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진보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1.  한 민주노총 조합원의 이야기

그는 KT의 말단 기술직 직원이다. 전봇대에 올라가 전화선을 가설하고 수리한다. 노조를 하기 전에는 전봇대에 올라가는 게 창피했는데, 민주 노조를 하고부터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당당해지더란다. 자신이 수리하는 전화선을 통해 사람들이 마음을 주고받는다는 게 자랑스럽더란다. 그는 민주 노조 활동을 통해 ‘인간이 되는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2. 어느 유명 진보인사에 대한 이야기

어느 날 그는 대학시절에 함께 운동했던  동창 집에 갔다. 밤 새워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 얘기도 나누고 심신도 달랬다. 누구나 이렇게 한다. 문제는 아내였다. 아내는 그들의 시중만 들었다. 끼워주지 않더란다. 그녀는 종년 같은 기분이 들었단다.
정말 그들이 아내를 무시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민에 빠져’ 아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아팠다. 진보는 큰 것에 대해선 민감하지만 작은 것에 대해선 너무나 둔감할 때가 많다. 왜 그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왜 그녀의 마음과 공감이 되지 않았을까?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픈 그녀는 왜 그들의 관심 밖이었을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슬프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진보를 원하지만 구체적인 진보의 모습을 보고선 실망할 때가 많다.  
  
3. 내가 빈민 단체에서 경험한 이야기

철거 지역에서는 치열한 투쟁이 일어난다. 삶의 터전을 잃은 그들은 그야말로 가열찬 생존 투쟁을 한다. 그때의 그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함께 싸우며 그들과 나는 인간의 짙은 향기를 맡았다. 그러나 문제는 투쟁이 승리로 끝나고 나서 삶의 터전을 쟁취했을 때다. 포근한 아파트에 살게 된 그들은 차츰 소시민의 삶 속으로 빠져든다.
자녀 교육도 시켜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 하고 여가 생활도 해야 하는 그들에게 진보적 삶이란 어떤 것일까? 소시민으로 전락해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절망했다.

4. 왜 지하철 노조가 민주노총을 떠났을까?  

한때 중요한 민주 노조의 큰 축이었던 지하철 노조가 떠났다. 그들이 가는 길은 분명 죽음의 길이다.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자본과 투쟁 없이 행복한 삶이 주어지겠는가?
하지만 마냥 그들을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진보가 그들에게 주지 못한 것들이 과연 불가능한 것들이었을까? 진보는 그들에게 삶의 구체적 비전을 보여줄 수 없었을까?
변혁 운동하는 사람들과 대안 운동하는 사람들이 결합할 순 없는 건가? 아직 우리 운동의 역량이 약해 그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건가? 그들은 결국 천민자본주의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함께 투쟁해야 한다고 그들을 설득할 순 없는 건가? 삶의 구체적 진보도 함께 찾자고 설득할 순 없는 건가?

5. 자본을 넘어서는 대동 세상을 향해
  
진보의 아름다움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손잡을 순 없는 건가? 각자 삶의 터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진보적 삶을 살며 모두 하나가 될 순 없는 건가? 자본주의에서는 진보적 삶이 아니고서는 어떤 삶도 올바른 삶일 수 없다. 대기업 노조들이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 정신이 없는 물질이 과연 그들의 행복을 담보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은 먼 훗날 오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는 아름다운 삶은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변혁과 대안이 하나 되는 우리의 운동을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