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사건의 범인 김수철은 현장 검증 도중에 ‘내 안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 안에서 어떻게 악마가 살게 되었을까?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에로스(삶의 본능)와 타나토스(죽음의 본능)로 설명한다. 에로스는 ‘살맛’이다. 인간의 성(사랑) 에너지, 즉 생명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삶이다. 우리 안에서 약동하는 에너지를 느낄 때, 우리는 ‘에로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에너지가 약해지면 타나토스가 우리 몸을 휩싸게 된다. 사는 게 ‘죽을 맛’이다.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하다면 차라리 죽어서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는 게 ‘우주의 한 존재’로서 이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죽음의 본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타나토스에 빠지면 이 죽음의 에너지는 자신에게 향하든지 남에게 향하게 된다. 자신에게 향하면 자살하게 되고 남에게 향하게 되면 타살하게 된다. 이때 사람은 ‘내 안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범인 김수철은 이런 타나토스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비난하고 저주하고 사형시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을까? 그런 마음의 소유자들을 다 죽여야 할 텐데, 과연 남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남은 사람이라고 해서 이런 마음을 안 지니게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이런 흉악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엄한 처벌’을 얘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범죄를 막자는 거야? 범죄를 계속 일어나게 하자는 거야?’하고 한탄하게 된다. 정말이지 ‘펑펑 울다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된다.

 나는 이런 흉악한 범죄를 막고 싶다! 머잖아 우리 아이들에게서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손주들을 키워보고 싶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너무나 많은 신비로웠던 기억들을 갖고 있다. ‘어린 왕자. 어린 공주’에 대한 신비로움을 다시 느껴 보고 싶다.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고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기록하려 한다. 그만한 문학이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런데 그런 손녀들이 성폭행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자녀들이 성폭행 당한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막고 싶다!

 그 ‘악마들’을 엄벌에 처한다고 해서 그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는 없다. 그 악마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철이 살아온 사회 환경이 그의 마음에 악마를 키운 것이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악마들이 사람들 속에서 자라고 있을까? 그런데 왜? 해결책이라는 것들이 초등학교에 순찰을 강화한다느니, 범인 신상 공개를 한다느니 하는 것들만 나오는가? 그래서 해결된다고 믿는가?    

 그런 것들도 당장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그런 악마들을 마음속에 기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수철에게 우리 사회가 따뜻한 사랑을 주었다면 그가 그런 악마가 되었을까?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희생물이라고. 그렇다면 그 희생물에게 최소한 선진국 같은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우리 속에 악마를 키우는 건, 우리 사회의 양극화이다. 일해도 먹고 살 수 없는 절망은 우리 안에 악마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사회 곳곳의 비리, 불의는 가장 좋은 악마들의 자양분이다. ‘스폰스 검찰들’은 얼마나 많은 악마들을 양산하고 있을까? 또 ‘4대강 개발’은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악마들을 키우고 있을까?

 우리 자녀들, 손자손녀들이 안전하게 자라게 하는 길은 간단하다. 이런 ‘악의 축들’을 척결하는 것이다. ‘6.2 지방 선거’는 그 척결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