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5호...
   2020년 0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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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미운 오리 새끼/고석근 image
편집자
1770 2012-01-12
 미운 오리 새끼 안데르센 안데르센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으나, 어릴 적부터 문학에 눈이 떴다. 생활이 당장에 곤란했으나, 문학에의 간절한 소망과 타고난 소질과 소박하고 순진한 성격으로 많은 후원자를 찾아내게 되었다. 1833년 이탈리아 여행의 인상과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즉흥시인>으로 그의 이름이 유럽 전체에 퍼졌다. 같은 해에 내놓은 최초의 <동화집>은 그의 동화작가로서의 생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의 동화의 특색은 서정적인 정서와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따스한 휴머니즘으로 정리할 수 있다.주요 작품으로는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인어공주> 등이 있고 모두 130편 이상의 주옥같은 동화들을 썼다. 줄거리 유난히 크고 보기 싫게 태어난 오리새끼 한 마리가 다른 오리들에게 구박을 받고 키워주던 농가를 뛰쳐나오는데, 숲속의 작은 새들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떤 할머니네 집에 들어가 살게 되지만 그 집에서도 고양이와 닭이 못살게 구는 바람에 거리를 방황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고생스러운 겨울도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오리새끼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공중을 날 수 있게 된다. 오리새끼는 사실은 훌륭한 백조의 새끼였으며, 자신이 처한 괴롭고 슬픈 시절을 꿋꿋하게 견뎌내 되찾은 행복을 결코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누리게 된다.[출처] 미운 오리새끼 | 네이버 백과사전 ................................................................................ 여기, 바로 여기 진리가 있다. 가라, 가고싶은 대로 가 보라. 베나레스로 마투라로, 그러나 그대 영혼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 세계 전체가 환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까비르의 시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마르다 한다> 중에서 ‘나’는 누구일까? 길에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왠지 적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조금만 약점을 보이면 포식자처럼 다가오는 사람들...... 사람들은 왜 내게 적의감을 보이는 일까? 그들과 나는 같은 종족이 아닌 걸까? 왜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을까? 불안해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농경을 하고, 생산물을 소유하고, 소유한 것을 빼앗고 빼앗기면서 인간은 점차 인간을 적대시하게 되었다. 이때 쯤 인류 역사에서 성인들이 출현하고 종교가 나타난다. 인류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인류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혼’의 문제다. 황금만능 시대인 현대에는 인간은 완전히 혼을 잃어버리고 물질의 하나가 되었다. 혼을 잃은 인간은 이유 없이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임을 모르듯이 현대인은 자신이 혼을 가진 거룩한 존재임을 모르고 있다. 그냥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우아한지 모른다. 성형 수술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을 다 보내고,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나아 보이려고 온 신경을 쓴다. 우리는 모두 나르시시즘 환자다. 하지만 이 병은 단 한 번의 생각만으로 고쳐진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 무리에게 다가감으로써 한 순간에 우아한 존재로 바뀌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혼을 가진 존재라고 주문을 외우는 순간, 우리는 한 순간에 변신한다. 하찮은 돈 몇 푼 가지고 아웅다웅하는 인간에서 광채가 나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 세상은 지옥이면서 천국이고 인간은 악마이면서 천사이다. 찰나의 생각만으로 우리는 두 세계를 마음껏 넘나들며 변신할 수 있다.  
84 피터 팬/고석근 image
편집자
1854 2012-01-04
 피터 팬 줄거리 웬디, 존, 마이클이 피터 팬을 따라 네버랜드로 날아가서 겪게 되는 온갖 모험의 이야기. 그곳은 어린이들의 천국. 아무도 늙지 않는 꿈의 나라였다. 꿈의 섬에서는 피터 팬 에게 왼쪽 팔을 잃은 후크 선장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후크선장은 자기의 부하가 되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고 겁을 주지만, 피터 팬과 아이들은 해적들을 모두 물리치고 웬디와 동생들을 다시 런던의 집으로 데려다 준다. ............................................................................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 소나 돼지나 염소나 닭 모두 시시해요. 그러나, 다람쥐는 볼수록 신기해요. 아무도 나를 기르지 못하게 하겠어요. 나는 나 혼자 자라겠어요. - 임길택의 시 <나 혼자 자라겠어요> 중에서 예수는 ‘이 아이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예수가 말한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착한 아이? 정직한 아이?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예수가 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아이’는 어떤 아이의 마음일까? 우리는 아이 시절을 참으로 아름답게 기억한다. 아련한 동화 세상. 하지만 아이를 돌본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 때 우리는 아이에게서 잔인한 아이, 거짓말하는 아이, 말썽만 피우는 아이를 본다. 도대체 예수는 어떤 아이의 모습에서 천국에 갈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본 것일까?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을 아이의 마음으로 보면 되겠다.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면 춤을 추며 노래를 하지만 가둬놓으면 썩으며 잔인해진다. 물은 늘 꿈을 꾼다. 아이들은 자신이 상상한 것과 실재 일어난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빛이 있으라’고 생각하면 눈앞에 ‘실재로’ 빛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거짓말을 어른들의 거짓말처럼 도덕적 잣대로 재지 말아야 한다. 물은 과거를 금방 잊는다. 마을을 덮치고 나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물을 보라! 아이들도 작은 벌레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낄낄 웃으며. 그리곤 천연스레 뛰어 논다. 이 때 우리는 물을 가둬 놓은 우리의 잘못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들이 잔인한 건 언젠가 우리가 그들의 마음을 가둬놓았기 때문이다. 물이 끝끝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아이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무서운 집중력을 보인다.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은 집중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 마음을 조금도 다치지 않는 세상은 분명히 천국일 것이다. 피터 팬에게 항상 패하는 제임스 후크 선장은 참으로 불쌍하다. 어른은 ‘아이를 잃고(패하여)’ 늙어 죽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끝내 타락하지 않는 건 아이가 계속 태어나고 어른은 죽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마음을 아이 같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한 순간에 천국으로 바뀔 것이다.  
83 까마귀 소년/야시마 타로 저 |윤구병 역 |비룡소///고석근 image
편집자
4682 2011-12-26
 까마귀 소년 야시마 타로 저 |윤구병 역 |비룡소 |2000.10.31 야시마 타로 1908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태어났다. 동경 예술 대학과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공부했다. 1939년 반군국주의 활동으로 일본에서 살 수 없게 되어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살았다. <까마귀 소년>, <우산>, <바닷가 이야기> 로 칼데콧 상을 세 번이나 받은 뛰어난 작가이다. 줄거리 학교에 간 첫날부터 선생님과 학생들이 무서워 교실 마루 바닥에 숨어 있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땅꼬마’라고 불렀다. 그 아이는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못했다. 수업시간에도 놀 때도 늘 뒤쳐지며 꼴찌인 땅꼬마는 심심풀이 방법으로 혼자서 놀 방법을 궁리해 낸다. 땅꼬마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을 관찰하며 한결같이 학교에 다닌다. 6학년이 되던 해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오신다. 이소베선생님은 땅꼬마에게 관심을 가지고 땅꼬마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며 땅꼬마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 학예회 날 땅꼬마는 여러 가지 까마귀 소리를 내며 그 소리를 듣고 그 자리의 여러 어른들과 아이들이 감동하며 땅꼬마를 인정한다. 그 뒤 아이들은 더 이상 땅꼬마라고 놀리지 않고 까마둥이, 즉 ‘까마귀 소년’이라고 부른다. ..........................................................................................................................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 심호택의 시 <똥지게> 중에서 천지자연을 보면 참 아름답다. 하늘은 하늘이고 해는 해이고 달을 달이고 땅은 땅이고 강은 강이고 나무는 나무이고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두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그런데 사람 사는 세상을 들여다보면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길들여진 사람들에게선 우리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을 봤을 때 나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순간 새로운 우주 하나가 태어난다. 아이들은 늘 경이감과 환희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세상과 자신만의 느낌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외감에 가득 차 있는 인간을 학교는 다른 무언가로 만들어낸다. 서양에서 근대식 학교가 처음 생겨났을 때는 중세 봉건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존엄성, 개성을 다 발휘하게 했다. 그러다 근대 자본주의가 차츰 정착되어 가면서 학교는 ‘자본주의형 인간’을 만드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어떤 사회든지 인간의 본성에 맞는 교육이라야 인간의 모든 잠재력이 활짝 꽃 피어난다. 산골 아이의 ‘찌질이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면서, 우리 가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채 남아 있는 우리 모두의 깊은 상처다. ‘왕따’는 잘못된 학교 교육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약한 자를 희생시키는 처절한 제도다. 학교 교육을 바르게 해야 해결할 수 있다. 이 상처를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드러내는 ‘까마귀 소년’. 우리는 ‘까마귀 소년’을 마주함으로써 우리의 멍든 가슴을 치유하게 된다. 우리가 힘들 때마다 ‘까마귀 소년’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서 ‘까우우우워악!’ 길게 울 것이다. 우리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시 활짝 피어나게 된다.  
82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고석근 image
편집자
1974 2011-12-19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볼프 에를브루흐 그림 |사계절 |2010.09.24 저자 베르너 홀츠바르트 1947년 독일 슈트트가르트 근처의 비넨덴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랫동안 광고 디자인 일을 해왔으며,「슈피겔」지와「디 차이트」지 등에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바이마르에 있는 바우하우스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림 볼프 에를브루흐 1948년 독일 부퍼탈에서 태어났습니다. 에센의 폴크방 조형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한 뒤 오랫동안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으며, 1983년부터 어린이책 그림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으로『개가 무서워요!』,『아빠가 되고 싶어요』,『생각을 만드는 책』,『커다란 질문』등이 있습니다.이 가운데『아빠가 되고 싶어요!』로 1993년 독일아동문학상을,『커다란 질문』으로 2004년 라가치 상을 받았으며, 2006에는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 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부퍼탈에 있는 베르기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줄거리 어느 날, 해가 떴나 안 떴나 궁금해진 꼬마 두더지 하나가 머리를 땅 위로 내미는 순간, 똥 무더기가 머리에 떨어졌어요. 그러나 눈이 나쁜 두더지는 누가 쌌는지 볼 수 없었어요. 화가 난 두더지는 누가 자기 머리에 똥을 쌌는지 범인을 찾으러 길을 나섭니다. 토끼에게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라고 묻지만 토끼는 자기 똥을 보여 주면서 아니라고 합니다. 염소도, 젖소도, 말도 모두 자기 똥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두더지는 마침내 똥에 대한 전문가인 파리를 발견하고 자기 머리에 있는 똥이 누구 것인지 물어봅니다. 전문가인 파리는 바로 그 똥이 정육점 집 개 한스의 똥이라고 알려주지요. 두더지는 한스의 머리위에 똥을 싸고는 웃으며 자신의 굴속으로 들어갔답니다. ............................................... 우리는 이렇게 만나기 전부터 만나고 있었던가 보다 다른 무엇인가의 모습을 빌려가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전부터 서로 사랑하고 있었나 보다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의지하여- - 타까다 토시꼬의 시 <다른 이름> 중에서 허공을 분분히 날아가는 민들레 씨앗들은 서롤 같을까? 다를까?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물방울들은 서로 같을까? 다를까?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는 사람들은 서로 같을까? 다를까? 우리 모두 죽는데 그 죽음은 모두에게 같을까? 다를까? 남의 손가락에 찔린 가시와 내 손가락에 찔린 가시는 우리에게 같은 아픔일까? 다른 아픔일까? 자신의 머리에 똥을 싼 범인을 찾아가는 두더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의 비의를 느낀다.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또 자식을 낳으면 되지’라고 위로하는 문상객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한 인간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이 한 사람을 위하여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분히 날아가는 민들레 꽃씨들은 여러 곳에 안착할 것이다. 척박한 땅에 떨어져 그대로 죽어가는 씨앗들도 있을 테고, 부드러운 흙에 떨어져 싹을 틔우는 씨앗들도 있을 것이다. 싹을 틔워 민들레로 살아가는 씨앗들은 죽어간 수많은 씨앗들의 소망도 함께 이뤄가고 있다. 민들레 씨앗 하나는 여럿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것이다. 완전히 다르면서 완전히 같은 게 삼라만상의 이치다. 나 하나쯤이야 죽어도 되지만 나 하나가 살아남아 인류 역사를 이어갈 수도 있다.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하나이고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이다. 신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신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이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내 자신이 세상에 비친 모습들이면서 동시에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비친 모습이다. 범인을 찾아낸 두더지는 그의 머리에 똥을 싸고는 편안히 자신의 굴속으로 들어간다. 흡사 세상의 비의를 깨치고 조용히 안거하는 성자처럼.  
81 바리공주/고석근 image
편집자
2040 2011-12-12
 바리공주 줄거리 옛날에 삼나라를 다스리는 오구대왕이 살았다. 딸만 계속 낳다가 일곱째도 딸이 태어나자 강물에 버렸다. 이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양육되었다. 후에 오구대왕이 불치병이 들어 점을 쳐 보니 저승의 생명수로만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섯 공주 모두가 저승에 가길 거부했는데, 이 얘기를 전해들은 바리공주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저승에 갔다. 바리공주가 저승에 가 생명수가 있는 곳까지 갔는데, 저승의 무장승이 바리공주와 일곱 해를 살고 일곱 아들을 낳아야 약을 주겠다고 하였다. 바리공주가 그 조건을 채운 뒤 무장승과 일곱 아들과 함께 생명수를 갖고 이승에 돌아오다 오구대왕의 상여와 마주쳐, 가져온 생명수로 오구대왕을 살려냈다. 후에 바리공주는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무속의 여신이 되었다. .................................................................................................................................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공광규의 시 <소주병> 중에서 오구대왕은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의 상징이다. 누구나 아버지들은 왕이다. 남녀가 평등하게 살던 원시사회가 농경사회로 바뀌면서 차츰 가부장 사회가 되어 갔다. 어머니처럼 자애롭던 추장, 부족장들은 스스로를 신격화해 갔다. 인류 역사에서 왕이 탄생한 것이다. 가정의 아버지들은 작은 왕이 되었다. 왕들은 권력과 재산을 얻었지만 잃은 게 너무나 컸다. ‘내면의 여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내와 딸들은 자신의 재산 목록에 올랐다. 재산 가치가 없는 아내와 딸은 버렸다. 버려진 딸, 바리공주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딸을 버리게 되면 ‘마음속의 여성’도 함께 잃게 된다. 여성적인 부드러움, 온화함, 사랑, 소통...... 이 모든 품성들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항상 권력과 재산을 생각하는 탐욕, 그는 언제나 외롭고 쓸쓸해진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게 된다. 농경사회, 산업사회는 그래도 남성들에게 유리한 사회였다. 남성들의 육체적인 힘, 논리적인 사고력, 추진력...... 이런 것들이 가부장의 지위를 계속 유지시켜 주었다. 하지만 이제 지식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여성적인 섬세함, 부드러움, 나눔...... 이런 품성들이 유리한 사회가 되었다. 가부장들은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있다. 아버지들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까? 구원은 그들이 버린 딸들에게서 온다. ‘가슴에서 빠져나간 뜨거운 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이 땅의 남성들이 찾아가야 할 곳은 룸살롱, 카페, 다방, 모텔이 아니라 그동안 아내, 딸들을 버린 황량한 벌판이다. 자신의 텅 빈 가슴이다.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괴테). 모든 남성은 반쪽이다. ‘여성’을 만나야 온전한 인간이 된다.  
80 어린 왕자-생텍쥐페리/고석근 image
편집자
2054 2011-12-06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1900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났다. 4세에 아버지가 사망했고, 청소년기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전투기 연대에서 군복무를 하게 된 생텍쥐페리는 21세에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제대 후에는 라테고에르 항공사에 취직하여 정기우편비행을 담당한다. 비행은 그에게 직업일 뿐 아니라 모험과 사색의 연장이었으며, 비행중의 경험 그리고 동료들과의 우정은 많은 작품의 모태가 된다. 민간항공사의 비행사로 일하는 중에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한 생텍쥐페리는 신문사의 특파원으로서 스페인의 시민전쟁을 취재하는 등 ‘행동주의 작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다시 전투비행사로 복무했고, 이후 뉴욕에서 작품 쓰는 일에 전념하다가 알제리의 정찰비행단에 들어간다. 1944년 7월, 생텍쥐페리는 그르노블-안시 지역으로 출격했으나 돌아오지 못한다. 1913년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 상을, 1939년에는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다. 『남방우편기』 『어린 왕자』 『성채』 『전시 조종사』 등의 작품이 있다. 줄거리 나는 어린 시절에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구렁이를 그린 것을 아무도 몰라주는 바람에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조종사가 되었다. 세계 일주를 하던 어느 날 나는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에 불시착했다. 비행기를 고치고 있던 내 앞에 한 소년이 나타났다. 그는 먼 나라에서 온 왕자라고 했다. 어린왕자는 내가 그린 보아구렁이 그림을 이해했다. 그는 지구까지 오는 동안 왕이 있는 별, 가로등을 관리하는 점등인의 별, 허영장이의 별, 술꾼들의 별, 상인들의 별, 지리학자의 별들을 지나왔다고 했다. 지구에서는 지혜로운 여우를 만나 ‘길들인다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듣게 되었다고 했다. 어린왕자는 지구에 온지 1년 만에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몸뚱이를 가지고 갈 수 없어 조용히 육신을 버리고 갔다. ....................................................................................................... 지빠귀의 노래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닫게 되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나에게서 죽음의 공포는 사라졌다. 지빠귀의 온갖 노래 소리를 이제야 비로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자선병원의 하얀 병실에서> 중에서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나타났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여달라고 애원한다. 어린 왕자가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여우는 ‘그건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말한다. 관계를 맺는 것은 모래밭에 물이 스며드는 것과 같다. 물은 모래를 길들인다. 하지만 모래가 다른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도 다른 무엇이 되지 않는다. 물은 물의 본성을 잃지 않고 모래는 모래의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둘이 하나가 되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관계를 맺는 것’이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된다. 하지만 수소도 산소도 물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없던 물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낸다. 바다 속에서 물고기들이 현란한 춤을 추듯이 몰려다니고, 하늘에서 새떼가 군무를 추는 것을 보며 나는 아름다운 인간 사회를 상상했다. 1어(조) 1표가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사람도 1인 1표가 모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리라는 것을. 그런데 왜 이런 아름다운 세상은 오지 않는 걸까.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있는 ‘나르시시즘’이 가장 큰 걸림돌일 것이다. 동물은 ‘나’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데, 인간은 유아기 때 자신을 ‘완전한 존재’로 착각하는 강렬한 체험을 한다. 그러다가 벗을 사귀고 사랑을 하며 자신과 남을 다함께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인간으로 커 간다. 그런데 이런 교육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했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부풀려서 보게 된다. 자신을 우상화하고 연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과 관계 맺는 것을 힘들어 한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을 남들에게 뒤집어씌운다. 나르시시즘의 검은 구름을 뚫고 나올 때 구슬과 구슬이 서로를 비추며 찬란하게 빛나듯이,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 갈 것이다. 지빠귀와 관계 맺기에 성공한 시인은 죽음마저 초월하여 지빠귀 노래 소리를 즐긴다.  
79 모모-미하엘 엔데 저 한미희 역/고석근 image
편집자
2500 2011-12-02
 모모 미하엘 엔데 저 한미희 역 비룡소 1999.2.9 미하엘 엔데 1929년 남부 독일 가르마슈 파르텐키르헨에서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드가 엔데와 역시 화가인 루이제 바르톨로메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나치 정부로부터 예술 활동 금지 처분을 받아 가족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모의 예술적 감수성은 엔데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소설, 시, 동시, 동화, 희곡 등 다양한 문학 장르뿐만 아니라 회화, 연극을 넘나들었던 엔데의 재능은 회화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학, 연금술, 신화에도 두루 정통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2차세계대전 당시, 발도르프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아버지에게 징집 영장이 발부되자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과 함께 나치의 눈을 피해 도망했다. 전후에는 연극 배우, 연극 평론가, 연극 기획자로 활동하다가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1960년에 첫작품 <기관차 대여행>을 발표하여 독일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그 뒤 세계 어린이문학사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를 계속 발표하여, 뛰어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1995년 위암으로 6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줄거리 모모라는 소녀가 작은 원형극장의 한 귀퉁이에서 살고 있다. 그 소녀는 남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재주가 있어서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놓다 보면 어느새 마을사람들은 유쾌해지고, 지혜로워졌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함께 모모는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회색 신사들이 불현듯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겨 일만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회색신사들에게 빼앗긴 시간이 저축해 놓은 것인 줄 알고 시간을 더 아끼려고 했다. 모모는 그들의 비밀을 알아내서 호라 박사에게 갔다. 호라 박사를 만나 시간의 꽃을 얻어 마을로 돌아온다. 모모가 회색 신사들을 물리치자 마을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사람들의 일상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다시 행복해졌다. .......................................................................................................... 시간이 나면 아프겠지 남겨둔 안식처럼 상처가 쑤시겠지 통증이 한 번 크게 파도칠 때까지 기다리면 손목을 긋는 충동이 달려와주겠지 - 이상희의 시 <시간이 나면>중에서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언젠가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다. 아팠을 땐 아프지 않기를 원했고, 바쁠 땐 한가하길 원했고, 배고플 땐 배를 채우길 원했다. 그 소망이 이루어졌는데, 우리는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를 붙잡지 못하고 ‘미래’에 희망을 거는 한 우리의 삶은 실패한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과거에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 찬란하게 모여 있는 순간이다. 그 찬란함을 누려보자. 마음껏. 나를 옥죄고 짓누르던 것들에게서 서서히 풀려날 것이다. 자유, 해방. ‘나’는 이 세상의 큰 가락 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나’는 어느새 우주의 춤에 동참하고 있을 것이다. 호흡은 기쁨에 겨워 산들바람처럼 감미롭고 피는 개울물처럼 졸졸졸 흐를 것이다. 행복이 따뜻한 햇살처럼 온 몸을 감쌀 것이다. 이 세상의 본질은 춤이다. 우리는 춤 속에서 태어났고, 춤 속에서 살다가, 춤 속으로 돌아간다. 시간은 가락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시간이 우리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회색 신사들이 빼앗아 간 것이다. 회색이란 산업 혁명이 이룩한 거대한 공장의 굴뚝 연기가 아닐까. 우리는 그 연기를 보고 얼마나 환호했던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우리는 그것들에게 우리의 삶을 일임했다. 우리의 모든 몸짓은 그 회색 연기가 움직이는 기계의 움직임에 맞춰졌다. 우리는 모두 기계의 부품(회색 신사)이 되어버렸다. 좋은 부품이 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기계의 시간을 몸에 익혀갔다. 이제 우리의 몸은 기계의 훌륭한 부품 하나가 되었다. 낡고 헐거워지면 실업자가 되어 버려졌고, 즉각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되었다. 이제 지식 정보화 사회가 되었다. 기계의 부품이 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는 시간을 몸 안으로 불러들이는 사람을 원한다. 창의성과 감성은 시간을 매음대로 부리는 사람에게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시간에 대해 강박증을 갖고 있다. 시간이 나면 안절부절 못한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몸이 아닌 시간을 부리는 몸을 만들기 위해선 자신의 몸을 그냥 내버려두는 연습을 해야 한다. 멍청하게 있을 때 우리는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 소통하게 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남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우주의 춤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삶의 주인이 되어 보자. 세상은 꽃으로 가득 피어난다. 우리는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한 시간 속에 안기게 된다.  
78 강아지똥-권정생/고석근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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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6 2011-11-25
 강아지 똥 권정생 지음 길벗어린이 펴냄 | 1996.04.01 발간 권정생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1969년 동화 '강아지 똥'으로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굴곡 많은 역사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을 보듬는 진솔한 글로 어린이는 물론 부모님들께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은책으로는 '사과나무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등이 있다. 줄거리 흰둥이가 골목길 돌담 밑에 누고 간 똥. 냄새나고 더러운 강아지 똥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강아지 똥은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존재라는 것에 대해 슬퍼한다. 그러다 봄비가 내리는 어느 날, 강아지 똥은 민들레 씨앗을 만난다.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선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을 민들레에게서 듣는다. 강아지 똥은 진정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강아지 똥은 아름다운 민들레꽃을 피워내기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된다. ............................................................................... ‘아, 놀라워라, 아, 놀라워라, 아, 놀라워라! 나는 먹거리이다. 나는 먹거리이다, 나는 먹거리이다! 나는 먹거리를 먹는 자이다. 나는 먹거리를 먹는 자이다!’ - 우파니샤드 약육강식이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강한 민들레가 약한 강아지 똥을 잡아먹은 걸까? 강아지 똥은 죽어 민들레꽃으로 피어났는데? 큰 우주 차원에서 보면 먹는 것과 먹히는 것은 하나의 생명 작용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야수들의 먹고 먹히는 전쟁터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의 살과 피를 나누는 ‘생명의 잔치’이다. 물소 떼를 좇아가는 사자 무리. 생명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러다 지친 물소 한 마리가 쿵 주저앉는다. 그의 눈을 보면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는다. 천명을 따르는 성자의 눈빛이다. ‘죽음’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두렵고 신비로운 게 아닐 것이다. 사실 일상 하나하나가 경외롭지 않은가? 그런 일상 중의 하나가 ‘죽음’일 것이다. 시인 히메네스는 노래했다. ‘진흙 속의 주검과 하늘의 주검은 무게가 같다’고. 그렇다! ‘가장 깔끔한 주검’은 가장 속된 것이면서도 가장 성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온갖 상상력이 덧씌운 죽음, 주검이야 말로 가장 비생명적인, 비인간적인 그 무엇일 것이다. ‘죽음’이 우리 삶 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면 우리 삶은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거룩하고 우리의 몸짓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비로운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들 삶을 잘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뜬구름처럼 허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되려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천명(天命)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죽음에게 저당 잡힌 삶에서 풀려날 때 천명은 천둥처럼 우리 안에서 울려올 것이다. 우리 마음을 강아지 똥만큼만 떼어 이 세상의 한 귀퉁이에 가만히 놓아보자. 우리도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천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77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고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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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 2011-11-16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어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 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사람은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 선택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을까. 마냥 즐거운 아이들은 가지 않은 길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길을 가고 있기에 가지 않은 길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실컷 살지 못한 삶에 대한 회한일 따름이다. 인생에는 실컷 사는 길과 실컷 살지 못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두 길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76 김삿갓/고석근
편집자
2057 2011-11-09
김삿갓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하늘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주인아 면목없다 말하지 마오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주인은 멀건 죽을 내놓고 면목없다 한다. 자신들만 몰래 밥을 먹어서인지. 아니면 죽밖에 대접할 게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인의 눈엔 멀건 죽 속에 얼비치는 구름과 청산이 보인다. '바깥의 풍경'은 '내 안의 풍경'이다.  
75 금잔디-김소월/고석근
편집자
2329 2011-10-28
금잔디 김소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深深) 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 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 산천에도 금잔디에. 인류는 언젠가부터 '죽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씨앗을 심듯 죽은 사람을 땅에 묻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은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마법이 통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마법이 사라진 시대. 무덤만 그 자리에 있을 뿐. 가신 님은 다시 오지 않는다. 풀과 나무들은 여전히 마법의 세상에 살고 있건만.  
74 술/고석근
편집자
1835 2011-10-14
술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많은 대중가요들이 가사에 ‘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19세 미만 청취불가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이 시대는 왜 술을 싫어할까? 술은 사람들 마음속의 광기를 끄집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엔 얌전하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인간 이하’가 되니 사람들이 술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미치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 수 없으니 술을 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간의 광기란 정말 위험한 것일까? 푸코는 ‘광기로 하여금 이성을 감시하게 하라!’고 했다. 이성으로만 세상을 보려하면 이성은 인간의 광기를 억누르게 되어 광기는 갇힌 물처럼 위험하게 된다. 광기란 인간의 근원적인 마음이기에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면 맑게 흐르며 노래를 하지만 억지로 가둬놓으면 썩게 되고 엉뚱한 곳으로 분출하게 된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을 가둬놓고 사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인간 이하’가 되고 평소에 자유롭게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은 술을 마시면 ‘인간 이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은 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폐쇄성’인 것이다. 19금(禁) 판정을 내린 심사위원들은 아마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항상 마음을 꼭꼭 닫고 살았기에 술이 주는 ‘대자유(大自由)’를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 거의 모든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급 인사들’의 치명적인 약점일 것이다. 술에 의해 대자유를 획득한 시선 이백을 생각해 보자. 그런 경지가 이백만이 가능할까? 심포지엄(향연)이란 단어는 원래 ‘함께 술을 마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함께 술을 마시며 인간과 세상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술기운에 의해 약화된 이성은 ‘인간의 광기’를 아름답게 피어오르게 했을 것이다. ‘이성’이 약화되었다는 건 ‘인간의 오만’이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을 죽여야 진정한 자신이 드러나는 존재이다. 술은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음식이라고 한다. 마실 때는 물이었다가 마신 이후엔 불이 되는 기적! 물과 불의 하나 됨! 그래서 술은 고상한 토론을 할 때나 의례를 행할 때 마셨을 것이다. 나는 강의 시간에 술을 마실 때가 많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들도 모르던 ‘어떤 위대한 말들’을 하곤 한다. 강의 시간은 그야말로 향연이 된다. 술의 힘이다. 술이 우리 안의 고상한 힘을 피어 올리는 것이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술을 금하게 하는 게 아니라 ‘향연’을 체험하게 하면 어떨까? 한 분야에서 일정 정도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출세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을 잘 키운 사람들은 술도 잘 마시리라)과 학생들이 함께 술판을 여는 거다. 함께 술을 마시며 난장을 벌이는 속에서 ‘위대한 광기’가 피어 올라오는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 광기들이 어우러지며 장엄한 사람꽃을 피어 올리는 위대한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오랫동안 사람꽃의 향기를 잊지 못하리라. 나도 교직에 있을 때는 술이란 필요악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 교직을 그만두고 문학을 공부하고 운동단체에서 일하며 많은 멋있는 작가들, 활동가들과 술자리를 자주 가졌었다. 그 때 술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렇게 멋진 향연이 있었구나! 술은 이성을 잠재우며 광기를 일깨운다. 평소에 광기를 잘 가꾼 사람은 술을 마시면 아름답고, 광기를 옥죈 사람은 술을 마시면 광기가 마구 활개 치게 되어 괴물이 되어버린다. 우리사회는 얼마나 숨 막히는 사회인가! 이 속에서 우리는 질식할 듯한 모든 고통을 인간의 위대한 발명품, 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속죄양으로 만들고 있다.  
73 악마/고석근
편집자
2111 2011-09-29
악마 진실은 왜 항상 악마의 모습을 띨까. 요즘 내린 폭우처럼. 모든 걸 휩쓸어버리는 산사태, 홍수처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애나 성폭행 사건의 진실. 미국으로 유학 간 한 소녀가 성인이 되면서 한국인 이름을 버리고 미국인 이름을 택했다. 호수에 갇힌 물은 제 본 모습이 아니에요! 마구 둑을 허물고 그녀의 마음은 뛰쳐나왔다. 저를 은정이가 아닌 애나라고 불러주세요. 기독교 계통의 대안학교 교장, 교사인 부모 아래서 그녀는 너무나 힘들었나보다. 다리를 꼬고 앉아 인터뷰하는 딸을 낯설어하는 부모. 화장도 했나 봐. 울먹이며 ‘언니 사랑해’라고 말하는 여동생과는 친하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하는 그녀. 항상 모범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은 은정이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둠과 은정이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어둠이 합친 곳에서 큰 뱀 한 마리가 태어났다. 엄마 아빠가 저를 성폭행했어요! 그녀는 은정이를 다 버리고 싶은 것이다. 부모님과 친하고 싶었어요. 온전히 하나가 되고 싶었다구요! 항상 부모님은 나를 다른 학생들과 똑 같이 대했어요. 가족과 오붓이 지내고 싶었다고요. 다른 학생들이 다 나를 미워했어요. 저는 항상 외톨이였다구요! 둑이 되었던 엄마 아빠. 네 눈이 호수처럼 맑구나! 네 안엔 온갖 꿈들이 가득하구나! 부모님은 제가 항상 명랑하고 모범적이라고 생각했지요. 제 마음을 전혀 모르셨어요. 왜 제 마음을 부모님께 말하지 았았냐고요? 부모님은 제 말을 못 알아 들으셨어요. 그렇게 말했는데도요.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거든요. 저는 겉으로 명랑한 척 모범생인 척해야 했어요.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좋아하잖아요. 이제 연극하기 싫어요. 저는 꼭두각시가 아니라구요! 이제 애나로 살거라구요! 은정이는 죽었어요! 아, 언제 그들이 다시 맑게 맑게 흐르는 강물과 강둑으로 만날 수 있을까?  
72 친절한 사회/고석근
편집자
1978 2011-09-16
친절한 사회 택배를 부치기 위해 집에서 가까운 우편취급국으로 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데, 여직원이 나를 보고는 벽시계를 가리키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아직 시간이 안 되었구나!’ 분침이 9시 3분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3분전인데 문을 안 열어주다니!’ 가랑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화가 솟구쳐 올라왔다. ‘어떡하나?’ ‘도대체 이 시간에 문을 안 열어주는 게 맞는 거야?’ 도무지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판단을 중지’한 채 비를 피해 자전거를 옆 건물로 끌고 갔다. 처마 밑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물쇠를 채웠다. 나중에 찾아와야 할 것 같았다. 우산을 쓰고 다시 우편취급국으로 갔다.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그녀가 친절하게 웃으며 맞는다. ‘그녀는 내 불편한 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업무를 보는 내내 로봇처럼 친절한 그녀를 보며 나는 무뚝뚝하게 대했다. 나는 그녀의 ‘안녕히 가세요.’ 상냥한 인사말을 등 뒤로 들으며 말없이 밖으로 나왔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생각난다. 무표정하게 웃으면서 젊은 처녀들을 살해하던 연쇄살인범. 그의 얼굴을 빗물로 씻어 내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71 어머니 콤플렉스 /고석근
편집자
2192 2011-09-05
어머니 콤플렉스 나는 어이없게 돈을 몇 번 떼였다. 나는 그때마다 성격이 워낙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내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아해 했었다. 나는 그 흔한 빚보증 한번 서지 않았다. 실망하며 뒤돌아서는 사람들의 눈빛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나는 단호했다. ‘나는 돈에 얽매이기 싫어!’ 내가 돈을 떼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가 확고하게 믿은 사람들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내게 자주 당부하셨다. ‘너는 귀가 얇아 남에게 속기 쉬워. 항상 조심해라!’ 역시 부모만큼 자식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맞나보다. 돈의 단위가 클 때는 정말이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었다. 가슴이 턱턱 막히는 고통을 당하며 나는 서서히 깨달아갔다. ‘아, 내게 큰 문제가 있었구나!’ 자라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네 눈은 늘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 같아!’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쓸쓸했다. 무언가가 애타게 그립고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나만 유독 ‘갈구증’이 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불안장애’라는 병에 걸리면서 나는 남과 다른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앓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병이 나기 전에 똑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유아시절 같은데 가도 가도 빈집만 나타났다. 나중에는 꿈을 꾸면서도 ‘아, 또 그 꿈이구나!’하고 알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라면 선명히 그릴 수 있다. 신작로가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다 왼쪽 샛길로 빠져들면 마을이 나타나는데, 초가집이 십여 채 있다. 나는 그 마을이 어딘지 안다. 내가 태어나 3살 때까지 자란 골테. 부모님께서는 그 마을에 무일푼으로 들어오셔서 남의 일을 해주시며 사셨다. 그때 부모님은 어린 나를 떼어 놓고 일을 많이 나가셨다고 한다. 그때마다 이웃집에 나를 맡기셨다고 한다. 어린 나는 자주 집에 가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빈집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내 ‘갈구증’의 근원을 어렴풋이 느낀다. ‘부족한 어머니의 사랑’ 때문에 나는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나무나 쉽게 믿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비로소 ‘나’로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내 눈이 많이 안정되어 보인다’고 한다. 나는 이제 ‘내 안의 울고 있는 아기’를 뜨겁게 안을 것이다.  
70 물 위에 뜬 기름의 생(生) /고석근
편집자
2081 2011-08-25
물 위에 뜬 기름의 생(生) 내 성장기는 물 위에 뜬 기름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나는 나와 다른 아이들을 보았다. 깔끔한 옷에 희멀건 얼굴의 아이들. 까만 얼굴의 나는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 아이들의 어머니와 즐겁게 얘기하는 선생님들. 나는 그들 사이를 간신히 빠져 다녔다. 중학교 때는 ‘노는 아이들’이 버거웠다. 교복 바지의 꿰맨 부분을 숨기며 다니는 내게 그들과 마주치는 건 두려움이었다. 활기차게 걸어가는 그들 곁을 나는 종종 걸음을 쳤다. 고등학교 교련 시간을 생각하면 악몽 같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아이들은 해병대 출신의 교련 선생님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를 당했다. 항상 순종하던 나도 그에게 어깨를 M1 개머리판으로 몇 번 가격을 당했다. 속수무책 당하며 나는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이런 ‘순한 양의 성장기’를 거치며 무사히 성인의 세계에 진입했다. 하지만 중년을 지나며 나는 화병(火病)에 걸렸다. 물 위를 둥둥 떠다닌 기름은 언제고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불을 끄기 위해 엄청난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한 해병대 병사의 총구가 동료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던 불씨가 활활 타오르며 밖으로 뿜어져 나온 것이다. 우리는 해병대원들 마음속의 불씨를 보아야 한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물 위를 둥둥 떠다닌 기름 같은 마음들이 없는가 하고. 나는 유아 시절이 간절히 그립다. 내 고향 마을 주막듬. 기와집이 하나도 없어 모두 정겨웠던 초가집들. 옷소매에 콧물이 반질반질하던 동무들. 메뚜기들이 파닥거리며 날아오르던 동시 냇가. 우리들 마음은 물처럼 서로의 속을 맑게 흘러 다녔다.  
69 길 잃은 양 한 마리/고석근
편집자
2130 2011-08-14
길 잃은 양 한 마리 ‘벌거벗은 선생님’…팬티차림 황당 훈계 수업도중 분실사건 발생하자 “정직해야” 40대 초등학교 여교사가 팬티 차림으로 교실에서 학생들을 꾸짖은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7일 울산 모 초등학교 학부모들에 따르면 6학년 담임인 여교사 A씨는 지난 5일 실과 과목의 수행평가로 물물교환 체험 수업을 진행하던 중 한 어린이가 휴대전화 고리와 인형을 잃어버리자 수업을 중단한 채 학급 학생을 모아놓고 타이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 고리는 찾았으나 이를 가져간 어린이가 나타나지 않자 A교사는 팬티만 남긴 채 옷을 다 벗은 다음 2, 3분 동안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나쁜 짓이다. 깨끗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훈계했다. 당시 교실엔 남녀 학생 30여명이 있었다. A교사는 훈계가 끝난 뒤 곧바로 옷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 세계 일보(2011.07.08) A교사는 어떤 죄의식을 가졌길래 ‘티끌 하나 없는 무구한 몸’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녀가 한 행위는 퍼포먼스 같다. ‘저, 죄 없어요!’ 비명 지르는 것 같다. 만일 공연장에서 그녀가 그렇게 했다면 훌륭한 예술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공감을 표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녀가 선 자리가 너무나 현실인 교실이라는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즉 그녀는 ‘현실 감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죄는 이것이다. 그럼 그녀는 왜 그런 죄를 지을 만큼 깊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지금 돌팔매의 주인공이 되어 있기에(길 잃은 양이기에) 우리 그녀 편에 서보자. ‘길 잃은 양 한 마리’는 ‘우리가 구해야 할 존재’이기에. 그녀는 아마 깊은 죄의식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것이다. 아, 그게 뭘까? 아주 어릴 적 무슨 잘못을 했던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건 그녀에겐 지옥의 불처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 죄의식에 시달리다(겉으로 보기엔 별 문제 없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백주대낮에 그런 퍼포먼스를 하게 된 것이다. 예술이란 우리 마음속에 누구나 있는 거지만 모두 쉬쉬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공론화시켜 고통을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직접’했다. 그녀의 죄는 ‘직접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연인 줄 알았으면 보지 않았을 어린 학생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녀는 자기 생각 속에 빠져 현실감을 잃은 것이다. 자기 생각 속에 빠져 퍼포먼스를 해 버린 그녀의 죄의식의 근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별 것 아닐 수도 있겠고 엄청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죄의식의 근원을 알고 나면 우리는 그녀에게 깊은 연민을 느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길 잃은 양 한 마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 알게 모르게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는 ‘예비 죄인’일 테니까.  
68 내 살 조각 한 점 /고석근
편집자
1903 2011-08-05
내 살 조각 한 점 어릴 적 소 꼴을 베다 손가락을 많이 베었다. 아차하는 순간, 베인 자국이 하얗게 드러나고 잠시 후 새빨간 피가 송송송 배어 나왔다.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상처부위를 감싸 쥐고는 지혈을 시킨 뒤 주변의 고운 흙을 상처 부위에 뿌렸다. 그리고는 옷을 한 조각 떼어 감싸 맸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베어져 간신히 붙어 있는 살 조각을 다시 제자리에 잘 붙여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었다. 내 손을 보면 그때의 상처의 흔적들이 보인다. 하지만 손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 며칠 전에 일어난 ‘해병대 총기 사고’를 생각해 본다. 기수열외(왕따)를 당한 한 병사가 생활관에서 동료들을 향해 마구 총을 난사해 3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고 한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해병대에서 이런 가혹한 이지메가 있었다니! 선임, 후임들에게 온갖 폭력과 모욕을 견디다 못해 그는 그들에게 총을 겨눈 것이다. 예수는 왜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더 소중히 했을까. 만일 예수가 99마리의 양에 만족하며 “자, 우리 집에 가자! 한 마리 정도는 없어도 돼. 한 마리보다 99배나 많은 너희들이 있잖아.”하면서 집으로 가자고 하면 99마리 양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예수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것은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그래야 남은 양들이 안심하고 목자를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언제 길을 잃어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살 조각을 곱게 다시 제자리에 붙여야 상처가 제대로 아문다는 것을 어린 우리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데 왜 ‘귀신 잡는 해병대’는 그런 이치를 모를까. ‘대한민국의 자랑 해병’은 공허한 말이었나!  
67 아, 대한민국 남자여!/고석근 file
편집자
1971 2011-07-29
아, 대한민국 남자여! 후배 아내가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과 화해하고 싶은데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고. 나는 처음에 사소한 부부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듣고 보니 너무나 심각했다. 후배 아내는 몇 년 동안 암 투병을 하다 이제 포기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제 남은 삶을 잘 정리하고 싶은데, 남편하고 대화하려 하면 남편이 자꾸만 자신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한 여인을 본 적이 있다. ‘할 말이 남았는데...... .’ 이 말을 반복하며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망자에게 할 말이 남았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망자는 입과 귀가 없으니 할 말이 남아도 말을 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러니 그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남은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인가. 나는 후배에게 전화를 하여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어쩌다가 후배는 죽어가는 아내의 소원(겨우 대화하자는 건데)도 못 들어주게 되었는가. 한적한 호프집에서 후배와 만났다. 나는 후배에게 생맥주를 권하며 아내 때문에 얼마나 힘드냐며 위로의 말을 했다. 그러자 후배는 대뜸 ‘이제 마음이 다 정리되었다’면서 좋은 여자 만나 재혼할 거라는 말을 했다. ‘마음이 다 정리되었다니!’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아, 이래서 아내가 남편이 자신을 피한다고 했구나!’ 하지만 정말 후배의 마음이 다 정리되었을까. 나는 연거푸 술잔을 기울여 나를 술에 취하게 했다. 그래야 후배에게 내 말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술에 취하자 그의 손을 감싸 쥐고 진지하게 말했다. “ㅇㅇ아, 내 말 잘 들어. 너는 지금 자신을 속이고 있어. 너는 아내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거야. 너무나 힘들어서....... 하지만 이건 현실이야! 너무나 기막힌 일이지만 어떡해? 엄연한 현실인 걸.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해. 이런 말 있잖아. 물에 빠진 사람은 아예 자신을 포기해 버려야 한다고. 그러면 그는 물살을 따라 다시 물 위로 떠오른다고. 너도 지금 그래야 해. 너는 안 슬픈 척 하고 있어. 충분히 슬퍼해야 해. 그래야 네가 갈 길이 보여. 지금은 그냥 슬퍼하는 거야! 아내가 죽은 후는 생각하지 마. 충분히 슬퍼하면 그때 길이 보여!” 후배는 한 달에 두 번씩 혼자 술을 마시고 취한다고 했다. 사람들 있는 데서는 절대 취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그의 손을 잡고 호소했다. “왜 혼자 울어? 아내와 함께 울어야 해. 아내가 바라는 게 뭔지 알아? 마음이야! 남자들은 어떤 일이 닥치면 해결책부터 찾으려고 해. 하지만 여자는 달라. 죽는 사람이 남편에게 뭘 바라겠어? 살려주길 바라겠어? 자기 마음을 다 나누고 싶은 거야. 그런데 넌, 이 힘든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잖아. 아무리 네가 힘들어도 죽는 사람보다 힘들어? 네 아내의 마음을 함께 아파해. 지금 힘들다고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다가 네 아내가 죽고 나면 네 마음이 어떨 것 같아? 사람은 이별을 잘 해야 해. 충분히 아파하지 않으면 그 아픔이 가슴 깊이 멍 자국으로 남아서 너를 계속 아프게 해.” 대한민국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항상 숨기며 살아왔다. 감정을 숨기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 살갗처럼 닿아 서로 희로애락을 나눠야 하는데, 남자들은 마음을 나눌 줄 모른다. 그들의 마음은 항상 돌덩이처럼 굳어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왜 아픈 줄도 모르고 항상 마음이 아프다! 흐르지 않는 마음은 고인 물처럼 썩는다. 나는 오랫동안 고인 물의 시절이 있었기에 썩은 마음속에 돌덩이가 가득한 남자들의 마음을 잘 안다. 나는 후배와 헤어질 때 그를 꼭 안았다. “ㅇㅇ아, 집에 가면 아내 말을 무조건 다 들어 줘. 아무리 힘들어도 다 듣고 네 마음을 그냥 다 드러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너를 믿어. 네 마음을 믿어. 네 마음을 풀어 놔. 그럼 네가 갈 길이 보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힘들어져. 너를 믿어. 너 교회 나가잖아. 인간 예수가 신이 되었잖아. 네 속에도 그런 신성이 있어. 그 신성을 믿어. 알지?” 나는 그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66 노인/고석근 file
편집자
2008 2011-07-19
노인 지난 27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은 노인에게 욕을 하네요’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공개된 영상 속에는 한 젊은 남자가 노인을 향해 “너 오늘 사람 잘못 건드렸어. 개xx야.”라고 욕설을 퍼붓다 “나이 처먹고 씨X. 뭐하는 거야 나와.”라고 큰 소리를 치며, 이를 말리는 중년 남성에게도 “잡지 말라.”고 하는 등 큰 소리를 치며 행패를 부리고 있다. 노인은 20대 남자에게 “신발이 옷에 닿으니 다리 좀 치워 달라.”고 말했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도 노인에게 유감이 많다. 초임교사시절 국립중앙도서관에 갔다가 노인에게 봉변을 당했다. 피곤해서 눈을 감고 로비의 의자에 앉아 있는데, 뭔가 눈앞에서 휙휙 움직이고 큰 소리가 들려 왔다. 눈을 게슴츠레 떠 보니, 앞에 한 노인이 내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는 후닥닥 일어나 자리를 피했다. 이유를 묻고 말고가 없었다. 노인은 내게 피해야 하는 존재였다. 아마 그 노인은 ‘젊은 놈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어’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지팡이를 휘둘렀을 것이다. ‘쯧쯧 나 선생인데 이렇게 도망을 가다니.’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른 곳으로 갔었다. 내게 노인은 ‘헛기침의 권위만 부리는’ ‘상대하면 손해만 보는’ 그런 존재였다. 나만 그랬을까. 나처럼 노인에게 당한 젊은이들이 참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제 노인들에게 반역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완승 같다. 여기저기서 노인들이 패하는 소식들만 들려온다. 이제 내가 노인을 향해 가는 나이가 되니 자연스레 노인의 입장이 되어 본다. 참 불쌍하다. 이 세상을 참으로 열심히 사셨는데, 전혀 인정은 받지 못하고 그냥 허약한 사람들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노인들은 공경을 받았다. 농경 사회는 경험이 중요한 사회라 나이가 많은 노인이 공경을 받았다. 또 공동체 사회라 노인을 공경하면 나중에 노인이 되었을 때 공경을 받게 되니 자연스레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사회는 경험보다 새로운 기술이 중요한 사회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은 차츰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이제 노인을 공경한다는 건 도덕 교과서에나 나오는 죽은 도덕률이 되어버렸다. 이제 노인들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아무런 힘이 없는 약자가 되었다. 하지만 노인을 이 사회가 내팽개쳐버린다고 문제가 ‘노인 문제’로 끝나 버릴 수 있을까. 누구나 결국엔 노인이 되니 결국 노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노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없다. 노인이 되면 천대받게 될 텐데 어느 누가 행복할 수 있겠는가? 다들 아득바득 ‘노인이 안 되는 길’을 찾아 나선다. 힘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도 노인이라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노인 문제가 없다. 노인을 다른 호칭으로 부르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호칭은 또 금방 색이 바래져 누렇게 되어 버릴 것이다. 문제의 해결책은 노인이 될 수밖에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밖에 없다. 그들을 우리의 따스한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복지사회를 예비 노인들이 힘을 합쳐 만드는 길밖에 없다. 노인에게 행패를 부린 그 젊은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혹시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X 같은 세상! 이렇게 아득바득 살아도 결국 늙어 추하게 살게 될 텐데. 노인들을 보면 꼭 내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단 말이야! 에이, 더러운 세상. 나도 막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