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함과 손잡고 싶다


  학생들의 교복 치마가 짧아지고 있다. 며칠 전 덕수궁 근처 야외 까페에서 본 호리호리한 몸매의 아가씨가 입은 스커트도 그랬다. 가느다랗고 높은 뒤축 구두에 쭉 뻗은 탄력 있는 다리의 곡선이 이쁘고 시원했다. 그 곡선을 따라 올라가던 내 시선이,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당황하며 흔들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슬한 치마의 길이였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돌아온 가수 윤복희가 입었던 유난스런 치마, 미니스커트. 그 것은 곧 유행했고 그 유행의 물결은 당시 여고생들에게도 전해져서 교복치마의 허릿단을 한 겹 두 겹 접어 입었다

  지금은, 교복 치마를 미니스커트로 아예 치맛단을 잘라 입는다. 그 용감함이 궁금해서 며칠이 지난 후 아이들에게 간략한 설문 조사를 해보았다. 아이들은 이렇게 답변한다. ‘짧은 치마가 다리를 좀더 날씬하게 보이게 해서. 치마가 길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불편해서, 걸리적거려서, 치마가 길면 다리가 짧아 보여서, 교복이 똑 같으니 개성을 살리고 싶어서, 연예인들이 TV에서 짧은 교복을 입은 것이 예쁘게 보여서... . 

  대체로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 많았다. 그렇다면 공동체 생활의 규정도 어기면서까지 추구하는 ‘예쁘게 보이고 싶고, 개성을 살리고 싶은’ 욕구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 자기표현의 욕구를 실존에 대한 인식이고 자기창조라고 한다면 과장된 말일까, 인간에게는 생명의 기운을 발산하고 싶은 창조의 욕망이 있다. 문학을 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춤을 추는 것도 자기창조의 욕구라면, 이 또한 존재에 대한 사랑이고, 생명의 외경일진데,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명심보감에서 말하고 있다.

   미니스커트를 입는 일도 아이들에겐 제 세상의 한 가지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사실 교복을 미니스커트로 변형시켜 입는 아이라면 누가 봐도 문제아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어쩌면 자기표현의 욕구를 가지고 삶에 도전하는 지혜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전하는 아이들, 무릎보다 깊은 물에 들어가려고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고집스러움이, 그 특이함이 어쩌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학교에서도 고집 센 아이들이 야단을 더 맞는다. 예,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가도 좋을 것을 굳이 고집을 부리다가 작은 일을 크게 만들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고집을 부리는 통에 더 혼줄이 나는 혜준이를 보았다. 지난 해 그 아이의 동아리 지도교사였던 나는 무던히 속을 썩였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 그런 아이들에게 막연한 기대를 걸어본다. 그것은 무서움이 없는 아이, 뻗댈 수 있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마음 한 번 달리 먹으면, 제 삶에 신념을 가지고 한 꿈을 이루어가고자만 한다면, 숨은 힘을 발휘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얼마 전 총동창회를 열었다. 중년이 된 옛 제자들은 오랜 스승들 앞에서 즐겁고도 아팠던, 서럽고도 행복했던 옛날 일들을 떠올리며 활짝 웃고 있었다. 제 분야에서 이름을 올리며 살고 있는 이야기, 저마다 제 삶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옛 스승들 앞에서 풀어놓았다.

  돌아와서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떠올리자, 생각나는 인물이 있었다.

  키 155㎝의 오은선 대장!

  여성 산악인,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에 성공한 사람. 그래서 세계를 놀라게 한 사람,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특별한 능력보다 산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다른 사람보다 좀 유난했다’ 고. ‘좀 유난했다’ 고 그녀의 환한 사진은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