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어제 마신 술로 정신이 몽롱하다. 자전거가 비틀비틀 한 24시 편의점 앞에 닿았다. 파란 파라솔과 의자들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베지밀 한 병을 사왔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베지밀을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젯밤의 환락이 지나간 자리. 다들 분주하다. 청소를 하고 밖에 내놓은 탁자와 의자들을 정리하고 있다. 모두 각자의 생각과 아픔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한 식당으로 들어가는 아줌마를 본다.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 같다. 저 ‘아줌마’를 그냥 ‘아줌마’로 볼 수 있을까? ‘아줌마’라는 단어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

 산이 산으로 보이고 물이 물로 보이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딸이 여자로 보여 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그렇게 되면 딸은 무엇으로 보일까? 계속 여자로 보일까? 딸로도 보일까? 딸은 아버지가 무엇으로 보일까? 아버지와 딸은 얼마나 좋은 사이인가? 그런데 그 많은 걸 잃어버리고 ‘남녀’가 되어도 괜찮은 건가? 그 아버지들은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상이 아닐까? 너무나 고귀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태연하게 사는 사람들. 남들이 잃어버린 것만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들.

 얼마 전엔 연로한 어머니를 살해한 50대 남성도 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무엇으로 보였을까? 무엇이 그를 어머니가 다른 무엇으로 보이게 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다른 무엇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가끔 어머니가 다른 무엇으로 보여 그는 자신의 눈을 비벼보았을 것이다. ‘눈에 티가 들어갔나?’ 그러다 세월이 흐르며 그는 자신의 ‘환영’에 익숙해지고 어머니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죽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머니로 안 보였으니 그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사람들은 그를 존속 살인죄로 처벌하고 싶어 하나 그게 가능한가? 그의 눈에 헛것을 씌운 것에 대한 죄는 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가? 다들 자신들도 그런 죄가 있어 서로 무죄의 알리바이가 되고 있는가?

 4대강을 개발하는 자들은 강이 무엇으로 보였을까? 그들도 처음에는 굽이굽이 흐르는 거대한 강 앞에서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찌하여 겁도 없이 그 강을 마구 파헤치게 되었을까? 앞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뒤따라올 텐데 그들은 어쩌다가 그런 재앙 앞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을까? 그들을 비난하고 가엽게 여기는 우리는 그들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다른 무엇에게서 경외감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외교통상부 장관이 ‘젊은 애들 북한 가서 살아라’라고 했단다. 그의 눈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보였을까?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들풀처럼 싱싱한 젊은이들이 그에게는 도대체 무엇으로 보인단 말인가? 한 나라의 장관의 눈이 이렇다는 게 이 나라의 수준이다. 그런 사람이 그런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우리의 눈들은 망가져 있을 것이다.

 두렵다. 언제 어디서 내가 나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여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나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이 몸뚱이일 텐데 이 몸뚱이가 다른 무엇으로 보이는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의 눈에 내가 다른 무엇으로 ‘변신’했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한단 말인가? 소리치고 발버둥 칠수록 그에겐 내가 다른 무엇으로 보일 텐데. 자전거에 오른다.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는 저 아줌마, 말갛게 보인다. 순간 햇살이 눈부시다. 가로막고 있는 사람을 간신히 피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 희뿌연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