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고비 사막을 가는 낙타 한 마리는 문수스님



몽골, 쓰나미 만큼 무서운 ‘조드’에 초토화. 계곡마다 악취 나는 가축 시체 더미, 수십 년 만의 혹한에 가축 5분의 1 몰사, 820만 두의 소, 양 염소.

 20여 년 전 시장 경제로 전환, 가축 수 4200만 마리로 2배 이상 급증, 엄청난 식성으로 물과 다른 식물들을 먹어치워, 토양을 지탱해 사막화를 막아주는 식물들의 뿌리까지 없애버려.

                                   2010년 6월 1일자 언론에서


 ‘조드’란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러잖아도 지난 4월쯤에 이동순 시집 『발견의 기쁨』을 읽고,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황량한 고비 사막과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 지평선에 사는 몽골 사람들과 가축들의 삶의 모습을 생각하며 애잔했는데, 820만 두나 되는 가축들이 5월 혹한으로 몰살했단다.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쓰나미 만큼 무서운’이라는 말을 썼지만 ‘쓰나미 보다 훨씬 무서운’이란 말을 써야만 하지 않을까.

 ‘조드’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몰사’는 결과이다. 비참한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직접적인 원인인 ‘조드’에게 물을 수 있지만 그것은 덤터기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혹한이든 혹서든 자연 현상은 자연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외려, 기사에 있듯 ‘시장 경제’가 몰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 경제’란 말이 갖는 빛과 어둠의 간격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면, 몽골에서 벌어진 참혹한 ‘몰사’가 지구 위에 붙어사는 생물들에게 언제 어디에서 누구들에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리처드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에서 제시된 대로, 약 40억 년 전 ‘진정세균’에서부터 시작 된 생명 계통사의 끝인 2010년 6월 초 현재를 살고 있는 영장류들, 그 중에서 가장 진화가 발달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인 우리 인간들에게 그 불벼락이 떨어질 확률이 가장 높다고 누구나 말한다.

 왜 진화가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우리 인간들이 그 불벼락을 맞아야 하는지는 이제 엔간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몰사’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인간이 갖는 상식 한 구석엔  맹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인간의 자손이여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한대로 이제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되어 한껏 문명을 발전시키며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지구에 사는 인간 모두가 갖는 욕망의 색깔과 냄새, 먹고 마시고 싸고 토하는 모습은 동일하다. 그러면서도 대중들은 더 호사하기 위하여 서로 시샘하고 경쟁한다.

 많이 배우거나 권위가 높아 고귀한 사람들 -엘리트들은, 대중이란 항상 평범하며 추하고 탐욕스럽기 때문에 가르침을 베풀어 교도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인간의 추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존재인 내 속에 똬리 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게 바로 지식인 -엘리트들의 맹점이다.

 

 지구의 삼라만상은 얼마나 조용한가.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새는 새대로 저마다의 영역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태양이 멀리서 비춰주는 가운데 삼라만상의 모체인 지구가 저절로 돌아가 바람이 일고 구름이 일고 비가 내려 길게 흘러가며 뭇 생명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날이 갈수록 저절로 돌고 도는 자연의 섭리가 헝클어지는 듯 하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번성이 정도를 넘어서일까 아니면 인간에 내장된 폭력성이 발호하기 때문일까. 지구가 몸살을 앓으며 내뿜는 신음소리와 상처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가까이에선 평은강과 낙동강이 내상을 당하며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장 경제의 번성과  인간의 호사를 위한다며, 5년 동안이란 한시적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자연이 내리는 비를 담아 흐르는 수만 년 물길을 막고 끊어대려 하니 어찌 조국의 산하가 아파하지 않을 것인가. 그 속에 담겨 사는 수중 생물들이 불안하지 않을 것인가. 그 유역에 사는 평범한 백성들의 삶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엘리트들이 갖는 맹점을 뚫어주기 위해서일까 몽골의 ‘조드’로 몰사 당한 가축들을 애잔해 해서일까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에 사는 수중 생명들의 의지를 대변해서일까 며칠 전에 군위 지보사의 문수스님이 소신공양을 올렸다.


 황량한 고비 사막을 가는 낙타 한 마리는 문수스님, 그 다음에 펼쳐지는 초원은 무수한 생명들의 터전, ‘시장 경제’와 ‘인간의 탐욕’을 잘 조절하는 엘리트들은 북두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