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복지 국가여!


 작년에 이빨이 두 개나 부서졌다. 아픈 이를 참고 견디던 어느 날, 이를 닦다가 뭔가 이상해 입 안을 보았더니 아픈 이가 부서져 나갔다. 헉! 이럴 수가! 입안을 헹구고 치과에 갈 채비를 했다. 속으로 치료비 걱정을 하는데,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자기야, 아무리 비싸도 잘 치료해.”하면서 카드를 준다. “응.”하고 집을 나오는데, 세상이 아득하다. 이때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나?

 이 닦다가 두 번이나 부서진 이를 치료하며 노후가 걱정이다. 늙으면 아픈 곳이 많아 생활비의 반이 병원비라는데...... . 치과에서 힘겨운 치료를 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항상 치료비를 계산했다. ‘얼마나 나올까?’


 나는 그동안 ‘돈 걱정 없이’ 살았다. 아이들에게 그 흔한 해외 연수 하나 보내지 않고 스키니 해수욕장이니 하는 것들하고도 담을 쌓고 사니 생활비가 적게 들어 돈에 쪼들리지 않고 살았다.

 내 얄팍한 주머니로도 나는 항상 즐겁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는 자주 내 얄팍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군대에 갔다가 휴가를 나오면 삼겹살도 사 줘야 하고, 세배 돈의 단위도 커졌기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건 역시 병원비였다. 한의원에서 약을 짓고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으며 내 머릿속은 항상 돈을 계산하고 있었다. 내 자신이 자꾸만 초라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돈 걱정 없이 살던 어느 날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강의가 끝나고 도서관의 담당 직원이 나를 보자며 구석으로 끌고 갔다. 나는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순순히 따라갔다. 그녀는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수그리고는 내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네?’ 나는 난데없는 그녀의 행동에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왜 그러세요?’하고 농조로 말했다. 그녀가 더듬더듬하며 말하는 요지는 이랬다. 몇 달이나 내 강사료를 다른 사람에게 부쳤다는 거였다. 전에 강의했던 서예 강사에게 부쳤는데, 그 강사가 왜 자꾸 돈을 부치느냐고 해서 알게 되었단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뭘 그런 것 갖고 그러세요?’ 나는 통장을 확인하지 않고 있었기에 강사료가 입금되지 않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돈이 별로 필요 없던 시절이었다. 그 뒤 그분은 내게 참 잘 해주었다. 나를 꽤 인품이 있는 사람으로 착각한 것 같다. 지금 같으면 내가 먼저 강사료에 대해 물었을 것이다. ‘인품’이란 돈 걱정 없을 때 나오는 게 아닌가? 지금 내 머릿속은 돈으로 가득 차 있어 천박하기 그지없다.

 

 돈이 한 40억 정도 있으면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가능할까? 계산상으론 가능한데 현실적으론 불가능할 것 같다. 그 돈으로 혼자서야 넉넉하게 살 수 있겠지만 자식들은 어떡하나? 사업하다 망한 자식은? 큰 병 걸려 병원에 누워있는 자식이라도 있으면? 또 취직 못한 자식은? 보육비에 허덕이는 며느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영어 유치원에 가려는 손자손녀들은?

 사회복지가 안 되면 웬만한 돈이 있어서는 안심하고 살 수 없을 것 같다. 한 100억 넘으면 가능하려나?

 

 요즘 복지가 화두다. 제발 복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소한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나아가 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복지가 되어 세금 폭탄 좀 맞아봤으면 좋겠다. 내 전 재산이 초토화되어 초가삼간만 남았으면 좋겠다. 그 초가삼간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다면 내게 대한민국은 지상낙원이겠다.


 복지 국가의 문제점이라고? 지금 막 죽어가는 환자에게 병 나은 뒤를 걱정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