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날다!!

    - 미하일 엔데의 동화 ‘멋쟁이 용과 맷쟁이 나비’를 읽고


 옛날 옛날 시커먼 바위 탑 속에 용이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용은 온몸이 가시로 덮여 있고 아무 때나 불을 내뿜고 성질도 고약하다. 어느 날 딸국질 박사가 책 한 권을 품고 그 탑을 찾았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과학자답게 그 용을 이리저리 재고 조사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자던 용은 깨어나 딸국질 박사를 책과 함께 꿀꺽 삼켜 버렸다. 하지만 책이 어떻게 소화될 수 있으랴. 용은 속이 뒤틀리고 메스꺼워 한참을 괴로워하다 책과 함께 박사를 토해내고 말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박사는 줄행랑을 치고 책만 한 권 남았다. 용은 궁금해 책을 들춰보니 이런 내용이 적혀있는 게 아닌가? ‘용이 불을 내 뿜는 건 사실 겁이 많아서다. 용은 겁쟁이다.’ 불 같이 화가 난 용은  “난 겁쟁이가 아냐! 난 진짜 겁쟁이가 아니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며 책을 갈기갈기 찢고 여기저기 다니면 못된 짓만 하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아 용은 결국 어린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그때부터 용은 끙끙대며 앓아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바위 탑 속으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으며 이제는 대학생이 된 내 큰 아이를 생각했다. 큰 아이가 5살 때였다. 아이는 대문 밖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2층 창가에 붙어 서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길을 가던 두 여자 아이가 큰 아이 앞에 서더니 그 중 한 아이가 큰 아이 가슴을 꽝 쳤다. ‘아니?’ 나는 당황하고 있는데, 다른 여자 아이도 큰 아이 가슴을 꽝 치는 게 아닌가? 그러자 큰 아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안 아프다!” 했다. 그러면서 그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찰나, 나는 아이를 도와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장난이야! 괜찮아.’ 나는 씩 웃어주었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이 눈에 선하다. 큰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여자 아이들을 혼내 주었어야 하나? 걱정은 했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 어린이 집을 다녀온 큰 아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나는 큰 아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나를 닮아 마음이 섬세하고 겁이 많은 큰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만의 방법이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아이 혼자 찾아야 한다.

 큰 아이의 소심한 마음 ‘겁쟁이’는 남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그 ‘겁쟁이’를 숨기기 위해 강한 척 못된 짓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만 상해 자기만의 세계에 유폐되어 버린다. 용은 여성성을 비유한다. 서양 동화들을 보면 남자 아이들은 집을 나가 용 같은 괴물들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남자는 남자다워야지 여자 아이들처럼 눈물이나 질질 짜면 안 돼! 서양에서는 이렇게 ‘남성다움’을 키워낸다.

 그렇다면 큰 아이 마음속의 여성성 ‘용’은 사라지게 해야 할까? 아니다. 그 섬세함을 길러야 한다. 타고난 섬세함을 길러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해야 한다. 큰 아이가 그 여린 마음을 이기려 태권도를 배운 적 있다. 하지만 천성을 어찌할 수 있으랴. 한 달 정도 다니다 그만두었다. 큰 아이는 강한 척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굴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큰 아이가 자신의 굴속에서 나올 수 있을까?


 파란 풀이 예쁘게 자란 풀밭에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춤을 추고 있다. 그 나비는 성격이 워낙 예민해 조금만 시끄러운 소리가 나도 견디지 못한다. 결국 그 하얀 나비는 고요한 숲속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나비가 있는 숲속으로 날아왔다. 벌의 윙윙대는 소리를 싫어하는 나비에게 벌은 이렇게 놀려준다. “흥, 겁쟁이 같으니라고!” 하얀 나비는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말했다. “난 겁쟁이가 아냐! 난 진짜 겁쟁이가 아니란 말이야!” 그날부터 나비는 사뿐사뿐 걸어 다니지도 않고 춤도 추지 않았다. 점점 더 혼자가 된 하얀 나비는 먼 사막으로 들어가서 꼭꼭 숨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사막에 살고 있는 뱀 한 마리가 나타나 하얀 나비에게 말했다. “내 참 별꼴이야! 매일 같이 나쁜 짓만 골라하던 용이 겁쟁이라는 말이 싫어 저 산꼭대기 바위 탑 속에 혼자 틀어박혀 있대!” 그 말을 들은 하얀 나비는 한참을 고민하다 먹을 것을 싸서 용을 찾아 나섰다.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용에게 말했다. “당신도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제부터 우리 함께 멋쟁이가 되기로 해요. 나도 ‘멋쟁이 나비’가 될 거예요.” 나비의 말에 용기를 얻은 용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나비 앞에 ‘멋쟁이 용’이 되기로 약속한다. 둘은 “약속!”하고 외치고는 사이좋게 바위 탑 밖으로 나와 훨훨 날아갔다.


 자신의 굴속에서 끙끙 앓던 큰 아이는 그림이라는 나비의 도움으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큰 아이는 집에 오면 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재주는 타고 난 듯했다. 어느 날 어린이집을 다녀온 큰 아이의 얼굴이 밝았다. “아빠, 내가 아이들에게 얼굴 그림을 그려줬더니 참 좋아해!” 나는 큰 아이를 꼭 안고 눈시울을 붉히며 크게 웃었다. “그래, 우리 현웅이 참 잘했어!” 그 뒤 아이는 미술대회에 나가 큰 상을 받았다. 이제는 외톨이가 아니라 인기 있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다! 사람을 구원하는 건 끝내 자신이다. 나비같이 날아오르는 상상력!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는 기적! 그런 상상의 힘만이 인간을 구원한다. 그 힘은 누구나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 간절히 기원하면 그 힘은 솟아난다. 성경에서는 이 힘을 성배라고 하지. 영생의 샘물.

 큰 아이는 군대에 가서도 이 힘으로 견뎌냈다. 큰 아이가 입대하고서 나는 항상 가슴을 졸였다. 군대의 무슨 사고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가슴이 타 들어갔다. 하지만 큰 아이는 잘 견뎌냈다. 이번에도 같은 수법이었다. 고참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었단다. 고참들이 참 잘해준다며 명랑하게 말하는 큰 아이의 전화 목소리에 눈물이 다 났다.     

 이제는 제대하여 복학을 기다리는 큰 아이. 여전히 친구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생일 선물로 주며 잘 지낸다. 섬세한 성격으로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내가 문학을 만나기 전까진 왜 그렇게도 살기가 힘들었는지, 언제나 얼굴 표정이 굳어 있고, 가슴은 먹먹했는지, 그래서 문학은 내게 생명수다.


 나비는 우리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혼자 자신만의 굴속에서 끙끙 댈 때 한 줄기 빛으로 나타난다. 그 빛은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환하게 밝히며 우리를 빛과 함께 날아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