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려(律呂)로 가는 길


   지금 우리가 당장 자가용 자동차를 버릴 수 없으며, 저가 대량생산물 또는 수입상품들의 방송광고를 외면할 수 없는 세상에 있다.  여전하게도 경고 신호음은 축산농가와 강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때이다. 신자유주의 논리체계에서는 이제, 중국,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축산물의 유입으로 우리 농촌에는 강건너 포성(咆聲)으로 들릴 것이 분명하다. 구제역 종식 이외는 이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없다.


   우리의 몸을 국가에 방기(放棄) 당한 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면 치료비 마련을 위해 스스로 악다구니로 살아가는 옹졸한 인생이라면, 우리의 먹거리 또한 국가에 담보 잡힌 채, 스스로 챙겨 먹으며 겨자를 삼키듯 살아야 하는 치졸한 인생이 된다면, 이제는 가진 자만의 의료와 먹거리가 된다면, 결국 우리의 인생이 사육 당하는 동물과 어떤 차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개인 스스로 병나지 않도록 처절하게 관리하여야 하며, 먹거리 조차 스스로 선택하거나 줄이거나 하며 살아야 한다.  모두가 자급이 가능한 심산유곡에 살 수도 없다. 결국은 제대로 된 치료와 음식에 정당한 가격을 스스로 마련해서 취득해야 하는 “고급 상품” 으로 남게 된다.  혼인을 할 수 없으며, 자녀의 교육비를 줄여야 하며, 자녀 수도 줄여야 하고, 책과 음악도 아껴서 보거나 들어야 하고, 자동차를 포기하고 열차와 버스를 타야하며, 술과 담배도 상당히 줄여야 한다.  정성들여 키운 유기축산인증 한우를 기르는 소설가 박兄 목장에서 만든 쇠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두 달 정도 소고기契를 들어서 반 근(半斤)만 사야 할 것이며, 박兄 농장의 축분(畜糞) 한 드럼에 콩 서되를 지불하고선, 집 밭에 뿌리고 오년 남짓 땅을 유기농 밭으로 복구하여 직접 야채농사를 짓고, 남는 것은 전업농 권시인과 합쳐 진짜 유기농 생협에 포장해서 팔아야 할 것이며, 손주를 국립대학 보낼 것이 아니라 유기농 대안학교를 졸업시켜 진짜 농업을 대물림해야 할 것이다.


   시절이 흉흉하니, 성경 에스겔 5장 11절, 누가의 복음서 21장 11절의 예언에 맞장구치기도 하고 브라질의 예언가 쥬세리노의 예언, 화성소년의 예언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우리에게 지구가 허락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치더라도 여러 사설이나 전문가들의 축산분야 먹거리 진단과 조언은 이러하다.

- 생산성위주의 대규모, 집중정책을 친환경적 중소규모 농장지원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 통큰치킨이 지역경제와 무관하듯이 대규모 농장도 그러하다.

- 사람들에게도 그러해 왔듯이 동물들에게 너무 많은 화학물질이 처방전도 없이 남용(濫用)되어 면역력이 되살려지지 않는다, 등이다.


   지자체의 축산이 권장될 수 있는 지형은 차단방역이 유리한 고립된 지형, 환경오염방지가 관리, 제어될 수 있는 지역, 분뇨처리가 더욱 친환경적으로 순환될 수 있는 체계(특히, 이는 동물에 화학물질이 지극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만 분뇨 또한 유기농업에 사용할 수 있으므로)로 가야한다면 당연 전국토의 지가를 올리는 노력을 줄여야만 경쟁력있는 농장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며 당연한 귀결로서 소수 적정생산 유기축산물의 소규모별 생산과 유통으로의 전환이 당면과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보다 더 큰 시련들을 벌써 잊고 있듯이 커다란 충격들은 너무 쉽게 잊는 경향이 있다. 절박한 징후를 외면할 수 없는 때가 이미 왔다.

돌이켜보면 자식은 큰아들에게만 몰빵이요, 장사는 큰 판들만 마름잡이로 내세우는 세상에 있(어왔)고 망할 듯한 금융자본은 명(命)이 길고 먹거리생산 농업분야는 목숨만 부지하는 듯하다. 종이돈과 숫자로 돈놀음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 먹거리생산의 농자천하지대본은 점점 균열을 돌파할 여력조차 급속하게 소진하기도 하고 탈진 당하기도 한다. 언젠가 우리 것을 글로발이라는 귀신에게 다 빼앗기기 전에 세상을 바꾸거나 바뀌어 농민이 건강해지는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결국, 문화(식생활 문화)요, 정치(상생과 율려)요, 섬김의 사상(생물 동등권, 神聖性, 이타주의) 속에 마스터 키(만능열쇠)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