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직업


 어느 블로그에서 ‘꿈과 직업’에 대한 글을 읽었다. 아이가 장래 꿈을 경찰이라고 한 것에 대해 어머니가 통탄하는 내용이었다. ‘어떻게 꿈이 직업이야?’

 나는 이 글을 읽는 순간, ‘그럼 직업 말고 꿈이 따로 있나?’하고 새싹처럼 뾰족이 꿈의 잎을 내미는 아이 마음을 생각했다.

 어머니 마음도 충분히 이해된다. 이 우주를 다 품어도 남을 큰 가슴을 지닌 아이가 겨우 한 직업을 꿈이라고 하다니! 직업이란 결국 이 세상을 살아가는 ‘생계 수단’이 아닌가? 이런 것을 꿈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이 너무나 척박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우주만큼 크고 거대한 아이의 꿈. 아이는 지금 저 산도 옮기고 저 해의 방향도 바꾸는 신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꿈이 이 세상에서 모습을 드러내려면 결국 직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아이는 아직 추상적인 능력이 부족해 이 세상의 구체적인 것을 통해 꿈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가 생각하는 경찰은 우리가 생각하는 경찰과 다르다. 그 어머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경찰 이미지로 아이의 꿈을 재단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 ‘박제화 된 경찰’이 아이의 꿈일 수는 없게 되는 것이다.

 나도 한 때 경찰을 꿈꾸었다. 가정 사정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중학생인 나는 학교가 파하면 학교 도서관에서 코난 도일의 ‘홈즈’를 읽었다. 흥미진진했다. 돋보기 하나로 살인범을 잡는 홈즈는 나의 우상이었다. 나는 탐정이 되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 때 나의 꿈은 탐정이었다. 그렇다고 정말 내 꿈이 ‘탐정’이었을까?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철도공무원으로 취직했다. 부모님이 원하신 월급쟁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직업은 내 꿈이 될 수 없었다. 애초부터 원한 것이 아니지만, 직장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상명하복, 한 개인으로서의 존엄성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 직장에서는 그 직업에 내 꿈을 실을 수가 없었다. 결국 튕겨져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이 되었다. 하지만 이 직업도 내 꿈이 될 수 없었다. 역시 숨 막힐 듯한 직장 분위기가 나를 옥죄었다. ‘스승’이 아니라 ‘가르치는 직업인’은 내 꿈이 될 수 없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기계 부품은 사람의 꿈이 될 수 없었다. ‘언제 그만두나?’

 하지만 교육운동을 하며 직업이 꿈이 될 수 있는 기적을 맛보았다. 교감, 교장 눈치를 보지 않게 되니 내 눈은 학생의 얼굴로 향하게 되었다. 아이들 표정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교사라는 직업이 내 꿈을 오롯이 담았다.

 

 직업이 꿈이 될 수 있는 기적을 맛본 나는 새로운 직업을 향한 여정에 나섰다.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그러다 글 쓰는 일에 정착했다. 내 꿈은 안정을 찾았다. 아직 글 쓰는 일을 직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이 미흡하지만 내 꿈을 오롯이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글을 쓰는 것은 내 직업이다.                   


 꿈이 경찰이라고 한 그 아이의 꿈을 어머니가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경찰’이라는 까만 두 글자가 품고 있는 아이의 꿈들을 어머니가 다 볼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이 세상의 바다를 직업이라는 배를 타고 멋진 항해를 할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