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8호...
   2020년 04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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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똥 눌 때 정신을 차려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만공 선사) /고석근
편집자
2294 2010-09-22
똥 눌 때 정신을 차려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만공 선사) 소크라테스는 똥 눌 때 어땠을까. 죽을 때 이성(理性)에 걸림돌이 되는 몸을 이제야 벗어나게 되었다며 좋아했다는 그가 과연 똥을 누는 지극히 육체적 행위를 좋아했을까. 인류사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은 똥 눌 때 어땠을까. 아마 대다수는 똥 누는 행위를 버거워하지 않았을까. 오! 육체는 슬퍼라!(말라르메 시 구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똥을 누는 행위를 즐긴(?) 사람들은 주로 하층 사람들이었을 테고, 귀족 중에는 극소수였을 것이다. 그런 귀족들은 이름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귀족은 귀족답지 못했을 테니까. 인간 세상의 지배자들은 육체를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는 척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동물성(육체성)을 극복한 다른 인간보다 나은 인간처럼 보일 테니까. 그들은 자연스런 여러 육체적 행위들을 경멸한다. 인류사의 주류철학들은 다 육체를 배제한 정신을 칭송하는 관념철학들이다. 서양의 소크라테스, 플라톤을 시원으로 하는 서양철학은 기독교 사상과 결합되어 육체를 써서 살아가는 노예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쉼 없이 꾸역꾸역 일만하는 노예들은 고상한 정신을 노래하는 귀족들에게 기가 질려 감히 대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귀족들은 노예들 앞에서는 육체를 하찮게 여기는 척하며 뒤에서는 온갖 육체적 쾌락을 누리고 살았다. 동양도 마찬가지였다. 공자의 고매한 사상, 석가의 큰 깨달음은 귀족들이 동양의 피지배계급들을 마음껏 부려먹는 충실한 세뇌의 도구가 되어왔다. 나는 성현들을 존경한다. 그들이 도달한 높은 정신적 경지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상한 정신을 이용하여 지배계급들의 지배를 정당화시켜준 이데올로그들에게 큰 분노를 느낀다. 성현들의 사이비 추종자들이 너무나 많다. 고매한 사상은 글자로 전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글자는 단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달을 자신의 두 눈으로 생생히 볼 수 있을 때만이 그는 진정으로 그들의 사상을 이해한 것이다. 진정으로 달을 본 사람이라면 그들의 사상이 높디높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달은 어디서나 불 수 있다고 우리 주위의 물속에 비친 달들을 조용히 가리킬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손가락을 통해 진흙탕이나 맑은 물이나 아무데나 비치는 달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늘의 달만 얘기하는 그들을 나는 믿을 수 없다.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가? 나는 하늘을 얘기한 공자의 사상을 근래에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한 최제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새까만 글자만 가득한 관념철학’을 신봉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인간이란 육체 그 자체다. 육체를 떠난 정신이 어디 있는가? 예수는 말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육신이 행하는 만큼이 마음이다. 육신이 스스로의 위를 채우고 팔다리의 안락을 위해 물욕에 빠져 있다면 그가 아무리 고상한 생각을 하더라도 그는 천박한 존재다. 생각으로야 무엇을 못하나? 육신이 어디 있느냐가 자신의 정신적 위치다. 입으로 들어가는 밥의 출처가 그의 정신 그 자체다. 똥 눌 때 정신을 차리면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나는 내 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똥을 누며 이 구절을 생각한다. 하지만 깜빡 정신을 놓고 ‘끙’ 힘을 준다. 후딱 이 육체적 행위를 끝내고 싶은 것이다. 이게 내 정신 수준이다.  
29 조선 성리학을 위한 변명 - ‘높은 관념성’과 '공리공론' [1]
양백산인
2705 2010-09-18
조선 성리학을 위한 변명 - ‘높은 관념성’과 '공리공론' 양백산인 박 희 용 다산연구소 소장이자 당대의 석학 중의 한분인 박석무 저 『조선의 의인들』(한길사. 2010) 377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조선 왕조의 통치이념이자 학문의 주조였던 성리학은 이론의 관념성이 높았기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이 말은 해방 이후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한 세대가 식민지를 겪은 앞 세대로부터 늘 상투적으로 듣고 읽어온 말로서 대부분의 개인 및 집단의식의 근저를 형성하고 있다. 교과서를 다시 읽는 듯한 박석무의 말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학문적 이론과 현실적 실천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기준에 맞추어 볼 때 성리학은 높은 관념성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화 되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문장으로 요약한 평가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미흡하다. 그는 단순히 '성리학'이라 말하였는데, 성리학도 초, 중, 말기에 걸쳐 그 사상의 개요가 다분다기화 되었다. 특히 고려 말 안향 등 관학자들에 의해 명나라에서 직수입된 주자 성리학이 냇물이라면 화담, 율곡, 퇴계가 일군 조선 성리학은 대하장강으로 이미 냇물과는 수량과 강폭을 달리한다. 명확한 개념 정의 없이 그냥 '성리학'이란 어휘 하나에 총평을 담기엔, 주자 성리학과 조선 성리학을 분명히 구별하지 아니하고 뭉뚱그려 총평하기엔 역사적 진실이 너무 무겁지 아니한가. 이론과 실천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그는 성리학 실천이 어려웠던 까닭을 ‘높은 관념성’에서 찾고 있다. ‘높은 관념성’이란 추상적인 말이 성리학 이론의 수심을 어느 정도까지 짚는지 모르지만, 성리학 이론의 관념성이 높았기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성리학의 관념적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얼치기, 사이비 지식인들이 성리학을 처세의 방편으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일상적 만족을 유일 가치로 하는 현실주의 때문에 성리학이 공리공론이라는 누명을 덮어쓰고 있는 게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한다. 그 당시의 지자들이 과거용 유학, 지적 현시용 성리학 위주로 자기 합리화를 위한 편협한 시각으로 성리학을 이해했기 때문에 올바른 실천이 어려웠고,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에 집착해서 인성과 물성을 재단했기 때문에 시대와 역사가 왜곡, 오도 되었다는 것이 제대로 된 역사적 통찰일 것이다. 조선후기 이후, 조선망국과 식민지 시대, 분단을 거치면서 그 모든 민족사적 질곡의 원인이 봉건유학에 있고, 그것의 핵심인 성리학에 있다는 게 해방 이후 학자들의 일반적 평론인데, 시대가 흐를수록 쌓이는 사료와 학문성과에 의해 국망의 원인이 반드시 유학-성리학에만 있지 않다는 게 오늘날 학계의 한 작은 흐름이다. 근대이후에 많은 학자들이 조선조 500년을 지배한 성리학의 부정적인 면과 폐해를 지적하며 그 대안으로 실학을 발굴하여 현양한 결과, 오늘날 실학은 역사적인 조명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으나 성리학은 케케묵은 골동품이 되어 외면, 소외되어 있다. 그들이 실학을 부각하며 실학이 성리학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학문인 줄로 광고하지만, 실학이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학문의 경향, 즉 성리학이란 알맹이에 덮인 껍데기 이다. 서학을 추구한 학자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성리학적 교양을 이미 체득하였고, 조선 후기 대부분의 실학자들은 성리학적 가치와 사고를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보태 새로운 사고, 즉 실학을 추구하였다. 그러므로 실학자들도 근본적으로는 유학자요 성리학자인 것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껍데기는 변화할 수 있지만 알맹이, 즉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 현상은 상대적이지만 본질은 절대적이다. 사실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알맹이인 성리학을 왜 공리공론이라 치부하는지. 모든 물체는 알맹이, 즉 본질이 있어야만 존재가치를 갖는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는 약하여 금방 부서지고, 썩은 알맹이나 부실한 알맹이가 든 껍데기는 금세 부패하고 만다. 청출어람, 주자 성리학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연 조선 성리학은 알맹이 중의 알맹이이다. 그 소중한 알맹이를 탓하기보다는 껍데기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살펴보는 게 지자의 도리일 것이다. 성리학이 갖는 ‘높은 관념성’이 문제라고 했는데, 관념성은 이론의 속성이다. 관념성이 높다는 것은 이론의 정치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리학은 이론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진다. 그럼에도 성리학이 ‘높은 관념성’을 가졌기 때문에 ‘실천이 어려워 공리공론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는 말은 이론과 실천의 연관성을 부정하거나, ‘낮은 이론’에 적합한 ‘낮은 실천’을 강조하는 하향 평준화 평가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고려 말에 수입된 주자학을 승화 발전시킨 화담학, 퇴계학, 율곡학의 정수인 그 관념성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이후 시대마다 수두룩한 현실주의자들이 자기 합리화를 위해 편의성 위주로 이용한 ‘경세성’이 오히려 진짜 문제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리학의 ‘관념성’이야말로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사유 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인문학에서 관념성이란 사람에게서 정신이 차지하는 비중만큼 중요하다. 하물며 성리학은 고도한 사고력의 산물인 바, 정치한 눈을 가진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 관념성이 난해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지극의 학문인 성리학의 관념성을 제대로 이해, 활용하지 못한 시대 상황적 경세성이 비판을 면할 수 없어야 마땅하다. 성리학이 고질이 되어 쇠퇴하면서 실학이 그 대안으로 부각된 것은 아니다. 면면히 이어진 조선 유학자들의 학문적 업적이 쌓이고 쌓인 바탕 위에서 실학 등 새로운 학문 경향이 일어났다. 서세동점의 화급한 시대적 상항을 맞이하여 철학적인 가치 궁구보다는 현실 타개에 필요한 생활적인 가치를 추구하려고 실학이 발흥한 것이지 실학이 꼭 성리학의 관념성을 비판하고서 성립되는 게 아니다. 이미 성리학자로서 일가견을 이룬 그 당시의 실학자들이 추구한 목표는 알맹이를 빼고 새 알맹이를 장착하자는 게 아니라 성리학이란 알맹이에 새로운 껍데기, 옷을 입히는 것이었다. 신장개업을 하자는 것이었지 점포를 폐쇄하고 새 사업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박석무의 역저인 『조선의 의인들』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는 화서 이항로, 노사 기정진, 한주 이진상 등이 주리론을 기본으로 척사위정론을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정통 성리학맥에 가깝지, 주기론을 기본으로 실사구시론을 주장하는 실학자에 가깝다고 할 수는 없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에서 관념성은 속성이자 촉수 역할을 한다. 물론 지적 유희나 자기과시용 관념성은 당연히 배제되어야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높은 관념성’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박석무의 말대로 ‘높은 관념성’을 가진 성리학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이 어려운 공리공론’이라는 폄훼를 받으며 나라를 망친 주범이라는 누명을 여태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은 우리 학계의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날 일반적인 인식에서는 식민지, 분단, 전쟁의 원인을 조선 망국 때문이라고 한다. 이어서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시대적 가치를 상실하고 고질화한 유학, 주자학을 거론한다. 그러나 망국의 가장 큰 近因은 내적으로는 19세기부터 곪기 시작한 풍양 조씨와 안동 김씨들의 세도정치, 무능한 왕과 신하들이 저지른 수탈과 탐욕의 삼정문란에, 외적으로는 일본을 침략수로 내세운 서양 자본주의 세력, 자본이란 흉기를 든 물신주의자들에게 있다. 그리고 망국의 가장 큰 遠因은 화담, 퇴계, 율곡이 일으켜 세운 조선 성리학이 아니라 기득권을 누리려는 입신양명주의자들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이 내세운 형식 예론과 탐욕으로 대변되는 사이비 주자학자들에게 있다. 주자학이라는 껍데기를 뚫고 조선 성리학의 진면목을 보아야 한다. 현실과 유리되어 난해하다는 의미를 갖는 '공리공론'이라는 말 한 마디로 경원하기에는 조선 성리학이 갖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리공론'이란 말은 철저한 신분제도와 허례허식이란 족쇄를 채운 경국대전을 만든 조선 초기 관유학파들, 조선 성리학의 본류와는 무관하게 예론, 당론에 몰두하던 수구보수 주자학자들, 언로를 봉쇄하고 사상을 통제하여 학문의 백화제방을 꺾은 조선 후기의 노론-벽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15세기 후반기에 발아하여 16세기에 화담, 퇴계, 율곡에 의해 활짝 꽃핀 조선 성리학은 뜻있는 선비들에 의해 면면히 흐르면서 외적의 침략을 극복하고 민생을 다독이며 이후 300년 동안의 조선을 지탱해 온 힘의 원천이었다. 극미로는 인성과 물성의 근본을 궁구하고 극대로는 세상과 우주의 법칙을 통찰하여, 인륜을 바로 세워 사회 구조를 유지하려는 조선 성리학자들의 노력은 시대와 역사를 추동하는 동력이었다. 세속적 부귀영화와 상관없이 청빈 속에서 진리를 궁구한 산림처사들의 정신과 삶의 태도에서 현대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물질문명의 한계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이 시대에 정신문명의 극치를 보이는 조선 성리학의 의미와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현학자들이 자기 알음알이 자랑삼아 괜히 어려운 말로 비틀어 나열해 그렇지 성리학은 인간과 우주의 본질을 통찰하는 지혜의 학문이다. 시대와 역사, 인간과 사회를 종횡으로 꿰어뚤어 소통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성리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문화 발전의 벼리이다. 선현들이 땀 흘려 일으켜 세운 조선 성리학의 학맥이 계속해서 흘러야 한다. 그리하여 주자 성리학이란 사대주의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조선 성리학이란 자주적 관점에서 보는 정당한 평가를 받아 이 땅에 새롭게 우뚝 세워져야만 나라와 生民들의 미래가 아침을 열듯 화창하게 펼쳐질 것이다. 2010년 9월 18일 열락연재에서  
28 역사의 심판, 하늘의 심판/강태규
무궁화
2433 2010-09-17
- 권중희 선생은 백범선생을 암살한 안두희 (당시 대위, 대령으로 예편)를 추적하여 정의봉으로 응징하였고, 그의 정신적 제자 박기서에 의해 1996년 안두희를 죽음으로 처벌하였고, 박기서는 2심에서 3년형을 언도 받았으며, 감옥에서 가장 행복하다, 하였다- 지난 달 13일은 권중희 사회운동가(위키피디아 인물검색 분류에 따름)의 몰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경북 안동 땅의 유전자를 가진 올곧은 또 다른 동명이인이자 닮은꼴, 독립운동가 권중희 선생은 1946년 몰하셨다. 요즘, 공정이 화두이며, 마치 외계어가 아닌지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 ‘비관’ 이라하기 보다 ‘공정’을 경험해 보지 못해, 낯설다, 라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이런 즈음에, 사회운동가 권중희 선생을 떠 올려야만 하는 자괴감에 떫은 감이 입안에 든 듯하다. 현재 여러 분야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엘리트들은 ‘역사’를 업수이 여기지나않는지 되돌아보는 날이었다. 로마시대 이전부터, 어쩌면, 고조선 시대 이전부터, 힘있는 자의 정치력 중 하나는 대척점에 있는 핵심인물을 제거함으로 이루어온 과정, 게다가 동서고금, 유사이래 작금까지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감히 역사라 하기에 답답한 것은 은밀한 과정과 뚜렷한 결과 사이의 증거인멸과 고증의 차이에 있다. 문제는 근대화 이후에도 여전히,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 유효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대한민국은 정보 통제의 힘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거기에 저항하는 올곧음은 지금도 처절하기도, 때로는 시민사회에 무력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2001년,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국립기록관리청의 기록열람 결과에 근거하여 백의사의 단장 염동진(본명 염응택)에 의해 몽양선생과 장덕수를 제거한 것은 밝혀졌고 그 이후 정황적으로 백범선생에 못된 짓을 자행했으리라 추정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백범선생의 임정법통론이 경찰중심의 군정강화론과 대립하던 시점으로 ‘되돌아 보기’는, 결국 2010년 현재에 까지 화인(火印)지워진 분단과 통일의 진행성 본론이자 각론에 다름아니다. 배운 사람이 더욱 못된 짓에 가담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자명하다. 염동진만 하더라도 모국어를 제외한 4개 외국어에 능통했다, 하며 건국 전후에 가장 악랄한 살인청부업자였다고 이른바 ‘실리 문건’에 기록되어있다. 자타 맹인장군이라 불려진 그의 배경에 백범선생과의 구원(臼怨)을 유추해 볼 때, 더욱 정황성이 높다고 본다. 새삼, 권중희 선생의 몰 1,000일을 기억하는 필자의 바램은 정의가 무엇이며, 공정이 무엇이냐를 우리 모두에게 짐지워 볼랴치면, 안중근 장군 이라던지, 권중희 선생 정도가 아니면 공리상 그 기준에 살아남은 우리는 먼발치 아래 숨 죽여야 할지 모르는 답답한 현실 속에 있음을 느낀다. 필자는 살아 생전 두 번 만나 뵈었다. 급서하시기 넉달 전 쯤에 전화로 공개하기 민망한 사실확인에 대한 요청을 몸소 해 주시기도 하셨다. 여러 번의 전화통화를 통해서도, 필자의 간곡한 몸 관리 당부에 ‘걱정마라시며, 건강관리 비법을 자랑’ 하시던 사회운동가, 권중희 선생. 정의와 공정을 실천한 신자유주의 국가의 겨우 손꼽을 만한 인물이셨다. 늦게 배우신 누리집을 통한 열정, 과로, 100달러를 아끼기 위해 직접 평양축전을 휴대용 동영상녹화기에 담으셨던 영상물을 볼 때 마다, 장면 바로 뒤에 권 선생의 숨소리를 느낀다. 당신의 대포같은 정열을 뿜어내시는 노익장에, 필자는 권 선생 여행오셨을 때(사실, 여행이기라기 보다 여러 행사 중의 여정 속이 더 정확하다), 등심 몇 근을 끊어다가 맛있게 구워 드시게 하였었다. "선생님, 만약 돌아가시면, 저는 빈소에 국화꽃 안가져 갈랍니다. 대신 쇠고기 많이 드십시오" 에, 기뻐하시며 제 뜻을 수락해 주셨던 권중희 선생. 마지막 유고 중의 앞머리 부분을 인용하며, 당신을 기억하며, 생전 무신론자이셨음에도 천일 천도 의식를 꾸려보는 사제가 되어본다. “정치인이든 교육자든 또 종교인이든 재벌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분야의 전문능력 보유여부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자세를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다. 인간의 기본자세라 함은 인류보편의 가치관과 공통의 상식 내지 양심을 지닌 상태라 할 수 있다. 그런대 오늘의 이 나라 정계나, 학계, 교계, 재계 등을 보면 반 인류, 반 상식, 반 양심 등 인간의 기본자세조차 못 갖춘 인간들이 그 분야의 주역 내지 지도자인 양 주접떨며 온갖 못된 짓만 하고 있다(이하 대략).” <하느님은 怠業중> -권중희 선생을 기억하며 法典도 마다한 응징을 반평생 넘어 온 몸으로 불사르시고 이승만도 하늘이 거두시고 염동진은 북에서 응징하시고 제국주의 오에스에스 암살자를 쫓고 쫓고 오성장군 맥아더도 쫓고 쫓고 민,족,정,기, 뜻 오롯이 사시고 젖 뗄무렵 에이비씨, 마미, 데디 입사 시험 토익, 토플, 텝스 온 천지에 洋鬼들은 설치건만, 거두어 가실 분 들 쌩쌩하고 귀하고 귀한 꽃대들만 스러지고, 하느님은 태업중  
27 삶이여 피어나라 /고석근
편집자
2253 2010-09-14
삶이여 피어나라 우리나라 10대~30대의 사망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자살이라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아, 꽃 같은 그 나이에 스스로 죽어야 하다니! 얼마나 좋은 나이인가? 나는 보리 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그 시절을 보냈지만 회상해 보면 만면에 웃음이 번진다. 마을 동무들과 산으로 냇가로 쉼 없이 뛰어놀았고, 가슴 벅찬 연애들도 있었고, 영혼이 목말라 애타게 신을 찾은 적도 있었다. 청춘! 다시 한 번 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스스로 그 많은 것들을 버리다니!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얼마나 많은 말을 했을까? 그 소리는 너무나 커 우리들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가슴으로 조용히 들으면 가슴이 터질 듯 아파온다. 그들의 목소리들이 똑똑히 들린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도 선명히 보인다. 나도 가슴을 닫아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제는 경기도의 한 사립고등학교 여든 한 살의 교장이 남녀교사들을 교실 바닥에 엎드려뻗쳐를 시켜놓고 매로 엉덩이를 때렸단다. 반항하는 교사는 어깨를 마구 때렸단다. 아득해진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교직에 한 때 몸담았던 나는 사람들 앞에 발가벗고 선 듯 부끄러워진다. 이 사건을 어떤 언어로 해석해야 하나? 하지만 잠시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사건’ 아닌가? 우리들은 사실 평소에 힘 있는 자들한테 얻어터지고 까이며 살고 있지 않는가? 그 교장은 힘 있는 자들을 대표하여 우리들에게 적나라하게 우리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너무나 리얼해 우리들은 환상을 본 듯 잠시 멍해졌던 것이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큼 위대한 풍자는 없는 것이다. 여든 노인의 그 교장을 생각해 본다.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이다. 죽음의 얼굴이다. 그는 ‘죽음’에 취해 있다. 죽음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법, 규범, 질서, 그는 이런 것들로 단단히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굳어 있는 것들은 죽음이다. 삶은 한없이 부드러운 것이다. 그 교장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제국주의를 내면화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해방이 되었지만 '삶'은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미군정기,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시대를 거치며 그는 완벽한 ‘죽음의 인간’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에게 삼라만상은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고 죽어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교사가 사람으로 보일 리가 없다. 우리 주변엔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경제성장’ 앞에 모두 무릎을 꿇는다. 경제가 마구 굴러가며 성장하다 누가 그 거대한 바퀴에 깔려죽어도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일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경제성장을 왜 해야 하나? 하지만 이런 질문은 우문이다. 경제발전의 고급 부품이 되기 위해 고액 과외를 하고 특목고를 가고 명문대를 가고 유학을 간다. 아무도 그런 ‘엘리트 코스’를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죽음에 취해 있다. 죽음에 취한 세상에서 세계 제1의 자살률이 나온다. 오늘 아침에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가 여자였다. 내게 상냥히 웃으며 말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요.” “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얼굴은 아니에요.”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 택시 기사는 내가 정말 웃는 표정이라고 우겼다. 정말일까? 몇 년 전에 한 동화 작가가 내게 말했다. ‘웃을 때 보면 얼굴 표정이 소년 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데드마스크예요.’ 그렇다. 내 얼굴은 너무나 오랫동안 굳어있었다. 죽음에 취해 살아 왔다. 문학을 만나고 내 얼굴 표정은 풀리기 시작했다. 이 세상의 본질은 춤이다. 한없는 떨림이다. 아, 내게 정말 삶이 피어나고 있는 건가? 내 죽음의 늪에서 정녕 삶의 꽃이 피어나고 있는 건가?  
26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괴테) /고석근
편집자
2664 2010-09-07
여성성이 인류를 구원하리라(괴테)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하나, 이사 갈 때 남자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답은 아내 애완견을 가슴에 꼭 안고 있는 거란다. 그래야 아내가 자신을 버리지 않고 데려갈 테니까. 정말 여성 시대가 온 것 같다. 하지만 이 무너진 가부장 왕국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많다. 오래 전 동생들과 술자리서 있었던 일이다. 아우들이 내게 말했다. “형은 우리들에게 박정희 같았어.” “응?” 나는 아우들을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휘둘러보았다. 아우들은 내가 어릴 적에 자기들에게 얼마나 무섭게 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가해자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무덤까지 가져간다고 하지 않던가. 아우들 말이 다 맞을 것이다. 나는 4형제 중 장남이었다. 부모님은 항상 일하시느라 밤늦게 오셨다. 나는 내가 부모님 대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우들에게 엄격하게 대했다. 뭘 잘못하면 벌을 세우고 매도 들었다. 아우들은 내게 반항 한 번 못하고 내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폭력을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 내가 무수히 당한 폭력들에도 나는 조금도 그 폭력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배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후배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나는 내가 당당한 남자가 되어간다고 생각했다. 고둥학교 때는 태권도를 배우며 남자다움을 몸으로 익혀갔다. 이 폭력성이 몸에 배어 학교 교사가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매를 들고 폭언을 했다. 교육과 사랑의 아름으로. 그러다 전교조 준비모임에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며 내 ‘남자다움’은 산산이 부서져나갔다. 긴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아,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저지른 폭력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부끄러움에 몸이 떨렸다. 그 뒤 나는 학생들에게 일체의 폭력을 쓰지 않았다. 폭력을 쓰지 않고도 질서가 잡혔다. 내가 변하니 아이들도 변하고 교실 분위기도 바뀌었다. 서로의 마음이 교실에 흐르며 아름다운 질서가 세워졌다. 폭력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매’가 없이는 질서가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들을 이해한다. 폭력 없이도 질서가 잡히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서울 교육청 곽 교육감이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려면 먼저 ‘사랑의 매’ 없이도 아름다운 질서가 잡히는 학교를 모범적으로 몇 개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감의 지시 몇 마디로 폭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많은 학교 교장, 교감과 교사들이 ‘사랑의 매’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폭력이 사라지겠는가? 매를 들지 못하게 하면 말의 매를 들 테고 말의 매를 들지 못하게 하면 몸짓의 매를 들 것이기 때문이다. 몸짓의 매를 막으면 그들은 또 다른 교묘한 폭력의 수단들을 개발해 낼 것이다. 이러다 보면 다시 폭력 문제는 흐지부지 하게 될 것이고 ‘진보 교육’의 실패 사례만 쌓여갈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 한 번 들지 않고 성인으로 키웠다. 그것은 ‘사랑의 매’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그것을 깨달을 기회가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멀쩡한 사람들’이 폭력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상 불가피하다고 믿고 있다. 폭력 없이 아름다운 질서가 세워지는 가정, 학교, 단체들은 많다. 그런 사례들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환골탈태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야 변하는 존재다. ‘남성성’은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 낸 허깨비다. 인간이란 원래 사랑이 가득한 존재다. 원시인들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사랑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은 여성들이다. 그래서 여성성은 인간성이다. 서로 보살피고 나누려는 인간성은 여성들이 갖고 있다. 남자들이여, 부디 당신들 가슴 안의 여성성을 개발하시길! 그렇지 않으면 이 시대의 강물이 당신들을 다 휩쓸고 갈 테니까.  
25 남는 것을 줄 수 있는 세상 /고석근
편집자
1939 2010-09-01
남는 것을 줄 수 있는 세상 옆집에 유치원 다니는 여자 아이가 있다. 아침마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집 앞에서 유치원 차를 기다린다. 나는 길을 가다 그들과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그 시간은 아주 짧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내 얼굴은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간다. 가끔 혼자 집에 오는 아이를 만날 때가 있다. 아이는 큰 가방을 메고 고개를 수그리고 앞만 보며 걸어간다.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말을 걸지 않아야 할 것 같아서다. 아동 성폭행범의 다수가 아는 사람이라는 단어들이 그 순간 뇌리 속에 떠오른다. 아이를 모르는 체 묵묵히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가슴이 쓰라리다. 어깨를 툭 치고 장난이라도 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중에 엄마는 뭐라고 할까? 나는 ‘잠재적 범인’이라 조용히 내 길을 가야 한다. 조용히 내 길을 가는 것, 이것이 이 시대의 도(道)다. 길을 벗어나게 되면 나는 ‘이 시대의 정상적 인간’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서 비명 소리가 들려도 못 본 체 못 들은 체 한다. 그들에게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길만 가는 것이 이 시대의 도(道)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묵묵히 자신의 길만 간다. 그래야 이 세상이 잘 돌아간다. 세상은 거대한 기계다. 우리 각자는 부품. 부품이 할 일은 그저 기계가 돌아가는 대로 같이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이라 내게 남는 것을 남에게 나눠주고 싶다. 내게는 넘치는데, 남에겐 부족한 게 너무나 많다. 그리고 내게 부족한 것들을 남에게서 받고 싶다. 집에 혼자 오는 옆집 여자 아이는 혼자서 집에 오는 길이 얼마나 심심하고 두려울까. 옆집에 사는 내가 반겨하며 장난쳐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둘 다 신나게 갈 수 있는 길을 둘 다 심심하게 길을 가야 하다니! 전철역에서 무거운 짐을 든 노인들에게도 그냥 묵묵히 지나친다. 내겐 그 정도의 힘과 시간이 있는데. 저번에 약수터에 갔을 때 한 할머니는 내게 긴 라이프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시간이 남는’ 나는 그 이야기를 즐겁게 들었다. 그 할머니는 얼마나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들어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들어 줄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1억 연봉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억! 했다. 그런데 지금은 10억 연봉이라는 말이 들린다. 내 목소리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10억 연봉자들은 어떻게 사나?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쓰고 사나? 하지만 곰곰이 따져 보니, 늘 허덕허덕 살 것 같다. 10억을 벌기 위해 항상 촌음을 아껴 써야 할 테고, 또 그 돈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써야 할까? 그들은 나눔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사람은 적게 가질수록 나눠 줄 게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많이 가지려 혈안이 된 사회다. 그러니 점점 더 우리는 나눔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상적인 세상을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누가 능력껏 일하겠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나는 말한다. 당신 집에서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지 않느냐고? 집에서는 아빠가 돈을 최고 많이 벌지만 아빠가 가장 많이 쓰는가? 돈 한 푼 벌지 않는 어학연수 간 막내둥이가 최고 많이 쓰지 않는가? 가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모든 인간이 한 가족이 되면 왜 안 되는데? 힘이 남아 돌 때 열심히 일해 남에게 나눠 주고 힘이 없을 때 남의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서로 ‘이익’ 아닌가? 남는 것을 나눠 줄 수 없는 세상은 너무나 불행하다. 남아도는 것이 넘칠 때는 그것들을 처치 못해 몸이 늘 부글부글 끓고, 정작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받지 못해 몸이 오그라들고 찌그러드는 세상. 모두 한 세상 불행하게 살다 간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처럼 순진한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이 단단히 미친 세상으로 보일 것이다. 동화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말이다.  
24 이경림의 시 -여성의 사물화에 대한 반란, 여자의 말을 찾아서 /권형하
편집자
3209 2010-08-28
한달 전에 돌아간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간다 엄마의 팔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팔을 꿰고 엄마의 목이 들어갔던 구멍에 내 목을 꿰고 엄마의 다리가 들어갔던 구멍에 내 다리를 꿰! 고, 나는 엄마가 된다 걸을 때마다 펄렁펄렁 엄마 냄새가 풍긴다 -엄마…… -다 늙은 것이 엄마는 무슨…… 걸친 엄마가 눈을 흘긴다 ‘걸친, 엄마’ - 이경림(1947~ ) 이경림의 시 -여성의 사물화에 대한 반란, 여자의 말을 찾아서 이경림 시인은 1947년 문경 태생의 여성시인입니다. 43살의 늦은 나이에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시들을 읽어보면, 그녀가 공연히 뒤늦은 나이에 시인이라는 호칭을 원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언어에 대한 천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평범한 주부의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생을 돌아보면, 그녀가 문학에 뒤늦게 입문했던 것은, 거의 자기 구원의 형식과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문인이었던 부친에 대한 반발심으로 일부러 문학에서 가장 먼 길로 우정 걸어갔다고 합니다. 무척 힘든 유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 가톨릭의대에 입학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詩魔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타고났지만, 억압당한 재능은 그녀를 극심하게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학업을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후에 그녀는 10여 년에 걸친 실어증을 앓습니다. 말이 안에서 치받치는데, 억지로 억눌러놓았으니, 병이 된 것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경림은 문득 우연처럼 문학공부를 시작했고, 그리고 폭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재능과 절박성을 가진 그 시들은 어떤 젊은 시인의 시보다도 젊고 어떤 젊은 시인의 시보다도 문학적 완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경림의 시는 외부의 정경묘사를 통해서, 그 정경에 심리적 가치를 부여하는 시적 장치를 즐겨 사용합니다. 풍경을 묘사하는 눈썰미는 날카롭고, 우연히 얻어진 것처럼 보이는 정경묘사를 심리적 기호로 치환시키는 재능이 놀랍습니다.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지성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녀의 시들은 어떤 젊은 시인의 시보다도 지적입니다. 거기에다가, 그녀의 시는 생의 신산한 경험에서 생겨난 절절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이룸, 2001)라는 책은,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이야기시poeme-recit>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얼마나 재미있으면서도 향기로운지 모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에다가, 문화적 비판의식을 아울러 지니고 있지요. 거기에 말을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솜씨가 일품입니다. 이경림은 90년대의 한국문학이 얻어낸 귀한 성과 중의 하나입니다. 그녀의 타고난 재능이 점점 더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한 달 전에 돌아가신 엄마 옷을 걸치고 시장에 갈 때 펄렁펄렁 걸을 때마다 옷에서 엄마 냄새가 난다. 엄마의 죽음과 화해하여 만나는 이 슬픈 평화와 무거운 죄업. 이 글은 박주택·시인의 말과 여러 사람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23 놀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석근
편집자
1977 2010-08-21
놀이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지난주부터 중고등학생 대상의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성인 대상의 강의는 자신 있는데 그들은 자신이 없었다. 그들이 싫어(?) 교사직을 그만둔 내가 아닌가? 나는 수업 시간에 마구 날뛰는(?) 그들이 버거웠다. 매시간 마다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게 견딜 수 없었다. 교직을 그만둔 후 성인 대상의 강의를 하면서는 소리 지르고 화낼 일이 없었다. 그들은 알아서 경청했다. 강의하고 나면 내가 업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20년이 흐른 후 다시 그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강의 요청이 왔을 때, 거부할까 싶었다. 하지만 해보고 싶었다. 나이 들어서인가? 아이들이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첫날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조용히 정좌해 있는 그들이 두려웠다. 한 아이만 핸드폰을 만지막거릴 뿐 다들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 녀석들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강의 주제는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자’는 것인데. 나는 커다란 벽 앞에 선 느낌이었다. 인사말을 하고, 각자 소개를 시키고, 강의를 하는데, 나와 아이들이 겉돌았다. 내 말만 강의실 안을 웅웅거리며 흘러 다녔다.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그들을 보며 나는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강의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항상 명강의(?)를 한 내가 아닌가? 이게 뭐야?’ 온 몸에서 힘이 다 빠져나갔다. 한 시간이 지나 쉬는 시간이 되었다. 강의 진행자가 간식을 들고 들어왔다. 강의 진행자는 간디 학교 출신의 청년이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노래 운동을 하겠다는 특이한 젊은이였다. 부모님은 충분히 재력이 있는데, 자녀 뜻대로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그의 뜻대로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수강생 중에도 3명이 대안학교 학생이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다시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강의 진행자를 소개하고 대안 학교에 대해 얘기를 하며 강의를 끌어갔다. 강의 분위기가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한겨울의 얼음 같았다.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혼자 큰소리로 열강(?)을 했다. 학생들이 듣건 말건 내 할 말만 마구 지껄였다. 아마 강의 전에 마신 막걸리 기운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건강이 안 좋아 강의 전에 자주 막걸리를 마시고 강의를 한다. 그러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열강을 하게 된다. 두 시간의 강의가 끝났다. 나는 ‘휴-’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목석처럼 앉아있었다. ‘강의 실패야. 이런 걸 강의라고 할 수가 있나?’ 나는 의례적으로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오늘 공부하느라 수고 많았어요. 강의에 대한 느낌을 말해 보세요.” 그러자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소개한 남자 아이가 “재미있었어요.”하는 게 아닌가? 중고등학생 대상의 강의인데, 어머니가 성숙한 아이라며 보냈다고 한 아이였다. ‘헉!’ 나는 그의 말에 놀라 “정말?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재미없는 강의인데.” 나는 웃음기 어린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진지하게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강의 진행자와 눈빛을 나누며 웃었다. 다음 강의에 갔더니 주최 측 분들이 아이들이 강의가 재미있었다고 하더란다. 나는 놀라면서도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 어쩌면 아이들은 인문학에 목말라 있었던 게 아닐까? 재미없는 강의지만 강의 내용이 그들의 타는 목마름을 씻어주었던 게 아닐까?’ 나는 강의실에 들어서며 자신감을 가졌다. ‘그래, 내 생각을 마음껏 얘기해보자!’ 나는 여유 있게 웃으며 ‘사람은 노는 존재’라는 주제의 강의를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에겐 ‘천재 아이’하며 농담도 했다. 놀아야 해요! 사람은 일하는 존재가 아니야! 인간은 원래 일하지 않았어! 최근에 와서 자본주의가 되면서부터 일하는 존재가 되었는데, 이건 인간에게 맞지 않아요! 여러분은 평생 놀아야 해요! 나는 열변을 토하다가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내가 지금 일하는 것 같이 보여요?” 아이들은 희죽 희죽 웃기만 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놀고 있어요. 그런데 신나게 놀고 나면 돈도 주네요!” 나는 원시인 때부터 인간은 신나게 노는 게 일상적 삶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인류 역사에서 18세기까지는 인간은 거의 놀고 살았어요. 일상이 즐거움이었죠. 그런데 자본주의가 되면서 자본가들이 인간을 일하는 존재로 만들었어요. 기계처럼 장시간 일하면서 일한 대가는 거의 다 빼앗기고 가난하게 살게 되었죠. 우리는 인간은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먼저 알아야 해요.” 아이들은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나는 신나게 놀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 기른 경험도 얘기해줬다. 무작정 시골에 가서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한 얘기, 7년을 그렇게 보낸 후 다시 도시에 와서 살았지만 고3때 외에는 학원은 일체 보내지 않은 얘기, 그 이유는 사람은 10대에 놀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하면 평생을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했다. “저도 사람은 꾸역꾸역 일하고 살다 ‘사는 게 뜬구름 같네’하며 죽어가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문학을 공부해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삶은 매순간 피어나는 꽃이었어요. 나는 이 세상에 속아 살아 왔던 거예요. 그게 진짜 삶이에요. 여러분은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어요.” 나는 훨씬 부드러워진 강의실 분위기를 느끼며 열강을 했다. 강의가 끝나고 6학년 아이 어머니가 오셔서 대화를 나눴는데, 그의 아버지가 리얼리스트 100 회원이었다. ‘역시, 리얼리스트는 위대하여라!’ 그 아이의 성숙함이 다 이해되었다. 강의는 다음 주에 한번 남았다. 그때는 ‘어떻게 한 세상을 놀면서 즐겁게 살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강의를 하려고 한다. 만일 내가 지금의 생각을 중학교 때 했다면 나는 농고를 갔을 것이다.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춤과 글을 깊이 공부했을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삶의 비의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30대 후반에 직장을 그만두고 ‘놀이’를 택한 나의 삶. 천만 다행이다. 일하는 존재로 살았다면 어떡할 뻔 했나? 지금쯤 로봇처럼 직장에 다니거나 명퇴 당해 집에서 ‘옛날에 옛날에’를 중얼거리며 살고 있겠지. 나는 삶은 질이지 결코 양이 아니라는 걸 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지 않았나? 삶은 눈부시게 빛나는 꽃이라는 걸 나는 안다. 아직 내 혼은 시들어 있지만 물과 거름을 꾸준히 주면 빛과 향을 가득 내뿜는 꽃으로 피어난다는 걸 나는 안다. 어느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그 빛과 향을 느낄 때가 있다.  
22 기억 속의 앙드레김/ 강태규
무궁화
2430 2010-08-14
내 기억 속의 김봉남을 추모한다 설핏 검색어 맨머리에 앙드레 김이 솟았으나 무시했다. 그러나 일출 전, 댓걸음으로 나선 봉화읍의 식당 의자에 놓인 스포츠신문에서 그의 운명을 확인했다. 이토록 유명인 이었던가. 잠이 깬 듯 놀랬다. 그를 처음 길거리에서 마주치던 때는, 대략 1972~ 1976년 사이 즈음으로 기억한다. 당시 수도육군병원이 있던 자리가 송현동이었고, 동십자각 왼켠 사진관자리 훨씬 못가서 프랑스문화원이 있었고, 삼청공원 방향으로 화랑가가 생기기전, 즉, 모퉁이 구멍가게 수도상회가 있었다. 그 옆에 한옥식 시공화랑과 우리 옆집 국제화랑이 단독주택을 증개축하여 개관하였으며, 아버지의 빗자루 세례를 피하기 위해 피하던 돌담은 그대로 포목점으로 남아있는 그 거리가 삼청동의 입구에 해당하는, 내 고향 소격동이다. 아마도 경복궁 궁내로 출입하던 무신을 섬기는 일가들이 산 곳으로 추정하며, 어찌하였던, 소격서 혁파가 이루어 진 것도 역사교과서에 줄을 친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에 따른 폐단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바로,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있는 그 길목에 김봉남과 여러번 조우했었고, 그럴 때마다 그의 국제적인 미소에 어색해 하던 시절로 내 기억은 되돌아갔다. 그의 의상실이 그 길목에 있었다. 당시, 또래나, 동년배들에게서 고 김봉남선생과 관련된 어색한 이야기가 빠지질 않았다. 즉, 남색(男色)과 관련된 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그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그의 국제적인 미소 때문에 와전된 이야기인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고인이 지병으로 일몰하기 까지 동질(同質)의 디엔에이로 구성한 가족은 없었다는 것이 그 해답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조차 구닥다리 생각으로 넘기고 싶다. 여름 파고다 극장 맨 앞자리에 영화를 보던 내가 오른편에 앉은 남학생이 내 무릎을 더듬던 것에 기함을 지르던 때도 있었지만, 동성애 DNA의 존재를 안 것은 그, 한 참 이후였다. 엘비스 프래슬리의 구렛나루와 하얀 자켓, 그리고 흰색 나팔바지의 복장에서도 그의 백색영감을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 집에 맏인 큰형은 한국과학발전에 이바지한 공으로 동백장을 수여 받은 적이 있는데, 그런 훈장만으로도 집안에 큰 경사라 했다. 그것도 살아서. 고 김봉남 선생에게는 문화훈장이 수여되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국제적으로 선양한 아주 뛰어난 디자이너, 김봉남. 백의(白衣) 민족의 뒷면에 자리하는 평민의 색을 천사의 색으로 둔갑시킨 김봉남 선생에게. 서울 상공에 비행기가 날았다고, 삼청공원 뒷산 말바위에서 소세지 같은 불덩이가 날던 곳, 백주에 평양에서 보낸 책자가 하늘에서 떨어지곤 했던 곳, 깔끔한 탱크들이 길 옆으로 서 있던 곳. 우리 집은 대문을 잠굴 필요가 전혀 없던 곳, 팔뚝만한 굵기의 개나리 나무가 한 그루 있던 집 마당이 김봉남의 부고와 같이 깊은 기억의 우물에서 튀어 올라왔다. 우리 집 담벼락은 절대로 우리가 칠한 적이 없던 곳. 마당 빗자루로 혼찌검을 내시던 아버지도 가고 없다. 한참, 뺀질한 얼굴의 대학 후배가 총리로 지명되었다. 내 둘째형은 그의 밑에서 부지사일을 잠시 하기도 했다. 나는 어쩐 일인지, 봉화읍에서 아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잊고 싶은 일들을 다시 버리느라 풍기온천에서 목욕재계를 했다. (옷장 앞에서 옷을 추스르는 중에, 장난끼 넘치는 중년이 그의 또래에게, “어? 봉남이가 작아졌네?” “허, 짓궂기는......”) 앙드레 김은 지병을 알고도 제 몸 보다 일을 더 사랑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납골당의 뼈로, 다시 그의 순백으로 다급하게 돌아갔다. 병이라는 것은 그만, 쉬라는 몸이 보내는 비상신호이다. 때론, 제 몸을 잊고 사는 것은 명(命)을 재촉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홀리면 저녁 밥상으로 호출하는 어머니의 벼락호통 직전까지 땅 따먹기 하는 아이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제 몸 잊고 하얀 옷을 남기고 간 김봉남 선생을 추모한다.  
21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 /고석근
편집자
3099 2010-08-14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 전철역 계단을 헉헉 올라간다. 몇 계단 앞에서 풍만한 몸의 한 처녀가 올라간다. 그녀는 자신의 엉덩이를 가방으로 가리고 있다. 뒤에서 누가 볼까봐 가리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내 눈은 시야를 잃는다. 눈앞을 똑바로 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옆을 볼 수도 없고, 내 자세가 어정쩡해진다. 허적허적 간신히 계단을 다 올라가자 그 처녀는 가방을 옆으로 내린다. 이제 마음 놓고 봐도 된다는 건가. 복작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죄스러워진다. 초라해진다. 다른 여자들도 본다. 가지가지의 옷들, 옷을 보면 그 여자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보인다. 자신들의 몸값(?)을 여자들은 정확히 알고 있다. 남자들도 그 몸값을 정확히 알고 있다. 엉덩이를 가린 처녀는 자신의 높은 몸값을 그렇게 은근히 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나 보지 마! 그 처녀가 자신의 몸을 ‘합법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남자’는 따로 있을 것이다. 시선이란 보이는 것들을 장악한다. 그래서 함부로 보면 ‘눈 내리 깔아!’라고 명령한다. 세상엔 보는 사람들과 보이는 것들(사람을 포함하여)로 나눠진다. 보는 사람들은 강자고 보이는 것들은 약자다. 그래서 ‘마주보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마주볼 수 있을까?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과 마주 보고 있는 걸까? 분명히 한 사람은 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시선을 피할 것이다. 나무를 봐도 우리는 마주 보지 못한다. 온 몸을 무장해제하고 서 있는 나무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TV에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원시인들의 눈을 주로 봤다. 그들의 눈은 한없이 아름답다. 하늘의 해처럼, 달처럼, 별처럼, 그들의 눈은 그냥 보고 있다. 삼라만상 모두 평등하게 보고 있다. 그들의 눈앞에서 모두 평등하다. 그들은 나무를 볼 때나 벌거벗은 사람을 볼 때나 눈빛이 똑같다. 남녀노소를 볼 때도 똑 같다. 그들의 세상에서는 모두 ‘누드’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 줄게 이내 품에 잠자 주오 모시야 적삼에 반쯤 나온 연적 같은 젖 좀 보소 많이야 보면 병 난단다 담배씨만치만 보고 가소 우리 민요 '상주 모내기 노래' 중에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나날들이다. 우리가 시원한 옷차림의 서로를 담배씨만치만 보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고석근
편집자
2127 2010-08-09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어제 마신 술로 정신이 몽롱하다. 자전거가 비틀비틀 한 24시 편의점 앞에 닿았다. 파란 파라솔과 의자들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베지밀 한 병을 사왔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베지밀을 홀짝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젯밤의 환락이 지나간 자리. 다들 분주하다. 청소를 하고 밖에 내놓은 탁자와 의자들을 정리하고 있다. 모두 각자의 생각과 아픔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한 식당으로 들어가는 아줌마를 본다.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 같다. 저 ‘아줌마’를 그냥 ‘아줌마’로 볼 수 있을까? ‘아줌마’라는 단어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 산이 산으로 보이고 물이 물로 보이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딸이 여자로 보여 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그렇게 되면 딸은 무엇으로 보일까? 계속 여자로 보일까? 딸로도 보일까? 딸은 아버지가 무엇으로 보일까? 아버지와 딸은 얼마나 좋은 사이인가? 그런데 그 많은 걸 잃어버리고 ‘남녀’가 되어도 괜찮은 건가? 그 아버지들은 이 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실상이 아닐까? 너무나 고귀한 것을 잃어버리기도 태연하게 사는 사람들. 남들이 잃어버린 것만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들. 얼마 전엔 연로한 어머니를 살해한 50대 남성도 있다. 그에게는 어머니가 무엇으로 보였을까? 무엇이 그를 어머니가 다른 무엇으로 보이게 했을까?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다른 무엇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가끔 어머니가 다른 무엇으로 보여 그는 자신의 눈을 비벼보았을 것이다. ‘눈에 티가 들어갔나?’ 그러다 세월이 흐르며 그는 자신의 ‘환영’에 익숙해지고 어머니를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죽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어머니로 안 보였으니 그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사람들은 그를 존속 살인죄로 처벌하고 싶어 하나 그게 가능한가? 그의 눈에 헛것을 씌운 것에 대한 죄는 왜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가? 다들 자신들도 그런 죄가 있어 서로 무죄의 알리바이가 되고 있는가? 4대강을 개발하는 자들은 강이 무엇으로 보였을까? 그들도 처음에는 굽이굽이 흐르는 거대한 강 앞에서 경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찌하여 겁도 없이 그 강을 마구 파헤치게 되었을까? 앞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재앙이 뒤따라올 텐데 그들은 어쩌다가 그런 재앙 앞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렸을까? 그들을 비난하고 가엽게 여기는 우리는 그들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우리는 다른 무엇에게서 경외감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외교통상부 장관이 ‘젊은 애들 북한 가서 살아라’라고 했단다. 그의 눈엔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무엇으로 보였을까?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들풀처럼 싱싱한 젊은이들이 그에게는 도대체 무엇으로 보인단 말인가? 한 나라의 장관의 눈이 이렇다는 게 이 나라의 수준이다. 그런 사람이 그런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우리의 눈들은 망가져 있을 것이다. 두렵다. 언제 어디서 내가 나 아닌 다른 무엇으로 보여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나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이 몸뚱이일 텐데 이 몸뚱이가 다른 무엇으로 보이는 순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군가의 눈에 내가 다른 무엇으로 ‘변신’했다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야 한단 말인가? 소리치고 발버둥 칠수록 그에겐 내가 다른 무엇으로 보일 텐데. 자전거에 오른다.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는 저 아줌마, 말갛게 보인다. 순간 햇살이 눈부시다. 가로막고 있는 사람을 간신히 피한다. 눈을 가늘게 뜨고 희뿌연 길을 간다.  
19 그의 죄는 무엇인가? - ‘강용석 의원 성희롱 사건’을 보며 /고석근
편집자
2072 2010-07-30
그의 죄는 무엇인가? - ‘강용석 의원 성희롱 사건’을 보며 강용석 국회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했다는 발언들을 살펴보면 ‘토론할 때 패널을 구성하는 방법을 조언해주겠다’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 못생긴 애 하나에 예쁜 애 둘은 오히려 역효과다’ ‘아나운서를 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 옆에 사모님만 없었으면 네 번호도 따갔을 것’ 등이다. 그의 발언으로 인해 그는 사회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는 어떤 심정일까? 이 분노들이 수긍이 될까? 아마 되지 않을 것 같다. ‘평소에 하던 말들을 했을 뿐인데...... .’ 이렇게 생각하며 억울해 하지 않을까? 평소에 함께 이런 ‘대화’를 하던 동료들이 갑자기 분노하는 모습들을 보며 그는 이 사회가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을까? 그의 문제는 무엇일까? 술자리서 할 얘기를 공식적인 자리서 한 게 문제일까? 그렇다면 그의 발언은 문제가 없단 말인가? 그가 공인이라 문제가 되는 걸까? 그가 말한 것들을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고스란히 보인다. 그의 발언들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의 상품화’ ‘가부장 사회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 사회 문제를 그가 얘기했을 뿐인데 그가 공분을 사야 하는 걸까? 그는 대학생들 앞에서 문제의 발언들을 했다. 그런 발언들을 하면서 대학생들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소위 ‘엘리트 코스’만 밟아오며 언제 남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있었을까? 이게 우리 교육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옆에 있는 급우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단순 지식을 달달 외우며 ‘명문학교’에 진학하고 그 후에는 ‘사회 지도층’이 되는 엘리트 코스, 이걸 고쳐야 한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 지도층들이 이런 교육의 ‘피해자’일 것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이런 본능을 왜곡시켜 버린다. 후안무치한 사람이 되게 한다. 이런 사람은 지도층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가장 큰 죄는 이것이다. 그 문제의 발언들을 술자리서 했으면 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런 발언을 어디서든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사회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그 발언들이 담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고쳐야 할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사회의 모순들을 고칠 생각은커녕 그 모순들을 희롱의 소재로 삼는단 말인가? 그는 억울할 것이다. 맞다. 억울하다. 다른 지도층들도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죄도 공평하게 받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형태든지 그들은 최소한 공직에서 물러나는 죗값은 치뤄야 할 것이다. 그가 자신의 죄를 아는 기적이 일어날 순 없을까? 자신이 받은 교육, 사회 환경들이 그를 자신도 모르게 죄인이 되게 했으니 그가 우리 교육의 개혁에 앞장서고 사회 정의를 위해 앞장선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그런데 그들은 기득권이 워낙 커 스스로 회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다 버리고 내게로 오라’는 말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본 진리일 것이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사람이 어떻게 사회 지도층인가?’하고 놀랄 때가 많다. 그들도 우리 사회 모순의 피해자라는 걸 생각하면 불쌍하기 짝이 없지만 그들은 ‘지도층’이기에 단죄를 면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어서 빨리 고쳐야 한다. 그런데 개혁에 앞장 서야 할 지도층들이 지도층답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국민에 의해 퇴출되는 것이 그들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선거들은 이런 부적격 지도층들의 퇴출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18 다래끼가 약이다/ 강태규
무궁화
2711 2010-07-27
다래끼가 藥이다 -유순예 시인의 <다래끼>를 읽다가 고단한 열에 뜬 여행길에 돌아와 멱을 감기도 하고, 동네 음악잔치를 보고 돌아와도 역시 글밥을 채우지 못해 허전한 밤이 되었다. 딱히, 지친 허리 휴식 삼아 한주먹 쥔 최근 발간된 문집에서 <다래끼>를 읽는다, 생각한다, 꼬집어본다, 아니다 그냥 읽히는대로 본다. 글을 또닥이는 지금, 허리님이 고단하다. 여독이기도 하지만 오늘 용을 쓴게다. 다래끼를 읽어내는 저 내공은 도인의 경지이다. 도인의 글을 읽는 흉내라도 내는 것도 도인 먼발치 쯤에 자리잡고 있다는 으스댐도 있는거다. 그러니 뻔뻔이 글을 쓰기도 하고 부끄러운 채 하기도 한다. 많이 잃고, 잊고, 까먹고, 생까고 사는 오십대의 인생이 기실 내놓을게 있을 턱이 없다. 교회다니고, 대중한 기업체를 가지고, 대학별 고향별 연줄까지 있다면, 기업프랜드리 청와대에 일할 수도 있는 나이지만, 그리 날렵하지도 않고, 남의 머리 속을 들락대는 잔머리는 더더구나 잼뱅이다. 자랑이 아니라 내 무능을 고백하는거다. 권력의 학문을 마다한 아름다운 영혼을 숭앙하는 우리 시인들이여, 이야기꾼들이여. 고단한 학문에 홀린 지난 젊음을 떠올려 볼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다래끼다. 다래끼를 읽다가 놀란 것은 그 비밀을 꽤고 있다는 강렬한 동의다. 온갖 의학지식이 지천으로 늘려있고, 또, 가진자를 위한 고급치료가 거대한 돈의 흐름을 간파하고 상품으로 확대생산의 역량이 모아지고 있는, 거대한 음모가 진행되는 이 때, 다래끼를 들여다보는 가치는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옛것의 가치를 너무 업수이 보는 경향 또한 다반사이다. 이유는 문화, 경제, 교육, 사상의 헤게모니를 놓쳐버린 근대사에 있다고 본다 . 교육지도자를 비롯해서, 정책입안 또는 소위 싱크탱크 집단에 made in USA 가 너무 많다. 치우친 생각이라 되집히기도 하지만, PL480 의 신대륙 잉여농산물혜택으로 목숨부지한 세대나, 그 후예쯤인 우리니까 딱히 부정할 소지는 없을 수도 있다. 문제는 동란중이나 직후에 미국으로 가서 미국식 사고와 선망을 가지고 돌아온 군사분야, 교육분야, 종교분야, 행정분야, 경제분야의 브레인들이 해놓은 화려한 계보 탓이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한다. 의학분야도 그러하다. 모든분야 중에 똘똘뭉친 세계적 이익집단이 남한의 의약분야가 되어버렸다. 다행하게도, 민주 의사회, 민주 한의사회, 민주 약사회 등이 제목소리를 내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전문교과서 교육에 충실한 탓으로 유순예 시인의 다래끼의 비밀을 알 수 있는 마음의 지혜는 , 정작, 그들, 의약 엘리트들에게는 없다고 본다. 다시, 다래끼다. 집안의 자녀들이 안경을 많이 쓴다. 인터넷 게임들과, 테레비와 만화영화 때문이라고 믿는 어른은 역시 유시인의 다래끼를 다시 읽어야 한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모태에서 부터 온갖 양의학의 혜택이 빚은 결과로 독해한다면 성공적 독법이다. 다래끼는 지진을 막는 작은 화산분출이기도 하다. 그 흔한 작은 분출을 통해서 아이들의 눈건강이 악화되지 않았다는 비밀을 이 시에서 읽기를 바라는 욕심이면 욕심이다. 도처에 다래끼가 사라졌다. 도처에 안경잽이 학동들 천지다. 도처에 안경점이다 곰곰이, 다시 우리의 몸을 읽는 지혜를 유시인의 다래끼에서 만난다. 참으로 기쁘다. 우리는 너무 많은 사리돈과 판피린 코프와 신종 해열제들로, 콧물치료제로, 다래끼 약으로 젊은 어미들의 몸을 더렵혔고 우리의 아동들에게서 다래끼를 약탈했으며 긴 수명을 갖는 대신 거룩한 죽음을 박탈 당했고, 골골대며, 비싼 의료비를 다 탕진해야만 하는 이 더러운 의료자본주의 문턱에 이미 걸려 넘어지고 있다는 억울한 현실이 복장(腹腸)을 터지게 한다. 의료는 철저한 사회주의식이어야 한다. 다시 아이들에게서 다래끼가 만연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사실적 요구이다. 저절로, 생태적으로, 몸의 "火氣"를 밖으로 분출시켜 더 큰병을 달고 살지 않는 순리적 몸으로 제스스로 복구되는 기능이 회복되어야한다. 논에 약을 치지 말고 농사하듯, 우리의 몸도 그러해야 한다. 더 나아가 수의사인 시각에서도, 양의학적 치료를 피해도 되거나 대체적 처방으로 치유시킬 수있는 동물의 질병이 태반을 넘는다. 나는 그다지 돈을 잘버는 수의사는 못된다. 농부들은 제 밭작물 대하듯, 제 짐승의 몸도 잘 들여다 본다. 게으른 농부만이 수의사를 부른다. 의원을 많이 찾는 현대인은 게으르다. 제 몸 돌보기가 게으르단 말이다. 그러니, 헛개비에 홀린 채, 덜컥 암보험에 의지하며 사는 부류에 다름아니다. 이미 보험장수, 약장수, 병원장수들이 똘똘 뭉쳐 아이에게 갈 유산의 반 이상을 삼킬 준비가 다 된줄 보인다. 국가가 돌봐 주어야 할 우리의 몸을 방기(당)한 채로 스스로 챙겨 악다구니로 경쟁하며 옹졸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아주 나쁜 정치 구조에 갇힌지 이미 오래다. "뜬것의 속내 삭혀준/ 자네,/ 자네 왼손에 연꽃피네 알약 몇 알로 날 잡을 생각 접어주시게" ( 유순예 詩 다래끼의 종연에서 부분 인용-시에티카 3호) 시의 힘, 또는 서로를 위로하는 힘들이 詩 속에 있음으로 고단한 이시간 편히 자 볼, 잘 수 있을, 못된 귀신(뜬것)을 피하는 밤이 될 듯하다. - 시 <다래끼> 가 오늘 밤 내 藥이다 -  
17 달팽이 略傳 /권형하
편집자
2345 2010-07-26
달팽이 略傳 / 서정춘 내 안의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밖으로 빚어 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인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 가는 온몸 이 혓바닥뿐인 生이 있었다 (전문) 달팽이는 느리게 이동하는 동물이다. 마찰을 생기게 하기 위해 배 부분에 점액을 분비한다. 점액은 달팽이를 보호하기도 하는데, 점액 때문에 달팽이는 면도날 위도 기어갈 수 있다. 머리에는 늘었다 줄었다 하는 뿔처럼 생긴 두 쌍의 촉각이 있고 그 끝에 시력은 없으나 명암을 판별하는 눈이 있다. 암수한몸으로 알을 낳아서 번식하며, 외부온도에 따라 체온이 바뀌기 때문에, 겨울에는 잠을 잔다. 피부호흡을 하기 좋은 때인 습기가 많은 때나 밤에 나무나 풀 위에 기어올라가 세균, 식물의 어린잎,채소 등을 치설이라고 부르는 입으로 갉아먹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달팽이는 먹은 식물의 색상에 따라 대변의 색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달팽이를 사육할때 녹색채소인 양상추를 주면 녹색 대변을, 주황색 채소인 당근을 주면 주황색 대변을 눈다. 천적으로는 딱정벌레와 대만반디의 유충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에스카르고라는 요리로 식용 달팽이를 기르기도 한다. 달팽이는 피부호흡을 하기 때문에,날씨가 덥거나 먹이가 마르면 몸을 껍데기속에 집어넣은뒤 얆은 막으로 자신을 보호하다가, 축축해지면 다시 몸을 끄집어낸다. 달팽이는 복족류 연체동물 가운데 나선형의 껍질을 가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달팽이’는 달팽이과에 딸린 한 종(Fruticiola sieboldiana)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껍질이 없는 육상 복족류는 보통 민달팽이라 한다. 서정춘의 시 <달팽이 약전>은 마치 달팽이가 흘리고 간 흔적처럼 시 한 편이 한 행이다. 고달픈 삶의 여정처럼 쉼표 하나 없이 이어져 있다. 달팽이 한 마리를 기억한다. 나선형의 둥근 집, 집이 아닌, 짐이 되곤 하던 그, 가엾은 집 한 채를 기억한다. 배춧단에 딸려온 달팽이 한 마리, 한동안 내 말벗이었던. 물기가 마르면 금세 유골단지가 되어버리는 달팽이의 집. 나는 분무기로 그의 등을 촉촉이 적셔 주었다. 슬픔이 마르지 않도록 그에게 슬픔을 부어주었다. 어느 날 그의 슬픔은 동이 났고 달팽이는 비로소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다. 달팽이는 복족류(腹足類)다. 배가 발바닥인 셈이다. 배를 문지르며 바닥을 기다보니 굼뜨고 느리다. 등에는 평생 지고 가야할 짐도 있다. 가히 '혓바닥뿐인 生'이다. 분명 혀가 아닌 '혓바닥'이다. 혀는 손이나 팔처럼 신체의 일부이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일부러 내밀지 않고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혀다. 대개 몸의 중요한 부위는 은밀한 곳에 숨어있다. 달팽이는 그 혓바닥 같은 몸뚱어리를 내밀어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부드러운 혀로 거친 바닥을 슬몃슬몃 건너가야 한다. '슬몃슬몃'속에는 조심조심이란 뜻이 들어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 달팽이는 뿔처럼 생긴 두 개의 눈을 탐지기처럼 쉬지 않고 움직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죽음을 향해 가는 우리의 삶도 달팽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등에 얹힌 껍데기는 이미 한 채의 유골. 혼령의 집엔 골조가 없다. '뼈란 뼈 죄다 녹여'버리고 육체와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달팽이가 평생을 들쳐업고 다녔을 그 집이 이젠 동그란 항아리가 되었다. 유골 한 채가 명부전(冥府殿) 앞에 놓여진 것이다. 명부전이란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유명계(幽冥界)다. 지상에선 명토(冥土)라고 하여 지장보살 염라대왕 등 시왕(十王)을 안치한 전각(殿閣)이다. 명부전의 뜨락에 엎드려 달팽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은 넋의 영생을 위해 극락왕생을 비는 것인가. 시인은 달팽이가 지고 온 무거운 짐을 운명이라 했다. 그 어떤 거부의 몸짓도 없이 고통마저 달게 받아들였다. 시인은 달팽이의 짐을 유골이라 하였고 그 유골을 아름답다고 하였다. 달팽이가 뼈를 녹여 만든 것은 한 채의 유골, 곧 詩이다. 골수를 짜내듯 시를 짓다보니 뼈란 뼈는 다 녹아서 詩라는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이루었을 것이다. 略傳이란 사적(事績)을 간략히 적어서 뒷세상에 전하는 기록인데 시에 표현된 시점이 죽은 뒤의 기록이다. 몸은 삶, 곧 현실에 아직 놓여 있는데 굳이 약전이라고 붙인 까닭이 무엇인가. 저승 세계는 이미 시인의 가시권(可視圈)에 들어와 있다. 詩에게 살과 피를 내주는, 시에 대한 지독한 사랑으로 시인은 껍질만 남은 존재를 확인한다. 시로 인한 깊은 상처로 인해 시인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시로 인한 불행이 시인에게는 아름다운 행복인 것이다. 시인은 자기 세계(뜨락)를 슬몃슬몃 핥으며 살아 왔던 달팽이, '온몸이 혓바닥뿐인' 달팽이를 등장시킨다. 여덟 글자로 달팽이의 전 생애를 요약하고 '뿐'이라는 한정어를 덧붙여 보잘것없는 삶을 강조해 놓았다. 이것은 연체동물인 달팽이의 생애 뿐 아니라 평생을 포복하며 사는 인간의 삶을 함축하는 말로, 달팽이의 생이 돌연 인간의 생으로 변하는 접점이 된다. 혀가 하는 일 중 하나는 말을 고르는 일. 평생 언어를 고르고 다듬어야 했던 시인은 혓바닥뿐인 삶이었다. 시인의 삶은 말, 즉 로고스(Logos)와 관계가 깊다. 로고스는 고대로부터 철학이나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존재를 가리킨다. 이 시에서는 사상으로서의 존재보다는 시장바닥처럼 질펀한 존재를 말하고 있다. 혀가 아니고 ‘혓바닥’이기 때문이다. 결국 달팽이의 집은 존재의 집이요 영혼의 집이다.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를 꼭꼭 뭉쳐 엮는 것이 서정춘 시의 특징이다. 그래서 시는 짧아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인은 등단 28년 만에 첫 시집 『죽편』을 냈다. 시집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이렇게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달팽이처럼 더딘 걸음인 것이다. 그러나 느린 것들은 집요하다. 서두르지 않으므로 포기 할 줄도 모른다. 그 느림 속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힘이 숨어있다. 그 힘으로 달팽이는 담을 타고 벽을 넘는다. 서정춘의 시에는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 없는 옹골찬 힘이 숨어있다. 고은 시인은 좋은 시에는 시적 불운이 필요하다며 시인을 일컬어 "뼈 속에 무덤 기운이 가득하다.“ 고 했다. 그렇다. 「달팽이 略傳」에도 무덤 기운이 넘치지 않는가! 실로 시인과 달팽이가 자웅동체가 된 듯하다. -출전 <시평 2000년 가을호. ‘아름다운 불행’(마경덕 글을 일부 인용)  
16 이건, 성폭행이에요/고석근
편집자
2073 2010-07-21
이건, 성폭행이에요 초등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분에게서 들은 얘기다. 그분은 스킨십을 좋아해서 학생들이 좋은 글을 쓰면 어깨도 쓰다듬어 주고 엉덩이도 두드려준다고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도해 왔는데, 요즘 들어서서는 남자 아이들이 엉덩이를 두드려주면 ‘이건, 성폭행이에요!’ 하고 소리친단다. 내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해맑은 웃음의 글쓰기 여선생님을 보며 쓴웃음부터 나왔다. 요즘 아동 성폭행 사건이 자주 터져 나오니까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폭행에 대한 교육을 많이 시킨단다. 아이들은 ‘남이 자신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것’은 성폭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식iN에 보면 한 초등학생이 아빠가 가슴을 만졌는데 이게 성폭행이냐고 묻는 것도 있다. 어디선가 읽은 얘기다.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하교 시에 아이들을 한명씩 안아준다고 했다. 나는 ‘아, 정말 참교육을 하시는 분이로구나.’하고 생각했었다. 그 글을 쓴 분도 그런 생각을 피력했다. 그 초등학교 선생님은 지금도 아이들을 안아줄까? 사람의 몸이 ‘쉽게 만지면 안 되는 무슨 물건’처럼 되어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은 마음이 오가듯이 몸이 오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몸을 무슨 물건처럼 다루면 사람들은 마음과 몸이 따로 노는 해리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쉽게 만지는 것과 함부로 만지는 것은 다르다. 마음이 오가듯 ‘쉽게’ 오가는 몸은 아름답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시켜버린다. 사람의 몸이야말로 얼마나 자본가들에게 군침거리인가? 몸을 요리저리 뜯어고치고 비틀어 돈을 짜낸다. 우리 몸은 돈을 짜내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순진무구한 아이 때부터 몸을 물건으로 보게 만드는 이 자본주의야말로 얼마나 ‘위대’한가? 사람은 몸이 성숙하면서 성도 함께 성숙한다. 몸만큼 성이 따라갈 때 성은 아름답다. 그런데 포르노는 이런 발전단계를 일거에 부숴버린다. 몸이 성숙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포르노를 본다. 9세 아이가 포르노를 보면 그 아이는 어떻게 남자(여자) 몸을 만날 수 있나? 신비로운 사람의 몸을 그는 잃어버린다. ‘머릿속의 몸’은 그를 신비로운 현실의 몸을 못 만나게 한다. 이 아이가 몸이 성숙한 뒤에 상대 성을 만날 때 ‘우주의 반쪽과 반쪽이 만나는 신비의 극치’를 맛볼 수 있을까? 그는 사랑이 아니라 폭력을 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포르노를 왜 안 막나? 못 막는 건가? 안 막는 건가? 포르노는 첨단 산업이다. ‘친 기업 권력’으로서 ‘반 기업 행위’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포르노를 보는 건 성폭행만큼이나 위험하고 사악하다. 그리고 나는 돈이 없어 성매매에 뛰어드는 여대생들 얘기를 들을 때면 이 ‘반인간 사회’에 치가 떨린다. 그녀들을 누가 사나? 이런 반인간적인 행위에 대해선 다들 눈을 감는다. 아동 성폭행보다 이런 성매매들은 덜 반인간적이라는 건가? ‘아동 성폭행’은 우리 사회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아동 성폭행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그때마다 가진 자들은 성폭행범들을 잡는 척 숨바꼭질 놀이를 하겠지. 사람의 몸은 그 자체로 사람의 혼이다. 사람의 혼이 자유롭듯 사람의 몸도 자유로워야 한다. 마음이 가면 몸도 간다. 마음이 가지 않는데 몸을 가게 하는 모든 행위들은 폭력이다. 아동 성폭행범이나, 성을 돈으로 사고파는 자들이나 다 똑같은 폭력범들이다. 아이들이 마음이 오가는 몸과 몸만 오가는 것을 구별하지 못할까봐 나는 너무나 두렵다. 특정 부위를 만지는 것을 성폭행으로 보는 아이들 시각에 나는 전율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아름다운 ‘성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상대의 성을 만날 때 아이들은 ‘머릿속의 관념’으로 만날 것이다. 마음이 담긴 몸이 만나는 신비를 아이들은 경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성을 경험하지 못한 영혼은 타락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아동 성폭행범이 되거나 눈에 안 보이는 성매매자범이 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성은 아름다운 삶의 필수조건이다. 아동 성폭행범이 아무리 난무하더라도 우리는 아름다운 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의 혼이기 때문이다.  
15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의 출현을 위하여 /고석근
편집자
1967 2010-07-15
진정한 진보주의자들의 출현을 위하여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외고생 아들 사건’을 보며 진보 교육감으로 알려진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게 외고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곽노현 교육감은 ‘아들이 공부 잘하고 가고 싶어 해서 외고 보냈다.’고 했단다. 나는 일련의 사건 전개 과정을 보며 대체로 무덤덤했다. 나는 곽 교육감이 우리 교육의 폐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것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그에게 외고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게 그 노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물론 내가 진정으로 그를 진보 교육감으로 생각했다면 그에게 외고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나는 진짜 진보 교육감에게 외고 다니는 아들이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자다. 우리 사회는 수구세력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 자유주의자들이 진보로 통하고 그들은 엄청난 ‘진보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절대로 진보로는 보지 않는다. 진보는 진보의 가치를 몸으로 증언해야 한다. 말로만 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자유주의자 곽 교육감에게 외고 다니는 아들이 있건 없건 그건 전적으로 그의 자유다. 자유주의란 기본적인 민주적 가치를 소중히 한다. 자식과 부모는 다른 인격체이기에 다르게 봐야 한다. 하지만 ‘진보’는 다르다. 나도 한때 운동 단체에 몸담았었다. ‘운동’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던 시절이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들 ‘신선’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들을 가까이 접하며 수없이 놀랐다. 그들의 해박한 지식에 놀랐고, 뜨거운 열정에 놀랐고, 지행 불일치에 놀랐고, 그들의 강고한 엘리트 의식에 놀랐고, ‘잘난 자식들’이 많다는 것에도 놀랐다. 멋있는 운동가도 있었고 우스꽝스러운 운동가도 있었다.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그때는 그것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지금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운동’은 완벽하게 아름답지만 ‘운동하는 사람’은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 사람이 완벽한가? 나는 적어도 진정으로 진보주의자라면 절대로 아들을 외고에 보내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외고에 보내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데, 어떻게 잘했겠는가? 아이를 ‘아이답게’ 기르지 않고 공부에 몰입하게 했거나 적어도 ‘남들처럼’ 공부시켰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겠는가? 머리가 워낙 월등해 펑펑 놀아도 공부 잘하는 걸 어떡하냐고 질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진정한 진보주의자라면 외고가 어떤 덴지 잘 알 것이다. 그런 입시 지옥에 아이를 보낼까? 아니, 아이가 그런 데를 가길 원하도록 내버려뒀을까? 진보의 가치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면 아이를 어떻게 길렀을까? 아이는 부모를 보고 배운다. 부모가 진보의 가치를 일상에서 구현하고 있는데 아이가 어떻게 외고를 가겠다는 의식을 갖게 되겠는가 말이다. 적어도 대안학교를 가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고등학교를 안가겠다고 하든가. 진정한 진보주의자는 진보가 몸에 밴 사람이다. 지행합일이 되지 않는 사람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사실 자유주의자들이다. 연대를 얘기하며 낮은 사람에겐 친절하지 않는 사람, 평등을 얘기하며 항상 잘난 사람들과만 상대하는 사람, 낮은 곳을 얘기하며 항상 앞에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이런 사이비 진보주의자들이 무수히 많다. 나는 그들이 진보주의자들인 줄 알았을 때는 너무나 힘들었다. 이제는 그들의 정체를 안다. 그들은 자유주의자들이다.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데 뭐가 잘못인가? 그들이 연대, 평등을 얘기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를 위해서인 것이다. 그들의 말에 속을 필요는 없다. 그들의 행동만이 그들이다. 인간은 몸이 행할 수 있는 것 만큼이다. 나는 이제 서서히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분리되길 바란다. 얼마나 많은 민중들이 가짜 진보에 속에 진짜 진보를 지지하지 않고 있는가? 자유주의자들도 고백을 했으면 좋겠다. ‘사실 나는 자유주의가 좋다. 기본적인 민주적 가치가 통하는 자유로운 사회는 얼마나 좋은가? 나는 이런 사회를 진정으로 원한다. 아들을 외고, 명문대에 보내고 싶은 게 뭐가 잘못인가? 내 돈 갖고 잘사는 게 뭐가 잘못인가? 내 잘난 학벌, 지식 갖고 잘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뭐가 잘못인가?’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 다 맞다! 당신의 말을 나는 전적으로 존중한다. 하지만 당신은 진보주의자는 아니다! 진보주의자만은 자처하지 말라! 사람들을 오도 할 수 있기에 말이다! 나는 진짜 진보의 모습을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들이 진보를 지지할 게 아닌가?  
14 부동산 공화국/고석근
편집자
2324 2010-07-07
부동산 공화국 - 점촌에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따르릉 시골길을 달린다. 뙤약볕 아래 헉헉대는 풀들을 보며 나도 헉헉대며 달린다. 언제나 농촌은 평화롭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쇠락해진 마을을 보며 한때 떠들썩했을 풍경들을 상상해 본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서 있는 마을 입구, 나는 한켠에 앉아 땀을 식힌다. 저쪽에선 촌로 몇 분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처럼 대화가 쾌활하다. 농사지은 얘기들을 주로 나눈다. 못자리한 이야기를 판소리하듯 큰 소리로 말한다. 옆에선 추임새를 넣어준다. 나는 눈을 감고 몽롱한 상태에서 그들의 얘기 속으로 빠져든다. 내가 어릴 적 많이 듣던 정겨운 목소리들이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들길을 달린다. 코에 스쳐가는 논 냄새가 좋다. 수로를 들여다 본다. 옛날엔 온갖 물고기들이 살았는데, 고요하다. 시내로 들어왔다. 오늘은 어느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을까. 매번 다른 식당에 간다. 새로운 세상, 작은 식당엔 항상 다른 세상이 있다. 길가에 자리 잡은 식당으로 들어가 본다. 물잔을 가져온 아줌마에게 순대국밥과 막걸리 한 병을 시킨다. 잠시 후 왁자하게 들어온 넥타이 부대. 나는 순대국과 막걸리가 어우러지는 느낌을 입 안 가득 느끼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큰 소리로 땅 얘기를 한다. 이 식당 근처는 수십 년 전에는 불모지였다고 한다. 기름진 땅들은 다 장남에게 물려주던 시절, 이 근처 땅을 물려받은 막내들은 다들 땅 부자가 되었단다. 나는 상상해 본다. 기름진 땅을 물려받은 장남들은 지금도 농사를 짓고 있을까. 불모의 땅을 물려받아 졸지에 부자가 된 막내들은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들 사이는 어떨까. 맞아, 내가 아는 사람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장남이 땅 부자가 된 아우에게 은근히 손을 벌린다고 했다. 부모님이 나눠주신 재산을 다시 정의롭게 재분배하는 형제들이 있을까. 사람 사이에 돈이 끼면 모든 사이들이 비틀어진다. 항상 서먹하게 지낼 형제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을까. 그들은 속으로 중얼댈 것이다. ‘돈이 뭔데......’ 하지만 돈의 위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우애가 있을까. ‘마음은 원이로데 육체가 약하도다’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넥타이 부대들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시골 촌로들 이야기의 흥겨움이 없다. 하얀 와이셔츠처럼 이야기들이 표백되어 있다. 색깔이 사라진 이야기들은 무미건조하다. 헛웃음을 한참 웃다 그들은 사라졌다. 얼근히 취한 나도 식당을 나온다. 자전거를 비틀비틀 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오늘 강의를 생각해 본다. 내 얼굴엔 웃음이 가득해진다. 이렇게 술에 취해 강의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얗게 빛나는 햇살 아래 사람들이 분주하다. 술에 취해 보는 세상은 참 아름답다. 오늘 강의도 ‘명강의’를 할 것이다. 술기운이 만드는 기적. 초등학교가 보인다. 나는 교문으로 들어갔다. 재잘대는 초등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덩굴나무 그늘 아래 앉아 아이들을 바라본다. 아이들만큼 위대한 인간은 없다. 그들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그들은 쉼 없이 무슨 주문들을 외운다. 눈은 한없이 깊다. 그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그들이 있는 한 세상은 무사하다. 우리나라 30억 이상의 부자들은 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들은 복을 받은 듯이 얘기한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어느 곳의 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때 다른 곳의 땅 값은 땅 속 깊이 떨어져야(실질 가치가) 하니까. 사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들은 어떻게 살까.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 불로소득들(사실은 강도 짓한- 자신이 알건 모르건 관계없이)을 국가가 세금으로 거둬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나라는 하루아침에 복지국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삶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가난하지만 신나는 농촌 촌로들과 하루하루 지루하게 사는 월급쟁이들은 진정으로 누가 더 행복할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나? 땅이 부린 요사스런 요술 때문이다. 내가 알고 부동산 부자들은 다 행복하지 않다. 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가 평생을 골방에서 지내다 간 사람들도 있고, 항상 부동산을 생각하다 머리가 굳어버린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잠시 후 나는 ‘문학의 향연’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시골 마을의 촌로들이 벌이는 ‘일상의 향연’을 따라갈 수 있을까. 부동산을 정의롭게 하면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매일 매일 향연을 벌이고 살 텐데. 거리에 로봇처럼 걸어가는 사람들. 아, 저 사람들은 ‘향연의 기쁨’을 모른다.  
13 내 안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고석근
편집자
2315 2010-06-28
내 안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사건의 범인 김수철은 현장 검증 도중에 ‘내 안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마음 안에서 어떻게 악마가 살게 되었을까?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에로스(삶의 본능)와 타나토스(죽음의 본능)로 설명한다. 에로스는 ‘살맛’이다. 인간의 성(사랑) 에너지, 즉 생명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삶이다. 우리 안에서 약동하는 에너지를 느낄 때, 우리는 ‘에로스’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에너지가 약해지면 타나토스가 우리 몸을 휩싸게 된다. 사는 게 ‘죽을 맛’이다.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하다면 차라리 죽어서 다른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는 게 ‘우주의 한 존재’로서 이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죽음의 본능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타나토스에 빠지면 이 죽음의 에너지는 자신에게 향하든지 남에게 향하게 된다. 자신에게 향하면 자살하게 되고 남에게 향하게 되면 타살하게 된다. 이때 사람은 ‘내 안에 악마가 사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된다. 범인 김수철은 이런 타나토스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를 비난하고 저주하고 사형시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을까? 그런 마음의 소유자들을 다 죽여야 할 텐데, 과연 남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남은 사람이라고 해서 이런 마음을 안 지니게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래서 나는 이런 흉악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엄한 처벌’을 얘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범죄를 막자는 거야? 범죄를 계속 일어나게 하자는 거야?’하고 한탄하게 된다. 정말이지 ‘펑펑 울다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된다. 나는 이런 흉악한 범죄를 막고 싶다! 머잖아 우리 아이들에게서 손자, 손녀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나는 내 손주들을 키워보고 싶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너무나 많은 신비로웠던 기억들을 갖고 있다. ‘어린 왕자. 어린 공주’에 대한 신비로움을 다시 느껴 보고 싶다. 그들의 몸짓 하나하나를 사진으로 찍고 그들이 하는 말을 모두 기록하려 한다. 그만한 문학이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런데 그런 손녀들이 성폭행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견딜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자녀들이 성폭행 당한 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막고 싶다! 그 ‘악마들’을 엄벌에 처한다고 해서 그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는 없다. 그 악마들은 ‘우리 사회가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철이 살아온 사회 환경이 그의 마음에 악마를 키운 것이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악마들이 사람들 속에서 자라고 있을까? 그런데 왜? 해결책이라는 것들이 초등학교에 순찰을 강화한다느니, 범인 신상 공개를 한다느니 하는 것들만 나오는가? 그래서 해결된다고 믿는가? 그런 것들도 당장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그런 악마들을 마음속에 기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수철에게 우리 사회가 따뜻한 사랑을 주었다면 그가 그런 악마가 되었을까?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희생물이라고. 그렇다면 그 희생물에게 최소한 선진국 같은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는가? 우리 속에 악마를 키우는 건, 우리 사회의 양극화이다. 일해도 먹고 살 수 없는 절망은 우리 안에 악마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사회 곳곳의 비리, 불의는 가장 좋은 악마들의 자양분이다. ‘스폰스 검찰들’은 얼마나 많은 악마들을 양산하고 있을까? 또 ‘4대강 개발’은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악마들을 키우고 있을까? 우리 자녀들, 손자손녀들이 안전하게 자라게 하는 길은 간단하다. 이런 ‘악의 축들’을 척결하는 것이다. ‘6.2 지방 선거’는 그 척결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었다.  
12 유난함과 손잡고 싶다/조재학
편집자
2217 2010-06-23
유난함과 손잡고 싶다 학생들의 교복 치마가 짧아지고 있다. 며칠 전 덕수궁 근처 야외 까페에서 본 호리호리한 몸매의 아가씨가 입은 스커트도 그랬다. 가느다랗고 높은 뒤축 구두에 쭉 뻗은 탄력 있는 다리의 곡선이 이쁘고 시원했다. 그 곡선을 따라 올라가던 내 시선이,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당황하며 흔들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슬한 치마의 길이였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돌아온 가수 윤복희가 입었던 유난스런 치마, 미니스커트. 그 것은 곧 유행했고 그 유행의 물결은 당시 여고생들에게도 전해져서 교복치마의 허릿단을 한 겹 두 겹 접어 입었다 지금은, 교복 치마를 미니스커트로 아예 치맛단을 잘라 입는다. 그 용감함이 궁금해서 며칠이 지난 후 아이들에게 간략한 설문 조사를 해보았다. 아이들은 이렇게 답변한다. ‘짧은 치마가 다리를 좀더 날씬하게 보이게 해서. 치마가 길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불편해서, 걸리적거려서, 치마가 길면 다리가 짧아 보여서, 교복이 똑 같으니 개성을 살리고 싶어서, 연예인들이 TV에서 짧은 교복을 입은 것이 예쁘게 보여서... . 대체로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구의 발현이 많았다. 그렇다면 공동체 생활의 규정도 어기면서까지 추구하는 ‘예쁘게 보이고 싶고, 개성을 살리고 싶은’ 욕구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 자기표현의 욕구를 실존에 대한 인식이고 자기창조라고 한다면 과장된 말일까, 인간에게는 생명의 기운을 발산하고 싶은 창조의 욕망이 있다. 문학을 하는 것도,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춤을 추는 것도 자기창조의 욕구라면, 이 또한 존재에 대한 사랑이고, 생명의 외경일진데,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명심보감에서 말하고 있다. 미니스커트를 입는 일도 아이들에겐 제 세상의 한 가지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사실 교복을 미니스커트로 변형시켜 입는 아이라면 누가 봐도 문제아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어쩌면 자기표현의 욕구를 가지고 삶에 도전하는 지혜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전하는 아이들, 무릎보다 깊은 물에 들어가려고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고집스러움이, 그 특이함이 어쩌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처럼, 학교에서도 고집 센 아이들이 야단을 더 맞는다. 예,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가도 좋을 것을 굳이 고집을 부리다가 작은 일을 크게 만들기도 한다. 며칠 전에도 고집을 부리는 통에 더 혼줄이 나는 혜준이를 보았다. 지난 해 그 아이의 동아리 지도교사였던 나는 무던히 속을 썩였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또 한편 그런 아이들에게 막연한 기대를 걸어본다. 그것은 무서움이 없는 아이, 뻗댈 수 있는 아이, 그런 아이들이 마음 한 번 달리 먹으면, 제 삶에 신념을 가지고 한 꿈을 이루어가고자만 한다면, 숨은 힘을 발휘할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얼마 전 총동창회를 열었다. 중년이 된 옛 제자들은 오랜 스승들 앞에서 즐겁고도 아팠던, 서럽고도 행복했던 옛날 일들을 떠올리며 활짝 웃고 있었다. 제 분야에서 이름을 올리며 살고 있는 이야기, 저마다 제 삶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옛 스승들 앞에서 풀어놓았다. 돌아와서는 낮에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떠올리자, 생각나는 인물이 있었다. 키 155㎝의 오은선 대장! 여성 산악인,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에 성공한 사람. 그래서 세계를 놀라게 한 사람,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특별한 능력보다 산에 대한 열망과 열정이 다른 사람보다 좀 유난했다’ 고. ‘좀 유난했다’ 고 그녀의 환한 사진은 말하고 있었다.  
11 시, 우주를 읽고 답하다/강태규
무궁화
2526 2010-06-21
시, 우주를 읽고 답하다 시를 읽는 독자로서, 함성호 시인의 「보이저 1호가 우주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며」 는 시가 우주와 소통하는 아름다운 여정이 될 수 있음을 기뻐하고 또 즐길 수 있는 역할이 될 수 있음을 알게한다. 작년에 현장비평가들이 꼽은 시 중에서도 김사인 시인에 의해 선정된 시로서, 둔감할 수 있는 시읽기에 우주과학이 보태짐으로 시의 '프리즘'에 새로운 분광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눈 앞에 어른대는 주인공의 대사 처럼 "어머니, 전 혼자예요" 는 오랫동안 울렁댄다. 많이 보태자면 울림이 오래간다는 거다. 보이저 1호는 2호 보다 16일 늦게 미항공우주국 (NASA;나사)기지에서 미공군(USAF)이라는 이름 표를 달고 우주로 쏘아졌다. 필자가 대학에 다닐 무렵에 쏘아졌으니, 어연 33년 전이며, 함성호 시인의 '보이저'는 작년에 『문학과 사회』지에 발표되었다. 시는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기도(祈燾)와 같다. 그러나 우주선 '보이저'의 할아버지뻘들은 냉전의 산물이며, 보이저 1호 또한 그 손자이다. 제이. 에프. 케네디도 가버렸고 흐루시초프도 실각되었다. 그러면서 당시 양대국의 최초 공동선점의 구두약속도 사라졌다. 1998년이 되어서야 여러 강대국들의 연합형태로 '국제 우주 정거장'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우주에서 조차도 패권의 헤게모니의 선점을 진행하고 있는 형국이다. 함 시인은 여러 우주선 중에 보이저 1호에 주목한다. 이유는 간명하다. 마치 당구대의 테두리에서 당구공이 튀기듯, 보이저 1호 만이 행성(별)들의 중력을 이용하여 가속하도록, 그 진행방향이 구성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년 여름에는 태양으로부터 111 에이유(AU; 약 166억 킬로미터)로 진입했다 할 정도로 그 신호가 지구에 도달하는 데 무려 31시간 후에나 도착한다는 먼 거리를 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우주에 겨울이 오고있어요 나는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다시 어느 별의 일부가 될거예요 (중략) 나는 어디에 있나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누구에게든 알려주고 싶어요 (부분 인용) 그러나, 어쩌랴. 발사체의 계획 자체도 무한대를 향해 날려 보냈다. 즉, 우리 태양계로 돌아오지 않도록 내 보낸 것이다. 인류인 '어머니' 가 만든 물체(시인에게는 아들 또는 딸) 중 가장 멀리 벗어난 물체가 되며, 그 또한 우주의 먼지가 될 운명임을 안다. 2007년에는 그의 밥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즈마 운용장치가 운명을 다했고, 재작년에는 전파 천문 장치까지 역할이 끝났으며, 올해는 자외선을 읽는 기계도 멈춘다고 한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2025년이 되어서야 모든 뇌기능이 멈춘다 한다. 그러나 시인은 돌아오길 기다린다. 지구 또한 유한하며, 또 다른 행성을 찾는 꿈을 우주계발로 내세우기는 하면서, 또, 많은 과학 칼럼들은 과학기술과 교육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무한경쟁적 과목, 국영수를 뛰어 넘는 최우등반의 필수항목임을 강조한다. 무한대의 공간에 길없는 길을 과학이 나서지만, 정작, 우주에 길을 놓는 것은 시인이다. 사뭇 같은 논리로 댐과 보를 설치하고 쌓이는 모래를 계속 퍼 올린다는 원대한 계획의 추진은 일견 우주에다 쏟는 돈 보다 효율적일 듯 보일 수 있다. 우주(태양계)는 어차피 10억년 후면 태양이 팽창하며, 종국에 태양계의 모든 물질들은 다시 먼지로 돌아 간다고 한다. 우주로부터 왔다가 우주로 돌아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 때까지 지구를 깨끗하게 사용할 의무와 책임은 모두에게 있고, 지도자에게는 그것은 소명이기도 할 것이다. 어디에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큰판을 벌여야 고물도 많이 떨어지고, 시장에 돈이 잘 풀린다고는 한다. 진나라 황제 시대에도 만리장성의 무거운 돌 하나를 산까지 옮기는 일거리의 값어치는 성인 두 사람의 일년 노역비에 해당했다고 한다. 패권도 마찬가지다. 스푸트니크 1호에 놀란 미국 정치계가 케네디의 애국주의의 인정에 호소하는 명연설로 큰판을 벌이며, 그 패권을 지금도 유지하는 것처럼. 진나라 왕이 고민한 것처럼, 진나라 국민들도 동의하였을까. (사실, 문화사의 견지에서 보면, 당시는 주체가 없었으므로 동의란 게 있을 수 없는 시대였다. '동의'란 개념 조차 근대의 시작과 같이 태어난 이념임으로) 노동의 댓가라기 보다 살려주는 댓가로, 산과 계곡 위로 돌을 밀며, 끌어 올리는 진나라 예속하의 민중 또는 노예들의 삶은 배고픔을 면하며 감사했을까. 어찌하였던, 여러 천년 뒤 후예들은 관광수입으로나마 살 수 있는 장관이 되었다. 강대국의 우주계발은 이른바 '무한대' 의 경쟁욕망 속에 무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그들의 레퍼토리가 된다. 하늘과 우주를 따를 폭이 못된다면, 땅 위에 무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만들고 허물기", 모래밭의 아이들 모래성 쌓기 놀이이다. 낙동강을 바라볼라치면, 위험해 보인다. 누가 좀 말릴 수는 없는가. 또, 우리의 후손들이 결국 허물어야만 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서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杞憂)인가. 우주의 또 다른 사람이 살 만한 곳의 기준은 결국 물이 있는 별인 것이고, 이 지구에 있는 물을 잘 관리하는 것도 우선 중요한 일이다. 결국은 '돈놀이' 게임에 걸려든 것이다. 나는 좀 더 저렴한 값에 좋은 물을 접하며 살고 싶다. 마당을 깊이 파면 먹을 만한 물이 나오는 땅이 아직도 좋은 땅이라 믿고 있다. 우리는 이미 걸려 들었다. 정수기 장사꾼의 계획에 이미 중독되었고 넘치는 중장비가 놀 곳을 끊임없이 찾는 구조 속에 걸려 들었다. 낙동강이나 한강이 맑고 풍부하게 잘 관리된다 한들, 이미 바가지로 퍼 먹을 세대는 못될 것이다. 돌고래 만한 로봇물고기 떼가 수질을 관리할 것이며, 그 기계가 송신해 오는 신호에 따라 온 강물을 정수기에 돌리는 일거리가 산업이라는 명분으로 번성할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물길을 따라 지고 피었다. 범람 자체도 바다의 태풍역할과 똑 같이 모든 생명에게 천연 비료역할을 해왔다. 사람이 하는 것은 그 자연과 타협하며, 때로는 순종하며 같이 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것이다. 온 땅과 들녘이 인공물질 들과 화학비료 들에서 유기적 환경과 농법으로 환원하자고 하는 대세 속에 다시 와있다. 잘 산다는 것이 배 불리 사는 것이 이십세기였다면, 이제 잘 산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삶이라는 것을 함 시인으로부터 쉽게 독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에도 아름다움은 있을까요? 거기에, 거기에 고여 있을까요? 존재가 없는 연기(緣起)처럼 검은 구멍처럼 어머니 전 혼자예요 쇠락하고 있지요 *더 볼만한 자료: 비비씨(BBC) 다큐멘터리 6부작 "우주의 신비" 카나다 디스커버리 채널 "화성 여행" http://en.wikipedia.org/wiki/Voyager_1 http://en.wikipedia.org/wiki/Heliopause 강태규(201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