부해진다.  
95 때벗기기/강태규 file
무궁화
1798 2012-04-02
때벗기기 강태규(시인) 아무리 목욕재계를 해도, 속에 있는 허물까지 벗기는 어렵다. 하물며, 술에 취한 후, 숙취해소를 돕는 간해독제도 도움이 되지만, 속을 비워주며 상당한 물을 마시고 자연적인 배설을 증가시킴으로 가능하다. 수신서에서 조차 ‘생각 비우기’를 권하고 있다. 스스로 엄격할수록 타인의 허물들이 잘 보이는 것은 물론이지만, 정치현장에서는 정치의 표현형이 온갖 기질의 사람들을 대하고 다루고 판단하면서 권력을 확보해야하는 현실을 대할 때는 의외로 독립투사나 선비를 택하기 보다는 지역에 도움이 될만한 이익을 줄 인물이라던지, 큰 기업 경영을 했거나 고위공무원, 특히 권력의 학문인 정치학, 법학을 전공한 후보들에 쉽게 기우는 경향이 있으며, 검증되지 않은 후보자간의 여론몰이 또한 쉽게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국가주의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장년 또는 노인층은 새로운 흐름에 대해 완고한 편이며, 상대적으로 유복한 층은 유복한 후보를 선호하며, 빈곤한 층은 혁신적 후보에 기대는 경향도 그렇다. 선거가 아무리 중요해도 정당구조에서 국민이 원하는 기대에 부응할 후보를 내지 못하는 한, 깃발을 보고 투표하는 갈등구조에 익숙한 유권자로서는 여전히 헛발질일 수도 있다. 경제권력에 의해 포괄적으로 포위되어버린 현실은 더욱 암담한 여정을 암시한다. 방울을 달 사람을 선거를 통해 선발하여 행복한 국민을 꿈꿔야 하는 유권자의 권리가 정당에 의해 애당초 포기되어야 하는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경제권력은 이미 국가권력을 조정할 수 있는 경지에 닿았고 국민들은 행복할 수가 없어, 담배와 소주의 판매량만 늘리고있다. 아버지는 못된 흠이라도 제 닮은 자식을 감싸 안는다. 우리는 너무 많은 흠들에 익숙해져 어떤 때가 내 몸에 붙어있는지 모를수록 미래는 암담하다. 오죽했으면, 젊은 후보들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지형도 이를 어느 정도 반증한다. 시인의 시쓰기는 자기 구원*이라고도 한다. 이는 부단히 내 안의 때 빼기인 것이다. 어떤 때는 너무 깊어 응시만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고백하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식자들은 보이는 것도 많지만 할 말도 많다. 때묻은 족속들의 놀라운 결속력에 비하여 그나마 붙일 때 조차도 없는 족속은 모래가루처럼 응집력이 약하다. 여기에 우리의 한계가 숨어있어, 오히려 자기희생적이며 이타적인 인물의 발굴과 전선배치가 절실하지만, 현실은 무심히도 비정하다. 긴 시야로 볼 때, 선거 이후도 그리 희망적이지 못할 현실 읽기는 책읽기를 뒷장부터 시작하는 나의 악습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목욕재계와 기도가 필요한 즈음이다. 술먹든 아니던 물이라도 많이 마셔야 겠다. 물 먹히기 전에라도. * 최종천 시인의 2009년 "미의식 논고"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한다(옮긴이 註) 참고 글이 담긴 웹주소: http://blog.daum.net/livemocha/1404  
94 말/박희용 file
편집자
1673 2012-03-22
 말 사월이 눈부시다. 해마다 오는 사월이지만, 올해는 앞으로 4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를 주도할 인재들을 뽑는 달이어서 의미와 기대가 더 빛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군집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집단에 속한 개체마다 성격과 취향,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과 조절이 필요하다. 그러한 소통과 조절 작용을 정치라 하고 그것을 주도하는 주체를 일러서 정치인이라 한다. 정치인에 의해 정치의 질이 정해지고, 정치에 의해 한 집단의 평화와 발전이 결정되는 바, 그 관건으로 원활한 소통이 필수적이다. 현대엔 온갖 메스미디어를 활용한 소통과 조절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옛날엔 씨족사회처럼 좁다면 마을 중간에 나서서 우렁찬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하면 되었지만 부족국가, 봉건국가로 발전하면서는 원거리 소통과 조절 수단으로 말을 이용하였다. 만약에 말이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동서의 인류문명이 예까지 발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물론 말이 아니라도 낙타나 소 등 등 덩치 큰 동물을 영악한 인간이 길들여서 이용하였을 것이지만, 말만큼 빠르고 강력한 동물이 없기에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말을 더 익숙하게 길들이려고 노력한 것 아니겠는가. 말馬과 말言, 한자 표기는 다르지만 우리 말 발음은 같다. 군집동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고, 그 소통은 말로 이루어진다. 옛날에는 멀리까지 소식이나 정보를 말이나 글로 전달하기 위하여 말을 타고 달려갔다. 그런데, 말이 부실하다면 어떻게 될까? 말이 부실하다면 목적지에조차 가지도 못할 것이고, 말이 부실하다면 소루하거나 왜곡된 정보가 전달되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번 달에 뽑는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2012년 6월부터 2016년 6월까지 4년 동안 우리나라의 정치를 선도해나갈 인재들로서 우리 국민들을 등에 태우고 달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 정당 공천의 아주 어려운 예선을 통과한 말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선 탈락이나 분김에 출전한 말들도 있다. 각 지역의 유권자들은 자기가 탈 말을 4월 11일이면 선택할 것인데,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 먼저, 말 아닌 것이 말 행세를 하는 가짜 말假馬을 즉각 추려내야 할 것이다. 뽐내는 겉치레에 깜빡 현혹 되어 그것을 선택한다면 타는 즉시로 가야할 4년 뒤의 목적지가 아니라 말아닌 것인 지가 탐내는 곳으로 총알같이 달려갈 것이 뻔하다. 또는 탄 사람을 내동댕이치거나 달리지도 못할 것이 뻔하다. 심지어 주인 행세를 하려고 드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위에 탄 지역민들은 별 수 없이 시달리거나 중간에 말을 교체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선택 당한 목적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강인한 말을 선택해야 한다. 체력은 강하지만 정신이 흐릿하여 가다가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말이 아니라, 체력은 보통이지만 유혹에 강인한 말을 선택하여야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체력도 강하고 정신도 강한 말이라면 금상첨화이지만 그런 말은 드물다. 그러나 하늘은 그런 말을 종종 시대마다 몇 마리 내보내는 법, 그런 말이라면, 역사의식이 분명한 인재라면 이번 출발뿐만 아니라 이어달리기 다음 출발에서도 선택을 받아 계속해서 역사의 목적지를 향하여 달릴 영광을 누릴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으랴. 조선성리학자들이 리기와 사단칠정을 논할 때 말과 주인의 관계로 흔히 비유한다. 선현들은 리를 정신으로 기를 몸으로 보며, 가깝게는 자기수양에서 넓게는 사회교화까지를 통찰하였다. 리와 기의 조절이 작게는 개인수양과 크게는 사회정치의 요체임을 간파하고 말이 주인의 말을 잘 듣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것을 올해 사월 국가적 행사에 비추어보면, 리는 주인인 국민으로 기는 말인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리인 국민들의 정신도 분명하여야겠지만 운반 도구인 기, 즉 말의 품질과 능력도 중요하다. 정신이 분명한 주인이라면 말부터 바르게 선택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민주주의 수준은 딱 국민들 수준이라고, 여러 주인들의 정신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말의 성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주인을 태워 목적지인 천관의 집 앞까지 저절로 가는 김유신의 말이나, 전장에서 전사한 주인의 시체를 싣고 고향으로 돌아온 말처럼 충성스럽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말이나 그런 말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우선 주인의 정신이 먼저 분명해야만 한다. 출발선에 선 말들이 “나를 선택해 주세요”하고 히잉히잉 운다. 말 많이 한다고 세금 많이 내지 않으니, 있는 말 없는 말, 굽은 말 바른 말, 굵은 말 가는 말, 본래 말 만든 말, 무색 말 유색 말 등 등 교언영색을 마구 쏟아낸다. 출발선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대기하는 말들의 생각은 히잉히잉 우는 말 속에 담겨있는 것, 그 말들이 토하는 많은 말이 주인과 이웃을 헤치는 흉기인지, 권력과 재물을 향한 자기 욕심을 채우는 무기인지, 명작을 만드는 작품 도구인지, 의식주를 위한 생산 도구인지를 제대로 분별하는 안목과 지혜는 주인의 책임이다. 자, 우리가 타고가야 할 말이 어떤 말을 하는지 똑바로 듣고, 똑바로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 말의 진실과 말의 건강을 갈피 잡아야 할 순간이다. 어떤 말을 골라서 어떤 정신으로 타고서 앞으로 4년 동안이란 역사의 시간을 통과하느냐는 순전히 주인인 우리의 몫이다. 수천 년 민족사 동안 숱한 말들이 역사의 짐을 지고 예까지 달려왔다. 준마駿馬도 있었고 범마凡馬도 있었고 비마鄙馬도 있었다. 밉든 곱든 그것들이 역사를 실어 나른 덕분에 근대 한 세기 동안의 피폐를 극복하고 이만큼이나마 사는 모양, 외산 쇠고기를 먹네 안 먹네 미국과 에프티에이FTA를 하네 안 하네 하는 문제가 최대의 이슈가 될 정도로 국력이 향상하였다. 앞으로 4년 동안 우리 한국정치사의 주역이 될 정치인들을 선택하는 일, 더 길게는 1987년 체제를 한 세대 만에 손질하여 수십 수백 년 미래의 초석을 다지는 일인 대한민국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는 곧 이어달리기 배턴을 넘겨받을 말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말들이 저마다 보수와 진보의 띠를 두르고 있지만, 보수와 진보는 주인의 승마 기술, 즉 말을 모는 방법과 기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일 뿐, 목적지는 평화, 통일, 번영의 땅 한반도 건설 단 하나다. 승마 기술 문제는 주인들이 더욱 심화되어야 할 문제이고 우선은 말의 건강성이 중요하다. 준마든 범마든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선택의 순간을 통과한 까닭은 잘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준마는 준마답게 이해관계에 연연하질 말고 대성할 앞날을 내다보며 호연지기 달려야 할 것이요, 범마는 범마답게 자기 분수를 알고 탐욕을 적당히 부려 중간에서 낙오하거나 주인을 엉뚱한 곳으로 실어 나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준마는 더욱 각고면려하여 관운장의 적토마가 아니라 민족의 적토마가 되어야 하겠고, 범마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수양을 통해 대아가 튼튼할 때 소아도 보장받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부패는 한 때는 달콤하더라도 마침내 나와 가족을 망치고 사회와 나라를 망치는 법, 아무리 범마라 하더라도 일단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나와 주인이 함께 망하는 길을 정신없이 달릴 만큼 우매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물론 비마가 주제넘게 섞여있다면 금방 도태 될 것이고. 자, 4월 12일 자정부터 한국사의 한 구간을 달리는 말들이여, 적어도 김유신의 말 정도는 되어야 할 것 아니랴. 비록 목이 잘리더라도 주인을 천관의 집까지 실어 나르는 우직한 순정을 갖고 있다면 후세의 역사는 반드시 그대를 기억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한국사의 맥락을 보전토록 한 준마들의 공로, 일상 유지에 밑받침이 된 범마들의 평온, 민중을 피폐의 구덩이에 고꾸라뜨리게 한 비마들의 과오를 냉철하게 판별하는 정신이 필요한 2012년의 봄꽃 화사하게 피는 사월이다. 이제부터 축복 활짝하라 간고한 한국사여! 2012년 3월 22일 양백산인 박희용  
93 소망적 사고의 풍경들/권서각 file
편집자
1914 2012-03-14
 소망적 사고의 풍경들 권서각(시인, 한국작가회의 이사) 풍경 하나 아무개 씨는 희망근로로 생계를 잇고 있다.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5만원을 부의 봉투에 넣어 지역의 유력 인사의 상가에 조문을 했다. 친한 친구 상가에는 3만원 부조 했다. 형편대로 하시길 권한다. 풍경 둘 아무개 씨는 대한민국00회 회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주면서 인사를 했다. 그는 사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이른바 백수였다. 명함이 화려할수록 내실이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풍경 셋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학부모가 학교에 왔다. 선생님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닌데 친구를 잘못 사권 것 같습니다. 그 나쁜 친구의 부모도 댁의 자녀를 나쁜 친구라고 합니다. 풍경 넷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의 학부모가 교사와 상담을 했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를 안 해서 걱정입니다. 조금만 하면 서울대에도 갈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예,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습니다. 풍경 다섯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세금 폭탄 때문에 못 살겠다고 했다. 아마 종합부동산세를 말하는 것 같았다. 세금을 얼마나 내시느냐고 물으면 하여튼 노무혀이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신다. 할머니, 종합부동산세 내지 않으셔도 되고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풍경 여섯 선거 때 대부분의 서민들은, 서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후보자보다 자기보다 나은 학벌,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후보자를 선호한다. 선거 때마다 그랬다. 그래서 당신도 잘 살게 되었습니까? 이런 풍경들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람은 자신을 꾀나 똑똑하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때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것이 사람이다. 또한 모든 사람들은 이득을 추구하고 손해 보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실제 하는 행동은 손해 보는 일만 골라서 한다. 왜일까? 심리학 용어로 ‘소망적 사고’라는 것이 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보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현재의 자기는 서민이지만 미래의 자기 모습인 부자로 살아간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자기로 살지 않고 미래의 자기로 살아간다. 그래서 아주 오래 전에 어떤 그리스 노인이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이 오늘에까지 남아 있는 걸까? 아무튼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소망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망이 현실인 양 착각하고 사는 사람의 모습은 우리를 매우 우울하게 한다. 우울하게 할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사회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92 견우와 직녀/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1771 2012-03-07
 견우와 직녀 줄거리 옛날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의 이름은 직녀였는데 베를 잘 짰기 때문이었다. 서쪽에는 견우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소를 잘 몰아서 견우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느 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 옥황상제는 그 얘기를 듣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직녀와 견우는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직녀는 서쪽 끝으로, 견우는 동쪽 끝으로 보내고는 1년에 한번 칠석날에만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칠석날이 되자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로 갔는데, 은하수가 너무 넓어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가 울었는데 그 눈물이 비가 되어 땅으로 흘러내렸다. 다행히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어 그들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원숭이에게 자위행위를 가르쳐 줬더니 먹지도 않고 자위행위만 하다 굶어 죽었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의 힘은 이렇게 무서운 것 같다. 열심히 소를 기르고 배를 짜던 견우와 직녀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놀기만 해 옥황상제가 분노해 서로를 떼놓았다는 것은 인간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다른 동물들은 종족 보존을 위해 성행위를 한다. 인간만이 ‘즐거움’을 위해 성행위를 한다. 자연 경제 활동을 했던 원시인들에겐 ‘사랑’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은 충분히 풍요로웠기에 구석기인들은 하루 4시간 정도만 일하며 즐겁게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에덴동산의 생활은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 즐겁게 놀며 살다가 갑자기 많은 일을 해야 했던 농경 사회 사람들은 삶이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이러한 농경 사회의 고민을 드러내 준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 1년에 하루만 사랑을 하는 삶을 우리가 받아 들여야 하는가? 사랑과 일은 양립할 수 없는가? 농경 사회 초기엔 사랑과 일의 갈등이 심각했겠지만 인류는 놀이 문화를 만들어 내며 사랑과 일을 양립시켜 갔을 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언뜻 보면 ‘즐거움’ 뿐인 것 같지만 ‘사랑’은 ‘반쪽’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거룩한 행위이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나를 넘어서는 사랑’을 배우며 자신의 영혼을 깨닫는다. 한 인간을 깊이 사랑해 본 사람만이 남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을 제대로 못 해 본 사람은 돈, 권력, 명예를 좇는다. 스스로 충만한 힘을 가진 사람은 그런 외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면이 텅 빈 사람은 그런 외적인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모든 사람이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야 원초적인 ‘사랑의 에너지’가 영적인 에너지로 승화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에너지는 한없이 돈을 추구하고 남을 짓누르고 자신을 드높이려는 에너지로 타락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천민자본주의는 이런 인간을 ‘정상적인 인간’ ‘성공한 인간’으로 호도하기에 우리는 그런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보라! 그렇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가? 그런 사람의 내면은 얼마나 황량한가? 그의 얼굴은 사막 같다. 인간은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성 에너지를 승화할 수 있는 ‘문화’에 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목도하는 여러 흥겨운 축제들, 멋있게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들. 우리는 ‘포르노 같은 성’을 ‘사랑’으로 오해한다. 인간은 ‘육욕적 성행위’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성’은 ‘사랑’이 되고 문화적으로 승화해야 한다. 성이 사랑으로 승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포르노 사회’에 살거나 ‘물욕의 늪에 빠져 일만하는 사회’에 살 수 밖에 없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담겨 있다.  
91 페북을 경계하라 / 강태규 file
무궁화
1915 2012-02-28
SNS를 통한 소통으로 횡적 연대 속에 있는 현실에서, 이 망 속에서 소통과 연대를 이루는 개별적 성향과 소통정보는, 사적 정보를 취하지 않는다는 허울 좋은 강령 속에 모든 참여자가 안전하게 관리된다는 당부에 속고있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 신상은 물론이며, 선호하는 카테고리가 정교하게 선별되어, 상업적 발송메일은 물론이고, 기업체에 상당한 댓가를 받고 집단 정보를 제공한다. 원하던, 원치 않던, 알만한 친구 찾기나 사진을 포함, 이름 검색으로 쉽게 노출되고 있다. 소통의 공유화가 횡적연대에 지대한 필수조건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상당한 소통참여자들이 또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익명의 다수에게 무차별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며, 사적인 정보는 더 이상 사적이 아님을 쉽사리 간과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익히 알고있다. 사소한 경품권(쿠폰)이나 즉석 먹거리를 '무료'로 준다하고 실컷 신상정보를 입력하고나면, 종국에는 보험회사나, 금융회사에 자신의 정보를 빼앗기고는 당첨되기를 기다린 순진한 경험이 있다. 이미 주소, 성명, 주민번호, 전화번호는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한 이미 빼앗겼다고 보면 정확하다. 자신의 정보 뿐만 아니라 페북에 연결된 모든 지인들의 전화번호까지 동반 유출함으로 지인들에게 까지 무차별(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이미 파악된 고객분류에 따라 선별된) 광고메일을 받거나 전화를 받아야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쉽게 '동의'를 해 온 결과이며, 동의과정을 거치지 않고서야 페북에 가입될리도 만무하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댓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우리는 작던 크던 정보를 제공한 댓가로 웹 운영비가 없는 온라인 소통을 위해 회원가입을 해 오고 있다. 새로운 독립된 작은 규모의 대안 소통망 구축이 가까운 미래에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모든 온라인 소통에는 고유의 꼬리표가 달려 전세계 온라인 망이나 집단 서버에 선별적 피드백이 되고 있음도 안다. 문제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 상혼의 연대망이 외려 개인정보망의 늪 속에 벗어날 수 있는 욕구가 더 나아가 욕구의 연대가 차별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온다고 본다. 대자본은 정보의 고속도로를 선점하여 더 쉽고 간편한 진입과 주행을 부단하게 조장한다. 역설적으로 다소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느린 국도의 소통도 더 나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주체적이며 사려깊은 소통을 하고 있는가? 옛 선비들이나 아낙들은 소중한 소통을 위해 서간문을 여러 달 교환하며 그리고서 여러 날을 소요하여 친구를 만나는 그런 과정에 익숙하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상대를 읽고 생각하였을까. 지금 사람에게는 지극한 연인사이에서도 흉내내기 어려운 원조 아날로그 소통으로 인생을 누렸다. 우리 아들, 딸 세대의 소통을 들여다 본적이 있는가? 들여다 보시라. 온라인으로, 준회원으로. 만난지 백일이나 이백일이면 서로의 몸소통을 하고 있고, 임신과 낙태와, 피임약 걱정을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조급하고 다급하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소통해야 할 필요충분한 이유를 되살려 본다. 우리는 이른 아침 부터 밤 늦게 까지 일하며, 소통한다고 열심인 데, 왜 행복하지 않은가, 라는 이유를 알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지도자가 게을러야 사람이 덜 불행할 거 같다는.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 김사인 풍으로) 참고자료: Secret or Fact of Facebook - IT Channel, BBC  
90 우렁이 각시/고석근 image
편집자
1796 2012-02-23
 우렁이 각시 줄거리 외롭게 살던 한 노총각이 들에서 커다란 우렁이를 발견해 집으로 가져온다. 그날 이후, 들에서 돌아와 보면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하루는 몰래 숨어서 지켜보았는데, 우렁이가 예쁜 색시로 변해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 후 노총각은 우렁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임금님이 우렁이 각시한테 마음이 빼앗겨서 세 가지 내기 - 나무 베기, 말 타고 강 건너기, 배 타고 바다 건너기 - 를 제안했다. 그때마다 우렁이가 꾀를 내어 이겼다. 두 사람은 왕과 왕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 최승자의 시 <여성에 관하여> 중에서 내 젊은 시절에도 우렁이가 몇 번 나타났었다. 하지만 나는 우렁이를 내 각시로 만드는데 실패했다. 왕과의 내기에서 번번이 패했기 때문이다. 우렁이가 파리로 변신해 도와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고, 여러 꾀를 내어 도와주었지만 그 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을 이기려면 왕과 전혀 다른 생각(우렁이의 생각)으로 맞서야 하는데 나도 왕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남이라 우렁이가 나타날 때마다 ‘맏며느리 감’으로서만 바라보았다. 이 우렁이는 이래서 안 되고 저 우렁이는 저래서 안 되고...... 그녀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들을 온전히 받아들였어야 그 중에서 맏며느리 감을 알아볼 수 있었을 터인데. 왕과의 싸움에서 수없이 패한 후 지쳐 쓰러져 있다가 만난 우렁이가 지금의 아내다. 완전히 패했으니, 새로이 만난 우렁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왕과의 싸움은 쉽게 끝났다. 우렁이의 지혜만이 왕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오랫동안 수렵시대에서 사냥을 해 왔기에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힘이 강하다. 목표를 정하면 옆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다 농경을 하게 되면서 남자들은 가부장(家父長)이 되었다.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데 ‘남자로만’ 살아야 하는 삶은 실패한 삶이다. 왕과의 대결이란 실은 마음속의 왕과의 대결이다. 왕이 상징하는 ‘권력’을 절제할 수 있어야 성공한 삶이 된다. 나는 장남이라는 ‘작은 태자’였던 것이다. 이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내 삶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권력’의 허망함을 깨닫기 위해선 우렁이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우렁이의 지혜만이 이 ‘왕자병’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렁이 각시’는 가부장 사회에 의해 세뇌된 한 남자의 구원기(記)다. 우렁이는 남자들의 일터에서 산다.  
89 선녀와 나무꾼/고석근 image
편집자
1989 2012-02-14
 선녀와 나무꾼 서정오(작가) 저 김광일 역 여우고개 2005.04.20 줄거리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나무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도망가는 사슴을 숨겨준다. 사슴은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곳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날개옷을 하나 훔치라고 일러주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절대로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나무꾼은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에 가서 몰래 날개옷을 하나 훔쳐 선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아이를 둘 낳던 해에 선녀에게 날개옷을 보여주게 되고 선녀는 두 아이를 양팔로 안은 채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돌아가 버린다. 나무꾼은 다시 사슴이 일러준 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이들과 선녀를 만난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던 나무꾼은 홀어머니가 그리워 옥황상제께 청을 드리고 말을 타고 땅으로 내려온다. 선녀는 말 등에서 절대로 내리면 안 된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나무꾼은 어머니의 뜨거운 죽이라도 한 사발 먹고 가라는 청을 못 이겨 말 등에서 죽을 마시다 말 등에서 떨어진다. 그 사이 말은 순식간에 하늘로 돌아가 버린다. 나무꾼은 결국 수탉이 되어 매일 아침 지붕위에서 하늘을 향해 울게 되었다 ........................................................................................................................... “당신은 안개? 바람? 아니면 연기?” 이 얼마나 어리석고 쓸쓸한 술래잡기! 우리는 양쪽 다 눈을 가리고 상대방을 붙잡으려고 막막한 안개 속에 손만 헛되이 저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한 그루 나무라면 좋겠네 그렇다면 붙잡고 매달려 울 수도 있을텐데!” - 신까와 카즈에의 시 <술래잡기> 중에서 선녀는 한없이 그리운 여인이다.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여인이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대’이다. 사슴의 도움을 받아 선녀를 만나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사슴이 일러준 대로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 선녀를 만나 행복하게 살지만 어머니가 그리워 지상에 내려 왔다가 이제는 어머니의 방해로 선녀를 잃어버린다. 그리곤 수탉이 되어 하늘을 향해 긴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선녀는 이 땅에 살았을까? 혹 살았더라도 마음은 하늘나라에 가 있었을 것이다. 끝내 선녀는 나무꾼 곁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다. 왜 남자에게 여자는 이다지도 간절한 존재일까? 아마 원시인들은 이런 애달픈 사랑이 아니라 풋풋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농경 사회가 되고 가부장 사회가 되면서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대등한 관계에서 가능한데 이미 모든 힘이 남자에게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반쪽이 되어 만날 수 있겠는가? 돈과 권력을 한 손에 쥔 남성이 치러야 할 가혹한 형벌이다. 돈과 권력으로 여성을 살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랑의 관계는 만들어 갈 수 없다. 결혼은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하나가 되는 성스러운 의례이다. 이 의례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선녀는 하늘나라로 도망가지 않는다. ‘선녀와 나무꾼’은 너무나 큰 것을 잃어버린 남성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녀 사이엔 어떤 이물질도 끼어서는 안 된다. 오직 남자, 여자로만 만나야 한다. 지금도 원시사회의 전통을 이어오는 종족들은 이런 사랑을 한다고 한다. 사랑을 잃고 사는 현대 남자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선녀를 붙잡기 위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손에 쥐려고 한다. 선녀를 붙잡는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어서는 안 된다. 타고난 그대로의 손이면 족하다.  
88 해와 달이 된 오누이/고석근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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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 2012-02-07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김성민(일러스트레이터) 저 사계절 2009.03.09 줄거리 어머니는 품 팔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어머니에게 떡을 주면 살려 준다고 하여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떡을 주었지만 결국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을 입고 집에 와서 갖은 꾀를 써서 막내를 잡아먹었다. 놀란 아이들이 우물가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호랑이가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자, 아이들은 하느님께 호소하여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호랑이도 하늘에 빌자 썩은 동아줄이 내려와서 그것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었다. 하늘에 올라간 두 남매는 해와 달이 되었다. ......................................................................................................... 밤늦게 녹초가 된 어머니 곁에 누우면 살아서 튀어 오르는 싱싱한 갯비린내가 우리 육남매 홑이불이 되어 덮였다 - 이경의 시 <어머니> 중에서 떡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오는 어머니에게 호랑이가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한다. 어머니는 떡을 주고, 팔을 주고, 결국엔 잡아먹히고 만다. 이제 어머니는 호랑이가 되었다. 어머니에게 ‘호랑이 같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어머니도 엄연히 여인이고 인간인 것을.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된 소녀는 ‘어머니처럼’ 자녀를 위해 헌신하며 산다. 하지만 어두운 밤이 밀려오면 어머니는 자신의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호랑이를 느낀다. 꾹꾹 호랑이를 누르며 살다보면 어느 새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어 있고 호랑이는 죽었는지 더 이상 꿈틀대지 않는다. 한평생 어머니로 산다면 아이들은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삶일까? 호랑이가 된 어머니는 아이들을 독립시켜 준다. 하늘의 해와 달이 되어 자신들의 세상을 열어간다. 어머니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다 떨어져 죽는다. 어머니는 이제 새로이 태어날 기회를 얻었다. 죽어야 사는 법이다. 어머니도 죽고 호랑이도 죽었으니 더 나은 존재로 부활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로만 살다가 말년에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나의 어머니의 텅 빈 눈을 잊지 못한다. 우리가 어릴 적 ‘너희들만 다 크면 천리만리 훨훨 날아갈 거다’라고 하셨던 어머니. 날아가시는 커녕 걷기도 힘들어하셨다. 나의 어머니도 호랑이가 되실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떡을 주고, 팔을 주고, 다리를 줘가며, 간신히 살아남으셨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제 내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살아계신다. 하지만 과연 이게 진정한 효일까? 어머니에 대한 진정한 사랑일까? 어머니를 부정한 예수, 그는 어머니도 살리고 자신도 살렸다.  
87 행복한 왕자/고석근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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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 2012-01-30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소설가) 저, 소민영 역 네버엔딩스토리 2010.09.10 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 시인, 소설가 겸 극작가 이자 평론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어로 하는 탐미주의를 주창했고 그 지도자가 되었다. 주요 저서에는 미모의 청년 도리언이 쾌락주의의 나날을 보내다 악덕 한계점에 이르러 마침내 파멸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편소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등이 있다. [출처] 오스카 와일드 | 네이버 백과사전 줄거리 어느 도시에 행복한 왕자의 동상이 있었는데 왕자는 왕국의 불쌍한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행복한 왕자의 동상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행복한 왕자는 제비를 시켜 자기 몸에 붙어 있는 보석들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결국 왕자는 자기 몸에 있던 보석이 모두 없어져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 날씨가 추워져 제비는 동상 아래서 얼어 죽었다.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가 보기 흉하다며 동상을 용광로에 넣어 녹였다. 하지만 납으로 된 심장은 녹지 않고 남아있었다. ................................................................................................ 한 해에 세 벌의 옷만 있으면 되고 두 끼 밥에 솥 밑만 녹슬지 않으면 되리다. 그대들 내 살림 걱정들 하지만 술에서 깨는 것이 걱정이지 가난을 걱정하진 않으니. - 백낙천의 시 중에서 태양은 활활 불타오르며 만물을 살려낸다. 활활 불타며 태양은 얼마나 즐거울까. 그는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잘 들여다보면 태양만 세상에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풀 한 포기도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하나도 버려지지 않는다. 다 누군가에게 유익하게 쓰인다. 그런데 다시 잘 들여다보면 삼라만상은 모두 주면서 동시에 모두 받고 산다. ‘준다, 받는다’는 말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몸을 보면 서로 주고받으며 산다. 하지만 오장육부와 팔다리가 서로 주고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줘야 하면 주고, 받아야 하면 받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에 따라 삼라만상은 존재한다. ‘행복한 왕자’는 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무나 당연한 것이 찬탄의 대상이 되는 슬픈 인간 세상을 선연히 보여준다.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삶의 이치이건만, 인간 세상엔 이 이치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무엇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인류에게 농경사회가 대두하면서 ‘소유’ 개념이 생겨났다. 이 ‘소유’를 둘러싸고 인간끼리 계급이 나눠지고, 남녀가 불평등하게 되고, 전쟁이 격화되었다. ‘소유’는 모든 인간악의 근원이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인데, 우리 마음은 이미 물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남을 도와 줄 때도 받을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왼 손이 모르게 오른 손으로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물질에 걸려 잘 흐르지 않는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면 우리는 온갖 병에 걸린다. 우리는 ‘무소유의 삶’을 살 때까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무엇을 갖게 되면 가진 것만큼 밖에 못살지만 무엇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우주만큼 크게 산다. ‘행복한 왕자’는 인류에게 ‘오래된 미래’일 것이다.  
86 미녀와 야수/고석근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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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2012-01-24
미녀와 야수 줄거리 세 딸을 둔 어느 상인이 숲 속에서 야수에게 붙잡힌다. 아버지 대신에 막내딸인 벨이 야수의 인질이 되고, 벨과 야수는 사랑에 빠진다. 벨이 사랑한다고 말하자 야수는 왕자로 변신한다. 야수는 마법에 걸린 왕자였던 것이다. .............................................................................................. 침봉에 한번 더 꽂혀볼래? 죽여 다오 죽여 다오 애걸해 볼래? 목구멍에 철사를 박아 더 오오래 못 시들게 해주랴? - 김언희의 시 <꽃꽂이> 중에서 세상의 아버지들은 딸들을 화분의 꽃처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내 딸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아, 이 세상 남자들은 다 늑대란다. 이 아비 품에 있어야 안전하단다. 내 곁에 영원히 머물렴.’ 그래서 딸들은 야수들(남자들)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들이 따라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쳤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끝없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 애들이 겉보기에는 야수 같지만 얼마나 마음이 약하고 부드러운데, 저들은 일부러 강한 척 하는 거야. 저 수줍어하는 눈빛을 봐.’ 내면의 목소리에 이끌려 야수를 따라가는 딸들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야수와 사랑을 나누는 딸들이 있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야수는 이 세상 최고의 젊은 남자, 왕자로 변신하고 젖내 나던 소녀는 어여쁜 숙녀가 되어 있었다. 한 인간이 완성되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을 하면 자신 안의 이성(남성성 혹은 여성성)이 깨어난다. 밖에서 만나는 이성은 동시에 안에서 만나는 이성인 것이다. 내면의 남성성을 제대로 깨우지 못한 여성은 야수 같은 남성성이 미숙하게 남아 있게 된다. 거친 남자를 유별나게 좋아하거나 스스로도 거칠게 행동한다. 같은 여성을 싫어하고 남성을 좋아한다. 이런 여성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내면의 여성성을 깨우지 못한 남성도 마찬가지다. 이런 남성은 여성을 신비화하거나 여성을 무시한다. 허상의 여성을 찾아 바람둥이가 되기도 한다. 결혼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사랑은 반쪽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통과 의례다. 사랑을 할 때 인간은 혼이 깃든 몸을 체험한다. 욕망의 덩어리가 아닌 고결하게 승화하는 몸을 본다. 한 사람을 사랑해 본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정신적 사랑이란 미명하에 우리는 얼마나 불구의 사랑을 했는가? 그 결과 육체를 천하게 보게 되었다. 몸을 천하게 보는 사람이 어떻게 자존감을 갖겠으며 남에 대한 존중감을 갖겠는가? ‘미녀와 야수’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야수가 왕자가 되는 기적을 체험한 소녀만이 원숙한 여성(인간)이 된다고.  
85 미운 오리 새끼/고석근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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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1 2012-01-12
 미운 오리 새끼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으나, 어릴 적부터 문학에 눈이 떴다. 생활이 당장에 곤란했으나, 문학에의 간절한 소망과 타고난 소질과 소박하고 순진한 성격으로 많은 후원자를 찾아내게 되었다. 1833년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과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즉흥시인>으로 그의 이름이 유럽 전체에 퍼졌다. 같은 해에 내놓은 최초의 <동화집>은 그의 동화작가로서의 생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동화의 특색은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으로 정리할 수 있다.주요 작품으로는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인어공주> 등이 있고 모두 130편 이상의 주옥같은 동화들을 썼다. 줄거리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태어난 오리새끼 한 마리가 다른 오리들에게 구박을 받고 키워주던 농가를 뛰쳐나오는데, 숲속의 작은 새들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떤 할머니네 집에 들어가 살게 되지만 그 집에서도 고양이와 닭이 못살게 구는 바람에 거리를 방황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고생스러운 겨울도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오리새끼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중을 날 수 있게 된다. 오리새끼는 사실은 훌륭한 백조의 새끼였으며, 자신이 처한 괴롭고 슬픈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내 되찾은 행복을 결코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누리게 된다.[출처] 미운 오리새끼 | 네이버 백과사전 ................................................................................ 여기, 바로 여기 진리가 있다. 가라, 가고싶은 대로 가 보라. 베나레스로 마투라로, 그러나 그대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계 전체가 환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까비르의 시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 한다>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길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왠지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포식자처럼 다가오는 사람들...... 사람들은 왜 내게 적의감을 보이는 일까? 그들과 나는 같은 종족이 아닌 걸까? 왜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불안해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농경을 하고, 생산물을 소유하고, 소유한 것을 빼앗고 빼앗기면서 인간은 점차 인간을 적대시하게 되었다. 이때 쯤 인류 역사에서 성인들이 출현하고 종교가 나타난다.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혼’의 문제다. 황금만능 시대인 현대에는 인간은 완전히 혼을 잃어버리고 물질의 하나가 되었다. 혼을 잃은 인간은 이유 없이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임을 모르듯이 현대인은 자신이 혼을 가진 거룩한 존재임을 모르고 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우아한지 모른다. 성형 수술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을 다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나아 보이려고 온 신경을 쓴다. 우리는 모두 나르시시즘 환자다. 하지만 이 병은 단 한 번의 생각만으로 고쳐진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 무리에게 다가감으로써 한 순간에 우아한 존재로 바뀌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혼을 가진 존재라고 주문을 외우는 순간, 우리는 한 순간에 변신한다. 하찮은 돈 몇 푼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인간에서 광채가 나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 세상은 지옥이면서 천국이고 인간은 악마이면서 천사이다. 찰나의 생각만으로 우리는 두 세계를 마음껏 넘나들며 변신할 수 있다.  
84 피터 팬/고석근 image
편집자
1805 2012-01-04
 피터 팬 줄거리 웬디, 존, 마이클이 피터 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날아가서 겪게 되는 온갖 모험의 이야기. 그곳은 어린이들의 천국. 아무도 늙지 않는 꿈의 나라였다. 꿈의 섬에서는 피터 팬 에게 왼쪽 팔을 잃은 후크 선장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후크선장은 자기의 부하가 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겁을 주지만, 피터 팬과 아이들은 해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웬디와 동생들을 다시 런던의 집으로 데려다 준다. ............................................................................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임길택의 시 <나 혼자 자라겠어요> 중에서 예수는 ‘이 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예수가 말한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착한 아이? 정직한 아이?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예수가 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아이’는 어떤 아이의 마음일까? 우리는 아이 시절을 참으로 아름답게 기억한다. 아련한 동화 세상. 하지만 아이를 돌본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때 우리는 아이에게서 잔인한 아이, 거짓말하는 아이, 말썽만 피우는 아이를 본다. 도대체 예수는 어떤 아이의 모습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본 것일까?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을 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되겠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면 춤을 추며 노래를 하지만 가둬놓으면 썩으며 잔인해진다. 물은 늘 꿈을 꾼다. 아이들은 자신이 상상한 것과 실재 일어난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빛이 있으라’고 생각하면 눈앞에 ‘실재로’ 빛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거짓말을 어른들의 거짓말처럼 도덕적 잣대로 재지 말아야 한다. 물은 과거를 금방 잊는다. 마을을 덮치고 나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보라! 아이들도 작은 벌레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낄낄 웃으며. 그리곤 천연스레 뛰어 논다. 이 때 우리는 물을 가둬 놓은 우리의 잘못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이 잔인한 건 언젠가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가둬놓았기 때문이다. 물이 끝끝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다.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은 집중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 마음을 조금도 다치지 않는 세상은 분명히 천국일 것이다. 피터 팬에게 항상 패하는 제임스 후크 선장은 참으로 불쌍하다. 어른은 ‘아이를 잃고(패하여)’ 늙어 죽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끝내 타락하지 않는 건 아이가 계속 태어나고 어른은 죽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을 아이 같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한 순간에 천국으로 바뀔 것이다.  
83 까마귀 소년/야시마 타로 저 |윤구병 역 |비룡소///고석근 image
편집자
4623 2011-12-26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저 |윤구병 역 |비룡소 |2000.10.31 야시마 타로 1908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동경 예술 대학과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공부했다. 1939년 반군국주의 활동으로 일본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살았다. <까마귀 소년>, <우산>, <바닷가 이야기> 로 칼데콧 상을 세 번이나 받은 뛰어난 작가이다. 줄거리 학교에 간 첫날부터 선생님과 학생들이 무서워 교실 마루 바닥에 숨어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땅꼬마’라고 불렀다. 그 아이는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도 놀 때도 늘 뒤쳐지며 꼴찌인 땅꼬마는 심심풀이 방법으로 혼자서 놀 방법을 궁리해 낸다. 땅꼬마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을 관찰하며 한결같이 학교에 다닌다. 6학년이 되던 해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오신다. 이소베선생님은 땅꼬마에게 관심을 가지고 땅꼬마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며 땅꼬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학예회 날 땅꼬마는 여러 가지 까마귀 소리를 내며 그 소리를 듣고 그 자리의 여러 어른들과 아이들이 감동하며 땅꼬마를 인정한다. 그 뒤 아이들은 더 이상 땅꼬마라고 놀리지 않고 까마둥이, 즉 ‘까마귀 소년’이라고 부른다. ..........................................................................................................................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 심호택의 시 <똥지게> 중에서 천지자연을 보면 참 아름답다. 하늘은 하늘이고 해는 해이고 달을 달이고 땅은 땅이고 강은 강이고 나무는 나무이고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길들여진 사람들에게선 우리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을 봤을 때 나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순간 새로운 우주 하나가 태어난다. 아이들은 늘 경이감과 환희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세상과 자신만의 느낌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외감에 가득 차 있는 인간을 학교는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낸다. 서양에서 근대식 학교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중세 봉건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 개성을 다 발휘하게 했다. 그러다 근대 자본주의가 차츰 정착되어 가면서 학교는 ‘자본주의형 인간’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어떤 사회든지 인간의 본성에 맞는 교육이라야 인간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꽃 피어난다. 산골 아이의 ‘찌질이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면서, 우리 가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남아 있는 우리 모두의 깊은 상처다. ‘왕따’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약한 자를 희생시키는 처절한 제도다. 학교 교육을 바르게 해야 해결할 수 있다. 이 상처를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드러내는 ‘까마귀 소년’. 우리는 ‘까마귀 소년’을 마주함으로써 우리의 멍든 가슴을 치유하게 된다. 우리가 힘들 때마다 ‘까마귀 소년’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까우우우워악!’ 길게 울 것이다. 우리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활짝 피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