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남자여!
후배 아내가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남편과 화해하고 싶은데 대화가 잘되지 않는다’고. 나는 처음에 사소한 부부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듣고 보니 너무나 심각했다. 후배 아내는 몇 년 동안 암 투병을 하다 이제 포기한 상태였다. 그녀는 이제 남은 삶을 잘 정리하고 싶은데, 남편하고 대화하려 하면 남편이 자꾸만 자신을 피한다는 것이었다.  

언젠가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한 여인을 본 적이 있다. ‘할 말이 남았는데...... .’ 이 말을 반복하며 그녀는 서럽게 울었다.

망자에게 할 말이 남았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망자는 입과 귀가 없으니 할 말이 남아도 말을 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러니 그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남은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 것인가.

나는 후배에게 전화를 하여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어쩌다가 후배는 죽어가는 아내의 소원(겨우 대화하자는 건데)도 못 들어주게 되었는가.

한적한 호프집에서 후배와 만났다. 나는 후배에게 생맥주를 권하며 아내 때문에 얼마나 힘드냐며 위로의 말을 했다. 그러자 후배는 대뜸 ‘이제 마음이 다 정리되었다’면서 좋은 여자 만나 재혼할 거라는 말을 했다.
‘마음이 다 정리되었다니!’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아, 이래서 아내가 남편이 자신을 피한다고 했구나!’ 하지만 정말 후배의 마음이 다 정리되었을까.    

나는 연거푸 술잔을 기울여 나를 술에 취하게 했다. 그래야 후배에게 내 말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술에 취하자 그의 손을 감싸 쥐고 진지하게 말했다.
“ㅇㅇ아, 내 말 잘 들어. 너는 지금 자신을 속이고 있어. 너는 아내의 죽음을 피하고 싶은 거야. 너무나 힘들어서....... 하지만 이건 현실이야! 너무나 기막힌 일이지만 어떡해? 엄연한 현실인 걸.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해. 이런 말 있잖아. 물에 빠진 사람은 아예 자신을 포기해 버려야 한다고. 그러면 그는 물살을 따라 다시 물 위로 떠오른다고. 너도 지금 그래야 해. 너는 안 슬픈 척 하고 있어. 충분히 슬퍼해야 해. 그래야 네가 갈 길이 보여. 지금은 그냥 슬퍼하는 거야! 아내가 죽은 후는 생각하지 마. 충분히 슬퍼하면 그때 길이 보여!”

후배는 한 달에 두 번씩 혼자 술을 마시고 취한다고 했다. 사람들 있는 데서는 절대 취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나는 다시 그의 손을 잡고 호소했다.
“왜 혼자 울어? 아내와 함께 울어야 해. 아내가 바라는 게 뭔지 알아? 마음이야! 남자들은 어떤 일이 닥치면 해결책부터 찾으려고 해. 하지만 여자는 달라. 죽는 사람이 남편에게 뭘 바라겠어? 살려주길 바라겠어? 자기 마음을 다 나누고 싶은 거야. 그런데 넌, 이 힘든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잖아. 아무리 네가 힘들어도 죽는 사람보다 힘들어? 네 아내의 마음을 함께 아파해. 지금 힘들다고 빨리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다가 네 아내가 죽고 나면 네 마음이 어떨 것 같아? 사람은 이별을 잘 해야 해. 충분히 아파하지 않으면 그 아픔이 가슴 깊이 멍 자국으로 남아서 너를 계속 아프게 해.”          

대한민국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항상 숨기며 살아왔다. 감정을 숨기면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마음이 다른 사람들과 살갗처럼 닿아 서로 희로애락을 나눠야 하는데, 남자들은 마음을 나눌 줄 모른다. 그들의 마음은 항상 돌덩이처럼 굳어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왜 아픈 줄도 모르고 항상 마음이 아프다! 흐르지 않는 마음은 고인 물처럼 썩는다. 나는 오랫동안 고인 물의 시절이 있었기에 썩은 마음속에 돌덩이가 가득한 남자들의 마음을 잘 안다.
        
나는 후배와 헤어질 때 그를 꼭 안았다. “ㅇㅇ아, 집에 가면 아내 말을 무조건 다 들어 줘. 아무리 힘들어도 다 듣고 네 마음을 그냥 다 드러내.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너를 믿어. 네 마음을 믿어. 네 마음을 풀어 놔. 그럼 네가 갈 길이 보여.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 평생 힘들어져. 너를 믿어. 너 교회 나가잖아. 인간 예수가 신이 되었잖아. 네 속에도 그런 신성이 있어. 그 신성을 믿어. 알지?” 나는 그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