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와 범인 사이


 석가 곁에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아난다는 ‘도대체 부처님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 거야?’하고 ‘스승의 24시’를 관찰해 보았다.

 석가도 아침에 일어나고, 공양을 하고, 그릇 씻고, 뒷간에 가고...... 범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설법하는 거야 당연한 거고. 그렇게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던 아난다에게 그동안 보이지 않던 충격적인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난다는 도끼로 머리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 바로 이거였어!’     

 그가 본 것은 스승의 24시는 ‘매순간이 똑같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보통 사람들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별하며 산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밥 먹고 차를 타는 것은 직장에서 일을 잘 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시간들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달랐다. 아침에 일어나 발을 씻으면서도 석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듯이 했다.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것과 그릇 씻는 것의 무게가 같았다.

 어떤 일에 온 정신을 집중해 본 사람은 안다. 그 집중이 우리 안의 혼을 깨워 꽃처럼 피어나게 한다는 것을. 석가는 매순간을 이렇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에겐 매순간은 영원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삶과 죽음이 따로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극락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아난다는 ‘오랜 중생 생활’을 끝내고 깨달음을 얻는다.


 요즘 가끔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께서는 자주 식전에 논에 다녀오셨다. 물꼬를 보러 가시는 거였지만 꽤 시간이 걸리셨던 걸 보면 자라나는 벼들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셨음에 틀림없다. 농사짓는 아버지에겐 매순간이 중요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농사는 하늘이 7할을 짓는다 하니 아버지는 항상 정성 가득한 마음으로 일하셨을 것이다.

 아침을 드시고 나면 외양간 앞에 쪼그려 앉으셔서 소가 여물을 먹는 것을 바라보셨다. 소를 선(禪)하시는 아버지 모습은 내 앞에 숭고한 그림으로 남아 있다.

 

 며칠 전에 공기업 지점장 자리에서 명퇴한 고교 선배와 술잔을 기울였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없다는 게 너무나 큰 고통이라고 했다. 선배의 얼굴엔 권태가 가득했다.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 할 일이 없다는 게 고통인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평생을 ‘중요한 일’에만 집중해온 삶의 업보이다. 중요한 일이 사라졌으니 중요치 않은 것들밖에 남지 않았다.


 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데! 우리들은 이렇게 되어버렸나! 아버지 세대에 누렸던 ‘살아있음의 신비’를 되찾아야 하는데, 개인 차원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른바 천민자본주의인 우리 사회에서는 일하는 것, 소비하는 것, 과시하는 것, 외에는 다 사소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런 사회 풍토에서는 돈이 있어도 하루하루의 삶이 고역인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향해 줄달음질치는 사람들. 아, 과연 중요한 것이 따로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