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5호...
   2020년 0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 오늘방문자 : 
    483
  • 어제방문자 : 
    589
  • 전체방문자 : 
    501,830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45 우리는 왜 자꾸만 싸우려 하는가 /고석근 file
편집자
2031 2010-12-28
우리는 왜 자꾸만 싸우려 하는가 오늘 강의 시간에 한 수강생에게서 감동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웃집 아이가 저희 집에 놀러와 저희 아이랑 재미있게 놀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갑자기 ‘충동적으로’ 비행기하고 로봇 장난감을 혼자서 갖고 놀겠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저번 시간에 공부한 게 생각났어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좋아하는 장난감을 다 주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이가 장난감을 혼자 다 갖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저희 아이하고 잘 놀더라구요.” 이웃집 아이에게 “친구랑 친하게 지내야지 그러면 못 써.”하고 설득하려 했다면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났을 것이다. 저번 강의 시간에 공부한 게 ‘인간은 충동적 존재’라는 거였는데, 그 수강생은 그 ‘충동’을 잘 승화시켜 준 것이다. 우리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우리는 충동을 억제하며 이성적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왜 세상엔 충동적인 인간들이 벌이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걸까? 아직 ‘이성적 인간’이 덜 되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이성적 인간이 된 경우는 얼마나 되는가? 평범하게 사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이성적인가?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해왔기에 충동이 강하게 남아 있다. 충동에 따라 살던 인간이 이성을 획득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겐 이성은 아주 미약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미약한 이성으로 인간을 규정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충동은 무의식 속으로 숨어버린다. 융이 얘기하는 ‘그림자’가 형성된다. 이 그림자는 항상 우리를 따라다닌다. 그 그림자를 빛 속에 내 놓으면 금방 사라지고 마는데, 우리는 이 그림자가 두려워 없는 척 한다. 그러다보니 그림자는 언제 어디서 출몰할지 모르는 괴물로 우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나도 내 안의 검은 그림자 때문에 너무나 힘겹게 살아왔다. 내 안에서 뭔가 꿈틀 거리는데 그 정체를 몰랐다. 늘 힘들고 불안했다. ‘에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뭐’하고 바쁜 생활에 나를 맡겼다. 삶은 뜬 구름처럼 지나갔다. ‘이게 사는 게 아닐 거야’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했다. 문학 공부할 때가 가장 편안했다. 함께 공부하는 벗들과 밤 새워 술을 마셨다. 갑자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혼자서 통곡했다. 한강 고수부지에서 듣는 강물소리가 너무나 좋았다. 언젠가는 패싸움도 했다. 학창 시절에 싸움 한 번 제대로 못 해 본 내가 30대 후반에 패싸움이라니! 경찰서에 끌려가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했다. 훈방 조치되어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새벽 전철을 타고 집에 왔다. 흘긋흘긋 보는 사람들 시선이 좋았다. ‘나도 인간이란 말이야!’ 그렇게 ‘충동적으로’ 몇 년을 보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안의 충동이 고분고분해지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심우도로 설명한다. 내 안의 소를 길들이는 것! 길들인 소는 너무나 자유롭다. 애들은 싸우면서 커야 하는데 나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다 커서 그 때 못한 것을 하고서야 어른이 될 수 있었다. 항상 불만 가득한 눈으로 누구 싸울 사람 없나 하는 표정의 어른들을 많이 본다. 싸우면서 크지 않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전쟁하자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도 아닌데 군복을 입고 설쳐대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서 ‘철부지 아이들’을 본다. 우리가 왜 전쟁을 해야 하나? 세상에 먹을 것과 재미난 것들이 차고 넘치는데 뭐가 부족해 싸우려고 하나? 그분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들에 대한 성찰’이다. 자신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자라면서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그들은 다 큰 어른이 되어 싸우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싸움이야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만 어른 싸움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들에게 인문학 공부를 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 공부를 하여 자신들의 솔직한 속마음을 알게 되면 아마 그들은 아이처럼 엉엉 울 것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철부지 같은지를 알고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것이다. 나는 강의하면서 이런 분들이 성숙해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우리 안의 ‘충동’은 잘 가꾸면 우리를 아름다운 인간이 되게 한다. 하지만 가꾸지 못하고 억제만 하면 그것은 짓눌린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려고만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마구 날뛰게 한다.  
44 구제역을 되짚어본다 / 강태규 file
무궁화
2299 2010-12-21
구제역창궐이 우리에게 던지는 고민 (산업화, 대량생산, 농가 고소득, 부자 농부, 저 푸른 초원 위에, 한 백년 동안 님과 함께.) 우리의 농업을 다시 되돌아보아야 하는 참담한 때에 놓여있다. 소와 돼지들이 매몰되고 있다. 이 시대가 왜 이런가. 구제역 바이러스는 고전적 축산의 경우에 고작, 1%의 치사율만 보이는, 발굽수가 짝수인 집짐승에게 걸리는 흔한 질병 중의 하나였다. 단지, 유산율이 높다던지 하여 면역력이 약한 어린 발굽동물에게는 사망률이 40 내지 50% 가 되어 최소한의 번식장애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전적으로 깊은 골짝 농업이라던지 외진 들녘이라면, 자연치유의 기회가 늘려있(었)다. 문제는 과밀사육과 운동부족, 동물쪽에서 먹거리의 변화, 차와 사람들의 빈번한 왕래와 교역들의 무대가 지구화된 것이 이 지경으로 동물을 매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보자. 우리의 환경과 처지가 비정상적이라는 1:29:300 의 확률로 설명하는 경고에서부터 시작하여 큰 재앙을 예고하는 바로 직전의 징후로 본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소는 물집이 잡히고, 침을 흘리게 되고 혓바닥 껍질이 벗겨지고, 입을 쩍쩍거리고, 돼지는 콧등에 물집이 잡히고 발굽에 물집이 잡힌 후 껍질이 만들어지다가 떨어져 나오며, 걸을 때마다 절뚝거린다. 이 증상들이 대표적인 징후의 발현이며, 면역력 약한 어린 동물은 증상 이전에 죽는 경우가 많다. 기업적 양돈을 하는 이들도 체중 20킬로 까지 키울 시점까지 30%의 어린 돼지들이 죽는 것은 정상범위에 속한다고 한다. 즉, 어린 동물의 사망례도 40~50% 까지 일시적으로 높을 뿐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돼지는 다산의 짐승이 아닌가. 우리가 잘 알지 못한 먹거리의 위해는 진행중이다.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주로 생산하는 유전자 재조합(GMO) 옥수수와 콩을 수입하여 먹인 가축들의 근육내로 기억되어 우리의 몸 속으로 들어와 우리의 몸구조 일부분으로 자리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이 제품에서 3% 정도 재조합원료가 사용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으니 동물용 사료에서는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 상황은, 밭작물 보다 축산을 통해서 지역과 가계를 돕던 체계가 심각할 정도로 벼랑에 몰린 듯 하다. 우리의 소비 또한 되집어 보아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평생 선택의 연속으로 살아온 지난 날 들이었지만, 이런 축산재앙의 상황에서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속되는 먹거리와 밥상을 복기해 보아야 할 즈음 이기도하다. 우리가 이야기의 주체가 되질 못하고 매일처럼 특정 의도와 목표를 위해 장식되고 연출되는 듯한 뉴스거리에 갇힌 채, 판단조차 흐려지는 세상에 있다. 광우병의 우려기준이 당장 없다면 유럽과 일본이 어찌 대처하는지를 따라만 주어도 면책을 꾀할 수 있듯이, 이제, 구제역 살처분 정책으로 앞으로 한 두달 이내에 확산을 막지 못하면 포기할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2001년 북잉글랜드의 구제역 (소각)살처분 정책으로 200억 달러 이상을 사용하였다(소 일천만 마리의 연간 매출액은 6.5억 달러였다)고 하며, 당시 자살한 농부가 60여명에 달하였다, 한다(앤드류 作, 대혼란). 국내의 수의학자인 강석진의 연구에 따르면, 그가 창안한 압축가열식 방법으로 200킬로의 사체를 처리하는데 10리터의 연료만 소용된다고 하였으며, 이런 가열, 소각법이 환경오염을 유발할 우려가 높은 비닐,생석회 폐쇄공간 매몰법 보다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다급한 작금상황에서는 현장적용에 걸림돌이 있음이 아쉽기만하다. (참고: http://www.pnp21.net/gn/bbs/tb.php/gr01_poultry_month/440) 순환적 유기농업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작, 미국 상류층의 1% 의 부류들은 유기축산물로 호식한다고 한다. 수십년전 이병철 회장이 일본에서 유기농축수산물을 항공편으로 들여와 식사를 하곤했다는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 낯설지않다. 마치, 배추농사하는 농가의 안주인이 자기 식구들 먹이는 채소에 약을 치지 않고 손으로 벌레를 잡는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모든 먹거리가 이리 대순환 속에 있음으로, 소규모 자작농으로 돌아가야 멀쩡한 육체를 보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된 듯 하다. 부디, 금융구조 속에 메인 노예가 되지 말고, 학벌과 원치않는 직업에 메이지 않는, 백화점 쇼핑, 홈 쇼핑 다이얼을 돌리지 않는 안주인과 고무신 흙털며 사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이건만. 대부분 금융피라미드 구조사슬처럼, 불확실하고도 예측되지 않는 미래를 담보하여 빚내서 잔치를 하는 게 오히려 정상처럼 여기고 있는 우리의 처지는 다름아닌 현대 금융자본가들이 놓은 덫과 올가미에 걸린 신세는 아닌지. 농사꾼 아버지를 둔 시인들은 이제야 더 행복할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가득한 12월이다.  
43 죄와 벌 /고석근 file
편집자
2227 2010-12-16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좁고 음침한 하숙방에서 인류를 위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려는 망상을 키운다. ‘…그는 증오에 찬 눈으로 자기의 조그만 방을 둘러보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벽에 부딪칠 정도로 곳간처럼 비좁은 방이었다. 누렇게 퇴색한 벽지는 먼지가 부옇게 끼었는데 그나마 군데군데 찢겨져서 보기에도 흉했다. 천장은 어찌나 낮은지 키가 큰 사람은 숨이 컥컥 막힐 뿐 아니라, 머리가 부딪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가구도 방만큼이나 너절했다.’ 그는 끝내 전당포 여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그의 여동생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한다. 그는 왜 살인자가 되었을까? 사람의 생명만큼 존귀한 게 없는데 그는 왜 가장 극한의 죄 ‘살인’을 하게 되었을까? <죄와 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섬뜩한 전율을 느낀다. 20여 년 전 나도 그런 음침한 골방에서 지냈다. 강화 앞 바다의 한 섬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할 때, 나는 누우면 발이 벽에 닿는 좁은 방에서 온갖 공상과 망상에 시달렸다. 좁은 방은 다른 무언가로 태어날 수 있는 자궁이다. 곰은 굴 속에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이런 굴속에서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짐승은 인간이 된다지만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스콜리니코프가 초인이 되고 싶어 했듯이 나도 초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인간이 만든 법률, 규칙 위를 날아다니는 인간의 고유한 감정인 ‘양심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도 그런 초인을 꿈꿨다. 나는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해 ‘위대한 사상가’가 되고 싶어 했다. ‘불후의 저서’ 제목도 정해 놓았다. 이상 사회 - 이 책대로만 하면 세상은 지상 낙원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데이트 할 때 한 여자에게 ‘이상 사회’에 대해 열변을 토해 그 여자(결국 내 아내가 되었다)를 내게 반하게 했다. 인간의 본성이란 세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본성을 1차 본성과 2차 본성으로 나누어 사회심리학적으로 고찰하고 그 본성에 맞는 사회 구조를 사회철학적으로 탐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일일일대의 무서운 체험을 했다. 학생 한 명을 ‘무자비하게 때려’ 너무도 심각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천에 옮기진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너무나 섬뜩하다. 연쇄 살인범들하고 너무도 똑같지 않은가? 한 여자를 죽여 이 세상 여자들의 정절에 대해 경종을 울리겠다는 유영철. 그와 내가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다행히 나는 행동에 옮기지 않아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이 인간을 뛰어넘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할 때’ 생긴다. 인간은 인간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명제가 인간을 뛰어 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도 쉽게 사라져버린다. 인간을 살과 피가 생생히 도는 존재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볼 때 인간은 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이해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오한 인간 이해에 대해 숙연해진다. 나는 그 뒤 문학을 만나 ‘인간’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했다. 만지면 물컹한 살이 닿는 인간, 가냘픈 숨을 쉬는 인간, 그 한없이 부드러움 속에 너무도 존귀한 혼이 깃든 인간, 이런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나는 괴물이 된다. 내가 한없이 초라해질 때 나는 초인을 꿈꾼다. 초라한 몸뚱이를 골방에 처박아 놓을 때 이때가 가장 무섭다. 나는 다행히 ‘건전하게’ 살고 있다. 다 행운일 따름이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자꾸만 골방에 처박아 넣는다. 무섭다. 우리 사회에 수시로 출몰하는 괴물들은 이렇게 탄생한다.  
42 지금은 공부할 때 /고석근 file
편집자
2037 2010-12-08
지금은 공부할 때 내가 학교 교사를 할 때였다. 몸이 아파 조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나는 그때마다 아이들을 택시에 태워 보냈다. “몸이 최고 중요해. 공부는 다음에 해도 되니까. 몸 조리 잘해. 알았지?”하면서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이 교사로서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다음의 글을 읽고는 가슴을 큰 망치로 얻어맞은 듯 했다. 내(육징=양명의 제자)가 홍려시에 잠시 머물 때 갑자기 집에서 편지를 보내 아이가 병에 걸려 위급하다고 알려왔다. 내 마음은 매우 근심스럽고 번민스러워 감당할 수가 없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때 바로 공부를 해야 한다. 만약 이런 때를 놓쳐 버린다면 한가한 때의 강학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은 때 연마해야 한다. - ‘견습록’에서 아,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아, 양명 선생.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던 이유가 있었구나! 내가 잘한다고 했던 행동들은 얼마나 어리석었나! 내게 배운 제자들은 얼마나 잘못 배웠단 말인가? 지난 23일 오후 저녁 강의를 준비하다 본 TV 뉴스특보. 연평도에 포탄 수백 발이 떨어져 불바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이 뉴스를 보며 앉아 있을 수 없어 눈을 감고 누워버렸다. 아, 이것은 지금 실제상황이다! 심장은 마구 뛰고 도무지 안정이 되지 않았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전방에 있는 작은 아들이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잠시 후 호흡을 안정시키며 앉아 TV 뉴스를 보았다.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불안에 떨면 안 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 않는가!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양쪽의 통치 권력이 원하지 않을 테니까. 문제는 국지전이다. 이 상황 속에서 피해를 보는 건 약한 우리 국민들. 경제는 또 얼마나 출렁일 것인가? 강의 시간에 연평도 사건을 토론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한다. 불안에 떨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실상을 직시하자. 그러면서 NLL, 평화통일을 향한 그 동안의 노력들, 북한 정권의 권력 승계, 지금 무력 충돌로 치닫는 남북한의 상황, 국제 정세 등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니 힘이 나고 희망이 생겼다. 지금 같으면 나는 아파서 조퇴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살다 보면 항상 위기가 닥친다. 병이 날 때도 있고, 사고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눈 감고 회피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도망 다니다 보면 점점 더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져 평생을 도망만 다니다 일생이 끝난다. 항상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위기를 정면으로 쳐다보면 헤쳐 나갈 길이 보인다. 지금 이 시간에도 네가 아픈 것을 직시하고 아픈 이유가 무엇인지 네 생활 습관이 잘못된 것은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가장 좋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사람은 우주만큼 존귀하다. 한 사람의 생각이 옳으면 인류 전체가 언젠가는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나’ 속에는 인류 전체, 우주 전체가 담겨 있다. ‘나’ 한 사람이 생각한다는 건 인류, 우주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불안한 시기에 깨어 있으면 역사는 바르게 흘러갈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무서워 자신 속으로 꼭꼭 숨어버리면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우리들을 짓이기며 지나갈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불안에 떨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한 상황을 직시하면서 헤쳐 나갈 길을 찾는 사람이다. 위기 상황에서 불안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자신에게 닥치는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운명 속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긴박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28일 핵 항모까지 동원한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을 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 군사 대결로 가는구나! 사람들은 28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28일은 무사히 지나가겠지만 그 이후가 걱정이다. 밤 택시를 타고 오며 택시 가사에게 슬쩍 떠 보았다. 그분들은 세상인심을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요즘 전쟁 날까 너무나 불안하네요.” 그분은 여유롭게 말했다. “전쟁은 절대 안 나요. 걱정 말아요.” “그래요? 그래도 전쟁은 우발적으로도 많이 난다고 하던대요.” “남북 다 전쟁을 원치 않기에 절대 안 일어나요.” “근데 전쟁은 안 나더라도 전쟁 대비한다면서 돈을 무기 사는데 다 쓰면 어떡해요? 걱정이네요.” “그런 건 몰라요. 신경 안 써요.” 그렇다! 신경 쓰지 않는 것! 여기에 함정이 있다.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며 엄청난 국방 예산을 증액하는 것, 이것이 현 권력이 속으로 원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되면 국민은 불안에 빠져 세상사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하고 그새에 우리나라는 수구세력이 이끌어 갈 것이다. 힘을 가진 자들이 서로 싸우는 척하며 서로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 이런 구도가 형성되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최악이다. 신자유주의를 극복해야 할 시점에 이 무슨 비극인가? 당분간 불안한 시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때가 가장 공부하기 좋은 때. 우리나라 근현대사도 한 눈에 읽을 수 있고, 세계의 경제와 정치의 속성도 훤하게 보이고, 그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이 선명히 보이는 때. 공부는 가장 절박한 순간에 쓸모 있어야 진정한 공부다. 우리 모두 이 난세를 사는 지혜를 공부해 보자!  
41 겁쟁이, 날다!! /고석근 file
편집자
1976 2010-12-02
겁쟁이, 날다!! - 미하일 엔데의 동화 ‘멋쟁이 용과 맷쟁이 나비’를 읽고 옛날 옛날 시커먼 바위 탑 속에 용이 한 마리 살았는데, 그 용은 온몸이 가시로 덮여 있고 아무 때나 불을 내뿜고 성질도 고약하다. 어느 날 딸국질 박사가 책 한 권을 품고 그 탑을 찾았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과학자답게 그 용을 이리저리 재고 조사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자던 용은 깨어나 딸국질 박사를 책과 함께 꿀꺽 삼켜 버렸다. 하지만 책이 어떻게 소화될 수 있으랴. 용은 속이 뒤틀리고 메스꺼워 한참을 괴로워하다 책과 함께 박사를 토해내고 말았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박사는 줄행랑을 치고 책만 한 권 남았다. 용은 궁금해 책을 들춰보니 이런 내용이 적혀있는 게 아닌가? ‘용이 불을 내 뿜는 건 사실 겁이 많아서다. 용은 겁쟁이다.’ 불 같이 화가 난 용은 “난 겁쟁이가 아냐! 난 진짜 겁쟁이가 아니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며 책을 갈기갈기 찢고 여기저기 다니면 못된 짓만 하고 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화가 풀리지 않아 용은 결국 어린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그때부터 용은 끙끙대며 앓아 누워버렸다. 그러고는 바위 탑 속으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까지 읽으며 이제는 대학생이 된 내 큰 아이를 생각했다. 큰 아이가 5살 때였다. 아이는 대문 밖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2층 창가에 붙어 서서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길을 가던 두 여자 아이가 큰 아이 앞에 서더니 그 중 한 아이가 큰 아이 가슴을 꽝 쳤다. ‘아니?’ 나는 당황하고 있는데, 다른 여자 아이도 큰 아이 가슴을 꽝 치는 게 아닌가? 그러자 큰 아이는 조그만 목소리로 “안 아프다!” 했다. 그러면서 그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찰나, 나는 아이를 도와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장난이야! 괜찮아.’ 나는 씩 웃어주었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이 눈에 선하다. 큰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여자 아이들을 혼내 주었어야 하나? 걱정은 했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 어린이 집을 다녀온 큰 아이의 표정은 어두웠다. 나는 큰 아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나를 닮아 마음이 섬세하고 겁이 많은 큰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만의 방법이 있으리라. 그것이 무엇일지 모르지만 아이 혼자 찾아야 한다. 큰 아이의 소심한 마음 ‘겁쟁이’는 남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그 ‘겁쟁이’를 숨기기 위해 강한 척 못된 짓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만 상해 자기만의 세계에 유폐되어 버린다. 용은 여성성을 비유한다. 서양 동화들을 보면 남자 아이들은 집을 나가 용 같은 괴물들을 물리치고 영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남자는 남자다워야지 여자 아이들처럼 눈물이나 질질 짜면 안 돼! 서양에서는 이렇게 ‘남성다움’을 키워낸다. 그렇다면 큰 아이 마음속의 여성성 ‘용’은 사라지게 해야 할까? 아니다. 그 섬세함을 길러야 한다. 타고난 섬세함을 길러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해야 한다. 큰 아이가 그 여린 마음을 이기려 태권도를 배운 적 있다. 하지만 천성을 어찌할 수 있으랴. 한 달 정도 다니다 그만두었다. 큰 아이는 강한 척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굴속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큰 아이가 자신의 굴속에서 나올 수 있을까? 파란 풀이 예쁘게 자란 풀밭에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춤을 추고 있다. 그 나비는 성격이 워낙 예민해 조금만 시끄러운 소리가 나도 견디지 못한다. 결국 그 하얀 나비는 고요한 숲속으로 들어가 혼자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벌 한 마리가 나비가 있는 숲속으로 날아왔다. 벌의 윙윙대는 소리를 싫어하는 나비에게 벌은 이렇게 놀려준다. “흥, 겁쟁이 같으니라고!” 하얀 나비는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말했다. “난 겁쟁이가 아냐! 난 진짜 겁쟁이가 아니란 말이야!” 그날부터 나비는 사뿐사뿐 걸어 다니지도 않고 춤도 추지 않았다. 점점 더 혼자가 된 하얀 나비는 먼 사막으로 들어가서 꼭꼭 숨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사막에 살고 있는 뱀 한 마리가 나타나 하얀 나비에게 말했다. “내 참 별꼴이야! 매일 같이 나쁜 짓만 골라하던 용이 겁쟁이라는 말이 싫어 저 산꼭대기 바위 탑 속에 혼자 틀어박혀 있대!” 그 말을 들은 하얀 나비는 한참을 고민하다 먹을 것을 싸서 용을 찾아 나섰다. 침대에 누워 끙끙 앓고 있는 용에게 말했다. “당신도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제부터 우리 함께 멋쟁이가 되기로 해요. 나도 ‘멋쟁이 나비’가 될 거예요.” 나비의 말에 용기를 얻은 용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나비 앞에 ‘멋쟁이 용’이 되기로 약속한다. 둘은 “약속!”하고 외치고는 사이좋게 바위 탑 밖으로 나와 훨훨 날아갔다. 자신의 굴속에서 끙끙 앓던 큰 아이는 그림이라는 나비의 도움으로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 큰 아이는 집에 오면 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재주는 타고 난 듯했다. 어느 날 어린이집을 다녀온 큰 아이의 얼굴이 밝았다. “아빠, 내가 아이들에게 얼굴 그림을 그려줬더니 참 좋아해!” 나는 큰 아이를 꼭 안고 눈시울을 붉히며 크게 웃었다. “그래, 우리 현웅이 참 잘했어!” 그 뒤 아이는 미술대회에 나가 큰 상을 받았다. 이제는 외톨이가 아니라 인기 있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다! 사람을 구원하는 건 끝내 자신이다. 나비같이 날아오르는 상상력!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는 기적! 그런 상상의 힘만이 인간을 구원한다. 그 힘은 누구나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 간절히 기원하면 그 힘은 솟아난다. 성경에서는 이 힘을 성배라고 하지. 영생의 샘물. 큰 아이는 군대에 가서도 이 힘으로 견뎌냈다. 큰 아이가 입대하고서 나는 항상 가슴을 졸였다. 군대의 무슨 사고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가슴이 타 들어갔다. 하지만 큰 아이는 잘 견뎌냈다. 이번에도 같은 수법이었다. 고참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었단다. 고참들이 참 잘해준다며 명랑하게 말하는 큰 아이의 전화 목소리에 눈물이 다 났다. 이제는 제대하여 복학을 기다리는 큰 아이. 여전히 친구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생일 선물로 주며 잘 지낸다. 섬세한 성격으로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내가 문학을 만나기 전까진 왜 그렇게도 살기가 힘들었는지, 언제나 얼굴 표정이 굳어 있고, 가슴은 먹먹했는지, 그래서 문학은 내게 생명수다. 나비는 우리가 세상에서 버림받고 혼자 자신만의 굴속에서 끙끙 댈 때 한 줄기 빛으로 나타난다. 그 빛은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환하게 밝히며 우리를 빛과 함께 날아오르게 한다.  
40 형제 자매처럼 행복한/고석근 image
편집자
2337 2010-11-25
형제․자매는 냉혹한 경쟁 관계다. 어려서는 어머니 젖을 향한 목숨을 건 생존 투쟁을 해야 하고, 커서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치열한 생존 투쟁을 해야 한다. 이 경쟁심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형제간의 살인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아이들을 자기들끼리 놀게 하면 사이좋게 잘 논다.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돕고 사는 게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외부의 권력이 개입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른이 끼어들면 아이들은 어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기들끼리 질시하고 싸우게 된다. 아이들은 형제․자매간에 어떤 경험을 할까? 사랑의 관계를 체험한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겉으로는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온갖 미움이 가득한 게 솔직한 속마음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냉혹한 경쟁관계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어떨까? 사람은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존재다. 서로 협동하는 분위기가 되면 다들 협동하고, 경쟁하는 분위기가 되면 다들 경쟁을 한다. 오로지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이 서로를 사랑의 눈으로 불 수 있을까?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하든지 ‘교육’을 시켜야 하는 학교.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사고치지 말고 무사하기만을 바랄 것이다. 그런 마음이 저 현수막에 펄럭인다. 형제․자매의 거짓 사랑으로라도 오늘도 무사히...... . 게임 중독에 빠진 중학생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고 한다. 아, 이제 우리 정말 솔직하게 교육을 얘기했으면 좋겠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 눈 감고 아웅 하지 말고. 지금의 우리 사회, 학교로는 이런 엽기적인 사건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저 현수막은 우리에게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  
39 일천 사백년 나무에 깃대다 / 강태규 file
무궁화
2432 2010-11-17
<일천 사백년 나무에 기대다> 인생이란 참 기묘하다. 10억년 후 쯤이면 태양의 수명이 다해, 지구가 없어진다고 한다. 또, 몇 년 후에는 길을 잘못든 커다란 혹성이 지구의 축을 흔든다 하기도 한다. 생명도 제 나름 대로의 명줄을 가진다 해도 발로 선 자리가 중요하다. 덕수궁이나 삼청동 길의 은행들이 그다지 좋은 자리가 아님을 충북 영동의 천태산을 보고 난 후에야 안다. 그 곳에 젊지않은 시인(『시와 에세이』의 양문규 주간)이 터를 잡고 시인들을 호객했다. 그 조상 대대로의 내공과 텃세만큼의 자긍심으로, 굵으면서, 투박한 듯, 바라고 생각하던 잔치가 무러익었다. 상모잡이가 여여산방의 기를 모아 이 노쇠한 일천사백년의 지친 영혼에 푸른 수혈을 하기도 하였다. 이는, 천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근간으로 하여 여러 문인들의 작품들을 산과 나무에 최근 헌정한 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시를 읽었다. 그 시에 홀리면 홀릴 수록, 그의 실존들이 일순 정지되어 내게 속삭였다. 울림이 적으면 적은대로, 알 수 없는 이미지가 가운데 있더라도, 독일어가 아닌담에야, 소리내어 읽어 보기도 하였다. 시가 천태산의 햇볕 속에 숨을 쉬었다. 위키피디아 검색을 통하여 우리 한반도에 수령 천년이 넘는 은행나무를 대략 알아보니, 영동을 제외하고는 영월, 금산, 양평 만이 존재한다. 뿌리 기준의 둘레는 양평 용문의 둘레가 2,3미터 더 굵게 보이지만, 어디 허리 둘레와 나이가 비례하라는 법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양산면의 은행나무가 최고령이라 해도 누가, 아니라고 대뜸, 반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장보고가 다국적 해상무역으로(재야 史家들의 일단은 '다국적 해적'이라고도 한다) 한창의 패권을 유지하며, 요즘과는 사뭇 달리 제법 대등한 수준의 문물과 문화교류가 가속되던 시절, 그러한 시절 전후에, 중국 대륙 천태산의 화엄정신이, 당시 영국사(寧國寺)의 창건과 더불어 영동으로 옮겨온 것과 국가의 위기가 절정으로 달렸던 것들이 시대배경이 아닌가 한다. 9 세기 쯤의 왕건의 참모였던 도선대사는 풍수가 밝았다 하고 태조 이성계의 참모였던 무학대사는 경복궁터 점지 전에 도선대사의 현현을 보아 북악산 아래에 도읍을 정했다, 한다. 원각국사는 천사백년 전, 나라가 어려울 시기였던 , 절박한 때, 기도도량으로 점지하여, 나라의 흥망과 온라인으로 연결시켰던 영험의 "터"에 은행나무가 자리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괄하여 최고령으로 버티고 있는 사연인즉, 몹쓸 할큄으로 강들이 울고 있는 울음을 어찌 이 나무가 몰랐겠느냐,는 것이다. 눈물 대신, 일순에 온 몸(은행잎)을 흘림으로, 빈 몸으로, 시제(詩祭)를 열 수 있었던 사연이 깊게 읽히기도 하였으며, 우리의 지금, 형국이 그만큼, 처절하다는 것으로 해석해 보기도 하였다. 적지 않은 시인과 작가들이 천사백세의 나무를 위로했다. 무슨 큰 응답을 바라고 올린 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를 위한 시를 걸었다고 보았다. 결국은, 사람이다. 한 시인이 이 소리를 들었고, 문학인,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으로 일천 사백년 묵은 나무에 깃드는 영혼과 교감하는 시제를 발원했다. 지방 문단에 이런 흡인력을 가진 작가를 가진 우리의 좌표가 차라리 다행이다. 소생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문학정신을 이토록 수십년 일궈온 저력에 감탄을 감추고 싶지않다. 필자는 그리 우아하지 못하며 나아가 까칠하기까지 하다. 그런 모자란 점이 글쓰기를 하면서 스스로 위무할 수 있어 덜 까칠해지고, 욕심도 줄어들고, 자신의 게으름까지 관대해지기도 한다. 덤으로, 작가를 뜨겁게 바라보는 시선이 빈약하나마 생기다 보니, 사진의 형태로 담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올 해는 소생에게도 이상한 해였다. 지난봄에 찍은 사진이 작가의 시서전 바이오그래피 (작가소개) 쪽에 저작권이 표기된 채로 올랐다. 졸지에 ‘사진작가’가 되었다. 희한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베껴쓴 울산바위 시의 흥취에 내리 날밤으로 그린, 아크릴 혼합재료 그림이 ‘추천화가’ 대접을 받고 스리랑카 수교33주년 대통령 초청 기념전으로 작품만 갔다 왔다. 놀랠 일이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였다. 한국어로 문학작품을 창작하며 발표하는 공간이 많은 듯하여도, 다 솎아 드러내 볼랴치면, 그리 많지 않은 시대, 하루하루의 희망이 절망으로 가라앉는 이 때에, 벼랑으로, 강으로, 목줄을 내놓기 전에 다시 우리 주변에 있는 느긋한 나무에 깃대어 위로 받으며, 바랄 수 없는 꿈을 계속 꾸게하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끊임없이 바라는 그런 해원(解怨)의 시를, 작품을 하나라도 써야 되겠다는 발원을 해본다. 깃댈만한 나무, 깃들만한 공간, 깃댈만한 우리들의 멘토들이 하는 긴 이야기들로 위안 삼아, 뿌리깊은 나무가 곁 생명에 힘을 주듯, 우리 또한 서로 상생하는 잃어버린 낙원을 이 추운 겨울 다시 생각해 본다. 지구가 사라지기 전까지.  
38 아뿔싸 /고석근 file
편집자
2360 2010-11-10
올해 50살인 셋째 아우는 같은 연배의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었단다. 모임 이름을 뭐로 할까 고민하다가 ‘아뿔싸’로 정했단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앞만 보며 줄달음치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자신을 보니 ‘아뿔싸’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을 눈앞에 둔 50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그 이름을 지었을 사내들의 쓸쓸함이 선히 보인다. 이게 인생일까? 한바탕 꿈인 인생. 이게 우리 삶의 실상일까? 동화 ‘어린 왕자’에 보면 ‘길들이기’에 대해 나온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길들여간다. 부부들을 보면 ‘어쩌면 저렇게 닮아갈까?’ 신기할 때가 많다. 그런데 부부들은 대체로 나쁜 쪽으로 많이 닮아가는 것 같아 닮은 부부들을 보면 마음이 슬퍼진다. 착하지만 약한 남자와 현실에 약삭빠르고 강한 여자가 만나면 대체로 남자는 약삭빠른 쪽으로 닮아간다. 그게 살아가기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 뒤에는 든든한 이 세상이 받치고 있어 부부는 그렇게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소위 ‘신자유주의’다. 모든 게 돈이고 돈을 향한 무한 경쟁이 이 시대의 유일한 율법이다. 이 율법을 잘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이 시대의 적자(適者)다. 심성이 착하더라도 약한 사람은 이 율법을 좇는 사람에게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들 신자유주의에 맞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끝까지 저항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소수가 된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잘 적응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속적인 것들은 어느 정도 가졌지만 혼을 잃어버렸기에 결국엔 ‘아뿔싸’ 비명을 지르게 된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헉헉대는 사람들은 이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생명의 문은 좁다. 신자유주의가 열어주는 넓은 문을 거부하고 생명의 좁은 문을 간다는 건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재물과 하느님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재물을 섬기면 재물에 길들여진다. 하느님을 섬겨야 하느님에게 길들여져 혼을 지킬 수가 있다. 하느님은 우리 안의 존재의 힘을 끌어올려준다. 이 힘이 커져야 행복해진다. 신자유주의는 이 힘을 고갈시키고 밖에서 끌어주는 대로 살게 한다. 끌려가는 삶. 이 삶의 끝은 ‘아뿔싸’ 낭떠러지가 우리를 기다린다. 한 개인이 좁은 길로 갈 수 있을까? 그것은 너무나 큰 결단이다. ‘다 버리고 가는’ 길이라 아무나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서로 어깨 걸고 아픈 다리 서로 일으켜 주며 가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다. 힘겹지만 이 좁은 길을 가야 ‘아뿔싸’의 낭떠러지를 만나지 않게 된다. 지난 일요일 비보이 공연을 보러갔다. 강한 음악과 야성적인 몸의 움직임이 좋았다. 우리는 몸 하나로 즐거울 수가 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몸. 나는 비보이의 유행을 이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읽는다. 많이 갖게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 맨몸으로 증언하는 행복의 비결! 이 비보이를 자본은 ‘좋은 상품’으로 계속 변형시켜 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좋은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에 길들여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끈질긴 소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새로운 ‘맨몸의 행복’을 만들어 낼 것이다. ‘아뿔싸’ 비명지르는 우리의 몸은 아직 희망이 있다. 우리 몸 깊은 곳의 혼이 비명을 지르기 때문이다. 아직 혼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 혼은 그 자체로 무한히 행복하다. 재물의 독버섯들 속에서 말갛게 돋아나는 혼들이 세상을 가득 덮기를 두 손 모아 빈다.  
37 아, 정의! /고석근 file
편집자
2166 2010-11-02
대학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했다. 석가의 삶이 좋았다. 학교에서 불교 교리 연구발표회를 한 적이 있다. 나는 한국 불교가 ‘정의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의 불교는 완전히 어용이었다. 나는 그런 불교의 모습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꼈었다. 학생들 호응이 컸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다 대학을 갔기에 대학의 자유로운 공기가 너무나 좋았다. 그 공기를 흠뻑 마시며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상상력을 더 이상 키울 수 없었다. 정의를 생각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실상을 사회과학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그 도정에서 마르크스를 만났는데, 마르크스는 어둠의 장막으로 가려져있었다. 지도 교수님은 위험하다며 마르크스를 더 이상 찾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움츠려 들었고 내 상상력도 함께 움츠려 들었다. 대학 생활이 신나지 않았다. 사람의 삶은 상상력의 범주 만큼이다. 내 한 몸만큼의 상상력으로 보는 세상은 신비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럭저럭 살아내야 할 의무인 삶. 나는 니체가 얘기하는 낙타가 되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다 나를 다시 신나게 한 것은 10. 26이었다. 다시 정의가 내 가슴속에서 피어났다. 구호를 외치며 맡는 최루탄 가스 냄새는 내 몸에 정의의 꽃을 피어나게 했다. 세상은 다시 신비로워지고 사람이 아름다워졌다. 내 지나온 삶들을 생각해 보면 사회에 정의가 피어날 때 내 삶도 함께 피어났고 정의가 시들 때 내 삶도 함께 시들었다. 사람은 우주만큼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은 우주만큼 존귀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정의가 서지 않는 사회에서는 상상력이 움츠려 든다. 항상 내 한 몸, 내 가족만 생각하게 된다. 바깥세상은 공포일뿐이다. 삶은 그만큼 쪼그라든다. 이렇게 살면 산 것 같지 않게 된다. 삶이 한바탕 꿈같게 된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항상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세상 눈치를 보고 살았으니 산 것 같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저께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집에 놀러 왔다. 모두 남자들이었다. 아내와 코흘리개들이 되어 반말을 쓰는 게 신기했다. 나도 설레는 가슴으로 그들과 어울렸다. 그들은 나를 형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들은 술잔을 마구 비우며 권하더니 금방 취해버렸다. 나는 술을 마시며 얘기하는 게 가장 재미있다. 술에 취해 마구 떠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멋있는 말도 하게 되고 내 상상력은 마구 피어난다. 이것을 플라톤은 향연이라고 했다. 이 향연을 알게 된 것은 ‘운동권’과 문학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막걸리 몇 잔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신났다. 아내 동창들은 이 재미를 몰랐다. 멀뚱멀뚱 있기에 불편하니까 다들 술에 취해 버린 것이다. 그들은 평소에도 그렇게 술을 마신다고 했다. 그렇다. 한국에만 있다는 폭탄주. 정의가 오랫동안 사라진 사회에 살다보니 상상력이 쪼그라들어 서로 얘기할 게 없어진 것이다. 사람은 그립고 흠뻑 술에 취해 유치한 아이들이 되어 같은 말만 반복하다 헤어지는 것이다. 아내 동창들과 헤어지며 그들은 내 손을 잡고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들의 눈은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말 하는 동물 아닌가? 말이 사라진 만남은 신나지 않다. 비척거리며 돌아가는 그들이 너무나 불쌍했다. 얼마 전에 ‘행복 전도사’가 자살을 했다.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나는 그분의 죽음에 대해선 두 손 모아 명복을 빌지만, 결코 그 분은 ‘행복 전도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다. 세상의 정의가 서야 한 개인도 행복하다. 정의가 서지 않은 사회에서는 정의를 세우기 위해 싸워야 한다. 그래야 한 개인의 상상력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정의를 세우는 것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이 수 십 만부가 팔렸단다. 이제 사람들이 ‘부자 되세요’의 환상을 벗어나 정의가 행복의 필수 요건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깨어난 의식들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나가게 할 것이다. 광장에서 피어난 사람꽃 향기들은 은은하게 퍼져나가며 이 세상을 정의롭게, 행복하게 할 것이다.  
36 ‘타블로와 네티즌들’을 위하여 /고석근 file
편집자
2114 2010-10-27
'타블로와 네티즌들’을 위하여 학창 시절의 최고의 무서운 추억은 단연 담임선생님이 급우들끼리 뺨을 때리게 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 광경이 눈앞에 생생하다. 교탁 옆에서 두 아이가 발갛게 부풀어 오른 서로의 뺨을 점점 더 증오심 어린 손바닥으로 힘껏 때리고 있다. 처음에는 장난기 있게 킥킥 웃다가 몇 번 담임선생님의 주의를 받고는 서서히 두 아이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갔다. ‘타블로 사건’을 접하고선 나는 이 끔찍한 추억을 떠올렸다. 가수 타블로와 네티즌들은 그냥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 음산한 소리가 내 귀에 지옥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신음소리처럼 들려온다. 왜 우리의 다정한 이웃들인 네티즌들이 가수 타블로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대하게 되었을까? 그의 사생활을 일일이 파헤치며 ‘정의’를 세워 갔을까? 타블로의 진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증오심을 거두지 않았을까? 그들에게 서로의 뺨을 때리게 한 이 세상의 담임선생님이 그만하라고 명령을 내리지 않아서가 아닐까? 우리의 다정하고 평범한 이웃들인 네티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평소에 이 세상의 담임선생님들에게 무수히 구박을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분명히 세상의 담임선생님들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그들에게 감히 대들지는 못해 그들의 가슴속에는 분노와 증오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이 불길들이 일시에 ‘나약한 타블로’에게 향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그들을 따스하게 감싸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만 똑 떼놓고 보면 분명히 네티즌들이 잘못했지만 그동안 그들은 얼마나 이 세상의 강자들에 의해 당해왔을까? 법에서도 긴급피난이라는 것이 있다. 길을 가다 갑자기 차가 인도로 뛰어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긴급 피난하느라고 다른 행인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무죄가 된다. 나는 네티즌들의 마음이 이런 행인의 마음과 크게 보면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합리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의 마음은 둑을 무너뜨린 강물과 같다. 한국에 살면서 너무나 부조리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힘없는 네티즌들의 마음은 마구 아우성치며 흐르는 강물이 되어버렸다. 그 강물에 타블로는 휩쓸려 버린 것이다. 물론 네티즌들은 사람이기에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먼저 우리 사회가 그들의 상처투성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블로는 이번 사건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우리 사회에서 ‘특혜를 받아온 사람’이다. 잘 사는 부모를 뒀기에 미국의 명문대를 갈 수 있지 않았는가? 만일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였다면 그보다 머리 좋은 사람이 그 명문대를 가 그는 그 대학을 못 갔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부모 잘못 만난 죄’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능력 발휘는 고사하고 먹고 살기도 힘들게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타블로는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지만 앞으로 먹고 살기엔 지장이 없지 않은가?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큰 특혜를 받았는가? 타블로가 네티즌들의 깊은 마음의 상처들을 가슴으로 안아주기 바란다. 그러면 그는 한결 성숙한 가수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성숙한 모습들이 모여 우리 사회 전체를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비이성적이지만 네티즌들을 믿는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게 없어 비이성적이게 되어 버린 그들을 나는 믿는다. 그들이 이런 비이성적인 싸움을 통해 서서히 이성을 배워 갈 것이다. 그 힘은 우리 사회를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로 바꿔 낼 것이다. 그들이 타블로가 좀 잘 나긴 하지만 그냥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라는 걸 알게 되고, 그런 평범한 이웃에게 증오를 향하게 한 이 세상의 담임선생님들의 정체를 알게 되면 그들의 증오는 천지개벽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재벌, 오로지 재벌 편인 정치꾼들, 이들의 충실한 하수인으로 사는 고급 관료들, 언론인들...... 이 세상의 담임선생님들은 지금 이 순간도 옛날의 그 담임선생님처럼 이번 싸움을 바라보며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누가 이 세상의 담임선생님들의 얼어붙은 심장에 사랑의 불씨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나는 네티즌들의 미친 듯한 증오가 끝내 사랑의 불씨가 되어 그들을 사랑 가득한 담임선생님으로 거듭나게 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35 중학생의 방화살인사건 비틀어 보기/ 강태규
무궁화
2162 2010-10-22
- 중학생의 방화사건 비틀어 보기- (하늘의 재능 속에 숨은 그림 들여다보기/ 학생에 대한 시인의 변호) 신문기자들은 “가족들 끔직하게 태워 죽인 중학생” 등으로 표현한다. 거두절미하고, 학생의 잘못은 선생에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아들의 잘못은 아비에게 물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중학생은 면책의 상당부분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극명한 현재의 세태를 포괄하는 상징적 사건임에도 기사는 “썬데이” 수준이다. 우리는 “르몽드” 수준의 심층기사 까지 원하진 않는다. 일간지 대부분의 사건담당(사회부) 기자들은 젊고 스펙도 좋은 푸른 지식인층이다. 이 사건의 무대 바로 뒤, 천막가리개를 재끼면, 현재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그대로 있다. 이제, 우리 모두, 사건의 안팍에서 우리 자신들을 대위시켜보자. 첫째, 우리가 중학생이 되어보자. 타고난 재능 너머로 춤과 음악, 이른바, 온갖 안방의 황금대 시간에 장식되는 예능프로 전성시대의 공중파의 이미지들을 보라. 이승기를 흠모하고, 투엔이를 흠모하며, 가능한 모든 웃음거리와 잘 노는 우상들을 주입시키며, 찌든 신자유주의의 노예로 안주하게 한다. 당신도 너도 1% 가 되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계급이동의 기회는 모두 박탈당하고 내 집과 내 가족의 안위에 급급하다. 향후 10년 후라도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없다. 절망이다. 마약이 필요한 단계이며, 음주와 흡연이 지속될 수 있는 모든 환경이 완벽하다. 미륵도, 메시아도 너무나 멀리 있다. 서울농대 동문인 이수만은 예능의 황제로 등극하여 예능제국을 가동하고 있다. 모든 자본의 유통에는 이토록 예능과 공생하는 시대가 되었다. 중학생인 나는 미륵도 메시아도 아버지도 구원자가 되지 못하고 예능으로 스타가 되고 대중의 우상이 스스로 구원하는 길임을 확신하게 된다. 나의 입장에서는 나의 예술의 길을 위해 아버지가 없어야 구원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어른들은 많은 불꽃을 보여주었다. 심리학자는 극렬한 (자기)분노의 표출이라고도 한다. 그렇다. 우리는 너무 가득한 분노 속에 있다. 소년인 나 또한 예민한 안테나로 그 분노를 쉽게 수용하고 표출하게 된다. 멘토가 어른이었기에 멘토의 수준을 초월할 수도 없다. 둘째, 우리가 아버지가 되어보자. 허망한 예능의 세계를 너무나 잘 안다. 그것은 모닝커피 처럼 소비되고 마는 허상임을 잘 안다. 예능감독이나 PD 집단들에 수억 들일 돈이 없다. 아버지인 나 또한 적지 않은 예술작품과 인문서적의 감동으로 청춘의 힘을 소진하던 때를 떠 올린다. 동료 예인들이 월 백만원의 수입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힘겨운 살림살이를 보며, 두세 가지 일거리를 찾는 가장노릇들도 보았다. 노동기술이 없건 있건 정의와 공정한 세상이 아님을 체험으로 알아온 약육강식의 정글이 된 세상을 보았다. 모아둔 돈이 별반인 아버지로, 아들에게 권하는 유일한 최선의 선택이 판검사이다. 맞다. 예전처럼 일년에 이삼십명 뽑는 시험이 아니라 수백명을 뽑는 시험이며, 자본주의 정점들에게 가장 필요한 인력이 법노동자 아니던가. 세상은 이토록 더럽게 바뀌었다. 법이 가장 필요한 시대가 가장 더러운 시대라고 옛 성현들이 예습, 복습 시킨 대목이기도 하다. 여전히, 예능은 돈이 많이 든다. 게으른 아버지로서는 그냥 고시 1차 시험인 말하는 능력, 상황판단하는 능력, 머리 굴리는 능력에다가 영어능력 시험을 통과하여, 헌법, 행정법, 공법, 상법을 잘 외어서 2차 시험에 붙어주길 원한다. 얼마나 저렴한가 말이다. 셋째, 우리가 민중이 되고 변호하는 시인이 되어보자. 프랑스의 중학생은 분노를 표출할 줄도 안다. 68혁명을 떠 올린다. 미안하다. 너에게 프랑스의 청소년처럼 건강한 지식을 주지 못했다. 너에게 광장을 주어야 했건만, 겨우 나를 태움으로서 너의 혁명을 완수 하는구나. 우리가 불꽃되지 못함을 너로 인해 불꽃되게 하였구나. 미안타. 기자들은 너를 욕한다. 나는 너를 용서한다. 고맙다. 하늘은 불타는 제물을 원하는 이 시대가 그러함을 안다. 이 세상을 욕하지 마라. 그러나 저항해라. 그러하면 너는 승리자다. 세상이 그렇다. 삼천년 전에도 그랬다. 큰 사랑은 일순 잔혹해 보여도 불 속에서는 숭고하다. 스스로 태우는, 태울 수 있는 주체는 차라리 건강하다 비록, 거짓말, 틀린 말이라 하더라도.(끝) - 드디어 우리의 중학생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징조다. - (곁붙이는 글) 오래전이다. 항공기가 전남 어디 산중턱에 추락하여 선한 분들이 죽었다. 여러 추도 글 중에서 기억나는 대목이 있다. 그 글을 통하여 착하고 선하게 산 사람에게 닥치는 불행을 신앙을 가진 자로서 위안하는 대목을 기억한다. "살아 남은 자에 주는 경고" 의 역할이, 라는 것이었다. 누가 죽음을 원하겠는가마는, 죽어야 할 때에는, 때로는 참혹한 과정을 통한 죽음은 이렇게도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 역할이 "선한 삶" 에게도 부여된다는 설명. 내 아들에게, 내 아내에게 적용하거나, 설명할 수 있으려면, 이 죽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만하는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죽음에도 명분세우기를 좋아하는 남정네 세계에서의 크고 작은 영웅들. 여전히 江의 분노를 지울 수 없는 지금, 글쓰기를 통하여 스스로 다독이거나 생각을 나누어 보는 시간. 미물로서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경지는 요원하기만 한데. 또 가을이다. 가을을 탄다. 괴롭다. 시가 될라나.  
34 한국이 싫다/고석근 imagefile
편집자
2378 2010-10-14
한국이 싫다 한동안 막장 드라마가 유행하더니 전동차 안에서 ‘실제 막장 상황’이 연출되었다. 70대 할머니와 10대 소녀가 막싸움을 했단다. 70대 할머니가 다리를 꼬고 앉은 10대 소녀에게 흙이 묻은 신발을 치우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고, 반말로 대꾸하는 여학생의 머리채를 할머니가 잡으면서 말다툼은 격렬한 몸싸움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화가 난 할머니는 자신을 나무라는 다른 승객에게도 목소리를 높이고, 자리로 돌아간 소녀는 한국이 싫다며 계속 울부짖었단다. 하지만 이 싸움을 적극적으로 말리는 지하철 승객은 없었다고 한다. 소녀의 ‘한국이 싫다’는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나도 사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요즘 한국이 너무나 싫기 때문이다. 대다수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세대간의 갈등으로 해석한다. 이는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고픈 자들의 시각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나무와 풀들은 서로를 할퀼 수밖에 없다. 한국에 상륙한 신자유주의의 태풍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서로 할퀴게 한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이런 진실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위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이 사건의 본질을 세대간의 갈등이라고 진실을 왜곡한다. 그러면 전선은 지배-피지배 간이 아니라 세대간으로 형성되어 버린다. 선과 악이 싸우는 세상, 항상 진짜 악은 무대 뒤에서 웃고 있다. 나는 소녀가 싸움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에게 ‘유튜브에 올려!’라고 한 말에서 희망을 찾는다. 지금은 그 소녀는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급박한 상황에서는 그것만이 진실을 드러내고 자신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인류는 세상 사는 지혜를 광장에서 구했다. 문제를 서로들 앞에 툭 던져 놓고 함께 논의하다보면 명답이 나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이 부패하면서 이런 광장을 폐쇄해 버렸다. 우리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말거나 든든한 백을 찾아 나서곤 했다. 그러다보니 모두 이전투구에 빠져들어 이기거나 지거나 상처투성이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한국이 싫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서로를 사랑해야 행복하지 서로를 미워하고서는 불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가지고 서울 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면 어떨까. 지배계급의 방해만 막아낼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지혜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답은 ‘공정하지 못한 이 한국사회에 대한 강한 응징’이 될 것이다. 도대체 한국의 어느 한 분야라도 공정한 곳이 있는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한국의 건국부터 공정치 못했다는 것을 다 알게 될 것이다. 일제에 부역하고 건국 초기에 불공정했던 사람들을 색출하고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가 논의 될 것이다. 그 뒤의 불공정했던 역사들이 속속들이 밝혀질 것이다. 사람들은 토론을 하면 할수록 기쁨에 들떠 한국 건국 이래의 최대의 축제가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위대했던가!’ 기쁨에 겨워 마구 울부짖을 것이다. 그 소녀와 할머니는 부둥켜안고 화해의 뜨거운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 숭고한 눈물은 한국 전체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에게 해원의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해원상생의 세상은 이렇게 쉽게 올 것이다. 아, 잠시 꿈을 꾸었다. 이런 상황은 결코 당장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힘을 소유한 지배계급이 온갖 권모술수로 자유로운 토론을 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를 할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한국이 싫다! 하지만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은 옛말, 이제는 중이 절을 고쳐서 산다. 나도 이 한국을 고쳐서 살 것이다. 한국 곳곳이 와글와글한다. 사람들은 한국 전체를 광장으로 만들려나 보다!  
33 상처 입은 사람들 /고석근
편집자
2555 2010-10-08
상처 입은 사람들 동물의 왕국 동물의 왕국 한 귀퉁이에 사자 거지 가족이 살고 있다 평원 중앙에는 풍성한 먹이에 둘러싸여 유유자적하는 초식동물들 멀거니 바라보는 사자 식구들 쪼르륵- 자식들 뱃소리를 견디다 못한 엄마 사자가 슬금슬금 물소 떼에게 다가간다 랄랄랄- 원무(圓舞)에 빠진 물소들 한 푼만 줍쇼 엄마 사자가 애처로운 눈으로 물소들을 좇아간다 늙은 물소 한 마리가 사자 엄마의 간절한 호소에 멈칫멈칫 걸음을 늦춘다 내 한 평생 즐겁게 살았으니 이 한 몸 보시하리라 늙은 물소가 털썩 엄마 사자 앞에 눈을 감고 주저앉는다 엄마 사자 감격하여 고마워요, 물소님. 흑흑 여보, 얘들아- 우르르 몰려오는 아빠 사자와 새끼 사자들 비로소 사자 가족들 기쁨에 들뜬다 산길을 가다 긴 몸을 끌고 가는 지렁이 한 마리를 본다. 힘겹게 기어가고 있다. 햇살이 지켜보고 있고 나무와 풀들이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다들 무심하다.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꿇어 앉아 자세히 보니 개미가 몇 마리 붙어 있다. 상처 입은 그는 개미들에겐 좋은 먹을거리이다. 한참을 들여다 보다 나도 무심하게 내 길을 간다. 나도 저런 적이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받고 누군가에게 위안 받고 싶어 마구 푸념을 했는데, 다들 무표정했다. 내가 바라보자 그제야 안됐다며 혀를 끌끌 차며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힘겹게 비틀비틀 걸어 나오는 나를 그들은 빙 둘러쌌다. 그들의 눈은 야수처럼 빛났고 숨을 헉헉 몰아쉬는 나를 그들은 일시에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했다. 내 상처는 그들에게 먹이였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얕은 신음 소리만 냈다. 그들은 배를 다 불리고 나서야 나를 내버려 두었다. 나는 간신히 너덜거리는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와 쓰러졌다. 내 상처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했다. 인간 세상도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흔히 아수라장이 된 인간 세상을 정글에 비유한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먹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먹는 게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 하지만 동물들이 배고프거나 위협받지도 않았는데 다른 약한 동물들을 마구 죽이는 경우가 있는가? 사람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쉽게 죽인다. 이게 어떻게 자연의 섭리인가? 먹을 게 넘쳐나는 이 세상에 도대체 다른 사람을 죽일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죽어가는 지렁이는 분명히 행복할 거라고 단언한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진인사 대천명 (盡人事 待天命)! 그래서 그는 여한이 없다! 하지만 상처 받은 사람들은 어떤가? 먹을 게 넘쳐나는 이 세상에 왜 그들이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먹을 게 부족하지 않는 한 사람들은 서로 다독이며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다른 동물들은 다 그렇게 산다.  
32 출가(出家)를 위하여/고석근
편집자
1974 2010-10-01
출가(出家)를 위하여 추석이 끝나고 강의실에 나타난 아줌마 수강생들, 다들 지친 얼굴들이다. 부모 형제들과 만나 따스한 위안을 받길 바랐을 텐데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들을 안고 왔다. 어느 집안이나 ‘악마의 금전’이 끼어들어 서로의 사이를 벌려놓는다. 주로 남자 형제들이 문제다. 장남은 장남임을 내세워 경조사 때 들어온 돈들을 항상 다 가로채 간다고 한다. 남동생은 외로이 사시는 어머니 곁은 맴돌며 호소탐탐 재산을 노린다고 한다. 그럼 장남이 잘하는 집안은 평화로울까? 그런 집안은 장남에게 다들 의지해 문제가 생긴다. ‘가족’이 생기기 이전 인류는 참으로 평화롭게 살았다. 그때는 ‘소유’가 없었다. 산과 들에 널린 먹을거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다 먹을거리를 보관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소유’가 생기고 소유를 향한 싸움을 하며 인간사회는 계급사회가 되었다. 평화(平和)는 입(口)에 들어가는 쌀(禾)이 공평(平)한 상태이다. 계급사회에서는 이 평화가 유지될 수가 없다. 이 ‘소유’로 인해 나타난 것이 가족이다. ‘가족’하면 사랑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은 가족은 경제관계이다. 국가가 ‘사랑의 가족’을 내세우는 이유는 국민을 쉽게 통치하기 위해서다.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우리 사회의 지배자들은 이런 사회를 두려워한다. 국민들이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분노하고 분노를 행동에 옮기면 정말 공정한 사회가 오지 않겠는가? 그러면 부정부패로 인해 온갖 특혜를 누리던 그들의 특권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그들은 국민을 ‘사랑의 가족’ 안에 가둬놓았다. 새장속의 새처럼 국민들은 사랑을 노래한다. 비명 지르고 울부짖는 소리도 밖에서 들으면 모두 노랫소리로 들린다. 우리들의 가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체가 보인다. 어느 가족이나 다 힘겹게 산다. 사랑이 아니라 서로 물어뜯고 할퀴며 산다. 사랑의 아름으로 행하는 폭력은 얼마나 무서운가? 남 같으면 그렇게 하지 못할 행동도 가족이기에 쉽게 한다. ‘개인’이라는 존엄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사회 같으면 그래도 가족이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가문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을 져주었다. 가족은 함께 살고 죽는 공동운명체였다. 그래서 며느리는 그 매운 시집살이를 견뎌냈다. 참고 참으면 ‘숭고한 어머니’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남은 희생했다. 그러면 그 희생만큼 보상이 따라왔다. 그런데 이제 그런 봉건사회는 갔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그런 봉건사회에 머물러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여전히 ‘숭고한 어머니’를 내세워 권력을 휘두르는 시어머니가 있고 그런 시어머니를 힘으로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못된 며느리’가 있다. 부모 재산을 다 상속 받는 장남도 있고 희생만 하는 장남도 있다. 이제 이런 가족 관계들을 끊어야 한다. ‘어머니’ ‘시어머니’ ‘며느리’ ‘장남’ 이런 단어들은 글자만 남고 내용은 다 사라져야 한다. ‘숭고한 어머니’가 어디 있는가? 그냥 여자일 뿐이다. ‘부모 대신의 장남’이 어디 있는가? 그냥 남자일 뿐이다. 강의를 바치며 나는 우리 모두 정신적으로 출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부도 서로 좋은 벗이 되고 부모자식관계, 형제관계도 좋은 벗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인격을 존중해 주며 삶을 함께 나누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과 우애는 커녕 보이지 않는 반목과 미움이 서려있는 관계들을 솔직히 인정하고 봉건제 사회가 묶어놓았던 밧줄들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사랑의 가족’이라는 잔혹한 연극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인간은 배우가 아니다. 너무나 존귀한 각 개인이다.  
31 신달자 시인/권형하
편집자
3074 2010-09-28
신달자 시인은 2010년 7월 21일 방송된 KBS 2TV ‘여유만만’에서 ‘주부 우울증 극복 프로젝트’에서 ‘자기愛 -나를 사랑하는 법’을 공개하면서, 인생의 고난을 딛고 일어선 오랜 세월 우울증으로 고생한 심경을 고백하는 특별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결혼 9년 만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려져 24년간 남편을 간병하느라 그녀의 인생이 궁색해졌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설상가상 시어머니까지 낙상으로 9년간 몸져눕는 신세가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2000년 남편과 사별한 후, 자신도 유방암 환자가 됐다고 하면서, 내가 환자가 되고 난 후 남편의 마음을 이해를 하겠더라.”고 털어놨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우울증의 시작은 ‘나에게만 닥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며“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또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자”고 당부했습니다. 이어 신달자 시인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남한테도 사랑받을 수 있다”며 “내 스스로 자신의 생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나를 믿고 스스로에게 신뢰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신달자 시인의 우울증 극복 방법으로는 “당당하게 표현하고 살 것”, “현재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고 하나씩 실천해보기”, “나 스스로 칭찬하기, 나한테 선물하기” 등을 공개해 출연진의 공감을 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요즈음 기업체 등에서 강연 초빙 1순위라고 합니다. 신달자 시인의 강연 요지는 첫째 독서를 강조합니다. 둘째 돈을 벌기보다는 사람을 먼저 벌어라. 셋째로는 매일 열심히 일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애국이다. 라고 강조하면서 자기 자신은 사별한 남편의 병수발과 본인의 암과 우울증 등에서 극복한 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제 운명을 미워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했으며, ‘가족은 서로 피하면 끌어안을 수 없어요’ 고 고백했습니다. 다음은 신달자 시인의 긍정적인 삶을 느끼게 하는 시를 소개합니다. 등잔 / 신달자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 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고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줄 흘리고 불을 켜 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이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30 똥 눌 때 정신을 차려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만공 선사) /고석근
편집자
2252 2010-09-22
똥 눌 때 정신을 차려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만공 선사) 소크라테스는 똥 눌 때 어땠을까. 죽을 때 이성(理性)에 걸림돌이 되는 몸을 이제야 벗어나게 되었다며 좋아했다는 그가 과연 똥을 누는 지극히 육체적 행위를 좋아했을까. 인류사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똥 눌 때 어땠을까. 아마 대다수는 똥 누는 행위를 버거워하지 않았을까. 오! 육체는 슬퍼라!(말라르메 시 구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똥을 누는 행위를 즐긴(?) 사람들은 주로 하층 사람들이었을 테고, 귀족 중에는 극소수였을 것이다. 그런 귀족들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귀족은 귀족답지 못했을 테니까. 인간 세상의 지배자들은 육체를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는 척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동물성(육체성)을 극복한 다른 인간보다 나은 인간처럼 보일 테니까. 그들은 자연스런 여러 육체적 행위들을 경멸한다. 인류사의 주류철학들은 다 육체를 배제한 정신을 칭송하는 관념철학들이다. 서양의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시원으로 하는 서양철학은 기독교 사상과 결합되어 육체를 써서 살아가는 노예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쉼 없이 꾸역꾸역 일만하는 노예들은 고상한 정신을 노래하는 귀족들에게 기가 질려 감히 대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귀족들은 노예들 앞에서는 육체를 하찮게 여기는 척하며 뒤에서는 온갖 육체적 쾌락을 누리고 살았다.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공자의 고매한 사상, 석가의 큰 깨달음은 귀족들이 동양의 피지배계급들을 마음껏 부려먹는 충실한 세뇌의 도구가 되어왔다. 나는 성현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도달한 높은 정신적 경지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상한 정신을 이용하여 지배계급들의 지배를 정당화시켜준 이데올로그들에게 큰 분노를 느낀다. 성현들의 사이비 추종자들이 너무나 많다. 고매한 사상은 글자로 전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글자는 단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달을 자신의 두 눈으로 생생히 볼 수 있을 때만이 그는 진정으로 그들의 사상을 이해한 것이다. 진정으로 달을 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사상이 높디높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달은 어디서나 불 수 있다고 우리 주위의 물속에 비친 달들을 조용히 가리킬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손가락을 통해 진흙탕이나 맑은 물이나 아무데나 비치는 달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의 달만 얘기하는 그들을 나는 믿을 수 없다.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가? 나는 하늘을 얘기한 공자의 사상을 근래에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한 최제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새까만 글자만 가득한 관념철학’을 신봉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인간이란 육체 그 자체다. 육체를 떠난 정신이 어디 있는가? 예수는 말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육신이 행하는 만큼이 마음이다. 육신이 스스로의 위를 채우고 팔다리의 안락을 위해 물욕에 빠져 있다면 그가 아무리 고상한 생각을 하더라도 그는 천박한 존재다. 생각으로야 무엇을 못하나? 육신이 어디 있느냐가 자신의 정신적 위치다. 입으로 들어가는 밥의 출처가 그의 정신 그 자체다. 똥 눌 때 정신을 차리면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나는 내 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똥을 누며 이 구절을 생각한다. 하지만 깜빡 정신을 놓고 ‘끙’ 힘을 준다. 후딱 이 육체적 행위를 끝내고 싶은 것이다. 이게 내 정신 수준이다.  
29 조선 성리학을 위한 변명 - ‘높은 관념성’과 '공리공론' [1]
양백산인
2632 2010-09-18
조선 성리학을 위한 변명 - ‘높은 관념성’과 '공리공론' 양백산인 박 희 용 다산연구소 소장이자 당대의 석학 중의 한분인 박석무 저 『조선의 의인들』(한길사. 2010) 377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조선 왕조의 통치이념이자 학문의 주조였던 성리학은 이론의 관념성이 높았기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이 말은 해방 이후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가 식민지를 겪은 앞 세대로부터 늘 상투적으로 듣고 읽어온 말로서 대부분의 개인 및 집단의식의 근저를 형성하고 있다. 교과서를 다시 읽는 듯한 박석무의 말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학문적 이론과 현실적 실천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기준에 맞추어 볼 때 성리학은 높은 관념성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화 되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문장으로 요약한 평가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미흡하다. 그는 단순히 '성리학'이라 말하였는데, 성리학도 초, 중, 말기에 걸쳐 그 사상의 개요가 다분다기화 되었다. 특히 고려 말 안향 등 관학자들에 의해 명나라에서 직수입된 주자 성리학이 냇물이라면 화담, 율곡, 퇴계가 일군 조선 성리학은 대하장강으로 이미 냇물과는 수량과 강폭을 달리한다. 명확한 개념 정의 없이 그냥 '성리학'이란 어휘 하나에 총평을 담기엔, 주자 성리학과 조선 성리학을 분명히 구별하지 아니하고 뭉뚱그려 총평하기엔 역사적 진실이 너무 무겁지 아니한가. 이론과 실천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그는 성리학 실천이 어려웠던 까닭을 ‘높은 관념성’에서 찾고 있다. ‘높은 관념성’이란 추상적인 말이 성리학 이론의 수심을 어느 정도까지 짚는지 모르지만, 성리학 이론의 관념성이 높았기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성리학의 관념적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얼치기, 사이비 지식인들이 성리학을 처세의 방편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일상적 만족을 유일 가치로 하는 현실주의 때문에 성리학이 공리공론이라는 누명을 덮어쓰고 있는 게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한다. 그 당시의 지자들이 과거용 유학, 지적 현시용 성리학 위주로 자기 합리화를 위한 편협한 시각으로 성리학을 이해했기 때문에 올바른 실천이 어려웠고,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에 집착해서 인성과 물성을 재단했기 때문에 시대와 역사가 왜곡, 오도 되었다는 것이 제대로 된 역사적 통찰일 것이다. 조선후기 이후, 조선망국과 식민지 시대, 분단을 거치면서 그 모든 민족사적 질곡의 원인이 봉건유학에 있고, 그것의 핵심인 성리학에 있다는 게 해방 이후 학자들의 일반적 평론인데, 시대가 흐를수록 쌓이는 사료와 학문성과에 의해 국망의 원인이 반드시 유학-성리학에만 있지 않다는 게 오늘날 학계의 한 작은 흐름이다. 근대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조선조 500년을 지배한 성리학의 부정적인 면과 폐해를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실학을 발굴하여 현양한 결과, 오늘날 실학은 역사적인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으나 성리학은 케케묵은 골동품이 되어 외면, 소외되어 있다. 그들이 실학을 부각하며 실학이 성리학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학문인 줄로 광고하지만, 실학이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학문의 경향, 즉 성리학이란 알맹이에 덮인 껍데기 이다. 서학을 추구한 학자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성리학적 교양을 이미 체득하였고, 조선 후기 대부분의 실학자들은 성리학적 가치와 사고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보태 새로운 사고, 즉 실학을 추구하였다. 그러므로 실학자들도 근본적으로는 유학자요 성리학자인 것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껍데기는 변화할 수 있지만 알맹이, 즉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 현상은 상대적이지만 본질은 절대적이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알맹이인 성리학을 왜 공리공론이라 치부하는지. 모든 물체는 알맹이, 즉 본질이 있어야만 존재가치를 갖는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는 약하여 금방 부서지고, 썩은 알맹이나 부실한 알맹이가 든 껍데기는 금세 부패하고 만다. 청출어람, 주자 성리학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연 조선 성리학은 알맹이 중의 알맹이이다. 그 소중한 알맹이를 탓하기보다는 껍데기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살펴보는 게 지자의 도리일 것이다. 성리학이 갖는 ‘높은 관념성’이 문제라고 했는데, 관념성은 이론의 속성이다. 관념성이 높다는 것은 이론의 정치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리학은 이론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진다. 그럼에도 성리학이 ‘높은 관념성’을 가졌기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는 말은 이론과 실천의 연관성을 부정하거나, ‘낮은 이론’에 적합한 ‘낮은 실천’을 강조하는 하향 평준화 평가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고려 말에 수입된 주자학을 승화 발전시킨 화담학, 퇴계학, 율곡학의 정수인 그 관념성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이후 시대마다 수두룩한 현실주의자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편의성 위주로 이용한 ‘경세성’이 오히려 진짜 문제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리학의 ‘관념성’이야말로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사유 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인문학에서 관념성이란 사람에게서 정신이 차지하는 비중만큼 중요하다. 하물며 성리학은 고도한 사고력의 산물인 바, 정치한 눈을 가진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관념성이 난해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지극의 학문인 성리학의 관념성을 제대로 이해, 활용하지 못한 시대 상황적 경세성이 비판을 면할 수 없어야 마땅하다. 성리학이 고질이 되어 쇠퇴하면서 실학이 그 대안으로 부각된 것은 아니다. 면면히 이어진 조선 유학자들의 학문적 업적이 쌓이고 쌓인 바탕 위에서 실학 등 새로운 학문 경향이 일어났다. 서세동점의 화급한 시대적 상항을 맞이하여 철학적인 가치 궁구보다는 현실 타개에 필요한 생활적인 가치를 추구하려고 실학이 발흥한 것이지 실학이 꼭 성리학의 관념성을 비판하고서 성립되는 게 아니다. 이미 성리학자로서 일가견을 이룬 그 당시의 실학자들이 추구한 목표는 알맹이를 빼고 새 알맹이를 장착하자는 게 아니라 성리학이란 알맹이에 새로운 껍데기, 옷을 입히는 것이었다. 신장개업을 하자는 것이었지 점포를 폐쇄하고 새 사업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박석무의 역저인 『조선의 의인들』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화서 이항로, 노사 기정진, 한주 이진상 등이 주리론을 기본으로 척사위정론을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정통 성리학맥에 가깝지, 주기론을 기본으로 실사구시론을 주장하는 실학자에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에서 관념성은 속성이자 촉수 역할을 한다. 물론 지적 유희나 자기과시용 관념성은 당연히 배제되어야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높은 관념성’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박석무의 말대로 ‘높은 관념성’을 가진 성리학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이 어려운 공리공론’이라는 폄훼를 받으며 나라를 망친 주범이라는 누명을 여태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은 우리 학계의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날 일반적인 인식에서는 식민지, 분단, 전쟁의 원인을 조선 망국 때문이라고 한다. 이어서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고 고질화한 유학, 주자학을 거론한다. 그러나 망국의 가장 큰 近因은 내적으로는 19세기부터 곪기 시작한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들의 세도정치, 무능한 왕과 신하들이 저지른 수탈과 탐욕의 삼정문란에, 외적으로는 일본을 침략수로 내세운 서양 자본주의 세력, 자본이란 흉기를 든 물신주의자들에게 있다. 그리고 망국의 가장 큰 遠因은 화담, 퇴계, 율곡이 일으켜 세운 조선 성리학이 아니라 기득권을 누리려는 입신양명주의자들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이 내세운 형식 예론과 탐욕으로 대변되는 사이비 주자학자들에게 있다. 주자학이라는 껍데기를 뚫고 조선 성리학의 진면목을 보아야 한다. 현실과 유리되어 난해하다는 의미를 갖는 '공리공론'이라는 말 한 마디로 경원하기에는 조선 성리학이 갖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리공론'이란 말은 철저한 신분제도와 허례허식이란 족쇄를 채운 경국대전을 만든 조선 초기 관유학파들, 조선 성리학의 본류와는 무관하게 예론, 당론에 몰두하던 수구보수 주자학자들, 언로를 봉쇄하고 사상을 통제하여 학문의 백화제방을 꺾은 조선 후기의 노론-벽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15세기 후반기에 발아하여 16세기에 화담, 퇴계, 율곡에 의해 활짝 꽃핀 조선 성리학은 뜻있는 선비들에 의해 면면히 흐르면서 외적의 침략을 극복하고 민생을 다독이며 이후 300년 동안의 조선을 지탱해 온 힘의 원천이었다. 극미로는 인성과 물성의 근본을 궁구하고 극대로는 세상과 우주의 법칙을 통찰하여, 인륜을 바로 세워 사회 구조를 유지하려는 조선 성리학자들의 노력은 시대와 역사를 추동하는 동력이었다. 세속적 부귀영화와 상관없이 청빈 속에서 진리를 궁구한 산림처사들의 정신과 삶의 태도에서 현대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물질문명의 한계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이 시대에 정신문명의 극치를 보이는 조선 성리학의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현학자들이 자기 알음알이 자랑삼아 괜히 어려운 말로 비틀어 나열해 그렇지 성리학은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통찰하는 지혜의 학문이다. 시대와 역사, 인간과 사회를 종횡으로 꿰어뚤어 소통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성리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문화 발전의 벼리이다. 선현들이 땀 흘려 일으켜 세운 조선 성리학의 학맥이 계속해서 흘러야 한다. 그리하여 주자 성리학이란 사대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조선 성리학이란 자주적 관점에서 보는 정당한 평가를 받아 이 땅에 새롭게 우뚝 세워져야만 나라와 生民들의 미래가 아침을 열듯 화창하게 펼쳐질 것이다. 2010년 9월 18일 열락연재에서  
28 역사의 심판, 하늘의 심판/강태규
무궁화
2384 2010-09-17
- 권중희 선생은 백범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당시 대위, 대령으로 예편)를 추적하여 정의봉으로 응징하였고, 그의 정신적 제자 박기서에 의해 1996년 안두희를 죽음으로 처벌하였고, 박기서는 2심에서 3년형을 언도 받았으며, 감옥에서 가장 행복하다, 하였다- 지난 달 13일은 권중희 사회운동가(위키피디아 인물검색 분류에 따름)의 몰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경북 안동 땅의 유전자를 가진 올곧은 또 다른 동명이인이자 닮은꼴, 독립운동가 권중희 선생은 1946년 몰하셨다. 요즘, 공정이 화두이며, 마치 외계어가 아닌지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 ‘비관’ 이라하기 보다 ‘공정’을 경험해 보지 못해, 낯설다, 라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이런 즈음에, 사회운동가 권중희 선생을 떠 올려야만 하는 자괴감에 떫은 감이 입안에 든 듯하다. 현재 여러 분야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엘리트들은 ‘역사’를 업수이 여기지나않는지 되돌아보는 날이었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어쩌면, 고조선 시대 이전부터, 힘있는 자의 정치력 중 하나는 대척점에 있는 핵심인물을 제거함으로 이루어온 과정, 게다가 동서고금, 유사이래 작금까지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감히 역사라 하기에 답답한 것은 은밀한 과정과 뚜렷한 결과 사이의 증거인멸과 고증의 차이에 있다. 문제는 근대화 이후에도 여전히,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유효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대한민국은 정보 통제의 힘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거기에 저항하는 올곧음은 지금도 처절하기도, 때로는 시민사회에 무력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200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국립기록관리청의 기록열람 결과에 근거하여 백의사의 단장 염동진(본명 염응택)에 의해 몽양선생과 장덕수를 제거한 것은 밝혀졌고 그 이후 정황적으로 백범선생에 못된 짓을 자행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백범선생의 임정법통론이 경찰중심의 군정강화론과 대립하던 시점으로 ‘되돌아 보기’는, 결국 2010년 현재에 까지 화인(火印)지워진 분단과 통일의 진행성 본론이자 각론에 다름아니다. 배운 사람이 더욱 못된 짓에 가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자명하다. 염동진만 하더라도 모국어를 제외한 4개 외국어에 능통했다, 하며 건국 전후에 가장 악랄한 살인청부업자였다고 이른바 ‘실리 문건’에 기록되어있다. 자타 맹인장군이라 불려진 그의 배경에 백범선생과의 구원(臼怨)을 유추해 볼 때, 더욱 정황성이 높다고 본다. 새삼, 권중희 선생의 몰 1,000일을 기억하는 필자의 바램은 정의가 무엇이며, 공정이 무엇이냐를 우리 모두에게 짐지워 볼랴치면, 안중근 장군 이라던지, 권중희 선생 정도가 아니면 공리상 그 기준에 살아남은 우리는 먼발치 아래 숨 죽여야 할지 모르는 답답한 현실 속에 있음을 느낀다. 필자는 살아 생전 두 번 만나 뵈었다. 급서하시기 넉달 전 쯤에 전화로 공개하기 민망한 사실확인에 대한 요청을 몸소 해 주시기도 하셨다. 여러 번의 전화통화를 통해서도, 필자의 간곡한 몸 관리 당부에 ‘걱정마라시며, 건강관리 비법을 자랑’ 하시던 사회운동가, 권중희 선생. 정의와 공정을 실천한 신자유주의 국가의 겨우 손꼽을 만한 인물이셨다. 늦게 배우신 누리집을 통한 열정, 과로, 100달러를 아끼기 위해 직접 평양축전을 휴대용 동영상녹화기에 담으셨던 영상물을 볼 때 마다, 장면 바로 뒤에 권 선생의 숨소리를 느낀다. 당신의 대포같은 정열을 뿜어내시는 노익장에, 필자는 권 선생 여행오셨을 때(사실, 여행이기라기 보다 여러 행사 중의 여정 속이 더 정확하다), 등심 몇 근을 끊어다가 맛있게 구워 드시게 하였었다. "선생님, 만약 돌아가시면, 저는 빈소에 국화꽃 안가져 갈랍니다. 대신 쇠고기 많이 드십시오" 에, 기뻐하시며 제 뜻을 수락해 주셨던 권중희 선생. 마지막 유고 중의 앞머리 부분을 인용하며, 당신을 기억하며, 생전 무신론자이셨음에도 천일 천도 의식를 꾸려보는 사제가 되어본다. “정치인이든 교육자든 또 종교인이든 재벌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분야의 전문능력 보유여부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자세를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다. 인간의 기본자세라 함은 인류보편의 가치관과 공통의 상식 내지 양심을 지닌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대 오늘의 이 나라 정계나, 학계, 교계, 재계 등을 보면 반 인류, 반 상식, 반 양심 등 인간의 기본자세조차 못 갖춘 인간들이 그 분야의 주역 내지 지도자인 양 주접떨며 온갖 못된 짓만 하고 있다(이하 대략).” <하느님은 怠業중> -권중희 선생을 기억하며 法典도 마다한 응징을 반평생 넘어 온 몸으로 불사르시고 이승만도 하늘이 거두시고 염동진은 북에서 응징하시고 제국주의 오에스에스 암살자를 쫓고 쫓고 오성장군 맥아더도 쫓고 쫓고 민,족,정,기, 뜻 오롯이 사시고 젖 뗄무렵 에이비씨, 마미, 데디 입사 시험 토익, 토플, 텝스 온 천지에 洋鬼들은 설치건만, 거두어 가실 분 들 쌩쌩하고 귀하고 귀한 꽃대들만 스러지고, 하느님은 태업중  
27 삶이여 피어나라 /고석근
편집자
2214 2010-09-14
삶이여 피어나라 우리나라 10대~30대의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자살이라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아, 꽃 같은 그 나이에 스스로 죽어야 하다니! 얼마나 좋은 나이인가? 나는 보리 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그 시절을 보냈지만 회상해 보면 만면에 웃음이 번진다. 마을 동무들과 산으로 냇가로 쉼 없이 뛰어놀았고, 가슴 벅찬 연애들도 있었고, 영혼이 목말라 애타게 신을 찾은 적도 있었다. 청춘! 다시 한 번 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스스로 그 많은 것들을 버리다니!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얼마나 많은 말을 했을까? 그 소리는 너무나 커 우리들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으로 조용히 들으면 가슴이 터질 듯 아파온다. 그들의 목소리들이 똑똑히 들린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도 선명히 보인다. 나도 가슴을 닫아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는 경기도의 한 사립고등학교 여든 한 살의 교장이 남녀교사들을 교실 바닥에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매로 엉덩이를 때렸단다. 반항하는 교사는 어깨를 마구 때렸단다. 아득해진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교직에 한 때 몸담았던 나는 사람들 앞에 발가벗고 선 듯 부끄러워진다. 이 사건을 어떤 언어로 해석해야 하나?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건’ 아닌가? 우리들은 사실 평소에 힘 있는 자들한테 얻어터지고 까이며 살고 있지 않는가? 그 교장은 힘 있는 자들을 대표하여 우리들에게 적나라하게 우리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너무나 리얼해 우리들은 환상을 본 듯 잠시 멍해졌던 것이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큼 위대한 풍자는 없는 것이다. 여든 노인의 그 교장을 생각해 본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이다. 죽음의 얼굴이다. 그는 ‘죽음’에 취해 있다. 죽음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법, 규범, 질서, 그는 이런 것들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굳어 있는 것들은 죽음이다. 삶은 한없이 부드러운 것이다. 그 교장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제국주의를 내면화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해방이 되었지만 '삶'은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미군정기,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시대를 거치며 그는 완벽한 ‘죽음의 인간’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에게 삼라만상은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죽어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교사가 사람으로 보일 리가 없다. 우리 주변엔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경제성장’ 앞에 모두 무릎을 꿇는다. 경제가 마구 굴러가며 성장하다 누가 그 거대한 바퀴에 깔려죽어도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경제성장을 왜 해야 하나? 하지만 이런 질문은 우문이다. 경제발전의 고급 부품이 되기 위해 고액 과외를 하고 특목고를 가고 명문대를 가고 유학을 간다. 아무도 그런 ‘엘리트 코스’를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죽음에 취해 있다. 죽음에 취한 세상에서 세계 제1의 자살률이 나온다. 오늘 아침에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여자였다. 내게 상냥히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요.” “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얼굴은 아니에요.”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 택시 기사는 내가 정말 웃는 표정이라고 우겼다. 정말일까? 몇 년 전에 한 동화 작가가 내게 말했다. ‘웃을 때 보면 얼굴 표정이 소년 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데드마스크예요.’ 그렇다. 내 얼굴은 너무나 오랫동안 굳어있었다. 죽음에 취해 살아 왔다. 문학을 만나고 내 얼굴 표정은 풀리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춤이다. 한없는 떨림이다. 아, 내게 정말 삶이 피어나고 있는 건가? 내 죽음의 늪에서 정녕 삶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건가?  
26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괴테) /고석근
편집자
2613 2010-09-07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괴테)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하나, 이사 갈 때 남자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답은 아내 애완견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거란다. 그래야 아내가 자신을 버리지 않고 데려갈 테니까. 정말 여성 시대가 온 것 같다. 하지만 이 무너진 가부장 왕국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오래 전 동생들과 술자리서 있었던 일이다. 아우들이 내게 말했다. “형은 우리들에게 박정희 같았어.” “응?” 나는 아우들을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휘둘러보았다. 아우들은 내가 어릴 적에 자기들에게 얼마나 무섭게 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가해자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무덤까지 가져간다고 하지 않던가. 아우들 말이 다 맞을 것이다. 나는 4형제 중 장남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일하시느라 밤늦게 오셨다. 나는 내가 부모님 대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우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뭘 잘못하면 벌을 세우고 매도 들었다. 아우들은 내게 반항 한 번 못하고 내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폭력을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 내가 무수히 당한 폭력들에도 나는 조금도 그 폭력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배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후배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나는 내가 당당한 남자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고둥학교 때는 태권도를 배우며 남자다움을 몸으로 익혀갔다. 이 폭력성이 몸에 배어 학교 교사가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매를 들고 폭언을 했다. 교육과 사랑의 아름으로. 그러다 전교조 준비모임에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내 ‘남자다움’은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긴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아,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저지른 폭력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부끄러움에 몸이 떨렸다. 그 뒤 나는 학생들에게 일체의 폭력을 쓰지 않았다. 폭력을 쓰지 않고도 질서가 잡혔다. 내가 변하니 아이들도 변하고 교실 분위기도 바뀌었다. 서로의 마음이 교실에 흐르며 아름다운 질서가 세워졌다. 폭력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매’가 없이는 질서가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한다. 폭력 없이도 질서가 잡히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서울 교육청 곽 교육감이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려면 먼저 ‘사랑의 매’ 없이도 아름다운 질서가 잡히는 학교를 모범적으로 몇 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감의 지시 몇 마디로 폭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학교 교장, 교감과 교사들이 ‘사랑의 매’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폭력이 사라지겠는가? 매를 들지 못하게 하면 말의 매를 들 테고 말의 매를 들지 못하게 하면 몸짓의 매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몸짓의 매를 막으면 그들은 또 다른 교묘한 폭력의 수단들을 개발해 낼 것이다. 이러다 보면 다시 폭력 문제는 흐지부지 하게 될 것이고 ‘진보 교육’의 실패 사례만 쌓여갈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 한 번 들지 않고 성인으로 키웠다. 그것은 ‘사랑의 매’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그것을 깨달을 기회가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멀쩡한 사람들’이 폭력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상 불가피하다고 믿고 있다. 폭력 없이 아름다운 질서가 세워지는 가정, 학교, 단체들은 많다. 그런 사례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환골탈태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야 변하는 존재다. ‘남성성’은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 낸 허깨비다. 인간이란 원래 사랑이 가득한 존재다. 원시인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사랑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은 여성들이다. 그래서 여성성은 인간성이다. 서로 보살피고 나누려는 인간성은 여성들이 갖고 있다. 남자들이여, 부디 당신들 가슴 안의 여성성을 개발하시길! 그렇지 않으면 이 시대의 강물이 당신들을 다 휩쓸고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