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쟁 날까 너무나 두렵다


 ‘전쟁이 두렵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에겐 가까운 사람 중에 군대 간 사람이 없나? 군대에 갔어도 전쟁이 일어나도 안전한 곳에 있는가? 아니면 가까운 사람이 전쟁 통에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그들은 ‘애국심’이 투철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죽음에 무심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일까? 이 모든 것도 아니면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에 깊이 취해 버린 사람들일까?

 내 두 아들은 지금 군대에 가 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놓으면 온 몸의 감각기관들이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나면 두 귀가 쫑긋해지며 화들짝 놀란다. ‘천안함 사건’ 때는 가슴이 항상 콩닥거리며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아마 군대에 자식을 보낸 모든 부모들은 내 심정과 같으리라. 이런 부모 마음으로 전쟁 운운 할 수 있을까? 정말 이런 부모 마음이 아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들들에 대한 기억들은 너무나 생생하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였다. 나는 2층 내 방에서 대문 앞에 서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기다리는 큰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두 여자 아이가 큰 아이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더니 한 여자 아이가 큰 아이의 가슴을 쾅 쳤다. 나는 어이없는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데 또 다른 여자 아이가 또 큰 아이의 가슴을 쾅 쳤다. 큰 아이는 “안 아프다.”고 말하고는 그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자 아이들은 나를 보더니 재빨리 가던 길을 갔다. 나는 순간 큰 아이를 도와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씩 웃어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자주 떠올린다. ‘여자 아이들에게 큰 소리라도 쳤어야 하나?’ 큰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내가 제대로 어루만져 주었을까?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냥 씩 웃어준 게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하는 것! 큰 아이는 나를 닮아 마음이 너무나 여렸다. 여린 마음으로 이 정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혼자 터득하기만을 빌었다. 어린이집에서도 힘겨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힘겨운 상황을 돌파해 낸 건 그의 그림 재주였다. 큰 아이는 아이들 얼굴 그림을 그려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했다. 그 후 큰 아이는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아, 큰 아이가 해냈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 뒤 큰 아이는 군대에 가서도 이 방법으로 어려운 신병 생활을 견뎌냈다. 고참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었더니 다들 고마워하더라고 했다. 앞으로도 큰 아이는 그림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 달리 외향적이고 쾌활했다. 사회 적응력이 빨랐다. 그래서 그 기질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가끔 얼굴에 상처를 내고 오지만 큰 탈은 없었다.

 두 아이 모두 학교 다니는 동안 학교 선생님들과 식사 한번 하지 않았다. 나는 교직에 있어 봤기에 안다. 교사는 한번이라도 학교에 찾아온 학부모 자식들에게 어떤 형태든지 특별대우를 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특별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것이 부당한 대우로 이어질지 모르나 그것마저 아이들이 헤쳐 나가기를 바랐다. 그렇게 기른 아이들이 이제 대학생이 되고 군대에 갔다. 나는 우리나라의 군대 제도를 찬성하지 않으나 남들처럼 하기를 바랐기에 아이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군대를 빼거나 좋은 보직에 앉히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 땅에 태어났기에 이 땅의 모든 것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 전쟁 운운 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큰 아이는 곧 제대하지만 작은 아이는 이제 막 전방으로 배치되었다. 작은 아이가 훈련소에 간 며칠 후 옷, 운동화 등이 집으로 부쳐왔다. 박스를 보니 왈칵 눈물이 나왔다. ‘아,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전쟁 운운 하는 이 시대에 아이를 전방으로 보내다니? 살면서 백 하나 만들지 않고 살아온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작은 아이를 생각하며 한참 동안 울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나 작은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식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아빠가 제대로 된 아빠인가? 어제 작은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나 이제 훈련 끝났어.” 일부러 큰 목소리로 얘기하며 속으로 울었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저 아이에게 죄 지으면 안 되는데...... .’ 나와 같은 심정인 부모들이 이 땅엔 너무나 많을 것이다. 아,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죄 짓지 않게 해 주소서!                                   


편집자: 고석근 편집고문의 글은 리얼리스트100에 게재했던 글을 매 주 다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