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을 기다리며


 시골에 살 때였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을 뽑는다는 가정통신문을 가져왔다. ‘한번 출마해볼까?’


 나는 그 당시 아이들을 시골에서 기르고 싶어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가까운 시골로 이사를 갔다. 아이들을 분교에 보내어 신나게 뛰어놀게 했다. 학교가 파하면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산과 들로 뛰어 다니며 놀았다. 집 앞에는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 빈집이 없었다. 옛 마을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빈 땅들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분교가 폐쇄되었다. 마을 분들이 폐교에 앞장섰다. 우리 가족은 본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갔다. 어설프게 농사를 짓던 나도 지역 신문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지역 신문사에서 일을 하며 자연스레 지역 운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정치가 민주화될 때라 사회 분위기도 많이 부드러웠다. 나는 교육은 교사와 더불어 학생, 학부모가 함께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주제의 글을 신문에 많이 썼다.            


 운영위원 선거하는 날 아이들 학교에 갔다. 선거 유세는 1분으로 제한한다고 했다. ‘세상에, 1분이라니!’ ‘학교에서는 교육의 민주화가 두려울 거야.’ 나는 출마 의사를 밝혔다. 세 명을 뽑는데 네 사람이 출마를 했다. 한 명은 떨어져야 했다. 나는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방인이고 다른 분들은 다들 본토박이라 내가 가장 불리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떨어지겠구나!’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리라는 결심을 했다.      


 나는 1분 동안 이런 말을 했다. ‘저는 학교 교사로 9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그래서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잘 압니다. 학부모 입장에서 이런 문제점을 고쳐 우리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쳤다. ‘분명히 떨어질 텐데 괜히 출마했나 보다. 이 무슨 망신인가?’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1등으로 당선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출마한 사람들은 다들 그 지역의 유지들이었다.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공무원을 하며 신망을 쌓은 분, 어머니 회장을 하며 탄탄한 지지 기반을 가진 분, 이 분들을 제치고 내가 어떻게 1등으로 당선되었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기적이다.


 학부모님들이 내게 압도적으로 보내준 성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불과 몇 년 동안 그 지역에 산 내게 그 분들은 무슨 기대를 걸었을까? 나는 그 분들의 기대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혀진다. 나는 그 기대에 별로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영위원장이 선거에서 1등으로 당선된 내가 아니라 전직 공무원이 되었다거나, 어머니 회장의 입김이 너무 강하다거나, 학교 당국의 힘을 넘기엔 그 벽이 너무 두꺼웠다는 등 여러 핑계를 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내가 운영위원의 역할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학교운영위원보다 지역 신문사 일에 큰 비중을 두었기에 운영위원의 소임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내가 제안해서 학생들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방과 후 수업과 체험 학습의 다양화)을 운영했다거나 학교 신문을 만드는 등 조그만 개혁들은 해냈지만 너무나 미미한 것들이었다. 지금도 학부모님들이 내게 보내준 압도적인 지지를 생각해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가 만일 그 지역에 평생 터 잡고 살 생각이었다면 아주 많은 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크면 다시 도시로 와야 했기에 지역 활동에 온 힘을 쏟지 않았다.


 작년 말에 인기 있었던 ‘대물’이라는 드라마를 생각해본다. ‘소신’ 하나로 대통령까지 되는 드라마. 이것이 과연 드라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갖고 밀고 나가면 기적이 일어나리라고 믿는다.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 갖고 밀고 나가면 실제로 대통령이 될 수 있고, 좋은 대통령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대선이 곧 다가온다. 나는 ‘대물’을 기다린다. 수구, 보수 세력의 벽이 너무 두텁다느니 현실적으로 그런 인물을 내세우기엔 주객관적으로 시기상조라느니 하는 생각들은 ‘현실’을 모르는 얘기다. 현실은 언제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다. 낮은 곳, 가장 낮은 곳으로 눈을 돌리면 기적은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오로지 아래만 보자. 보통 사람들, 낮게 사는 사람들, 평범하게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을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들은 ‘대물’을 뽑을 준비가 다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