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공화국


 ‘천안함 사고’가 드러낸 군의 총체적 부실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놀랄까? 아니면 예상했지만 충격적이라고 할까? 우리는 군에 대한 이런 저런 비리들을 많이 들어왔다. 가장 썩은 곳이 군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 풍문들이 사실임을 이번 사고는 선명히 보여주었다.

 나는 몇 가지 직업을 가져 봤다. 그때마다 너무나 튼튼하게 얽히고설킨 비리의 고리들을 보아왔다. 어디를 어떻게 끊어야 비리의 사슬이 끊어질지 막막했다. ‘나’라는 미약한 존재는 자연스레 그 비리의 사슬에 편입되어 갈 뿐이었다.

 얼마 전에 교사나 교수가 되기 위해 수 천 만원 내지 수 억원을 써야한다는 시사 프로를 봤다. 누구나 알고 있는 비리라는 멘트도 나왔다. 누구나 알고 있는데 그 비리들을 왜 지금까지 수사당국은 숨기고 있었을까? 그 사슬을 끊어야 할 검찰, 경찰의 칼이 비리의 사슬에 꽁꽁 묶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어느 술자리에서 모 고등학교 교사의 어처구니없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교육청에서 감사가 나온다고 해서 성적 답안지를 다시 검토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지난해의 답안지에서 채점을 잘못한 것이 발견되었단다. ‘어떡하지? 채점을 다시 해야 하나?’ 그 교사는 머리가 풍선처럼 마구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단다. 답안지 채점을 다시하게 되면 학생들의 성적이 다시 매겨져야 하고, 그러면 석차가 다시 정해져야 하는데, 모든 성적 기록부를 다시 써야 하나? 성적 통지표도 다시 나가야 하나? 석차가 달라지면 이미 대학에 간 학생들은 어떻게 되나? 내신 성적이 달라져 입학 사정을 다시 해야 하나? 이미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떨어질 수도 있나? 그 교사의 난감한 상황을 선배 교사 한 분이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단다. 답안지를 고치는 것이었다. 너무나 간단했단다. 정답 2번을 쓴 것을 오답 3번이라고 고쳐 쓰게 되면 채점을 정확하게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 교사는 마법을 보는 듯 했을 것이다. 수많은 악마, 괴물들이 작은 손짓 하나에 일거에 사라지는 기적.

 이 기적을 아무나 일으킬 수는 없다. 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짬밥’을 먹어가며 몸으로 익히는 비급이기 때문이다. 말에서 말로 은밀히 전해지는 이 비급을 익히는 데는 짬밥을 먹으며 하냥 세월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머리를 굴리며 선배들 눈치를 보며 고된 묵언 수행의 길을 걷는 길밖에 없다. 이런 것을 알려주는 책도 없고 학원도 없고 대학원도 없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을 보면 도사의 풍모가 풍긴다. 어떤 경악할 사고에도 그들은 빙긋이 웃는다. 마하가섭의 염화시중의 통달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가 없다. 입을 떼려다 그들의 금강불괴의 몸 앞에서 우리들 입은 얼어붙게 된다. 그들의 공력은 이미 수십 갑자에 달해 한 갑자를 사는 우리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속내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얼굴 가죽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어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하는 말은 선문답이라 중생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저 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이렇게 우리는 부실 공화국에서 서서히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다. 잘못된 종교란 얼마나 무서운가? 한 사람이 미치면 정신병자인데 모든 사람이 미치면 종교라고 하지 않는가? 믿음이 굳건할수록 우리는 ‘행복’해진다. 우리 사회는 다종교가 아니라 부실신을 유일신으로 모시는 일신교 나라이다.

 며칠 전 깊은 밤에 택시를 탔다가 택시 기사에게서 ‘한 소식’을 들었다. 이제 우리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벌에 퍼주는 돈의 일부만 풀어도 모든 국민이 의료 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택시 기사들은 부실 공화국의 경전을 읊조렸는데. 나는 이 희소식에 마구 가슴이 뛰었다. 부실 공화국이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사실은 모래성이다. 우리들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어느 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