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부할 때


 내가 학교 교사를 할 때였다. 몸이 아파 조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아이들을 택시에 태워 보냈다. “몸이 최고 중요해. 공부는 다음에 해도 되니까. 몸 조리 잘해. 알았지?”하면서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다음의 글을 읽고는 가슴을 큰 망치로 얻어맞은 듯 했다.


 내(육징=양명의 제자)가 홍려시에 잠시 머물 때 갑자기 집에서 편지를 보내 아이가 병에 걸려 위급하다고 알려왔다. 내 마음은 매우 근심스럽고 번민스러워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때 바로 공부를 해야 한다. 만약 이런 때를 놓쳐 버린다면 한가한 때의 강학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은 때 연마해야 한다. - ‘견습록’에서


 아,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아, 양명 선생.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던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잘한다고 했던 행동들은 얼마나 어리석었나! 내게 배운 제자들은 얼마나 잘못 배웠단 말인가? 


 지난 23일 오후 저녁 강의를 준비하다 본 TV 뉴스특보. 연평도에 포탄 수백 발이 떨어져 불바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이 뉴스를 보며 앉아 있을 수 없어 눈을 감고 누워버렸다. 아, 이것은 지금 실제상황이다! 심장은 마구 뛰고 도무지 안정이 되지 않았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전방에 있는 작은 아들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잠시 후 호흡을 안정시키며 앉아 TV 뉴스를 보았다.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불안에 떨면 안 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는가!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양쪽의 통치 권력이 원하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국지전이다. 이 상황 속에서 피해를 보는 건 약한 우리 국민들. 경제는 또 얼마나 출렁일 것인가?


 강의 시간에 연평도 사건을 토론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한다. 불안에 떨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실상을 직시하자. 그러면서 NLL, 평화통일을 향한 그 동안의 노력들, 북한 정권의 권력 승계, 지금 무력 충돌로 치닫는 남북한의 상황, 국제 정세 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니 힘이 나고 희망이 생겼다.         


 지금 같으면 나는 아파서 조퇴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살다 보면 항상 위기가 닥친다. 병이 날 때도 있고, 사고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눈 감고 회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도망 다니다 보면 점점 더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져 평생을 도망만 다니다 일생이 끝난다. 항상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위기를 정면으로 쳐다보면 헤쳐 나갈 길이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네가 아픈 것을 직시하고 아픈 이유가 무엇인지 네 생활 습관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가장 좋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사람은 우주만큼 존귀하다. 한 사람의 생각이 옳으면 인류 전체가 언젠가는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나’ 속에는 인류 전체, 우주 전체가 담겨 있다. ‘나’ 한 사람이 생각한다는 건 인류, 우주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불안한 시기에 깨어 있으면 역사는 바르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무서워 자신 속으로 꼭꼭 숨어버리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우리들을 짓이기며 지나갈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불안에 떨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한 상황을 직시하면서 헤쳐 나갈 길을 찾는 사람이다. 위기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자신에게 닥치는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운명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긴박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28일 핵 항모까지 동원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 군사 대결로 가는구나! 사람들은 28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28일은 무사히 지나가겠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밤 택시를 타고 오며 택시 가사에게 슬쩍 떠 보았다. 그분들은 세상인심을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요즘 전쟁 날까 너무나 불안하네요.” 그분은 여유롭게 말했다. “전쟁은 절대 안 나요. 걱정 말아요.” “그래요? 그래도 전쟁은 우발적으로도 많이 난다고 하던대요.” “남북 다 전쟁을 원치 않기에 절대 안 일어나요.” “근데 전쟁은 안 나더라도 전쟁 대비한다면서 돈을 무기 사는데 다 쓰면 어떡해요? 걱정이네요.” “그런 건 몰라요. 신경 안 써요.”

 그렇다! 신경 쓰지 않는 것! 여기에 함정이 있다.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며 엄청난 국방 예산을 증액하는 것, 이것이 현 권력이 속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되면 국민은 불안에 빠져 세상사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 그새에 우리나라는 수구세력이 이끌어 갈 것이다. 힘을 가진 자들이 서로 싸우는 척하며 서로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 이런 구도가 형성되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최악이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할 시점에 이 무슨 비극인가?            


 당분간 불안한 시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때가 가장 공부하기 좋은 때. 우리나라 근현대사도 한 눈에 읽을 수 있고, 세계의 경제와 정치의 속성도 훤하게 보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이 선명히 보이는 때. 공부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쓸모 있어야 진정한 공부다. 우리 모두 이 난세를 사는 지혜를 공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