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끼가 藥이다

  -유순예 시인의 <다래끼>를 읽다가

 

 

   고단한 열에 뜬 여행길에 돌아와 멱을 감기도 하고, 동네 음악잔치를 보고 돌아와도 역시 글밥을 채우지 못해 허전한 밤이 되었다.

딱히, 지친 허리 휴식 삼아 한주먹 쥔 최근 발간된 문집에서 <다래끼>를 읽는다, 생각한다, 꼬집어본다, 아니다 그냥 읽히는대로 본다.

 

   글을 또닥이는 지금, 허리님이 고단하다. 여독이기도 하지만 오늘 용을 쓴게다. 다래끼를 읽어내는 저 내공은 도인의 경지이다.  도인의 글을 읽는 흉내라도 내는 것도 도인 먼발치 쯤에 자리잡고 있다는 으스댐도 있는거다. 그러니 뻔뻔이 글을 쓰기도 하고 부끄러운 채 하기도 한다.

 

   많이 잃고, 잊고, 까먹고, 생까고 사는 오십대의 인생이 기실 내놓을게 있을 턱이 없다.

교회다니고, 대중한 기업체를 가지고, 대학별 고향별 연줄까지 있다면, 기업프랜드리 청와대에 일할 수도 있는 나이지만, 그리 날렵하지도 않고, 남의 머리 속을 들락대는 잔머리는 더더구나 잼뱅이다.  자랑이 아니라 내 무능을 고백하는거다.

 

   권력의 학문을 마다한 아름다운 영혼을 숭앙하는 우리 시인들이여, 이야기꾼들이여. 고단한 학문에 홀린 지난 젊음을 떠올려 볼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다래끼다. 다래끼를 읽다가 놀란 것은 그 비밀을 꽤고 있다는 강렬한 동의다.

온갖 의학지식이 지천으로 늘려있고, 또, 가진자를 위한 고급치료가 거대한 돈의 흐름을 간파하고 상품으로 확대생산의 역량이 모아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는 이 때,  다래끼를  들여다보는 가치는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옛것의 가치를 너무 업수이 보는 경향 또한 다반사이다.

이유는 문화, 경제, 교육, 사상의 헤게모니를 놓쳐버린 근대사에 있다고 본다 . 교육지도자를 비롯해서, 정책입안 또는 소위 싱크탱크 집단에 made in USA 가 너무 많다.  치우친 생각이라 되집히기도 하지만,  PL480 의 신대륙 잉여농산물혜택으로 목숨부지한 세대나, 그 후예쯤인 우리니까 딱히 부정할 소지는 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동란중이나 직후에 미국으로 가서 미국식 사고와 선망을 가지고 돌아온 군사분야, 교육분야, 종교분야, 행정분야, 경제분야의 브레인들이 해놓은 화려한 계보 탓이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한다.  의학분야도 그러하다.  모든분야 중에 똘똘뭉친 세계적 이익집단이 남한의 의약분야가 되어버렸다. 다행하게도, 민주 의사회, 민주 한의사회, 민주 약사회 등이 제목소리를 내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전문교과서 교육에 충실한 탓으로 유순예 시인의 다래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마음의 지혜는 , 정작, 그들, 의약 엘리트들에게는 없다고 본다.

 

  다시, 다래끼다.

집안의 자녀들이 안경을 많이 쓴다. 인터넷 게임들과, 테레비와 만화영화 때문이라고 믿는 어른은 역시 유시인의 다래끼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모태에서 부터 온갖 양의학의 혜택이 빚은 결과로 독해한다면 성공적 독법이다.

다래끼는 지진을 막는 작은 화산분출이기도 하다.

그 흔한 작은 분출을 통해서 아이들의 눈건강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비밀을 이 시에서 읽기를 바라는 욕심이면 욕심이다.

 

   도처에 다래끼가 사라졌다.

   도처에 안경잽이 학동들 천지다.

   도처에 안경점이다

 

   곰곰이, 다시 우리의 몸을 읽는 지혜를 유시인의 다래끼에서 만난다. 참으로 기쁘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리돈과 판피린 코프와  신종 해열제들로, 콧물치료제로, 다래끼 약으로 젊은 어미들의 몸을 더렵혔고 우리의 아동들에게서 다래끼를 약탈했으며 긴 수명을 갖는 대신 거룩한 죽음을 박탈 당했고, 골골대며, 비싼 의료비를 다 탕진해야만 하는 이 더러운 의료자본주의 문턱에 이미 걸려 넘어지고 있다는 억울한 현실이 복장(腹腸)을 터지게 한다. 의료는 철저한 사회주의식이어야 한다.

 

   다시 아이들에게서 다래끼가 만연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적 요구이다.

저절로, 생태적으로, 몸의 "火氣"를 밖으로 분출시켜 더 큰병을 달고 살지 않는 순리적 몸으로 제스스로 복구되는 기능이 회복되어야한다.

   논에 약을 치지 말고 농사하듯, 우리의 몸도 그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의사인 시각에서도, 양의학적 치료를 피해도 되거나 대체적 처방으로 치유시킬 수있는 동물의 질병이 태반을 넘는다.

나는 그다지 돈을 잘버는 수의사는 못된다.  농부들은 제 밭작물 대하듯, 제 짐승의 몸도 잘 들여다 본다.

   게으른 농부만이 수의사를 부른다.

   의원을 많이 찾는 현대인은 게으르다.

   제 몸 돌보기가 게으르단 말이다.

   그러니, 헛개비에 홀린 채, 덜컥 암보험에 의지하며 사는 부류에 다름아니다.

이미 보험장수, 약장수, 병원장수들이 똘똘 뭉쳐 아이에게 갈 유산의 반 이상을 삼킬 준비가 다 된줄 보인다.

국가가 돌봐 주어야 할 우리의 몸을 방기(당)한 채로 스스로 챙겨 악다구니로 경쟁하며  옹졸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아주 나쁜 정치 구조에 갇힌지 이미 오래다.

 

   "뜬것의 속내 삭혀준/ 자네,/ 자네 왼손에 연꽃피네

    알약 몇 알로 날 잡을 생각 접어주시게"

    ( 유순예 詩 다래끼의 종연에서 부분 인용-시에티카 3호)

 

   시의 힘, 또는 서로를 위로하는 힘들이 詩 속에 있음으로 고단한 이시간 편히 자 볼, 잘 수 있을, 못된 귀신(뜬것)을 피하는 밤이 될 듯하다.

 

   - 시 <다래끼> 가 오늘 밤 내 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