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8호...
   2020년 04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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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부실 공화국 /고석근
편집자
2092 2010-06-21
부실 공화국 ‘천안함 사고’가 드러낸 군의 총체적 부실을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놀랄까? 아니면 예상했지만 충격적이라고 할까? 우리는 군에 대한 이런 저런 비리들을 많이 들어왔다. 가장 썩은 곳이 군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 풍문들이 사실임을 이번 사고는 선명히 보여주었다. 나는 몇 가지 직업을 가져 봤다. 그때마다 너무나 튼튼하게 얽히고설킨 비리의 고리들을 보아왔다. 어디를 어떻게 끊어야 비리의 사슬이 끊어질지 막막했다. ‘나’라는 미약한 존재는 자연스레 그 비리의 사슬에 편입되어 갈 뿐이었다. 얼마 전에 교사나 교수가 되기 위해 수 천 만원 내지 수 억원을 써야한다는 시사 프로를 봤다. 누구나 알고 있는 비리라는 멘트도 나왔다. 누구나 알고 있는데 그 비리들을 왜 지금까지 수사당국은 숨기고 있었을까? 그 사슬을 끊어야 할 검찰, 경찰의 칼이 비리의 사슬에 꽁꽁 묶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오래 전 어느 술자리에서 모 고등학교 교사의 어처구니없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다. 교육청에서 감사가 나온다고 해서 성적 답안지를 다시 검토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지난해의 답안지에서 채점을 잘못한 것이 발견되었단다. ‘어떡하지? 채점을 다시 해야 하나?’ 그 교사는 머리가 풍선처럼 마구 부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단다. 답안지 채점을 다시하게 되면 학생들의 성적이 다시 매겨져야 하고, 그러면 석차가 다시 정해져야 하는데, 모든 성적 기록부를 다시 써야 하나? 성적 통지표도 다시 나가야 하나? 석차가 달라지면 이미 대학에 간 학생들은 어떻게 되나? 내신 성적이 달라져 입학 사정을 다시 해야 하나? 이미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 떨어질 수도 있나? 그 교사의 난감한 상황을 선배 교사 한 분이 간단하게 해결해 주었단다. 답안지를 고치는 것이었다. 너무나 간단했단다. 정답 2번을 쓴 것을 오답 3번이라고 고쳐 쓰게 되면 채점을 정확하게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 교사는 마법을 보는 듯 했을 것이다. 수많은 악마, 괴물들이 작은 손짓 하나에 일거에 사라지는 기적. 이 기적을 아무나 일으킬 수는 없다. 한 분야에서 오랜 세월 ‘짬밥’을 먹어가며 몸으로 익히는 비급이기 때문이다. 말에서 말로 은밀히 전해지는 이 비급을 익히는 데는 짬밥을 먹으며 하냥 세월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머리를 굴리며 선배들 눈치를 보며 고된 묵언 수행의 길을 걷는 길밖에 없다. 이런 것을 알려주는 책도 없고 학원도 없고 대학원도 없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을 보면 도사의 풍모가 풍긴다. 어떤 경악할 사고에도 그들은 빙긋이 웃는다. 마하가섭의 염화시중의 통달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가 없다. 입을 떼려다 그들의 금강불괴의 몸 앞에서 우리들 입은 얼어붙게 된다. 그들의 공력은 이미 수십 갑자에 달해 한 갑자를 사는 우리 보통사람들은 그들의 속내를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얼굴 가죽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어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하는 말은 선문답이라 중생들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저 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수밖에. 이렇게 우리는 부실 공화국에서 서서히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다. 잘못된 종교란 얼마나 무서운가? 한 사람이 미치면 정신병자인데 모든 사람이 미치면 종교라고 하지 않는가? 믿음이 굳건할수록 우리는 ‘행복’해진다. 우리 사회는 다종교가 아니라 부실신을 유일신으로 모시는 일신교 나라이다. 며칠 전 깊은 밤에 택시를 탔다가 택시 기사에게서 ‘한 소식’을 들었다. 이제 우리는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벌에 퍼주는 돈의 일부만 풀어도 모든 국민이 의료 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택시 기사들은 부실 공화국의 경전을 읊조렸는데. 나는 이 희소식에 마구 가슴이 뛰었다. 부실 공화국이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사실은 모래성이다. 우리들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어느 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된다.  
9 흥부 부부상/박재삼 //권형하
편집자
3676 2010-06-18
흥부 부부상 / 박재삼 흥부 부부가 박덩이를 사이하고 가르기 전에 건넨 웃음살을 헤아려 보라 금이 문제리, 황금 벼이삭이 문제리. 웃음의 물살이 반작이며 정갈하던 그것이 확실히 문제다. 없는 떡방아 소리도 있는 듯이 들어내고 손발 닳은 처지끼리 같이 웃어 비추던 거울면(面)들아. 웃다가 서로 불쌍해 서로 구슬을 나누었으리. 그러다 금시 절로 면(面)에 온 구슬까지를 서로 부끄리며 먼 물살이 가다가 소스라쳐 반짝이듯 서로 소스라쳐 본(本) 웃음 물살을 지었다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확실히 문제다. ................................................................................................ 박재삼 선생의 「흥부부 부부상」시는 고전소설 <흥부전>의「흥부 부부」를 주요 인물로 인유하였지만, 물질보다는 외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상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인간의 정신보다는 물질을 숭배하거나 배금사상에 젖은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는 더욱 값진 작품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시 속에는 가난한「흥부 부부」가 박을 얻어 와서 끼니를 이우려는 애틋한 부부애가 담겨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흥부 부부가 박이라도 타먹으려고 톱을 댑니다. 그래도 뿌듯하여, 가난하다고 사랑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니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배고파도 마주봅니다. 이때 ‘마주보는 웃음의 물살’은 금보다도 황금 벼 이삭보다도 소중한 사랑입니다. 서로 마주보아도 낯설지 않고 정겨운 모습은 사랑의 거울입니다. 서로의 못남을 제 탓으로 돌리며, 못남 앞에 진정어린 미소를 지어주고, 서로의 일체감을 느끼며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눈물이라도 나누는 일입니다. 그런 사랑 앞에 불행은 발을 붙일 수 없고 행복만이 걸어오지 않을까요. 구슬은 눈물을 은유할 것입니다. 눈물을 서로 부끄러워하며 놀라서 다시금 웃음 짓는 흥부 부부의 사랑 가득한 행동을 통해 가난한 생활에서 오는 한을 극복하고자 하는 서민의 애환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슬픔을 극복하고 난 뒤에 짓게 되는 웃음, 진짜배기 웃음이겠지요. 그것을 본웃음 이라고 하였네요. 이러한 흥부 부부의 자세는 단순히 소박한 생활에 만족하는 차원이 아니라 가난한 삶의 한(恨)까지도 진정한 사랑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삶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임을 <그것은 확실한 문제다>라고 단정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가난을 사랑으로 극복해 내는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박 타는 ‘흥부 부부’에 빗대어 표현한 작품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부부가 가난으로 인한 삶의 고통 속에서도 소박한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면서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 아는 삶의 가치에 소중한 가치를 잘 부여하고 있는 시입니다. 시 한 편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은, 인생을 깊이를 명찰하게 하고, 삶의 에너지를 공급해 주어 삶에 약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란, 언제나 우리의 삶을 새로이 출발하도록 고무하며, 그 삶의 근원으로 되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권형하 시집 「새는 날면서도 노래한다(1990)」, 「바다집(1997)」,「꿈꾸는 섬(2005)」. 경북문학상 수상(2005).  
8 '6.2지방 선거'를 보며/고석근
편집인
2071 2010-06-12
‘6.2지방선거’를 보며 선거 직전엔 정말이지 절망적이었다. ‘이만가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세상이 미쳐가는 듯 했다. 빅 브라드의 가벼운 손짓 하나가 일으킨 북풍은 세상을 다 휩쓸어버리는 듯 했다. 싫었다. 이 땅이 싫었다. 내게 너무나 많은 한이 서린 이 땅이 싫었다. 하지만 북풍한설에도 이 땅 가장 밑바닥에서는 새싹들이 움터 나오고 있었다. 진리는 항상 세상 맨 밑바닥에서 솟아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었다. 벅찬 가슴으로 선거 방송을 지켜보았다. 벅찬 희열 - 이것이 이번 6.2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느낌이었다. 북풍한설을 뚫고 나온 꽃들은 아름다웠다. 세상이 꽃으로 만발했다. 민주주의 꽃만큼 아름다운 게 있을까?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일반민주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일반민주의의 건재함을 이번 선거를 통해 확인했다. 서울 광장의 경찰의 군홧발과 곤봉은 안 된다고 국민이 확인해 주었다. 빅 브라드의 말 한마디가 법이 되는 제왕적 정치도 이제는 안 된다고 국민이 확인해 주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이뤄져온 일반민주주의는 이 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성임을 국민이 확인해 준 것이다. 이제 ‘수구반공세력들’은 서서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발버둥치고 아우성치겠지만 준엄한 국민의 명령 앞에 그들은 어찌할 것인가? 당분간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들의 추한 몰골을 대하는 우리들의 심정은 참담할 것이다. 저러면 죽어도 중음천을 떠돌 텐데. 고이 죽지 못하는 그들이 너무나 서글프다. 당분간의 혼란은 아름다운 민주주의의 질서를 잉태하기 위한 혼란이기에 우리는 이 혼란 속에서 자유로운 공기를 만끽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공적인 질서를 세워 나갈 것이다. 집을 하나 지어도 아는 사람을 찾던 발길을 관공서를 믿고 찾아갈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의 양심을 믿고 공무원을 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선거를 보며 벅찬 희열과 동시에 ‘깊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반민주적인 수구세력들에 대한 단호한 응징의 기운은 느껴졌지만, ‘진보 세력’에 대한 신뢰는 느껴지지 않았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교육감들도 사실은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들의 공약은 일반민주주의의 범주에 속한다. 진정한 진보의 공약이라면 교육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의무가 명기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상 교육(대학까지)에 대한 공약이 우리 국민들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들이 확인해 준 건 ‘일반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것이지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 등 기층 민중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불안하다. 수구세력들은 역사의 장에서 퇴장해 가겠지만, 그 자리를 메우는 건 보수 세력이 아닐까 하고. 미국처럼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당들이 이끌어가는 나라가 되는 건 아닐까 하고. 자본주의의 진정한 ‘주인’은 자본가다. 정치권력도 이들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막강한 재벌들은 어떤 정치권력을 원할까? 미국 같은 정치 형태가 아닐까? 미국 같은 보수 세력이 지배하는 나라는 어떤가? 기본적인 사회복지가 되어있지 않아, 권총 난사 같은 흉악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흑인 등 약자들은 대학보다 감옥에 더 많이 간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 수는 없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진보의 깃발을 세워야 할 때다. 지금까지 진보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보수가 되고, 그 자리를 기층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세력이 차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적어도 유럽처럼 보수와 진보의 양 날개로 날아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가 확인해 준 일반민주주의의 장은 이런 공간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었다. 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건 진보 세력의 책무이다. 언제나 진리는 맨 밑바닥에서 솟아오른다. 이번 선거에서 기적을 일으킨 푸른 싹처럼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기대를 건다.  
7 나는 전쟁 날까 너무나 두렵다/고석근
관리자
2068 2010-06-07
나는 전쟁 날까 너무나 두렵다 ‘전쟁이 두렵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에겐 가까운 사람 중에 군대 간 사람이 없나? 군대에 갔어도 전쟁이 일어나도 안전한 곳에 있는가? 아니면 가까운 사람이 전쟁 통에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그들은 ‘애국심’이 투철한 건가? 그것도 아니면 죽음에 무심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일까? 이 모든 것도 아니면 타나토스(죽음의 본능)에 깊이 취해 버린 사람들일까? 내 두 아들은 지금 군대에 가 있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놓으면 온 몸의 감각기관들이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나면 두 귀가 쫑긋해지며 화들짝 놀란다. ‘천안함 사건’ 때는 가슴이 항상 콩닥거리며 온 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아마 군대에 자식을 보낸 모든 부모들은 내 심정과 같으리라. 이런 부모 마음으로 전쟁 운운 할 수 있을까? 정말 이런 부모 마음이 아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들들에 대한 기억들은 너무나 생생하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였다. 나는 2층 내 방에서 대문 앞에 서서 어린이집 선생님을 기다리는 큰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두 여자 아이가 큰 아이에게 다가왔다. 다가오더니 한 여자 아이가 큰 아이의 가슴을 쾅 쳤다. 나는 어이없는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런데 또 다른 여자 아이가 또 큰 아이의 가슴을 쾅 쳤다. 큰 아이는 “안 아프다.”고 말하고는 그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자 아이들은 나를 보더니 재빨리 가던 길을 갔다. 나는 순간 큰 아이를 도와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씩 웃어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자주 떠올린다. ‘여자 아이들에게 큰 소리라도 쳤어야 하나?’ 큰 아이가 받았을 상처를 내가 제대로 어루만져 주었을까?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냥 씩 웃어준 게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하는 것! 큰 아이는 나를 닮아 마음이 너무나 여렸다. 여린 마음으로 이 정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혼자 터득하기만을 빌었다. 어린이집에서도 힘겨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힘겨운 상황을 돌파해 낸 건 그의 그림 재주였다. 큰 아이는 아이들 얼굴 그림을 그려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고 했다. 그 후 큰 아이는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아, 큰 아이가 해냈구나!’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 뒤 큰 아이는 군대에 가서도 이 방법으로 어려운 신병 생활을 견뎌냈다. 고참들에게 초상화를 그려 주었더니 다들 고마워하더라고 했다. 앞으로도 큰 아이는 그림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작은 아이는 큰 아이와 달리 외향적이고 쾌활했다. 사회 적응력이 빨랐다. 그래서 그 기질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랐다. 가끔 얼굴에 상처를 내고 오지만 큰 탈은 없었다. 두 아이 모두 학교 다니는 동안 학교 선생님들과 식사 한번 하지 않았다. 나는 교직에 있어 봤기에 안다. 교사는 한번이라도 학교에 찾아온 학부모 자식들에게 어떤 형태든지 특별대우를 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특별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것이 부당한 대우로 이어질지 모르나 그것마저 아이들이 헤쳐 나가기를 바랐다. 그렇게 기른 아이들이 이제 대학생이 되고 군대에 갔다. 나는 우리나라의 군대 제도를 찬성하지 않으나 남들처럼 하기를 바랐기에 아이들이 군대에 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았다. 군대를 빼거나 좋은 보직에 앉히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 땅에 태어났기에 이 땅의 모든 것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요즘 전쟁 운운 하는 소리들이 들린다. 큰 아이는 곧 제대하지만 작은 아이는 이제 막 전방으로 배치되었다. 작은 아이가 훈련소에 간 며칠 후 옷, 운동화 등이 집으로 부쳐왔다. 박스를 보니 왈칵 눈물이 나왔다. ‘아, 나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전쟁 운운 하는 이 시대에 아이를 전방으로 보내다니? 살면서 백 하나 만들지 않고 살아온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작은 아이를 생각하며 한참 동안 울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나 작은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자식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아빠가 제대로 된 아빠인가? 어제 작은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나 이제 훈련 끝났어.” 일부러 큰 목소리로 얘기하며 속으로 울었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저 아이에게 죄 지으면 안 되는데...... .’ 나와 같은 심정인 부모들이 이 땅엔 너무나 많을 것이다. 아,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죄 짓지 않게 해 주소서! 편집자: 고석근 편집고문의 글은 리얼리스트100에 게재했던 글을 매 주 다시 게재합니다.  
6 황량한 고비 사막을 가는 낙타 한 마리는 문수스님/박희용
관리자
2126 2010-06-04
황량한 고비 사막을 가는 낙타 한 마리는 문수스님 몽골, 쓰나미 만큼 무서운 ‘조드’에 초토화. 계곡마다 악취 나는 가축 시체 더미, 수십 년 만의 혹한에 가축 5분의 1 몰사, 820만 두의 소, 양 염소. 20여 년 전 시장 경제로 전환, 가축 수 4200만 마리로 2배 이상 급증, 엄청난 식성으로 물과 다른 식물들을 먹어치워, 토양을 지탱해 사막화를 막아주는 식물들의 뿌리까지 없애버려. 2010년 6월 1일자 언론에서 ‘조드’란 말을 처음 들었다. 그러잖아도 지난 4월쯤에 이동순 시집 『발견의 기쁨』을 읽고,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황량한 고비 사막과 끝없는 초원이 펼쳐진 지평선에 사는 몽골 사람들과 가축들의 삶의 모습을 생각하며 애잔했는데, 820만 두나 되는 가축들이 5월 혹한으로 몰살했단다.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쓰나미 만큼 무서운’이라는 말을 썼지만 ‘쓰나미 보다 훨씬 무서운’이란 말을 써야만 하지 않을까. ‘조드’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면 ‘몰사’는 결과이다. 비참한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직접적인 원인인 ‘조드’에게 물을 수 있지만 그것은 덤터기일수도 있다. 왜냐하면 혹한이든 혹서든 자연 현상은 자연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외려, 기사에 있듯 ‘시장 경제’가 몰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 경제’란 말이 갖는 빛과 어둠의 간격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다면, 몽골에서 벌어진 참혹한 ‘몰사’가 지구 위에 붙어사는 생물들에게 언제 어디에서 누구들에게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리처드 도킨스의 『조상 이야기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에서 제시된 대로, 약 40억 년 전 ‘진정세균’에서부터 시작 된 생명 계통사의 끝인 2010년 6월 초 현재를 살고 있는 영장류들, 그 중에서 가장 진화가 발달한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인 우리 인간들에게 그 불벼락이 떨어질 확률이 가장 높다고 누구나 말한다. 왜 진화가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우리 인간들이 그 불벼락을 맞아야 하는지는 이제 엔간한 사람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몰사’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인간이 갖는 상식 한 구석엔 맹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인간의 자손이여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한대로 이제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되어 한껏 문명을 발전시키며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지구에 사는 인간 모두가 갖는 욕망의 색깔과 냄새, 먹고 마시고 싸고 토하는 모습은 동일하다. 그러면서도 대중들은 더 호사하기 위하여 서로 시샘하고 경쟁한다. 많이 배우거나 권위가 높아 고귀한 사람들 -엘리트들은, 대중이란 항상 평범하며 추하고 탐욕스럽기 때문에 가르침을 베풀어 교도할 대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인간의 추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고귀하다고 여기는 존재인 내 속에 똬리 틀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게 바로 지식인 -엘리트들의 맹점이다. 지구의 삼라만상은 얼마나 조용한가. 나무는 나무대로 풀은 풀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새는 새대로 저마다의 영역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태양이 멀리서 비춰주는 가운데 삼라만상의 모체인 지구가 저절로 돌아가 바람이 일고 구름이 일고 비가 내려 길게 흘러가며 뭇 생명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날이 갈수록 저절로 돌고 도는 자연의 섭리가 헝클어지는 듯 하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종의 번성이 정도를 넘어서일까 아니면 인간에 내장된 폭력성이 발호하기 때문일까. 지구가 몸살을 앓으며 내뿜는 신음소리와 상처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가까이에선 평은강과 낙동강이 내상을 당하며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장 경제의 번성과 인간의 호사를 위한다며, 5년 동안이란 한시적 권력을 가진 엘리트들이 자연이 내리는 비를 담아 흐르는 수만 년 물길을 막고 끊어대려 하니 어찌 조국의 산하가 아파하지 않을 것인가. 그 속에 담겨 사는 수중 생물들이 불안하지 않을 것인가. 그 유역에 사는 평범한 백성들의 삶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엘리트들이 갖는 맹점을 뚫어주기 위해서일까 몽골의 ‘조드’로 몰사 당한 가축들을 애잔해 해서일까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에 사는 수중 생명들의 의지를 대변해서일까 며칠 전에 군위 지보사의 문수스님이 소신공양을 올렸다. 황량한 고비 사막을 가는 낙타 한 마리는 문수스님, 그 다음에 펼쳐지는 초원은 무수한 생명들의 터전, ‘시장 경제’와 ‘인간의 탐욕’을 잘 조절하는 엘리트들은 북두칠성.  
5 좋은 유권자 되기/권석창
관리자
1970 2010-05-31
좋은 유권자 되기 권석창(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6월 2일, 지역단체장과 지자체 의원, 정당의 비례 대표, 그리고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뽑는 선거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후보자들은 늘 친애하는 유권자, 혹은 존경하는 유권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선 되면 친애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친애하는 유권자들은 섭섭해져서 괜히 표를 주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 똑같은 투표를 계속합니다. 이런 유권자 좋은 유권자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의 선거 풍토는 오랜 세월 지역 갈등 양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천만 받으면 부지깽이를 갖다 놓아도 당선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는 하나마나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선거, 하나마나가 아닙니다. 우리 대표를 우리 스스로 뽑는 이 한 표의 권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의 제단에 몸을 바쳤는가를 생각하면 나의 한 표는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민주주의에서의 선거는 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면 민주시민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찍을 만한 사람 없다고 선거 날 등산가면 엄한 사람 당선되어 속된 말로 개고생 합니다. 어떤 유권자는, 사람은 좋은데 당선될 것 같지 않아서 당선될 사람에게 투표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성씨가 같기 때문에 찍어준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동문이기 때문에 찍는다, 학벌이 좋아서 찍는다, 똑똑해서 찍는다, 인물이 좋아서 찍는다, 불쌍해서 찍는다. 공평하게 다 찍어주겠다, 합니다. 선거 때마다 들을 수 있는 유권자의 소리입니다. 이런 유권자 좋은 유권자 아닙니다. 흔히 공약을 보고 투표하라고 하는데 공약은 지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유권자 되기 그리 쉬운 거 아닙니다. 지금까지 친애하는 유권자들 투표하는 풍경을 보면 왕조시대의 관념을 버리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나보다 학벌이 좋은 사람, 나보다 경력이 화려한 사람,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거 아직 왕조 시대의 생각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 뽑으면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와 같은 사람 위해 일합니다. 우리 한두 번 당한 거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어떤 자리에 적합한 인물일까를 생각하지 맙시다. 그건 대통령이 장관 뽑을 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유권자이니까 유권자로서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럼 누구를 뽑아야 할까요? 당연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생각이 정책에 반영될 것입니다.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선 걱정은 후보자들이 하는 것이고 유권자는 내 생각을 표로 나타내면 그만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유권자가 많으면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것입니다. 내가 찍은 후보가 낙선한다고 해도 나의 표는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민심이 되어 좋은 세상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찍을 만한 사람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거짓말 하지 않을 사람, 공약 잘 지킬 사람, 착한 사람이라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착한 사람이 대접 받는 풍속이라도 만들 게 아닙니까? 누가 착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까요? 그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 보면 됩니다.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고스럽지만 그의 이력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 정도 수고 없이 좋은 유권자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찍을 사람이 없으면 정당 투표라도 해야 합니다. 권석창 kweon51@chollian.net 시집<눈물 반응><쥐뿔의 노래>  
4 아, 광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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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2010-05-25
아, 광주여! 어느 소년 망령의 노래 문병란 저는 그냥 죽었어요 이유도 모르고 어느 날 갑자기 죽었어요 저 만큼 친구들이 보이고 그리고 우리 엄마가 우시네요 자꾸만 자꾸만 우시네요 1979년 10월 27일 아침, 어렴풋이 잠이 깬 내 귀에 청천벽력 같은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박정희가 죽었다는 거였다! 아,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좋은 세상이 오겠구나! 나는 하늘 위에 검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말끔히 걷히리라는 예감에 온 몸이 마구 떨리는 환희를 느꼈다. 내 학창 시절은 박정희와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마감했다. 그의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나는 그 안에서 숨 쉬기도 버거웠다. 나는 꿈속에서 박정희가 죽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가 죽은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 했다. 캠퍼스는 출렁거렸고, 감히 다시는 독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유령처럼 우리들의 입에 오리내리면서 우리들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캠퍼스는 얼어붙어 갔고 나는 다음 해 5월에 교생실습을 나갔다. 독재자만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의 뒤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버티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의 거대한 실체가 우리 앞에 드러났을 때 우리들의 맨몸뚱이가 고스란히 보였다. 우리들의 이 맨몸뚱이로 헤쳐 나가야 할 철조망의 숲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생실습 간 모 여고에서 수업시간에 내가 무심결에 “김재규 장군이...... .” 하는데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왜 김재규에게 장군이라고 하세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 사람 별 단 장군 아냐?” 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등줄기에선 진땀이 흘러내렸다. 저 남녘 광주에서는 이따금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콩알만 해진 가슴으로 간신히 견디고 있는 사이에 ‘광주의 불꽃’은 활활 타올랐다가 꺼졌다. 돌아온 캠퍼스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그 뒤 나는 평범한 일상에 젖어갔다. 나는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귀는 세상을 향해 크게 열려 있었다. ‘광주’는 내 귀에 세상소리를 들려주었다. 한 소년이 이유도 모르고 죽었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광주’는 우리에게 세상의 얘기를 다 들려주었다. 거대한 압제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는 다 듣게 되었다. 그들이 해방구에서 만든 공동체는 인간이 얼마나 고매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전쟁터에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데, 이 태평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못 만들겠는가? 사람들은 곳곳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해방구는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사람들이 잘나 보이던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고상한지도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거대한 역사의 강물은 ‘광주’를 시원으로 한다. 모든 것이 확연하다. 강물이 흘러가는 길이 선명히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한 점 의혹도 없이 이 강물에 몸을 던진다.  
3 '전교조'를 위하여/고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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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 2010-05-06
‘전교조’를 위하여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자기야, 나 인터넷에 떴어.” 한다. “응?” 내가 의아스럽게 쳐다보자 한 친구가 어느 요리 사이트에서 자기 이름을 봤단다. 전교조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더란다. “영광이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지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치욕감에 온 몸이 휩싸였다. 남의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올려도 되는 건가? 그 이름들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을까?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마구 짓밟혀지는 이름들. 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가? 우리 사회의 야만성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다. 벌써 20여 년 전이다. 나도 교직에 있을 때 전교조 활동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새마을 어머니 회원들이었다. 그분들과 함께 다방에서 만났다. ‘선생님이 전교조하시다면서요?’ ‘네, 그런데요?’ 전교조에 대해 교육청에서 빨갱이라는 식으로 교육을 했단다. 나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듣고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 이 말씀만 드릴게요. 지금 이대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 아이들이 효자가 될까요? 불효자가 될까요?” 다들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어 말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다들 불효자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내몰려 옆 친구도 생각할 수 없어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부모님을 어떻게 볼까요? 힘없고 늙으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할까요?” 나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누르며 그 자리를 떠났었다. 지금 그 부모님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그리고 그때의 내 반 아이들은? 성인들 강의를 다니며 그때의 부모님들 연배의 수강생들도 만나고 그때의 학생들 또래의 수강생들도 만난다. 수강생들을 보면 답답해 한숨이 나온다. 명문대학을 나와서도 이 세상을 보는 눈들이 없다. 나는 강의 시간에 가끔 얘기한다. “저는 서울대를 나온 사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울대마저도 제대로 된 커리큘럼이 안 되어 있거든요.” 강의하다 보면 서울대를 나온 수강생도 있고 대학원 나온 수강생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 내가 강의할 수 있는 자그마한 실력도 학교 밖에서 공부한 것들이지 정말이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거의 없다. 나는 전교조 활동을 하며 내가 새로 태어나는 체험을 했다. 전교조를 하기 전에는 출근할 때면 교문을 들어서며 내가 왠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가 자꾸만 앞으로 구부려졌다. 결제 맡아야 할 서류들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결제 해주실 교장 선생님은 어디 계실까 그 생각부터 났다. 아이들이 결석을 해도 교감 선생님에게 한 소리를 들을 걱정을 했지 학생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런 내가 전교조 활동을 하며 달라졌다. 교장, 교감 선생님, 장학사는 겁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석한 아이를 내내 생각했다. ‘무슨 일일까?’ 아침 조회 시간에 표정이 어두웠던 아이들도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전교조 명단 공개가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명단 공개를 주도했던 국회의원이 불복한다는 선언을 했다. 그를 다른 여당 국회의원들이 동조하고 나섰단다. 아, 이래서 전교조가 있어야 한다! 그 국회의원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들이 받은 학교교육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마저도 사람의 소중함을 이다지도 모르는 게 우리 교육의 실상이다!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주여, 이들은 자신들의 죄가 뭔지 모르고 있나이다.’ 나는 전교조를 반대하고 불순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이 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제발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보시고 판단해 보시라고.  
2 사람은 똑같다/고석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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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8 2010-04-11
사람은 똑같다 성철 큰스님에 대한 일화가 많다. 그 중에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큰스님이 많은 스님 앞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데 두 스님이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단다. 큰 스님께서 대노하시면서 그 두 스님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곤 두 스님의 뺨을 갈겼단다. 그리곤 다시 설법을 계속하다가 다시 그 두 스님을 나오라고 하시곤 또 두 스님의 뺨을 갈겼단다. “아니? 조용히 있었는데 왜 또 때리세요?” 하니까. “아직 분이 안 풀려서.” 했단다. 나는 이 일화가 가장 좋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정말 이런 모습이 우리들 ‘인간’ 아닌가? ‘큰스님’은 달라야 한다고? 그건 착각이다. 모든 인간은 똑 같다. ‘큰스님’도 ‘인간’이다. 성자와 범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위인, 영웅, 성자’ 하면 근엄하게 앉아 있는 초상화를 연상한다. 얼마나 고귀한 모습인가? 하지만 일생 동안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했겠는가? 나머지 인생은 거의 쪼잔하고 후줄근하게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뭔가 다를 거라는 것은 착각이다. 우상숭배에 빠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우리 자신한테 솔직해 보자. 우리는 사실 얼마나 초라한가? 그렇다! 모든 다른 인간도 그렇다! 왜 자신은 초라하게 보고 남은 위대하게 보는가? 자신에게 솔직할 때만이 자신(솔직하게 본)을 사랑할 때만이 우리 눈에 진실이 보인다. 우리가 기분 좋은 것은 남도 기분 좋고 자신이 기분 나쁜 것은 남도 기분 나쁘다. 우리가 뛰어나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우리와 종이 한 장 차이니까. 나는 30대 후반에 문학 공부를 했다. 그때 문학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고매한 인격, 고상한 사상, 뭐 이런 것들을 연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럴 수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들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들도 똑 같은 인간이었다. 종이 한 장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고뇌하고 있었다. 고뇌하며 자신을 뛰어넘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때 운동단체에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들을 많이 접했다. 이름만 대면 다들 존경해 마지않는 어느 운동권 인사가 우리 단체 짱이었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어떤 인물일까? 그런데 가까이서 본 그는 전혀 흔히들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회의 시간에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어리석긴!’ 하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곤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건 독재’라며 혼자서 두어 시간을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 활동가는 ‘언제 짓밟혀봐야 돼.’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를 술자리서 보며, 집에서 보며, 나는 그의 뛰어난 점도 동시에 보았다. 항상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려는 자세. 자신을 넘어서 남에게 다가가려는 마음. 이런 것들을 나는 보았다. 나는 10 여 년째 성인 대상의 강의를 해 오며 많은 걸 느꼈다. 가장 힘든 건 ‘나를 존경한다는 수강생’을 만날 때였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나를 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네! 나를 존경하면 뭔가 나에게 좋겠지 하고 막연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나를 미워했다. 존경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을 보니 그게 아닌 것이었다. 아니면 그냥 지나면 좋겠는데 그 분풀이를 꼭 내게 했다. 자신이 사람 잘 못본 것을 왜 내게 화풀이를 하나? 나는 존경이라는 허상의 끝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사람은 똑같다. ‘존경’이라는 허울을 씌워 사람을 사람 아니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존경한다. 죽었으니까. 말이 없으니까. 아니 움직이지 못하니까. 밥도 못 먹고 대소변도 안하니까. 마음껏 존경한다. 존경해서 무슨 이득을 취한다. 진짜 존경한다고? 그건 아니다. 삼라만상을 보면 각자 자신대로 살지 누구를 존경하거나 우러러 받들지 않는다. 각자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사람만이 허상 속에 산다. 자신이 텅텅 빈 사람은 남에게서 그것을 채우려 한다. 남을 존경한다면서 남을 이용하려 든다. 사람은 똑같다. 단지 종이 한 장 차이다. 종이 한 장 차이.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차이를 니체의 초인으로 해석해 본다. 끊임없이 자신을 가꿔가는 것. 다른 사람처럼 허점투성이고 쫀쫀하지만 자신을 넘어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 이게 초인이다. 그렇다고 인간을 넘어서진 못한다. 인간의 한계를 인간이 어떻게 넘어서나? 넘어서면 인간이 아니지. 사실 진리는 간단한 것 같다. 저 삼라만상처럼 각자 자신 대로 살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확연히 잘 보인다. 그런데 인간은 살면서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콤플렉스가 끼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제대로 안 보인다. 자신의 눈이 문제인데 남을 탓한다. 저 바람에 살랑이는 풀잎처럼 생각하면 세상이 훤히 보일 것이다. 만일 풀잎이 큰 나무를 존경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끔찍하지 않는가? 그런 엽기도 없을 것이다.  
1 어머니 살해/고석근 고창근 1733 2010-03-02
어머니 살해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어머니 살해’가 요 몇 달 사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돈이 필요해서라거나, 게임에 중독되어 사리분별을 못해 저질렀다는 기사의 해설이 뒤따랐다. 어머니...... 속으로 말없이 불러 봐도 가슴이 에이는 이름. 그런데 어찌해서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자식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어머니에 대한 가슴 저린 기억들이 많다. 지금도 자주 꾸는 꿈 중에 어떤 마을을 헤매는 꿈이 있다. 이집 저집 다녀 봐도 다 빈집이다. 분명히 기억에 선명한 집들인데, 아무도 없다. 빈방들을 바라보다 잠을 깬다. 잠을 깨서도 그 마을이 선명하다. 나는 이 마을이 내가 태어난 마을이라는 걸 안다. 내가 세 살 때까지 산 집.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지었다는 초가집,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골목이 되어 있다. 그 마을에 가서 그 빈터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이 가슴 아리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너무 가난해서 아침 일찍 나를 이웃집에 맡겨두고 일을 나가셨단다. 아마 나는 혼자 집에 가 보았을 것이다. ‘엄마가 있을까’ 몇 번을 가보아도 빈집, 그 아득한 기억이 꿈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그 아픔은 내 일생의 열쇠가 되어있다. 빈집, 이사, 이방인, 이런 단어들이 내 머리위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눈이 언제나 무엇을 갈구하는 눈빛이라고 한다. 세 살 때 그 마을을 떠나 소읍 변두리로 이사를 왔다. 여기서 나는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어머니는 항상 아프셨다. 학교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들 두르고 이불을 쓰고 누워계셨다. 나는 집에 올 때마다 겁이 났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학교에서 주는 급식빵을 반만 먹고 반을 가져와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얀 무명저고리와 검은 무명치마를 입으신 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외지에 가서 한 달에 한 번씩 다녀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골목에 서 계셨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머니께 효도를 하려 했을 때는 어머니는 이미 늙으셨다. 항상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왜소한 모습이 내 가슴 깊숙이 박혀 있다. 누구에게나 나만큼의 아픈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가난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항상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힘겨운 어머니를 살해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아이와 한 몸이다. 한 몸이기에 혼자 둘 수 없어 함께 자살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살해한다는 게 어머니를 살해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존재다. 인간에게 어떤 본성과 감성이 있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신화나 역사, 소설에서 보면 어머니 살해 사건이 많다. 아마 실제로 일어났기에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데 문명화된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마음이 우리 마음 깊숙이 남아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어머니 품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옛이야기에 보면 아이들은 부모 품을 떠나 영웅이 된다. 독립된 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어머니 품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 떠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고 항상 어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있다. 다 큰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해 그 시신을 방에 두고 아이 노릇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를 본 적이 있다. 그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단지 그 마음이 큰가 작은가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아들의 깊은 마음속에는 어머니와 분리되지 못하는 ‘아이 마음’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죽여 스스로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그런 살인마가 되게 했을 수도 있고, 세상에 나가기가 너무 두려워 어머니 곁에 있고 싶어(어머니는 세상에 나가기를 독려하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독립해서 살기 힘든 구조다. 그 힘든 구조 속에서 평소에 독립심을 기르지 못한 나약한 인간들은 이런 살인마가 되어 자신의 돌파구를 찾았을 것이다. 이런 나약한 인간에게 강건한 이성을 기대해선 안 된다. 이성의 빛은 감성을 세심하게 가꾼 사람에게 내리비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 인간을 독립된 존재로 키우지 못하면 이런 비인간적인 살인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어머니 살인의 추억은 너무나 깊은 우리 마음의 근원적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다. 이성을 깨워 이성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으면 비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슴 저리게 그립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아들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 간절한 사랑은 극단적인 미움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