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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다



 한동안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더니 전동차 안에서 ‘실제 막장 상황’이 연출되었다. 7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막싸움을 했단다. 70대 할머니가 다리를 꼬고 앉은 10대 소녀에게 흙이 묻은 신발을 치우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고, 반말로 대꾸하는 여학생의 머리채를 할머니가 잡으면서 말다툼은 격렬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화가 난 할머니는 자신을 나무라는 다른 승객에게도 목소리를 높이고, 자리로 돌아간 소녀는 한국이 싫다며 계속 울부짖었단다. 하지만 이 싸움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지하철 승객은 없었다고 한다.  


 소녀의 ‘한국이 싫다’는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나도 사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요즘 한국이 너무나 싫기 때문이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세대간의 갈등으로 해석한다. 이는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픈 자들의 시각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나무와 풀들은 서로를 할퀼 수밖에 없다. 한국에 상륙한 신자유주의의 태풍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서로 할퀴게 한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이런 진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위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이 사건의 본질을 세대간의 갈등이라고 진실을 왜곡한다. 그러면 전선은 지배-피지배 간이 아니라 세대간으로 형성되어 버린다. 선과 악이 싸우는 세상, 항상 진짜 악은 무대 뒤에서 웃고 있다.


 나는 소녀가 싸움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에게 ‘유튜브에 올려!’라고 한 말에서 희망을 찾는다. 지금은 그 소녀는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급박한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진실을 드러내고 자신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인류는 세상 사는 지혜를 광장에서 구했다. 문제를 서로들 앞에 툭 던져 놓고 함께 논의하다보면 명답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이 부패하면서 이런 광장을 폐쇄해 버렸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말거나 든든한 백을 찾아 나서곤 했다. 그러다보니 모두 이전투구에 빠져들어 이기거나 지거나 상처투성이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한국이 싫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서로를 사랑해야 행복하지 서로를 미워하고서는 불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가지고 서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면 어떨까. 지배계급의 방해만 막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지혜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답은 ‘공정하지 못한 이 한국사회에 대한 강한 응징’이 될 것이다. 도대체 한국의 어느 한 분야라도 공정한 곳이 있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국의 건국부터 공정치 못했다는 것을 다 알게 될 것이다. 일제에 부역하고 건국 초기에 불공정했던 사람들을 색출하고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가 논의 될 것이다. 그 뒤의 불공정했던 역사들이 속속들이 밝혀질 것이다. 사람들은 토론을 하면 할수록 기쁨에 들떠 한국 건국 이래의 최대의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위대했던가!’ 기쁨에 겨워 마구 울부짖을 것이다. 그 소녀와 할머니는 부둥켜안고 화해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 숭고한 눈물은 한국 전체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에게 해원의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해원상생의 세상은 이렇게 쉽게 올 것이다.


 아, 잠시 꿈을 꾸었다. 이런 상황은 결코 당장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힘을 소유한 지배계급이 온갖 권모술수로 자유로운 토론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를 할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한국이 싫다! 하지만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은 옛말, 이제는 중이 절을 고쳐서 산다. 나도 이 한국을 고쳐서 살 것이다. 한국 곳곳이 와글와글한다. 사람들은 한국 전체를 광장으로 만들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