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화국

    - 점촌에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따르릉 시골길을 달린다. 뙤약볕 아래 헉헉대는 풀들을 보며 나도 헉헉대며 달린다. 언제나 농촌은 평화롭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쇠락해진 마을을 보며 한때 떠들썩했을 풍경들을 상상해 본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서 있는 마을 입구, 나는 한켠에 앉아 땀을 식힌다. 저쪽에선 촌로 몇 분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처럼 대화가 쾌활하다. 농사지은 얘기들을 주로 나눈다. 못자리한 이야기를 판소리하듯 큰 소리로 말한다. 옆에선 추임새를 넣어준다. 나는 눈을 감고 몽롱한 상태에서 그들의 얘기 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어릴 적 많이 듣던 정겨운 목소리들이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린다. 코에 스쳐가는 논 냄새가 좋다. 수로를 들여다  본다. 옛날엔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는데, 고요하다.

 시내로 들어왔다. 오늘은 어느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을까. 매번 다른 식당에 간다. 새로운 세상, 작은 식당엔 항상 다른 세상이 있다. 길가에 자리 잡은 식당으로 들어가 본다. 물잔을 가져온 아줌마에게 순대국밥과 막걸리 한 병을 시킨다. 잠시 후 왁자하게 들어온 넥타이 부대. 나는 순대국과 막걸리가 어우러지는 느낌을 입 안 가득 느끼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큰 소리로 땅 얘기를 한다. 이 식당 근처는 수십 년 전에는 불모지였다고 한다. 기름진 땅들은 다 장남에게 물려주던 시절, 이 근처 땅을 물려받은 막내들은 다들 땅 부자가 되었단다.

 나는 상상해 본다. 기름진 땅을 물려받은 장남들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을까. 불모의 땅을 물려받아 졸지에 부자가 된 막내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들 사이는 어떨까. 맞아, 내가 아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장남이 땅 부자가 된 아우에게 은근히 손을 벌린다고 했다. 부모님이 나눠주신 재산을 다시 정의롭게 재분배하는 형제들이 있을까. 사람 사이에 돈이 끼면 모든 사이들이 비틀어진다. 항상 서먹하게 지낼 형제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속으로 중얼댈 것이다. ‘돈이 뭔데......’ 하지만 돈의 위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우애가 있을까. ‘마음은 원이로데 육체가 약하도다’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넥타이 부대들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시골 촌로들 이야기의 흥겨움이 없다. 하얀 와이셔츠처럼 이야기들이 표백되어 있다. 색깔이 사라진 이야기들은 무미건조하다. 헛웃음을 한참 웃다 그들은 사라졌다.

 얼근히 취한 나도 식당을 나온다. 자전거를 비틀비틀 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늘 강의를 생각해 본다. 내 얼굴엔 웃음이 가득해진다. 이렇게 술에 취해 강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얗게 빛나는 햇살 아래 사람들이 분주하다. 술에 취해 보는 세상은 참 아름답다. 오늘 강의도 ‘명강의’를 할 것이다. 술기운이 만드는 기적.

 초등학교가 보인다. 나는 교문으로 들어갔다. 재잘대는 초등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덩굴나무 그늘 아래 앉아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만큼 위대한 인간은 없다. 그들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그들은 쉼 없이 무슨 주문들을 외운다. 눈은 한없이 깊다. 그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그들이 있는 한 세상은 무사하다.

 우리나라 30억 이상의 부자들은 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들은 복을 받은 듯이 얘기한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어느 곳의 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 다른 곳의 땅 값은 땅 속 깊이 떨어져야(실질 가치가) 하니까. 사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들은 어떻게 살까.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 불로소득들(사실은 강도 짓한- 자신이 알건 모르건 관계없이)을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나라는 하루아침에 복지국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하지만 신나는 농촌 촌로들과 하루하루 지루하게 사는 월급쟁이들은 진정으로  누가 더 행복할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땅이 부린 요사스런 요술 때문이다.

 내가 알고 부동산 부자들은 다 행복하지 않다. 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가 평생을 골방에서 지내다 간 사람들도 있고, 항상 부동산을 생각하다 머리가 굳어버린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잠시 후 나는 ‘문학의 향연’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시골 마을의 촌로들이 벌이는 ‘일상의 향연’을 따라갈 수 있을까. 부동산을 정의롭게 하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매일 매일 향연을 벌이고 살 텐데. 거리에 로봇처럼 걸어가는 사람들. 아, 저 사람들은 ‘향연의 기쁨’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