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똑같다

성철 큰스님에 대한 일화가 많다. 그 중에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큰스님이 많은 스님 앞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데 두 스님이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단다. 큰 스님께서 대노하시면서 그 두 스님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곤 두 스님의 뺨을 갈겼단다. 그리곤 다시 설법을 계속하다가 다시 그 두 스님을 나오라고 하시곤 또 두 스님의 뺨을 갈겼단다. “아니? 조용히 있었는데 왜 또 때리세요?” 하니까. “아직 분이 안 풀려서.” 했단다.
나는 이 일화가 가장 좋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정말 이런 모습이 우리들 ‘인간’ 아닌가? ‘큰스님’은 달라야 한다고? 그건 착각이다. 모든 인간은 똑 같다. ‘큰스님’도 ‘인간’이다. 성자와 범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위인, 영웅, 성자’ 하면 근엄하게 앉아 있는 초상화를 연상한다. 얼마나 고귀한 모습인가? 하지만 일생 동안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했겠는가? 나머지 인생은 거의 쪼잔하고 후줄근하게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뭔가 다를 거라는 것은 착각이다. 우상숭배에 빠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우리 자신한테 솔직해 보자. 우리는 사실 얼마나 초라한가? 그렇다! 모든 다른 인간도 그렇다! 왜 자신은 초라하게 보고 남은 위대하게 보는가?
자신에게 솔직할 때만이 자신(솔직하게 본)을 사랑할 때만이 우리 눈에 진실이 보인다. 우리가 기분 좋은 것은 남도 기분 좋고 자신이 기분 나쁜 것은 남도 기분 나쁘다. 우리가 뛰어나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우리와 종이 한 장 차이니까.
나는 30대 후반에 문학 공부를 했다. 그때 문학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고매한 인격, 고상한 사상, 뭐 이런 것들을 연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럴 수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들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들도 똑 같은 인간이었다. 종이 한 장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고뇌하고 있었다. 고뇌하며 자신을 뛰어넘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때 운동단체에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들을 많이 접했다. 이름만 대면 다들 존경해 마지않는 어느 운동권 인사가 우리 단체 짱이었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어떤 인물일까? 그런데 가까이서 본 그는 전혀 흔히들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회의 시간에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어리석긴!’ 하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곤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건 독재’라며 혼자서 두어 시간을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 활동가는 ‘언제 짓밟혀봐야 돼.’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를 술자리서 보며, 집에서 보며, 나는 그의 뛰어난 점도 동시에 보았다. 항상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려는 자세. 자신을 넘어서 남에게 다가가려는 마음. 이런 것들을 나는 보았다.
나는 10 여 년째 성인 대상의 강의를 해 오며 많은 걸 느꼈다. 가장 힘든 건 ‘나를 존경한다는 수강생’을 만날 때였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나를 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네! 나를 존경하면 뭔가 나에게 좋겠지 하고 막연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나를 미워했다. 존경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을 보니 그게 아닌 것이었다. 아니면 그냥 지나면 좋겠는데 그 분풀이를 꼭 내게 했다. 자신이 사람 잘 못본 것을 왜 내게 화풀이를 하나? 나는 존경이라는 허상의 끝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사람은 똑같다. ‘존경’이라는 허울을 씌워 사람을 사람 아니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존경한다. 죽었으니까. 말이 없으니까. 아니 움직이지 못하니까. 밥도 못 먹고 대소변도 안하니까. 마음껏 존경한다. 존경해서 무슨 이득을 취한다. 진짜 존경한다고? 그건 아니다.
삼라만상을 보면 각자 자신대로 살지 누구를 존경하거나 우러러 받들지 않는다. 각자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사람만이 허상 속에 산다. 자신이 텅텅 빈 사람은 남에게서 그것을 채우려 한다. 남을 존경한다면서 남을 이용하려 든다.
사람은 똑같다. 단지 종이 한 장 차이다. 종이 한 장 차이.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차이를 니체의 초인으로 해석해 본다. 끊임없이 자신을 가꿔가는 것. 다른 사람처럼 허점투성이고 쫀쫀하지만 자신을 넘어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 이게 초인이다. 그렇다고 인간을 넘어서진 못한다. 인간의 한계를 인간이 어떻게 넘어서나? 넘어서면 인간이 아니지.
사실 진리는 간단한 것 같다. 저 삼라만상처럼 각자 자신 대로 살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확연히 잘 보인다. 그런데 인간은 살면서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콤플렉스가 끼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제대로 안 보인다. 자신의 눈이 문제인데 남을 탓한다.
저 바람에 살랑이는 풀잎처럼 생각하면 세상이 훤히 보일 것이다. 만일 풀잎이 큰 나무를 존경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끔찍하지 않는가? 그런 엽기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