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다. 석가의 삶이 좋았다. 학교에서 불교 교리 연구발표회를 한 적이 있다. 나는 한국 불교가 ‘정의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의 불교는 완전히 어용이었다. 나는 그런 불교의 모습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꼈었다. 학생들 호응이 컸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 대학을 갔기에 대학의 자유로운 공기가 너무나 좋았다. 그 공기를 흠뻑 마시며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상상력을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다. 정의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실상을 사회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 도정에서 마르크스를 만났는데, 마르크스는 어둠의 장막으로 가려져있었다. 지도 교수님은 위험하다며 마르크스를 더 이상 찾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움츠려 들었고 내 상상력도 함께 움츠려 들었다. 대학 생활이 신나지 않았다.

 사람의 삶은 상상력의 범주 만큼이다. 내 한 몸만큼의 상상력으로 보는 세상은 신비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럭저럭 살아내야 할 의무인 삶. 나는 니체가 얘기하는 낙타가 되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다 나를 다시 신나게 한 것은 10. 26이었다. 다시 정의가 내 가슴속에서 피어났다. 구호를 외치며 맡는 최루탄 가스 냄새는 내 몸에 정의의 꽃을 피어나게 했다. 세상은 다시 신비로워지고 사람이 아름다워졌다.

 내 지나온 삶들을 생각해 보면 사회에 정의가 피어날 때 내 삶도 함께 피어났고 정의가 시들 때 내 삶도 함께 시들었다.

 사람은 우주만큼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은 우주만큼 존귀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정의가 서지 않는 사회에서는 상상력이 움츠려 든다. 항상 내 한 몸, 내 가족만 생각하게 된다. 바깥세상은 공포일뿐이다. 삶은 그만큼 쪼그라든다. 이렇게 살면 산 것 같지 않게 된다. 삶이 한바탕 꿈같게 된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항상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세상 눈치를 보고 살았으니 산 것 같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저께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집에 놀러 왔다. 모두 남자들이었다. 아내와 코흘리개들이 되어 반말을 쓰는 게 신기했다. 나도 설레는 가슴으로 그들과 어울렸다. 그들은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들은 술잔을 마구 비우며 권하더니 금방 취해버렸다. 나는 술을 마시며 얘기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 술에 취해 마구 떠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멋있는 말도 하게 되고 내 상상력은 마구 피어난다. 이것을 플라톤은 향연이라고 했다.

 이 향연을 알게 된 것은 ‘운동권’과 문학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막걸리 몇 잔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신났다. 아내 동창들은 이 재미를 몰랐다. 멀뚱멀뚱 있기에 불편하니까 다들 술에 취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평소에도 그렇게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렇다. 한국에만 있다는 폭탄주. 정의가 오랫동안 사라진 사회에 살다보니 상상력이 쪼그라들어 서로 얘기할 게 없어진 것이다. 사람은 그립고 흠뻑 술에 취해 유치한 아이들이 되어 같은 말만 반복하다 헤어지는 것이다. 아내 동창들과 헤어지며 그들은 내 손을 잡고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들의 눈은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말 하는 동물 아닌가? 말이 사라진 만남은 신나지 않다. 비척거리며 돌아가는 그들이 너무나 불쌍했다.      

 얼마 전에 ‘행복 전도사’가 자살을 했다.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나는 그분의 죽음에 대해선 두 손 모아 명복을 빌지만, 결코 그 분은 ‘행복 전도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다. 세상의 정의가 서야 한 개인도 행복하다. 정의가 서지 않은 사회에서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래야 한 개인의 상상력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정의를 세우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수 십 만부가 팔렸단다. 이제 사람들이 ‘부자 되세요’의 환상을 벗어나 정의가 행복의 필수 요건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깨어난 의식들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나가게 할 것이다. 광장에서 피어난 사람꽃 향기들은 은은하게 퍼져나가며 이 세상을 정의롭게, 행복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