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어머니


天地不仁 천지는 어질지 않다 - 노자

우리는 자연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 흡사 철부지 아이가 어머니를 대하듯이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릴 적에는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시는 사랑 가득한 어머니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착한 어머니와 악한 어머니 사이의 갈등을 해소해주기 위해 옛이야기에서는 계모가 등장한다. 계모는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어머니를 둘로 갈라 아이는 자신의 어머니 상을 훼손시키지 않고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어머니 품 안의 자식은 언젠가는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원시인들은 성인식을 혹독하게 치른다고 한다. 아이는 죽음을 체험하며 그때까지의 ‘아이’는 죽고 ‘어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이 ‘어른’의 눈에는 비로소 어머니가 한 ‘여인’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자연은 삼라만상의 어머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어머니’를 아이의 눈으로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연을 사랑의 화신으로 보는 환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 마구 발길질하며 떼를 써도 통하리라는 생각을 은연중 하고 있는 것 같다. 산과 강을 마구 파헤치고, 도시를 아무 데나 만들고, 방사능 같은 물질을 함부로 만들어도 ‘어머니-자연’은 오로지 사랑을 주실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사람들은 절대 자연은 어질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 언제 어질고 어질지 않았나? 그것은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아이’의 눈을 볼 때 어머니는 어질기도 하고 어질지 않기도 한 것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사시는 것 뿐이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 노자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아이처럼 응석받이로 살면 언제고 자연은 인간에게 가혹할 것이다. 스스로의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어른의 마음으로 자연을 대할 때 자연은 ‘스스로 그러할’ 것이다. 우리도 함께 스스로 그러하게 살아갈 때 까지 우리 인간은 ‘어머니-자연’에게 수시로 버림받는 아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