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광주여! 



   어느 소년 망령의 노래

                           문병란  


   저는 그냥 죽었어요

   이유도 모르고

   어느 날 갑자기 죽었어요

   저 만큼 친구들이 보이고

   그리고 우리 엄마가 우시네요

   자꾸만 자꾸만 우시네요


 1979년 10월 27일 아침, 어렴풋이 잠이 깬 내 귀에 청천벽력 같은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박정희가 죽었다는 거였다! 아,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좋은 세상이 오겠구나! 나는 하늘 위에 검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말끔히 걷히리라는 예감에 온 몸이 마구 떨리는 환희를 느꼈다.

 내 학창 시절은 박정희와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마감했다. 그의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나는 그 안에서 숨 쉬기도 버거웠다. 나는 꿈속에서 박정희가 죽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가 죽은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 했다. 캠퍼스는 출렁거렸고, 감히 다시는 독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유령처럼 우리들의 입에 오리내리면서 우리들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캠퍼스는 얼어붙어 갔고 나는 다음 해 5월에 교생실습을 나갔다.

 독재자만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의 뒤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버티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의 거대한 실체가 우리 앞에 드러났을 때 우리들의 맨몸뚱이가 고스란히 보였다. 우리들의 이 맨몸뚱이로 헤쳐 나가야 할 철조망의 숲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생실습 간 모 여고에서 수업시간에 내가 무심결에 “김재규 장군이...... .” 하는데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왜 김재규에게 장군이라고 하세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 사람 별 단 장군 아냐?” 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등줄기에선 진땀이 흘러내렸다. 저 남녘 광주에서는 이따금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콩알만 해진 가슴으로 간신히 견디고 있는 사이에 ‘광주의 불꽃’은 활활 타올랐다가 꺼졌다. 돌아온 캠퍼스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그 뒤 나는 평범한 일상에 젖어갔다. 나는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귀는 세상을 향해 크게 열려 있었다. ‘광주’는 내 귀에 세상소리를 들려주었다. 한 소년이 이유도 모르고 죽었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광주’는 우리에게 세상의 얘기를 다 들려주었다.

 거대한 압제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는 다 듣게 되었다. 그들이 해방구에서 만든 공동체는 인간이 얼마나 고매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전쟁터에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데, 이 태평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못 만들겠는가? 사람들은 곳곳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해방구는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사람들이 잘나 보이던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고상한지도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거대한 역사의 강물은 ‘광주’를 시원으로 한다. 모든 것이 확연하다. 강물이 흘러가는 길이 선명히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한 점 의혹도 없이 이 강물에 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