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예수


문경의 한 채석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죽어 있는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예수의 죽음’을 모방한 자살 사건이라고 한다.

세상을 위해선 자신의 터럭 하나라도 뽑지 않을 인간이 이렇게 숭고하게(?) 죽을 수 있다니!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죽어갔을까. 그는 스스로 예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십자가에 못 박히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 그가 예수라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의 죽음처럼 열광하지 않는가? 만일 그가 하늘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면 이 무서운 침묵에 대해서 경악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그는 이 세상의 ‘매정함’에 대해서 치를 떨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 불의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가 간절히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택시 기사를 하며 동료들에겐 그냥 평범한 중년 사내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속에선 용암처럼 들끓는 ‘그만의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혼자 외로이 살아가는 그가 간절히 원한 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게 한 것은 그의 사랑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 평범한 택시 기사가 예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자처럼 큰 사랑을 품고 있다. 그 사랑을 이 세상에서 표출할 수 없으니 그 큰 사랑이 미움으로 화한다. 길을 가다 사람들 표정을 보면 무섭다. 사랑이 미움으로 화한 것이다. 조금만 누가 자신의 길을 방해하면 죽일 듯이 달려든다.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랑이 죽일 수 있는 미움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의 큰 사랑이 ‘예수의 죽음’으로 나타났는데, 왜 세상은 그를 불쌍한 자살자로 보고 마는 건가?

그의 잘못은 ‘자신의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데에 있다. 그는 택시 기사이다. 그런데 그는 택시 기사라는 직업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마 그는 동료 운전사들을 피상적으로 대하고 은밀히 찾아가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체성이란 가짜이다. 자신만의 망상이다.

그는 자신이 택시 기사임을 냉철히 봤어야 했다. 그의 입에 들어가는 밥, 그의 몸을 감싸주는 옷, 그의 고단한 몸을 누이는 따스한 잠자리는 그의 택시 기사라는 직업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직업이 하찮다니! 자신의 진정한 고민을 동료들에게 얘기하고 고민을 해결할 길을 함께 찾아갈 때 그는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로또 복권 당첨되듯이 인생을 한방에 역전시키고자 했다. 단 한 번에 성자가 되어 그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해결책이 인간 세상에 가능한가?

그런데 이 세상은 우리에게 부추긴다. ‘인생은 한방이야!’ 차분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을 우리 사회는 용인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교언영색에 속은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모든 것을 찾아야 한다. 자신이 머무는 자리에서 진리를 찾지 못하면 그는 어디에서도 진리를 찾을 수 없다.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그 자리가 그의 모든 것이다.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죽었다. 인생을 로또 복권으로 보는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