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천 사백년 나무에 기대다>


 인생이란 참 기묘하다.

10억년 후 쯤이면 태양의 수명이 다해, 지구가 없어진다고 한다.

또, 몇 년 후에는 길을 잘못든 커다란 혹성이 지구의 축을 흔든다 하기도 한다.


 생명도 제 나름 대로의 명줄을 가진다 해도 발로 선 자리가 중요하다.

덕수궁이나 삼청동 길의 은행들이 그다지 좋은 자리가 아님을 충북 영동의 천태산을 보고 난 후에야 안다.

 

 그 곳에 젊지않은 시인(『시와 에세이』의 양문규 주간)이 터를 잡고 시인들을 호객했다. 그 조상 대대로의 내공과 텃세만큼의 자긍심으로, 굵으면서, 투박한 듯, 바라고 생각하던 잔치가 무러익었다. 상모잡이가 여여산방의 기를 모아 이 노쇠한 일천사백년의 지친 영혼에 푸른 수혈을 하기도 하였다.  이는, 천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근간으로 하여 여러 문인들의 작품들을 산과 나무에 최근 헌정한 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시를 읽었다.

그 시에 홀리면 홀릴 수록, 그의 실존들이 일순 정지되어 내게 속삭였다. 울림이 적으면 적은대로, 알 수 없는 이미지가 가운데 있더라도, 독일어가 아닌담에야, 소리내어 읽어 보기도 하였다. 시가 천태산의 햇볕 속에 숨을 쉬었다.


  위키피디아 검색을 통하여 우리 한반도에 수령 천년이 넘는 은행나무를 대략 알아보니, 영동을 제외하고는 영월, 금산, 양평 만이 존재한다. 뿌리 기준의 둘레는 양평 용문의 둘레가 2,3미터 더 굵게 보이지만, 어디 허리 둘레와 나이가 비례하라는 법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양산면의 은행나무가 최고령이라 해도 누가, 아니라고 대뜸, 반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장보고가 다국적 해상무역으로(재야 史家들의 일단은 '다국적 해적'이라고도 한다) 한창의 패권을 유지하며, 요즘과는 사뭇 달리 제법 대등한 수준의 문물과 문화교류가 가속되던 시절, 그러한 시절 전후에, 중국 대륙 천태산의 화엄정신이, 당시 영국사(寧國寺)의 창건과 더불어 영동으로 옮겨온 것과 국가의 위기가 절정으로 달렸던 것들이 시대배경이 아닌가 한다.

   9 세기 쯤의 왕건의 참모였던 도선대사는 풍수가 밝았다 하고 태조 이성계의 참모였던 무학대사는 경복궁터 점지 전에 도선대사의 현현을 보아 북악산 아래에 도읍을 정했다, 한다.  원각국사는 천사백년 전, 나라가 어려울 시기였던 , 절박한 때, 기도도량으로 점지하여, 나라의 흥망과 온라인으로 연결시켰던 영험의 "터"에 은행나무가 자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괄하여 최고령으로 버티고 있는 사연인즉, 몹쓸 할큄으로 강들이 울고 있는 울음을 어찌 이 나무가 몰랐겠느냐,는 것이다.

눈물 대신, 일순에 온 몸(은행잎)을 흘림으로, 빈 몸으로, 시제(詩祭)를 열 수 있었던 사연이 깊게 읽히기도 하였으며, 우리의 지금, 형국이 그만큼, 처절하다는 것으로 해석해 보기도 하였다. 적지 않은 시인과 작가들이 천사백세의 나무를 위로했다. 무슨 큰 응답을 바라고 올린 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시를 걸었다고 보았다.


  결국은, 사람이다. 한 시인이 이 소리를 들었고, 문학인,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으로 일천 사백년 묵은 나무에 깃드는 영혼과 교감하는 시제를 발원했다. 지방 문단에 이런 흡인력을 가진 작가를 가진 우리의 좌표가 차라리 다행이다.  소생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문학정신을 이토록 수십년 일궈온 저력에 감탄을 감추고 싶지않다. 필자는 그리 우아하지 못하며 나아가 까칠하기까지 하다. 그런 모자란 점이 글쓰기를 하면서 스스로 위무할 수 있어 덜 까칠해지고, 욕심도 줄어들고, 자신의 게으름까지 관대해지기도 한다.  덤으로, 작가를 뜨겁게 바라보는 시선이 빈약하나마 생기다 보니, 사진의 형태로 담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올 해는 소생에게도 이상한 해였다.   지난봄에 찍은 사진이 작가의 시서전 바이오그래피 (작가소개) 쪽에 저작권이 표기된 채로 올랐다. 졸지에 ‘사진작가’가 되었다. 희한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베껴쓴 울산바위 시의 흥취에 내리 날밤으로 그린, 아크릴 혼합재료 그림이 ‘추천화가’ 대접을 받고 스리랑카 수교33주년 대통령 초청 기념전으로 작품만 갔다 왔다. 놀랠 일이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였다.


  한국어로 문학작품을 창작하며 발표하는 공간이 많은 듯하여도, 다 솎아 드러내 볼랴치면, 그리 많지 않은 시대, 하루하루의 희망이 절망으로 가라앉는 이 때에, 벼랑으로, 강으로, 목줄을 내놓기 전에 다시 우리 주변에 있는 느긋한 나무에 깃대어 위로 받으며, 바랄 수 없는 꿈을 계속 꾸게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끊임없이 바라는 그런 해원(解怨)의 시를, 작품을 하나라도 써야 되겠다는 발원을 해본다.


   깃댈만한 나무, 깃들만한 공간, 깃댈만한 우리들의 멘토들이 하는 긴 이야기들로 위안 삼아, 뿌리깊은 나무가 곁 생명에 힘을 주듯, 우리 또한 서로 상생하는 잃어버린 낙원을 이 추운 겨울 다시 생각해 본다. 지구가 사라지기 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