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보며

 


 한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기 전에 이웃집 문 앞에 다음과 같은 쪽지를 붙여놓았었단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32세, 참 좋은 나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 젊은 나이에 왜 먹고 살 생각부터 하지 않아 굶어 죽었느냐?’고. 나는 먹고 살 생각부터 하며 참으로 오래 살았다. 추잡하고 비루하게 오래 살았다. 어느 게 더 좋은 삶인가?


 원시인들은 산과들, 강에 널려 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춤추고 즐겁게 살았다.


 먹을 것이 넘치도록 널려 있는 이 현대문명사회에서 왜 우리는 먹고 살 생각부터 하며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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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민중들의 기뻐하는 모습에 내 가슴도 마구 뛴다. 인간으로 태어난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리라. 이 기쁨을 모르는 인간은 삶이 재미없을 것이다. 도박으로 하루에 40억을 날렸다는 사람. 그 사람은 이런 진정한 삶의 기쁨을 몰라서 그렇게 되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삶의 기쁨을 모른다. 그냥 먹고 사는 데만 온 정신을 쏟다보니 삶이 권태롭고 가슴이 허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박을 하고 돈 버는 재미를 느끼려 애쓰고 일중독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의 혼은 허하다.

 인간은 혼의 기쁨을 느껴야 삶이 즐겁게 되어있다. 나는 지루하고 재미없게 살다 삶이 도대체 이렇게 재미없는 게 아닐 텐데 하고 이것저것 해보고 여러 공부를 해보았다. 그러다 삶의 진수를 느끼게 되었다. 91년 운동단체에서 일하며 데모에 참가했다. 최루탄 가스를 피해 지하도에서 만난 동지들, 그 눈빛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윽한 신뢰, 사람에 대한 믿음...... 경찰들을 몰아내고 해방구가 된 을지로 일대에서 서로 어깨 걸고 노래 부를 때의 그 벅찬 환희!

 인간은 이렇게 위대하다! 그 위대함은 반드시 정치적으로 해방될 때만이 나타난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에 대한 작가들의 논쟁. 문제는 작가라는 사람이 인간의 깊이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글 쓰는 잔재주 갖고 작가가 된 사람이 보는 최고은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모든 아픔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도 91년의 경험이 없었다면 인간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이집트 민중들이 눈물겹게 위대하다. 그들의 삶은 이제 전과는 다르리라. 사람이 보이리라. 사람의 아픔이 보이리라.

 우리 사회가 ‘이집트의 경험’을 미리 했음에도 그 경험을 갖지 못한 작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작가인가? 최소한 작가는 시대정신만큼은 가야 한다.

 먹을 게 널려있음에도 굶어 죽어야 하는 우리 사회!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이 처참함을 보여준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에게 먹을 게 주어진다. 먹고 산다는 건 인간(생명체)이기에 갖는 권리이다. 우리는 이 천부적인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앞으로의 복지 논쟁은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람은 무한히 위대하다. 하지만 그 위대함은 정치적 해방만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