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창궐이 우리에게 던지는 고민


(산업화, 대량생산, 농가 고소득, 부자 농부, 저 푸른 초원 위에, 한 백년 동안 님과 함께.)


     우리의 농업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하는 참담한 때에 놓여있다.

소와 돼지들이 매몰되고 있다. 이 시대가 왜 이런가.  구제역 바이러스는 고전적 축산의 경우에 고작, 1%의 치사율만 보이는, 발굽수가 짝수인 집짐승에게 걸리는 흔한 질병 중의 하나였다.  단지, 유산율이 높다던지 하여 면역력이 약한 어린 발굽동물에게는 사망률이 40 내지 50% 가 되어 최소한의 번식장애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전적으로  깊은 골짝 농업이라던지 외진 들녘이라면, 자연치유의 기회가 늘려있(었)다.  문제는 과밀사육과 운동부족, 동물쪽에서 먹거리의 변화, 차와 사람들의 빈번한 왕래와 교역들의 무대가 지구화된 것이 이 지경으로 동물을 매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보자.  우리의 환경과 처지가 비정상적이라는 1:29:300 의 확률로 설명하는 경고에서부터 시작하여 큰 재앙을 예고하는 바로 직전의 징후로 본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소는 물집이 잡히고, 침을 흘리게 되고 혓바닥 껍질이 벗겨지고, 입을 쩍쩍거리고,  돼지는 콧등에 물집이 잡히고 발굽에 물집이 잡힌 후 껍질이 만들어지다가 떨어져 나오며, 걸을 때마다 절뚝거린다.  이 증상들이 대표적인 징후의 발현이며, 면역력 약한 어린 동물은 증상 이전에 죽는 경우가 많다.  기업적 양돈을 하는 이들도 체중 20킬로 까지 키울 시점까지 30%의 어린 돼지들이 죽는 것은 정상범위에 속한다고 한다. 즉, 어린 동물의 사망례도 40~50% 까지 일시적으로 높을 뿐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돼지는 다산의 짐승이 아닌가.


    우리가 잘 알지 못한 먹거리의 위해는 진행중이다.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주로 생산하는 유전자 재조합(GMO) 옥수수와 콩을 수입하여 먹인 가축들의 근육내로 기억되어 우리의 몸 속으로 들어와 우리의 몸구조 일부분으로 자리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이 제품에서 3% 정도 재조합원료가 사용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으니 동물용 사료에서는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 상황은, 밭작물 보다 축산을 통해서 지역과 가계를 돕던 체계가 심각할 정도로 벼랑에 몰린 듯 하다.  우리의 소비 또한 되집어 보아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평생 선택의 연속으로 살아온 지난 날 들이었지만,  이런 축산재앙의 상황에서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속되는 먹거리와 밥상을 복기해 보아야 할 즈음 이기도하다.  우리가 이야기의 주체가 되질 못하고 매일처럼 특정 의도와 목표를 위해 장식되고 연출되는 듯한 뉴스거리에 갇힌 채, 판단조차 흐려지는 세상에 있다.   광우병의 우려기준이 당장 없다면 유럽과 일본이 어찌 대처하는지를 따라만 주어도 면책을 꾀할 수 있듯이, 이제, 구제역 살처분 정책으로 앞으로 한 두달 이내에 확산을 막지 못하면 포기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2001년 북잉글랜드의 구제역 (소각)살처분 정책으로 200억 달러 이상을 사용하였다(소 일천만 마리의 연간 매출액은 6.5억 달러였다)고 하며, 당시 자살한 농부가 60여명에 달하였다, 한다(앤드류 作, 대혼란).  국내의 수의학자인 강석진의 연구에 따르면, 그가 창안한 압축가열식 방법으로 200킬로의 사체를 처리하는데 10리터의 연료만 소용된다고 하였으며, 이런 가열, 소각법이 환경오염을 유발할 우려가 높은 비닐,생석회 폐쇄공간 매몰법 보다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다급한 작금상황에서는 현장적용에 걸림돌이 있음이 아쉽기만하다.

(참고: http://www.pnp21.net/gn/bbs/tb.php/gr01_poultry_month/440)

   

   

   순환적 유기농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작, 미국 상류층의 1% 의 부류들은 유기축산물로 호식한다고 한다. 수십년전 이병철 회장이 일본에서 유기농축수산물을 항공편으로 들여와 식사를 하곤했다는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 낯설지않다.  마치, 배추농사하는 농가의 안주인이 자기 식구들 먹이는 채소에 약을 치지 않고 손으로 벌레를 잡는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모든 먹거리가 이리 대순환 속에 있음으로, 소규모 자작농으로 돌아가야 멀쩡한 육체를 보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듯 하다.  부디, 금융구조 속에 메인 노예가 되지 말고, 학벌과 원치않는 직업에 메이지 않는, 백화점 쇼핑, 홈 쇼핑 다이얼을 돌리지 않는 안주인과 고무신 흙털며 사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이건만.  대부분 금융피라미드 구조사슬처럼, 불확실하고도 예측되지 않는 미래를 담보하여 빚내서 잔치를 하는 게 오히려 정상처럼 여기고 있는 우리의 처지는 다름아닌 현대 금융자본가들이 놓은 덫과 올가미에 걸린 신세는 아닌지.

농사꾼 아버지를 둔 시인들은 이제야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가득한 12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