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月印千江)

 - ‘보름달의 전설’을 읽고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가 쓴 그림책 ‘보름달의 전설’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반당한 뒤 깊은 산의 동굴 속에 은둔하게 된 성자와 사랑하는 여인을 욕보인 남자를 죽이고 허랑방탕하게 살아온 도둑- 이들이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고 함께 생활하던 어느 보름달 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중요한 가치를 두는 사랑과 학문, 신앙을 차례대로 겪으며 모든 것에서 벗어나 지고한 정신세계를 추구한다. 성자는 언젠가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자 마침내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생 방탕하게 살았고 회개할 줄도 모르는 도둑의 눈에는 스승이 본 대천사가 실은 나쁜 정령의 장난임이 선명히 보였다. 성자가 본 것은 그의 집착이 빚어낸 허상이었던 것이다.

 성자는 도둑에 의해 완전히 깨닫는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성자를 구원한 것은 한평생 방탕하게 산 도둑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며 괴테의 ‘파우스트’를 생각했다.

 

 파우스트는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가를 규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학자이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하였으나 삶의 비의에 도달하지 못한다. 

 절망에 빠져 방황하는 파우스트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메피스토펠레스가 대답했다. “나는 악을 추구하지만 결국은 선을 이룩하는 힘의 일부이다.”


 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이 힘’ 때문에 힘들어 한 것 같다. 마음은 물과 같이 흐르게 해야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내가 의도적으로 ‘선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니 마음은 제대로 흐르지 못해 꾸룩거리며 마구 아우성을 쳤다. 항상 마음이 아팠다. 마음을 더 다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더 힘들어하고 나는 지쳐버렸다. 지친 마음을 추슬러 일어나면 세상은 정글처럼 무서웠다.

 어느 날부터 내 마음은 둑처럼 터져버렸다. 눈물이 되어 한없이 흘러나왔다. 텅 빈 마음은 시원했다. 헛헛 웃음을 터뜨렸다. 스스로를 비우며 마음은 차츰 노래하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엉켜있던 돌멩이들이 노래의 근원이었다. 흐르는 마음은 맑아지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비친 수없이 많은 달들도 함께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