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살해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어머니 살해’가 요 몇 달 사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돈이 필요해서라거나, 게임에 중독되어 사리분별을 못해 저질렀다는 기사의 해설이 뒤따랐다.

어머니...... 속으로 말없이 불러 봐도 가슴이 에이는 이름. 그런데 어찌해서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자식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어머니에 대한 가슴 저린 기억들이 많다. 지금도 자주 꾸는 꿈 중에 어떤 마을을 헤매는 꿈이 있다. 이집 저집 다녀 봐도 다 빈집이다. 분명히 기억에 선명한 집들인데, 아무도 없다. 빈방들을 바라보다 잠을 깬다. 잠을 깨서도 그 마을이 선명하다.

나는 이 마을이 내가 태어난 마을이라는 걸 안다. 내가 세 살 때까지 산 집.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지었다는 초가집,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골목이 되어 있다. 그 마을에 가서 그 빈터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이 가슴 아리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너무 가난해서 아침 일찍 나를 이웃집에 맡겨두고 일을 나가셨단다. 아마 나는 혼자 집에 가 보았을 것이다. ‘엄마가 있을까’ 몇 번을 가보아도 빈집, 그 아득한 기억이 꿈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그 아픔은 내 일생의 열쇠가 되어있다. 빈집, 이사, 이방인, 이런 단어들이 내 머리위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눈이 언제나 무엇을 갈구하는 눈빛이라고 한다.

세 살 때 그 마을을 떠나 소읍 변두리로 이사를 왔다. 여기서 나는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어머니는 항상 아프셨다. 학교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들 두르고 이불을 쓰고 누워계셨다. 나는 집에 올 때마다 겁이 났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학교에서 주는 급식빵을 반만 먹고 반을 가져와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얀 무명저고리와 검은 무명치마를 입으신 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외지에 가서 한 달에 한 번씩 다녀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골목에 서 계셨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머니께 효도를 하려 했을 때는 어머니는 이미 늙으셨다. 항상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왜소한 모습이 내 가슴 깊숙이 박혀 있다.

누구에게나 나만큼의 아픈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가난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항상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힘겨운 어머니를 살해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아이와 한 몸이다. 한 몸이기에 혼자 둘 수 없어 함께 자살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살해한다는 게 어머니를 살해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존재다. 인간에게 어떤 본성과 감성이 있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신화나 역사, 소설에서 보면 어머니 살해 사건이 많다. 아마 실제로 일어났기에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데 문명화된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마음이 우리 마음 깊숙이 남아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어머니 품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옛이야기에 보면 아이들은 부모 품을 떠나 영웅이 된다. 독립된 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어머니 품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 떠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고 항상 어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있다. 다 큰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해 그 시신을 방에 두고 아이 노릇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를 본 적이 있다. 그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단지 그 마음이 큰가 작은가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아들의 깊은 마음속에는 어머니와 분리되지 못하는 ‘아이 마음’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죽여 스스로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그런 살인마가 되게 했을 수도 있고, 세상에 나가기가 너무 두려워 어머니 곁에 있고 싶어(어머니는 세상에 나가기를 독려하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독립해서 살기 힘든 구조다. 그 힘든 구조 속에서 평소에 독립심을 기르지 못한 나약한 인간들은 이런 살인마가 되어 자신의 돌파구를 찾았을 것이다.

이런 나약한 인간에게 강건한 이성을 기대해선 안 된다. 이성의 빛은 감성을 세심하게 가꾼 사람에게 내리비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 인간을 독립된 존재로 키우지 못하면 이런 비인간적인 살인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어머니 살인의 추억은 너무나 깊은 우리 마음의 근원적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다. 이성을 깨워 이성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으면 비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슴 저리게 그립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아들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 간절한 사랑은 극단적인 미움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