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지방선거’를 보며


 선거 직전엔 정말이지 절망적이었다. ‘이만가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상이 미쳐가는 듯 했다. 빅 브라드의 가벼운 손짓 하나가 일으킨 북풍은 세상을 다 휩쓸어버리는 듯 했다. 싫었다. 이 땅이 싫었다. 내게 너무나 많은 한이 서린 이 땅이 싫었다.

 하지만 북풍한설에도 이 땅 가장 밑바닥에서는 새싹들이 움터 나오고 있었다. 진리는 항상 세상 맨 밑바닥에서 솟아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다. 벅찬 가슴으로 선거 방송을 지켜보았다. 벅찬 희열 - 이것이 이번 6.2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느낌이었다. 북풍한설을 뚫고 나온 꽃들은 아름다웠다. 세상이 꽃으로 만발했다. 민주주의 꽃만큼 아름다운 게 있을까?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일반민주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일반민주의의 건재함을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했다. 서울 광장의 경찰의 군홧발과 곤봉은 안 된다고 국민이 확인해 주었다. 빅 브라드의 말 한마디가 법이 되는 제왕적 정치도 이제는 안 된다고 국민이 확인해 주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뤄져온 일반민주주의는 이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임을 국민이 확인해 준 것이다.

 이제 ‘수구반공세력들’은 서서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발버둥치고 아우성치겠지만 준엄한 국민의 명령 앞에 그들은 어찌할 것인가? 당분간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들의 추한 몰골을 대하는 우리들의 심정은 참담할 것이다. 저러면 죽어도 중음천을 떠돌 텐데. 고이 죽지 못하는 그들이 너무나 서글프다.

 당분간의 혼란은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질서를 잉태하기 위한 혼란이기에 우리는 이 혼란 속에서 자유로운 공기를 만끽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적인 질서를 세워 나갈 것이다. 집을 하나 지어도 아는 사람을 찾던 발길을 관공서를 믿고 찾아갈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의 양심을 믿고 공무원을 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선거를 보며 벅찬 희열과 동시에 ‘깊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반민주적인 수구세력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의 기운은 느껴졌지만, ‘진보 세력’에 대한 신뢰는 느껴지지 않았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교육감들도 사실은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들의 공약은 일반민주주의의 범주에 속한다. 진정한 진보의 공약이라면 교육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의무가 명기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상 교육(대학까지)에 대한 공약이 우리 국민들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이 확인해 준 건 ‘일반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것이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기층 민중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불안하다. 수구세력들은 역사의 장에서 퇴장해 가겠지만, 그 자리를 메우는 건 보수 세력이 아닐까 하고. 미국처럼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당들이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자본주의의 진정한 ‘주인’은 자본가다. 정치권력도 이들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막강한 재벌들은 어떤 정치권력을 원할까? 미국 같은 정치 형태가 아닐까?

 미국 같은 보수 세력이 지배하는 나라는 어떤가?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되어있지 않아, 권총 난사 같은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흑인 등 약자들은 대학보다 감옥에 더 많이 간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진보의 깃발을 세워야 할 때다. 지금까지 진보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보수가 되고, 그 자리를 기층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세력이 차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적어도 유럽처럼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날아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가 확인해 준 일반민주주의의 장은 이런 공간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었다. 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건 진보 세력의 책무이다.

 언제나 진리는 맨 밑바닥에서 솟아오른다. 이번 선거에서 기적을 일으킨 푸른 싹처럼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기대를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