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08호...
   2019년 06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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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92 견우와 직녀/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1659 2012-03-07
 견우와 직녀 줄거리 옛날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의 이름은 직녀였는데 베를 잘 짰기 때문이었다. 서쪽에는 견우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소를 잘 몰아서 견우라는 이름이 붙었다. 어느 날 견우와 직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 옥황상제는 그 얘기를 듣고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직녀와 견우는 일을 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직녀는 서쪽 끝으로, 견우는 동쪽 끝으로 보내고는 1년에 한번 칠석날에만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칠석날이 되자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로 갔는데, 은하수가 너무 넓어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가 울었는데 그 눈물이 비가 되어 땅으로 흘러내렸다. 다행히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어 그들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원숭이에게 자위행위를 가르쳐 줬더니 먹지도 않고 자위행위만 하다 굶어 죽었다는 글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의 힘은 이렇게 무서운 것 같다. 열심히 소를 기르고 배를 짜던 견우와 직녀가 사랑에 눈을 뜨게 되면서 일을 하지 않고 오로지 놀기만 해 옥황상제가 분노해 서로를 떼놓았다는 것은 인간에게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다른 동물들은 종족 보존을 위해 성행위를 한다. 인간만이 ‘즐거움’을 위해 성행위를 한다. 자연 경제 활동을 했던 원시인들에겐 ‘사랑’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은 충분히 풍요로웠기에 구석기인들은 하루 4시간 정도만 일하며 즐겁게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에덴동산의 생활은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끝나고 말았다고 한다. 즐겁게 놀며 살다가 갑자기 많은 일을 해야 했던 농경 사회 사람들은 삶이 참으로 고단했을 것이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이러한 농경 사회의 고민을 드러내 준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 1년에 하루만 사랑을 하는 삶을 우리가 받아 들여야 하는가? 사랑과 일은 양립할 수 없는가? 농경 사회 초기엔 사랑과 일의 갈등이 심각했겠지만 인류는 놀이 문화를 만들어 내며 사랑과 일을 양립시켜 갔을 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언뜻 보면 ‘즐거움’ 뿐인 것 같지만 ‘사랑’은 ‘반쪽’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거룩한 행위이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나를 넘어서는 사랑’을 배우며 자신의 영혼을 깨닫는다. 한 인간을 깊이 사랑해 본 사람만이 남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을 제대로 못 해 본 사람은 돈, 권력, 명예를 좇는다. 스스로 충만한 힘을 가진 사람은 그런 외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내면이 텅 빈 사람은 그런 외적인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모든 사람이 ‘사랑’을 해야 한다. 그래야 원초적인 ‘사랑의 에너지’가 영적인 에너지로 승화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에너지는 한없이 돈을 추구하고 남을 짓누르고 자신을 드높이려는 에너지로 타락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천민자본주의는 이런 인간을 ‘정상적인 인간’ ‘성공한 인간’으로 호도하기에 우리는 그런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보라! 그렇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가? 그런 사람의 내면은 얼마나 황량한가? 그의 얼굴은 사막 같다. 인간은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성 에너지를 승화할 수 있는 ‘문화’에 있다. 지금도 여러 곳에서 목도하는 여러 흥겨운 축제들, 멋있게 살았던 수많은 예술가들. 우리는 ‘포르노 같은 성’을 ‘사랑’으로 오해한다. 인간은 ‘육욕적 성행위’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성’은 ‘사랑’이 되고 문화적으로 승화해야 한다. 성이 사랑으로 승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포르노 사회’에 살거나 ‘물욕의 늪에 빠져 일만하는 사회’에 살 수 밖에 없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담겨 있다.  
91 페북을 경계하라 / 강태규 file
무궁화
1808 2012-02-28
SNS를 통한 소통으로 횡적 연대 속에 있는 현실에서, 이 망 속에서 소통과 연대를 이루는 개별적 성향과 소통정보는, 사적 정보를 취하지 않는다는 허울 좋은 강령 속에 모든 참여자가 안전하게 관리된다는 당부에 속고있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 신상은 물론이며, 선호하는 카테고리가 정교하게 선별되어, 상업적 발송메일은 물론이고, 기업체에 상당한 댓가를 받고 집단 정보를 제공한다. 원하던, 원치 않던, 알만한 친구 찾기나 사진을 포함, 이름 검색으로 쉽게 노출되고 있다. 소통의 공유화가 횡적연대에 지대한 필수조건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상당한 소통참여자들이 또한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익명의 다수에게 무차별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며, 사적인 정보는 더 이상 사적이 아님을 쉽사리 간과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익히 알고있다. 사소한 경품권(쿠폰)이나 즉석 먹거리를 '무료'로 준다하고 실컷 신상정보를 입력하고나면, 종국에는 보험회사나, 금융회사에 자신의 정보를 빼앗기고는 당첨되기를 기다린 순진한 경험이 있다. 이미 주소, 성명, 주민번호, 전화번호는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 한 이미 빼앗겼다고 보면 정확하다. 자신의 정보 뿐만 아니라 페북에 연결된 모든 지인들의 전화번호까지 동반 유출함으로 지인들에게 까지 무차별(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이미 파악된 고객분류에 따라 선별된) 광고메일을 받거나 전화를 받아야한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쉽게 '동의'를 해 온 결과이며, 동의과정을 거치지 않고서야 페북에 가입될리도 만무하다.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댓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우리는 작던 크던 정보를 제공한 댓가로 웹 운영비가 없는 온라인 소통을 위해 회원가입을 해 오고 있다. 새로운 독립된 작은 규모의 대안 소통망 구축이 가까운 미래에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모든 온라인 소통에는 고유의 꼬리표가 달려 전세계 온라인 망이나 집단 서버에 선별적 피드백이 되고 있음도 안다. 문제는 이 거대한 피라미드 상혼의 연대망이 외려 개인정보망의 늪 속에 벗어날 수 있는 욕구가 더 나아가 욕구의 연대가 차별적으로 필요한 시기가 온다고 본다. 대자본은 정보의 고속도로를 선점하여 더 쉽고 간편한 진입과 주행을 부단하게 조장한다. 역설적으로 다소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느린 국도의 소통도 더 나을 수 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주체적이며 사려깊은 소통을 하고 있는가? 옛 선비들이나 아낙들은 소중한 소통을 위해 서간문을 여러 달 교환하며 그리고서 여러 날을 소요하여 친구를 만나는 그런 과정에 익숙하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상대를 읽고 생각하였을까. 지금 사람에게는 지극한 연인사이에서도 흉내내기 어려운 원조 아날로그 소통으로 인생을 누렸다. 우리 아들, 딸 세대의 소통을 들여다 본적이 있는가? 들여다 보시라. 온라인으로, 준회원으로. 만난지 백일이나 이백일이면 서로의 몸소통을 하고 있고, 임신과 낙태와, 피임약 걱정을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학생들만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조급하고 다급하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소통해야 할 필요충분한 이유를 되살려 본다. 우리는 이른 아침 부터 밤 늦게 까지 일하며, 소통한다고 열심인 데, 왜 행복하지 않은가, 라는 이유를 알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지도자가 게을러야 사람이 덜 불행할 거 같다는. (말이 될는지 모르겠지만, - 김사인 풍으로) 참고자료: Secret or Fact of Facebook - IT Channel, BBC  
90 우렁이 각시/고석근 image
편집자
1725 2012-02-23
 우렁이 각시 줄거리 외롭게 살던 한 노총각이 들에서 커다란 우렁이를 발견해 집으로 가져온다. 그날 이후, 들에서 돌아와 보면 맛있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하루는 몰래 숨어서 지켜보았는데, 우렁이가 예쁜 색시로 변해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그 후 노총각은 우렁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임금님이 우렁이 각시한테 마음이 빼앗겨서 세 가지 내기 - 나무 베기, 말 타고 강 건너기, 배 타고 바다 건너기 - 를 제안했다. 그때마다 우렁이가 꾀를 내어 이겼다. 두 사람은 왕과 왕후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 여자들은 저마다의 몸 속에 하나씩의 무덤을 갖고 있다. 죽음과 탄생이 땀 흘리는 곳, 어디로인지 떠나기 위하여 모든 인간들이 몸부림치는 영원히 눈먼 항구. 모든 것들이 태어나고 또 죽기 위해선 그 폐허의 사원과 굳어진 죽은 바다를 거쳐야만 한다. - 최승자의 시 <여성에 관하여> 중에서 내 젊은 시절에도 우렁이가 몇 번 나타났었다. 하지만 나는 우렁이를 내 각시로 만드는데 실패했다. 왕과의 내기에서 번번이 패했기 때문이다. 우렁이가 파리로 변신해 도와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고, 여러 꾀를 내어 도와주었지만 그 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왕을 이기려면 왕과 전혀 다른 생각(우렁이의 생각)으로 맞서야 하는데 나도 왕과 같은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남이라 우렁이가 나타날 때마다 ‘맏며느리 감’으로서만 바라보았다. 이 우렁이는 이래서 안 되고 저 우렁이는 저래서 안 되고...... 그녀들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들을 온전히 받아들였어야 그 중에서 맏며느리 감을 알아볼 수 있었을 터인데. 왕과의 싸움에서 수없이 패한 후 지쳐 쓰러져 있다가 만난 우렁이가 지금의 아내다. 완전히 패했으니, 새로이 만난 우렁이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왕과의 싸움은 쉽게 끝났다. 우렁이의 지혜만이 왕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오랫동안 수렵시대에서 사냥을 해 왔기에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힘이 강하다. 목표를 정하면 옆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러다 농경을 하게 되면서 남자들은 가부장(家父長)이 되었다.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데 ‘남자로만’ 살아야 하는 삶은 실패한 삶이다. 왕과의 대결이란 실은 마음속의 왕과의 대결이다. 왕이 상징하는 ‘권력’을 절제할 수 있어야 성공한 삶이 된다. 나는 장남이라는 ‘작은 태자’였던 것이다. 이 ‘권력’에 사로잡혀 있는 한 내 삶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권력’의 허망함을 깨닫기 위해선 우렁이의 말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우렁이의 지혜만이 이 ‘왕자병’에서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렁이 각시’는 가부장 사회에 의해 세뇌된 한 남자의 구원기(記)다. 우렁이는 남자들의 일터에서 산다.  
89 선녀와 나무꾼/고석근 image
편집자
1915 2012-02-14
 선녀와 나무꾼 서정오(작가) 저 김광일 역 여우고개 2005.04.20 줄거리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나무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도망가는 사슴을 숨겨준다. 사슴은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곳을 알려주고 그곳에서 날개옷을 하나 훔치라고 일러주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절대로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나무꾼은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에 가서 몰래 날개옷을 하나 훔쳐 선녀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아이를 둘 낳던 해에 선녀에게 날개옷을 보여주게 되고 선녀는 두 아이를 양팔로 안은 채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돌아가 버린다. 나무꾼은 다시 사슴이 일러준 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이들과 선녀를 만난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던 나무꾼은 홀어머니가 그리워 옥황상제께 청을 드리고 말을 타고 땅으로 내려온다. 선녀는 말 등에서 절대로 내리면 안 된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나무꾼은 어머니의 뜨거운 죽이라도 한 사발 먹고 가라는 청을 못 이겨 말 등에서 죽을 마시다 말 등에서 떨어진다. 그 사이 말은 순식간에 하늘로 돌아가 버린다. 나무꾼은 결국 수탉이 되어 매일 아침 지붕위에서 하늘을 향해 울게 되었다 ........................................................................................................................... “당신은 안개? 바람? 아니면 연기?” 이 얼마나 어리석고 쓸쓸한 술래잡기! 우리는 양쪽 다 눈을 가리고 상대방을 붙잡으려고 막막한 안개 속에 손만 헛되이 저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이 한 그루 나무라면 좋겠네 그렇다면 붙잡고 매달려 울 수도 있을텐데!” - 신까와 카즈에의 시 <술래잡기> 중에서 선녀는 한없이 그리운 여인이다. 다가가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여인이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대’이다. 사슴의 도움을 받아 선녀를 만나고 하늘로 올라간 선녀를 사슴이 일러준 대로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 선녀를 만나 행복하게 살지만 어머니가 그리워 지상에 내려 왔다가 이제는 어머니의 방해로 선녀를 잃어버린다. 그리곤 수탉이 되어 하늘을 향해 긴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니가 방해하지 않았다면 선녀는 이 땅에 살았을까? 혹 살았더라도 마음은 하늘나라에 가 있었을 것이다. 끝내 선녀는 나무꾼 곁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다. 왜 남자에게 여자는 이다지도 간절한 존재일까? 아마 원시인들은 이런 애달픈 사랑이 아니라 풋풋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농경 사회가 되고 가부장 사회가 되면서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랑을 나눌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은 대등한 관계에서 가능한데 이미 모든 힘이 남자에게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남성과 여성이 서로의 반쪽이 되어 만날 수 있겠는가? 돈과 권력을 한 손에 쥔 남성이 치러야 할 가혹한 형벌이다. 돈과 권력으로 여성을 살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랑의 관계는 만들어 갈 수 없다. 결혼은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하나가 되는 성스러운 의례이다. 이 의례를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선녀는 하늘나라로 도망가지 않는다. ‘선녀와 나무꾼’은 너무나 큰 것을 잃어버린 남성을 처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남녀 사이엔 어떤 이물질도 끼어서는 안 된다. 오직 남자, 여자로만 만나야 한다. 지금도 원시사회의 전통을 이어오는 종족들은 이런 사랑을 한다고 한다. 사랑을 잃고 사는 현대 남자들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선녀를 붙잡기 위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손에 쥐려고 한다. 선녀를 붙잡는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어서는 안 된다. 타고난 그대로의 손이면 족하다.  
88 해와 달이 된 오누이/고석근 image
편집자
1765 2012-02-07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김성민(일러스트레이터) 저 사계절 2009.03.09 줄거리 어머니는 품 팔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다. 호랑이는 어머니에게 떡을 주면 살려 준다고 하여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떡을 주었지만 결국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을 입고 집에 와서 갖은 꾀를 써서 막내를 잡아먹었다. 놀란 아이들이 우물가 큰 나무 위로 올라갔다. 호랑이가 나무를 찍으며 올라오자, 아이들은 하느님께 호소하여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호랑이도 하늘에 빌자 썩은 동아줄이 내려와서 그것을 잡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떨어져 죽었다. 하늘에 올라간 두 남매는 해와 달이 되었다. ......................................................................................................... 밤늦게 녹초가 된 어머니 곁에 누우면 살아서 튀어 오르는 싱싱한 갯비린내가 우리 육남매 홑이불이 되어 덮였다 - 이경의 시 <어머니> 중에서 떡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오는 어머니에게 호랑이가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한다. 어머니는 떡을 주고, 팔을 주고, 결국엔 잡아먹히고 만다. 이제 어머니는 호랑이가 되었다. 어머니에게 ‘호랑이 같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어머니도 엄연히 여인이고 인간인 것을. 어느 날 문득, 어머니가 된 소녀는 ‘어머니처럼’ 자녀를 위해 헌신하며 산다. 하지만 어두운 밤이 밀려오면 어머니는 자신의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호랑이를 느낀다. 꾹꾹 호랑이를 누르며 살다보면 어느 새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어 있고 호랑이는 죽었는지 더 이상 꿈틀대지 않는다. 한평생 어머니로 산다면 아이들은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삶일까? 호랑이가 된 어머니는 아이들을 독립시켜 준다. 하늘의 해와 달이 되어 자신들의 세상을 열어간다. 어머니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다 떨어져 죽는다. 어머니는 이제 새로이 태어날 기회를 얻었다. 죽어야 사는 법이다. 어머니도 죽고 호랑이도 죽었으니 더 나은 존재로 부활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로만 살다가 말년에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던 나의 어머니의 텅 빈 눈을 잊지 못한다. 우리가 어릴 적 ‘너희들만 다 크면 천리만리 훨훨 날아갈 거다’라고 하셨던 어머니. 날아가시는 커녕 걷기도 힘들어하셨다. 나의 어머니도 호랑이가 되실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떡을 주고, 팔을 주고, 다리를 줘가며, 간신히 살아남으셨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이제 내 머리 속에, 가슴 속에 살아계신다. 하지만 과연 이게 진정한 효일까? 어머니에 대한 진정한 사랑일까? 어머니를 부정한 예수, 그는 어머니도 살리고 자신도 살렸다.  
87 행복한 왕자/고석근 image
편집자
1559 2012-01-30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소설가) 저, 소민영 역 네버엔딩스토리 2010.09.10 오스카 와일드 아일랜드 시인, 소설가 겸 극작가 이자 평론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어로 하는 탐미주의를 주창했고 그 지도자가 되었다. 주요 저서에는 미모의 청년 도리언이 쾌락주의의 나날을 보내다 악덕 한계점에 이르러 마침내 파멸한다는 내용을 담은 장편소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등이 있다. [출처] 오스카 와일드 | 네이버 백과사전 줄거리 어느 도시에 행복한 왕자의 동상이 있었는데 왕자는 왕국의 불쌍한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행복한 왕자의 동상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행복한 왕자는 제비를 시켜 자기 몸에 붙어 있는 보석들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결국 왕자는 자기 몸에 있던 보석이 모두 없어져 흉측한 모습이 되었다. 날씨가 추워져 제비는 동상 아래서 얼어 죽었다. 사람들은 행복한 왕자가 보기 흉하다며 동상을 용광로에 넣어 녹였다. 하지만 납으로 된 심장은 녹지 않고 남아있었다. ................................................................................................ 한 해에 세 벌의 옷만 있으면 되고 두 끼 밥에 솥 밑만 녹슬지 않으면 되리다. 그대들 내 살림 걱정들 하지만 술에서 깨는 것이 걱정이지 가난을 걱정하진 않으니. - 백낙천의 시 중에서 태양은 활활 불타오르며 만물을 살려낸다. 활활 불타며 태양은 얼마나 즐거울까. 그는 남에게 무엇을 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잘 들여다보면 태양만 세상에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풀 한 포기도 그에게서 나오는 것들은 하나도 버려지지 않는다. 다 누군가에게 유익하게 쓰인다. 그런데 다시 잘 들여다보면 삼라만상은 모두 주면서 동시에 모두 받고 산다. ‘준다, 받는다’는 말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몸을 보면 서로 주고받으며 산다. 하지만 오장육부와 팔다리가 서로 주고받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줘야 하면 주고, 받아야 하면 받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에 따라 삼라만상은 존재한다. ‘행복한 왕자’는 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나무나 당연한 것이 찬탄의 대상이 되는 슬픈 인간 세상을 선연히 보여준다.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삶의 이치이건만, 인간 세상엔 이 이치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무엇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인류에게 농경사회가 대두하면서 ‘소유’ 개념이 생겨났다. 이 ‘소유’를 둘러싸고 인간끼리 계급이 나눠지고, 남녀가 불평등하게 되고, 전쟁이 격화되었다. ‘소유’는 모든 인간악의 근원이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인데, 우리 마음은 이미 물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남을 도와 줄 때도 받을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왼 손이 모르게 오른 손으로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물질에 걸려 잘 흐르지 않는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면 우리는 온갖 병에 걸린다. 우리는 ‘무소유의 삶’을 살 때까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무엇을 갖게 되면 가진 것만큼 밖에 못살지만 무엇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우주만큼 크게 산다. ‘행복한 왕자’는 인류에게 ‘오래된 미래’일 것이다.  
86 미녀와 야수/고석근 image
편집자
1840 2012-01-24
미녀와 야수 줄거리 세 딸을 둔 어느 상인이 숲 속에서 야수에게 붙잡힌다. 아버지 대신에 막내딸인 벨이 야수의 인질이 되고, 벨과 야수는 사랑에 빠진다. 벨이 사랑한다고 말하자 야수는 왕자로 변신한다. 야수는 마법에 걸린 왕자였던 것이다. .............................................................................................. 침봉에 한번 더 꽂혀볼래? 죽여 다오 죽여 다오 애걸해 볼래? 목구멍에 철사를 박아 더 오오래 못 시들게 해주랴? - 김언희의 시 <꽃꽂이> 중에서 세상의 아버지들은 딸들을 화분의 꽃처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내 딸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딸아, 이 세상 남자들은 다 늑대란다. 이 아비 품에 있어야 안전하단다. 내 곁에 영원히 머물렴.’ 그래서 딸들은 야수들(남자들)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들이 따라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쳤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끝없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저 애들이 겉보기에는 야수 같지만 얼마나 마음이 약하고 부드러운데, 저들은 일부러 강한 척 하는 거야. 저 수줍어하는 눈빛을 봐.’ 내면의 목소리에 이끌려 야수를 따라가는 딸들이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야수와 사랑을 나누는 딸들이 있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야수는 이 세상 최고의 젊은 남자, 왕자로 변신하고 젖내 나던 소녀는 어여쁜 숙녀가 되어 있었다. 한 인간이 완성되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을 하면 자신 안의 이성(남성성 혹은 여성성)이 깨어난다. 밖에서 만나는 이성은 동시에 안에서 만나는 이성인 것이다. 내면의 남성성을 제대로 깨우지 못한 여성은 야수 같은 남성성이 미숙하게 남아 있게 된다. 거친 남자를 유별나게 좋아하거나 스스로도 거칠게 행동한다. 같은 여성을 싫어하고 남성을 좋아한다. 이런 여성은 원만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내면의 여성성을 깨우지 못한 남성도 마찬가지다. 이런 남성은 여성을 신비화하거나 여성을 무시한다. 허상의 여성을 찾아 바람둥이가 되기도 한다. 결혼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 사랑은 반쪽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통과 의례다. 사랑을 할 때 인간은 혼이 깃든 몸을 체험한다. 욕망의 덩어리가 아닌 고결하게 승화하는 몸을 본다. 한 사람을 사랑해 본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정신적 사랑이란 미명하에 우리는 얼마나 불구의 사랑을 했는가? 그 결과 육체를 천하게 보게 되었다. 몸을 천하게 보는 사람이 어떻게 자존감을 갖겠으며 남에 대한 존중감을 갖겠는가? ‘미녀와 야수’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야수가 왕자가 되는 기적을 체험한 소녀만이 원숙한 여성(인간)이 된다고.  
85 미운 오리 새끼/고석근 image
편집자
1670 2012-01-12
 미운 오리 새끼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으나, 어릴 적부터 문학에 눈이 떴다. 생활이 당장에 곤란했으나, 문학에의 간절한 소망과 타고난 소질과 소박하고 순진한 성격으로 많은 후원자를 찾아내게 되었다. 1833년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과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즉흥시인>으로 그의 이름이 유럽 전체에 퍼졌다. 같은 해에 내놓은 최초의 <동화집>은 그의 동화작가로서의 생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동화의 특색은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으로 정리할 수 있다.주요 작품으로는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인어공주> 등이 있고 모두 130편 이상의 주옥같은 동화들을 썼다. 줄거리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태어난 오리새끼 한 마리가 다른 오리들에게 구박을 받고 키워주던 농가를 뛰쳐나오는데, 숲속의 작은 새들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떤 할머니네 집에 들어가 살게 되지만 그 집에서도 고양이와 닭이 못살게 구는 바람에 거리를 방황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고생스러운 겨울도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오리새끼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중을 날 수 있게 된다. 오리새끼는 사실은 훌륭한 백조의 새끼였으며, 자신이 처한 괴롭고 슬픈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내 되찾은 행복을 결코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누리게 된다.[출처] 미운 오리새끼 | 네이버 백과사전 ................................................................................ 여기, 바로 여기 진리가 있다. 가라, 가고싶은 대로 가 보라. 베나레스로 마투라로, 그러나 그대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계 전체가 환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까비르의 시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 한다>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길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왠지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포식자처럼 다가오는 사람들...... 사람들은 왜 내게 적의감을 보이는 일까? 그들과 나는 같은 종족이 아닌 걸까? 왜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불안해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농경을 하고, 생산물을 소유하고, 소유한 것을 빼앗고 빼앗기면서 인간은 점차 인간을 적대시하게 되었다. 이때 쯤 인류 역사에서 성인들이 출현하고 종교가 나타난다.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혼’의 문제다. 황금만능 시대인 현대에는 인간은 완전히 혼을 잃어버리고 물질의 하나가 되었다. 혼을 잃은 인간은 이유 없이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임을 모르듯이 현대인은 자신이 혼을 가진 거룩한 존재임을 모르고 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우아한지 모른다. 성형 수술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을 다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나아 보이려고 온 신경을 쓴다. 우리는 모두 나르시시즘 환자다. 하지만 이 병은 단 한 번의 생각만으로 고쳐진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 무리에게 다가감으로써 한 순간에 우아한 존재로 바뀌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혼을 가진 존재라고 주문을 외우는 순간, 우리는 한 순간에 변신한다. 하찮은 돈 몇 푼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인간에서 광채가 나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 세상은 지옥이면서 천국이고 인간은 악마이면서 천사이다. 찰나의 생각만으로 우리는 두 세계를 마음껏 넘나들며 변신할 수 있다.  
84 피터 팬/고석근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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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 2012-01-04
 피터 팬 줄거리 웬디, 존, 마이클이 피터 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날아가서 겪게 되는 온갖 모험의 이야기. 그곳은 어린이들의 천국. 아무도 늙지 않는 꿈의 나라였다. 꿈의 섬에서는 피터 팬 에게 왼쪽 팔을 잃은 후크 선장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후크선장은 자기의 부하가 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겁을 주지만, 피터 팬과 아이들은 해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웬디와 동생들을 다시 런던의 집으로 데려다 준다. ............................................................................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임길택의 시 <나 혼자 자라겠어요> 중에서 예수는 ‘이 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예수가 말한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착한 아이? 정직한 아이?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예수가 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아이’는 어떤 아이의 마음일까? 우리는 아이 시절을 참으로 아름답게 기억한다. 아련한 동화 세상. 하지만 아이를 돌본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때 우리는 아이에게서 잔인한 아이, 거짓말하는 아이, 말썽만 피우는 아이를 본다. 도대체 예수는 어떤 아이의 모습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본 것일까?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을 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되겠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면 춤을 추며 노래를 하지만 가둬놓으면 썩으며 잔인해진다. 물은 늘 꿈을 꾼다. 아이들은 자신이 상상한 것과 실재 일어난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빛이 있으라’고 생각하면 눈앞에 ‘실재로’ 빛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거짓말을 어른들의 거짓말처럼 도덕적 잣대로 재지 말아야 한다. 물은 과거를 금방 잊는다. 마을을 덮치고 나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보라! 아이들도 작은 벌레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낄낄 웃으며. 그리곤 천연스레 뛰어 논다. 이 때 우리는 물을 가둬 놓은 우리의 잘못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이 잔인한 건 언젠가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가둬놓았기 때문이다. 물이 끝끝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다.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은 집중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 마음을 조금도 다치지 않는 세상은 분명히 천국일 것이다. 피터 팬에게 항상 패하는 제임스 후크 선장은 참으로 불쌍하다. 어른은 ‘아이를 잃고(패하여)’ 늙어 죽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끝내 타락하지 않는 건 아이가 계속 태어나고 어른은 죽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을 아이 같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한 순간에 천국으로 바뀔 것이다.  
83 까마귀 소년/야시마 타로 저 |윤구병 역 |비룡소///고석근 image
편집자
4533 2011-12-26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저 |윤구병 역 |비룡소 |2000.10.31 야시마 타로 1908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동경 예술 대학과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공부했다. 1939년 반군국주의 활동으로 일본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살았다. <까마귀 소년>, <우산>, <바닷가 이야기> 로 칼데콧 상을 세 번이나 받은 뛰어난 작가이다. 줄거리 학교에 간 첫날부터 선생님과 학생들이 무서워 교실 마루 바닥에 숨어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땅꼬마’라고 불렀다. 그 아이는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도 놀 때도 늘 뒤쳐지며 꼴찌인 땅꼬마는 심심풀이 방법으로 혼자서 놀 방법을 궁리해 낸다. 땅꼬마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을 관찰하며 한결같이 학교에 다닌다. 6학년이 되던 해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오신다. 이소베선생님은 땅꼬마에게 관심을 가지고 땅꼬마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며 땅꼬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학예회 날 땅꼬마는 여러 가지 까마귀 소리를 내며 그 소리를 듣고 그 자리의 여러 어른들과 아이들이 감동하며 땅꼬마를 인정한다. 그 뒤 아이들은 더 이상 땅꼬마라고 놀리지 않고 까마둥이, 즉 ‘까마귀 소년’이라고 부른다. ..........................................................................................................................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 심호택의 시 <똥지게> 중에서 천지자연을 보면 참 아름답다. 하늘은 하늘이고 해는 해이고 달을 달이고 땅은 땅이고 강은 강이고 나무는 나무이고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길들여진 사람들에게선 우리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을 봤을 때 나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순간 새로운 우주 하나가 태어난다. 아이들은 늘 경이감과 환희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세상과 자신만의 느낌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외감에 가득 차 있는 인간을 학교는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낸다. 서양에서 근대식 학교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중세 봉건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 개성을 다 발휘하게 했다. 그러다 근대 자본주의가 차츰 정착되어 가면서 학교는 ‘자본주의형 인간’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어떤 사회든지 인간의 본성에 맞는 교육이라야 인간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꽃 피어난다. 산골 아이의 ‘찌질이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면서, 우리 가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남아 있는 우리 모두의 깊은 상처다. ‘왕따’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약한 자를 희생시키는 처절한 제도다. 학교 교육을 바르게 해야 해결할 수 있다. 이 상처를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드러내는 ‘까마귀 소년’. 우리는 ‘까마귀 소년’을 마주함으로써 우리의 멍든 가슴을 치유하게 된다. 우리가 힘들 때마다 ‘까마귀 소년’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까우우우워악!’ 길게 울 것이다. 우리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활짝 피어나게 된다.  
82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고석근 image
편집자
1873 2011-12-19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 |2010.09.24 저자 베르너 홀츠바르트 1947년 독일 슈트트가르트 근처의 비넨덴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랫동안 광고 디자인 일을 해왔으며,「슈피겔」지와「디 차이트」지 등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바이마르에 있는 바우하우스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림 볼프 에를브루흐 1948년 독일 부퍼탈에서 태어났습니다. 에센의 폴크방 조형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한 뒤 오랫동안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으며, 1983년부터 어린이책 그림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으로『개가 무서워요!』,『아빠가 되고 싶어요』,『생각을 만드는 책』,『커다란 질문』등이 있습니다.이 가운데『아빠가 되고 싶어요!』로 1993년 독일아동문학상을,『커다란 질문』으로 2004년 라가치 상을 받았으며, 2006에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부퍼탈에 있는 베르기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줄거리 어느 날, 해가 떴나 안 떴나 궁금해진 꼬마 두더지 하나가 머리를 땅 위로 내미는 순간, 똥 무더기가 머리에 떨어졌어요. 그러나 눈이 나쁜 두더지는 누가 쌌는지 볼 수 없었어요. 화가 난 두더지는 누가 자기 머리에 똥을 쌌는지 범인을 찾으러 길을 나섭니다. 토끼에게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라고 묻지만 토끼는 자기 똥을 보여 주면서 아니라고 합니다. 염소도, 젖소도, 말도 모두 자기 똥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두더지는 마침내 똥에 대한 전문가인 파리를 발견하고 자기 머리에 있는 똥이 누구 것인지 물어봅니다. 전문가인 파리는 바로 그 똥이 정육점 집 개 한스의 똥이라고 알려주지요. 두더지는 한스의 머리위에 똥을 싸고는 웃으며 자신의 굴속으로 들어갔답니다. ............................................... 우리는 이렇게 만나기 전부터 만나고 있었던가 보다 다른 무엇인가의 모습을 빌려가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전부터 서로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의지하여- - 타까다 토시꼬의 시 <다른 이름> 중에서 허공을 분분히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들은 서롤 같을까? 다를까?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물방울들은 서로 같을까? 다를까?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사람들은 서로 같을까? 다를까? 우리 모두 죽는데 그 죽음은 모두에게 같을까? 다를까? 남의 손가락에 찔린 가시와 내 손가락에 찔린 가시는 우리에게 같은 아픔일까? 다른 아픔일까? 자신의 머리에 똥을 싼 범인을 찾아가는 두더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비의를 느낀다.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또 자식을 낳으면 되지’라고 위로하는 문상객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한 인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 한 사람을 위하여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분히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들은 여러 곳에 안착할 것이다. 척박한 땅에 떨어져 그대로 죽어가는 씨앗들도 있을 테고, 부드러운 흙에 떨어져 싹을 틔우는 씨앗들도 있을 것이다. 싹을 틔워 민들레로 살아가는 씨앗들은 죽어간 수많은 씨앗들의 소망도 함께 이뤄가고 있다. 민들레 씨앗 하나는 여럿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것이다. 완전히 다르면서 완전히 같은 게 삼라만상의 이치다. 나 하나쯤이야 죽어도 되지만 나 하나가 살아남아 인류 역사를 이어갈 수도 있다.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이고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이다. 신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신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이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내 자신이 세상에 비친 모습들이면서 동시에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비친 모습이다. 범인을 찾아낸 두더지는 그의 머리에 똥을 싸고는 편안히 자신의 굴속으로 들어간다. 흡사 세상의 비의를 깨치고 조용히 안거하는 성자처럼.  
81 바리공주/고석근 image
편집자
1854 2011-12-12
 바리공주 줄거리 옛날에 삼나라를 다스리는 오구대왕이 살았다. 딸만 계속 낳다가 일곱째도 딸이 태어나자 강물에 버렸다. 이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양육되었다. 후에 오구대왕이 불치병이 들어 점을 쳐 보니 저승의 생명수로만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섯 공주 모두가 저승에 가길 거부했는데, 이 얘기를 전해들은 바리공주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갔다. 바리공주가 저승에 가 생명수가 있는 곳까지 갔는데, 저승의 무장승이 바리공주와 일곱 해를 살고 일곱 아들을 낳아야 약을 주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그 조건을 채운 뒤 무장승과 일곱 아들과 함께 생명수를 갖고 이승에 돌아오다 오구대왕의 상여와 마주쳐, 가져온 생명수로 오구대왕을 살려냈다. 후에 바리공주는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속의 여신이 되었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공광규의 시 <소주병> 중에서 오구대왕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상징이다. 누구나 아버지들은 왕이다. 남녀가 평등하게 살던 원시사회가 농경사회로 바뀌면서 차츰 가부장 사회가 되어 갔다. 어머니처럼 자애롭던 추장, 부족장들은 스스로를 신격화해 갔다. 인류 역사에서 왕이 탄생한 것이다. 가정의 아버지들은 작은 왕이 되었다. 왕들은 권력과 재산을 얻었지만 잃은 게 너무나 컸다. ‘내면의 여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내와 딸들은 자신의 재산 목록에 올랐다. 재산 가치가 없는 아내와 딸은 버렸다. 버려진 딸, 바리공주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딸을 버리게 되면 ‘마음속의 여성’도 함께 잃게 된다. 여성적인 부드러움, 온화함, 사랑, 소통...... 이 모든 품성들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항상 권력과 재산을 생각하는 탐욕, 그는 언제나 외롭고 쓸쓸해진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게 된다. 농경사회, 산업사회는 그래도 남성들에게 유리한 사회였다. 남성들의 육체적인 힘, 논리적인 사고력, 추진력...... 이런 것들이 가부장의 지위를 계속 유지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제 지식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여성적인 섬세함, 부드러움, 나눔...... 이런 품성들이 유리한 사회가 되었다. 가부장들은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있다. 아버지들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까? 구원은 그들이 버린 딸들에게서 온다. ‘가슴에서 빠져나간 뜨거운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이 땅의 남성들이 찾아가야 할 곳은 룸살롱, 카페, 다방, 모텔이 아니라 그동안 아내, 딸들을 버린 황량한 벌판이다. 자신의 텅 빈 가슴이다.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괴테). 모든 남성은 반쪽이다. ‘여성’을 만나야 온전한 인간이 된다.  
80 어린 왕자-생텍쥐페리/고석근 image
편집자
1919 2011-12-06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4세에 아버지가 사망했고, 청소년기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전투기 연대에서 군복무를 하게 된 생텍쥐페리는 21세에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제대 후에는 라테고에르 항공사에 취직하여 정기우편비행을 담당한다. 비행은 그에게 직업일 뿐 아니라 모험과 사색의 연장이었으며, 비행중의 경험 그리고 동료들과의 우정은 많은 작품의 모태가 된다. 민간항공사의 비행사로 일하는 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한 생텍쥐페리는 신문사의 특파원으로서 스페인의 시민전쟁을 취재하는 등 ‘행동주의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전투비행사로 복무했고, 이후 뉴욕에서 작품 쓰는 일에 전념하다가 알제리의 정찰비행단에 들어간다. 1944년 7월, 생텍쥐페리는 그르노블-안시 지역으로 출격했으나 돌아오지 못한다. 1913년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 상을, 1939년에는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다. 『남방우편기』 『어린 왕자』 『성채』 『전시 조종사』 등의 작품이 있다. 줄거리 나는 어린 시절에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구렁이를 그린 것을 아무도 몰라주는 바람에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조종사가 되었다. 세계 일주를 하던 어느 날 나는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에 불시착했다. 비행기를 고치고 있던 내 앞에 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는 먼 나라에서 온 왕자라고 했다. 어린왕자는 내가 그린 보아구렁이 그림을 이해했다. 그는 지구까지 오는 동안 왕이 있는 별, 가로등을 관리하는 점등인의 별, 허영장이의 별, 술꾼들의 별, 상인들의 별, 지리학자의 별들을 지나왔다고 했다. 지구에서는 지혜로운 여우를 만나 ‘길들인다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듣게 되었다고 했다. 어린왕자는 지구에 온지 1년 만에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 없어 조용히 육신을 버리고 갔다. ....................................................................................................... 지빠귀의 노래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닫게 되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나에게서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다. 지빠귀의 온갖 노래 소리를 이제야 비로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자선병원의 하얀 병실에서> 중에서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달라고 애원한다. 어린 왕자가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여우는 ‘그건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말한다. 관계를 맺는 것은 모래밭에 물이 스며드는 것과 같다. 물은 모래를 길들인다. 하지만 모래가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도 다른 무엇이 되지 않는다. 물은 물의 본성을 잃지 않고 모래는 모래의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둘이 하나가 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된다. 하지만 수소도 산소도 물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없던 물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낸다. 바다 속에서 물고기들이 현란한 춤을 추듯이 몰려다니고, 하늘에서 새떼가 군무를 추는 것을 보며 나는 아름다운 인간 사회를 상상했다. 1어(조) 1표가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사람도 1인 1표가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리라는 것을. 그런데 왜 이런 아름다운 세상은 오지 않는 걸까.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있는 ‘나르시시즘’이 가장 큰 걸림돌일 것이다. 동물은 ‘나’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인간은 유아기 때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 착각하는 강렬한 체험을 한다. 그러다가 벗을 사귀고 사랑을 하며 자신과 남을 다함께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인간으로 커 간다. 그런데 이런 교육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부풀려서 보게 된다. 자신을 우상화하고 연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과 관계 맺는 것을 힘들어 한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을 남들에게 뒤집어씌운다. 나르시시즘의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올 때 구슬과 구슬이 서로를 비추며 찬란하게 빛나듯이,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 갈 것이다. 지빠귀와 관계 맺기에 성공한 시인은 죽음마저 초월하여 지빠귀 노래 소리를 즐긴다.  
79 모모-미하엘 엔데 저 한미희 역/고석근 image
편집자
2315 2011-12-02
 모모 미하엘 엔데 저 한미희 역 비룡소 1999.2.9 미하엘 엔데 1929년 남부 독일 가르마슈 파르텐키르헨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역시 화가인 루이제 바르톨로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치 정부로부터 예술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모의 예술적 감수성은 엔데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소설, 시, 동시, 동화, 희곡 등 다양한 문학 장르뿐만 아니라 회화, 연극을 넘나들었던 엔데의 재능은 회화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연금술, 신화에도 두루 정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2차세계대전 당시, 발도르프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아버지에게 징집 영장이 발부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나치의 눈을 피해 도망했다. 전후에는 연극 배우, 연극 평론가, 연극 기획자로 활동하다가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1960년에 첫작품 <기관차 대여행>을 발표하여 독일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그 뒤 세계 어린이문학사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를 계속 발표하여, 뛰어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1995년 위암으로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줄거리 모모라는 소녀가 작은 원형극장의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다. 그 소녀는 남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재주가 있어서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마을사람들은 유쾌해지고, 지혜로워졌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모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회색 신사들이 불현듯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일만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회색신사들에게 빼앗긴 시간이 저축해 놓은 것인 줄 알고 시간을 더 아끼려고 했다. 모모는 그들의 비밀을 알아내서 호라 박사에게 갔다. 호라 박사를 만나 시간의 꽃을 얻어 마을로 돌아온다. 모모가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자 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다시 행복해졌다. .......................................................................................................... 시간이 나면 아프겠지 남겨둔 안식처럼 상처가 쑤시겠지 통증이 한 번 크게 파도칠 때까지 기다리면 손목을 긋는 충동이 달려와주겠지 - 이상희의 시 <시간이 나면>중에서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언젠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다. 아팠을 땐 아프지 않기를 원했고, 바쁠 땐 한가하길 원했고, 배고플 땐 배를 채우길 원했다. 그 소망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를 붙잡지 못하고 ‘미래’에 희망을 거는 한 우리의 삶은 실패한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과거에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 찬란하게 모여 있는 순간이다. 그 찬란함을 누려보자. 마음껏. 나를 옥죄고 짓누르던 것들에게서 서서히 풀려날 것이다. 자유, 해방. ‘나’는 이 세상의 큰 가락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나’는 어느새 우주의 춤에 동참하고 있을 것이다. 호흡은 기쁨에 겨워 산들바람처럼 감미롭고 피는 개울물처럼 졸졸졸 흐를 것이다. 행복이 따뜻한 햇살처럼 온 몸을 감쌀 것이다. 이 세상의 본질은 춤이다. 우리는 춤 속에서 태어났고, 춤 속에서 살다가, 춤 속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가락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시간이 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회색 신사들이 빼앗아 간 것이다. 회색이란 산업 혁명이 이룩한 거대한 공장의 굴뚝 연기가 아닐까. 우리는 그 연기를 보고 얼마나 환호했던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우리는 그것들에게 우리의 삶을 일임했다. 우리의 모든 몸짓은 그 회색 연기가 움직이는 기계의 움직임에 맞춰졌다. 우리는 모두 기계의 부품(회색 신사)이 되어버렸다. 좋은 부품이 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기계의 시간을 몸에 익혀갔다. 이제 우리의 몸은 기계의 훌륭한 부품 하나가 되었다. 낡고 헐거워지면 실업자가 되어 버려졌고, 즉각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되었다. 이제 지식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기계의 부품이 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는 시간을 몸 안으로 불러들이는 사람을 원한다. 창의성과 감성은 시간을 매음대로 부리는 사람에게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시간에 대해 강박증을 갖고 있다. 시간이 나면 안절부절 못한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몸이 아닌 시간을 부리는 몸을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그냥 내버려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멍청하게 있을 때 우리는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남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우주의 춤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삶의 주인이 되어 보자. 세상은 꽃으로 가득 피어난다. 우리는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한 시간 속에 안기게 된다.  
78 강아지똥-권정생/고석근 image
편집자
1939 2011-11-25
 강아지 똥 권정생 지음 길벗어린이 펴냄 | 1996.04.01 발간 권정생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9년 동화 '강아지 똥'으로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글로 어린이는 물론 부모님들께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은책으로는 '사과나무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등이 있다. 줄거리 흰둥이가 골목길 돌담 밑에 누고 간 똥. 냄새나고 더러운 강아지 똥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강아지 똥은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존재라는 것에 대해 슬퍼한다. 그러다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강아지 똥은 민들레 씨앗을 만난다.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선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을 민들레에게서 듣는다. 강아지 똥은 진정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강아지 똥은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워내기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된다. ............................................................................... ‘아, 놀라워라, 아, 놀라워라, 아, 놀라워라! 나는 먹거리이다. 나는 먹거리이다, 나는 먹거리이다! 나는 먹거리를 먹는 자이다. 나는 먹거리를 먹는 자이다!’ - 우파니샤드 약육강식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강한 민들레가 약한 강아지 똥을 잡아먹은 걸까? 강아지 똥은 죽어 민들레꽃으로 피어났는데? 큰 우주 차원에서 보면 먹는 것과 먹히는 것은 하나의 생명 작용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야수들의 먹고 먹히는 전쟁터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의 살과 피를 나누는 ‘생명의 잔치’이다. 물소 떼를 좇아가는 사자 무리.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러다 지친 물소 한 마리가 쿵 주저앉는다. 그의 눈을 보면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는다. 천명을 따르는 성자의 눈빛이다. ‘죽음’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두렵고 신비로운 게 아닐 것이다. 사실 일상 하나하나가 경외롭지 않은가? 그런 일상 중의 하나가 ‘죽음’일 것이다. 시인 히메네스는 노래했다. ‘진흙 속의 주검과 하늘의 주검은 무게가 같다’고. 그렇다! ‘가장 깔끔한 주검’은 가장 속된 것이면서도 가장 성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온갖 상상력이 덧씌운 죽음, 주검이야 말로 가장 비생명적인, 비인간적인 그 무엇일 것이다. ‘죽음’이 우리 삶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면 우리 삶은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고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들 삶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뜬구름처럼 허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되려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천명(天命)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죽음에게 저당 잡힌 삶에서 풀려날 때 천명은 천둥처럼 우리 안에서 울려올 것이다. 우리 마음을 강아지 똥만큼만 떼어 이 세상의 한 귀퉁이에 가만히 놓아보자. 우리도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천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77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고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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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 2011-11-16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어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 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사람은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 선택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을까. 마냥 즐거운 아이들은 가지 않은 길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길을 가고 있기에 가지 않은 길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실컷 살지 못한 삶에 대한 회한일 따름이다. 인생에는 실컷 사는 길과 실컷 살지 못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두 길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76 김삿갓/고석근
편집자
1949 2011-11-09
김삿갓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하늘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주인아 면목없다 말하지 마오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주인은 멀건 죽을 내놓고 면목없다 한다. 자신들만 몰래 밥을 먹어서인지. 아니면 죽밖에 대접할 게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인의 눈엔 멀건 죽 속에 얼비치는 구름과 청산이 보인다. '바깥의 풍경'은 '내 안의 풍경'이다.  
75 금잔디-김소월/고석근
편집자
2195 2011-10-28
금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인류는 언젠가부터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씨앗을 심듯 죽은 사람을 땅에 묻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은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마법이 통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마법이 사라진 시대. 무덤만 그 자리에 있을 뿐. 가신 님은 다시 오지 않는다. 풀과 나무들은 여전히 마법의 세상에 살고 있건만.  
74 술/고석근
편집자
1733 2011-10-14
술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많은 대중가요들이 가사에 ‘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19세 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이 시대는 왜 술을 싫어할까? 술은 사람들 마음속의 광기를 끄집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엔 얌전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인간 이하’가 되니 사람들이 술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미치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 수 없으니 술을 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간의 광기란 정말 위험한 것일까? 푸코는 ‘광기로 하여금 이성을 감시하게 하라!’고 했다. 이성으로만 세상을 보려하면 이성은 인간의 광기를 억누르게 되어 광기는 갇힌 물처럼 위험하게 된다. 광기란 인간의 근원적인 마음이기에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면 맑게 흐르며 노래를 하지만 억지로 가둬놓으면 썩게 되고 엉뚱한 곳으로 분출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을 가둬놓고 사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인간 이하’가 되고 평소에 자유롭게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인간 이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폐쇄성’인 것이다. 19금(禁) 판정을 내린 심사위원들은 아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항상 마음을 꼭꼭 닫고 살았기에 술이 주는 ‘대자유(大自由)’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 거의 모든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급 인사들’의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다. 술에 의해 대자유를 획득한 시선 이백을 생각해 보자. 그런 경지가 이백만이 가능할까? 심포지엄(향연)이란 단어는 원래 ‘함께 술을 마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함께 술을 마시며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술기운에 의해 약화된 이성은 ‘인간의 광기’를 아름답게 피어오르게 했을 것이다. ‘이성’이 약화되었다는 건 ‘인간의 오만’이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죽여야 진정한 자신이 드러나는 존재이다. 술은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음식이라고 한다. 마실 때는 물이었다가 마신 이후엔 불이 되는 기적! 물과 불의 하나 됨! 그래서 술은 고상한 토론을 할 때나 의례를 행할 때 마셨을 것이다. 나는 강의 시간에 술을 마실 때가 많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들도 모르던 ‘어떤 위대한 말들’을 하곤 한다. 강의 시간은 그야말로 향연이 된다. 술의 힘이다. 술이 우리 안의 고상한 힘을 피어 올리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술을 금하게 하는 게 아니라 ‘향연’을 체험하게 하면 어떨까? 한 분야에서 일정 정도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출세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을 잘 키운 사람들은 술도 잘 마시리라)과 학생들이 함께 술판을 여는 거다. 함께 술을 마시며 난장을 벌이는 속에서 ‘위대한 광기’가 피어 올라오는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 광기들이 어우러지며 장엄한 사람꽃을 피어 올리는 위대한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오랫동안 사람꽃의 향기를 잊지 못하리라. 나도 교직에 있을 때는 술이란 필요악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교직을 그만두고 문학을 공부하고 운동단체에서 일하며 많은 멋있는 작가들, 활동가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졌었다. 그 때 술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렇게 멋진 향연이 있었구나! 술은 이성을 잠재우며 광기를 일깨운다. 평소에 광기를 잘 가꾼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아름답고, 광기를 옥죈 사람은 술을 마시면 광기가 마구 활개 치게 되어 괴물이 되어버린다. 우리사회는 얼마나 숨 막히는 사회인가! 이 속에서 우리는 질식할 듯한 모든 고통을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속죄양으로 만들고 있다.  
73 악마/고석근
편집자
1999 2011-09-29
악마 진실은 왜 항상 악마의 모습을 띨까. 요즘 내린 폭우처럼. 모든 걸 휩쓸어버리는 산사태, 홍수처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애나 성폭행 사건의 진실. 미국으로 유학 간 한 소녀가 성인이 되면서 한국인 이름을 버리고 미국인 이름을 택했다. 호수에 갇힌 물은 제 본 모습이 아니에요! 마구 둑을 허물고 그녀의 마음은 뛰쳐나왔다. 저를 은정이가 아닌 애나라고 불러주세요. 기독교 계통의 대안학교 교장, 교사인 부모 아래서 그녀는 너무나 힘들었나보다. 다리를 꼬고 앉아 인터뷰하는 딸을 낯설어하는 부모. 화장도 했나 봐. 울먹이며 ‘언니 사랑해’라고 말하는 여동생과는 친하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녀. 항상 모범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은 은정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둠과 은정이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이 합친 곳에서 큰 뱀 한 마리가 태어났다. 엄마 아빠가 저를 성폭행했어요! 그녀는 은정이를 다 버리고 싶은 것이다. 부모님과 친하고 싶었어요. 온전히 하나가 되고 싶었다구요! 항상 부모님은 나를 다른 학생들과 똑 같이 대했어요. 가족과 오붓이 지내고 싶었다고요. 다른 학생들이 다 나를 미워했어요. 저는 항상 외톨이였다구요! 둑이 되었던 엄마 아빠. 네 눈이 호수처럼 맑구나! 네 안엔 온갖 꿈들이 가득하구나! 부모님은 제가 항상 명랑하고 모범적이라고 생각했지요. 제 마음을 전혀 모르셨어요. 왜 제 마음을 부모님께 말하지 았았냐고요? 부모님은 제 말을 못 알아 들으셨어요. 그렇게 말했는데도요.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거든요. 저는 겉으로 명랑한 척 모범생인 척해야 했어요.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좋아하잖아요. 이제 연극하기 싫어요. 저는 꼭두각시가 아니라구요! 이제 애나로 살거라구요! 은정이는 죽었어요! 아, 언제 그들이 다시 맑게 맑게 흐르는 강물과 강둑으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