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웹진]문학마실~...115호...
   2020년 01월

  1. 내일을 여는 창
  2. 소설
  3. 수필
  4. 권서각의 변방서사
  5. 이달의 작가
  6. 동인지를 엿보다
  7. 작품집에 스며들다
  8. 시와 거닐다
  9. 사진속으로
  • 오늘방문자 : 
    186
  • 어제방문자 : 
    622
  • 전체방문자 : 
    502,155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5 좋은 유권자 되기/권석창
관리자
1941 2010-05-31
좋은 유권자 되기 권석창(한국작가회의 경북지회장) 6월 2일, 지역단체장과 지자체 의원, 정당의 비례 대표, 그리고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뽑는 선거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후보자들은 늘 친애하는 유권자, 혹은 존경하는 유권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선 되면 친애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친애하는 유권자들은 섭섭해져서 괜히 표를 주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선거 때 똑같은 투표를 계속합니다. 이런 유권자 좋은 유권자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의 선거 풍토는 오랜 세월 지역 갈등 양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천만 받으면 부지깽이를 갖다 놓아도 당선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는 하나마나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선거, 하나마나가 아닙니다. 우리 대표를 우리 스스로 뽑는 이 한 표의 권리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민주의 제단에 몸을 바쳤는가를 생각하면 나의 한 표는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민주주의에서의 선거는 유권자가 정치에 참여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권리를 포기하면 민주시민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찍을 만한 사람 없다고 선거 날 등산가면 엄한 사람 당선되어 속된 말로 개고생 합니다. 어떤 유권자는, 사람은 좋은데 당선될 것 같지 않아서 당선될 사람에게 투표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성씨가 같기 때문에 찍어준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동문이기 때문에 찍는다, 학벌이 좋아서 찍는다, 똑똑해서 찍는다, 인물이 좋아서 찍는다, 불쌍해서 찍는다. 공평하게 다 찍어주겠다, 합니다. 선거 때마다 들을 수 있는 유권자의 소리입니다. 이런 유권자 좋은 유권자 아닙니다. 흔히 공약을 보고 투표하라고 하는데 공약은 지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유권자 되기 그리 쉬운 거 아닙니다. 지금까지 친애하는 유권자들 투표하는 풍경을 보면 왕조시대의 관념을 버리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나보다 학벌이 좋은 사람, 나보다 경력이 화려한 사람,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에게 표를 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거 아직 왕조 시대의 생각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 뽑으면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와 같은 사람 위해 일합니다. 우리 한두 번 당한 거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어떤 자리에 적합한 인물일까를 생각하지 맙시다. 그건 대통령이 장관 뽑을 때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유권자이니까 유권자로서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그럼 누구를 뽑아야 할까요? 당연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생각이 정책에 반영될 것입니다.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선 걱정은 후보자들이 하는 것이고 유권자는 내 생각을 표로 나타내면 그만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유권자가 많으면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것입니다. 내가 찍은 후보가 낙선한다고 해도 나의 표는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민심이 되어 좋은 세상으로 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찍을 만한 사람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거짓말 하지 않을 사람, 공약 잘 지킬 사람, 착한 사람이라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착한 사람이 대접 받는 풍속이라도 만들 게 아닙니까? 누가 착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까요? 그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 보면 됩니다. 사람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고스럽지만 그의 이력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 정도 수고 없이 좋은 유권자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찍을 사람이 없으면 정당 투표라도 해야 합니다. 권석창 kweon51@chollian.net 시집<눈물 반응><쥐뿔의 노래>  
4 아, 광주여!
관리자
1866 2010-05-25
아, 광주여! 어느 소년 망령의 노래 문병란 저는 그냥 죽었어요 이유도 모르고 어느 날 갑자기 죽었어요 저 만큼 친구들이 보이고 그리고 우리 엄마가 우시네요 자꾸만 자꾸만 우시네요 1979년 10월 27일 아침, 어렴풋이 잠이 깬 내 귀에 청천벽력 같은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박정희가 죽었다는 거였다! 아,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좋은 세상이 오겠구나! 나는 하늘 위에 검게 드리워진 먹구름이 말끔히 걷히리라는 예감에 온 몸이 마구 떨리는 환희를 느꼈다. 내 학창 시절은 박정희와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마감했다. 그의 그림자는 갈수록 짙어지고 나는 그 안에서 숨 쉬기도 버거웠다. 나는 꿈속에서 박정희가 죽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정말 그가 죽은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 했다. 캠퍼스는 출렁거렸고, 감히 다시는 독재가 발을 붙이지 못할 듯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유령처럼 우리들의 입에 오리내리면서 우리들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캠퍼스는 얼어붙어 갔고 나는 다음 해 5월에 교생실습을 나갔다. 독재자만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의 뒤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버티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국의 거대한 실체가 우리 앞에 드러났을 때 우리들의 맨몸뚱이가 고스란히 보였다. 우리들의 이 맨몸뚱이로 헤쳐 나가야 할 철조망의 숲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교생실습 간 모 여고에서 수업시간에 내가 무심결에 “김재규 장군이...... .” 하는데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왜 김재규에게 장군이라고 하세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 사람 별 단 장군 아냐?” 하고 어물쩍 넘어갔다. 하지만 등줄기에선 진땀이 흘러내렸다. 저 남녘 광주에서는 이따금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콩알만 해진 가슴으로 간신히 견디고 있는 사이에 ‘광주의 불꽃’은 활활 타올랐다가 꺼졌다. 돌아온 캠퍼스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져 있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그 뒤 나는 평범한 일상에 젖어갔다. 나는 자꾸만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귀는 세상을 향해 크게 열려 있었다. ‘광주’는 내 귀에 세상소리를 들려주었다. 한 소년이 이유도 모르고 죽었지만,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광주’는 우리에게 세상의 얘기를 다 들려주었다. 거대한 압제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는 다 듣게 되었다. 그들이 해방구에서 만든 공동체는 인간이 얼마나 고매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절망스러워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전쟁터에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데, 이 태평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못 만들겠는가? 사람들은 곳곳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해방구는 우리가 하찮게 여겼던 사람들이 잘나 보이던 사람들보다 얼마나 더 고상한지도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거대한 역사의 강물은 ‘광주’를 시원으로 한다. 모든 것이 확연하다. 강물이 흘러가는 길이 선명히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한 점 의혹도 없이 이 강물에 몸을 던진다.  
3 '전교조'를 위하여/고석근
관리자
1717 2010-05-06
‘전교조’를 위하여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자기야, 나 인터넷에 떴어.” 한다. “응?” 내가 의아스럽게 쳐다보자 한 친구가 어느 요리 사이트에서 자기 이름을 봤단다. 전교조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더란다. “영광이네.”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지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치욕감에 온 몸이 휩싸였다. 남의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올려도 되는 건가? 그 이름들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을까?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마구 짓밟혀지는 이름들. 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가? 우리 사회의 야만성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건이다. 벌써 20여 년 전이다. 나도 교직에 있을 때 전교조 활동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학부모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새마을 어머니 회원들이었다. 그분들과 함께 다방에서 만났다. ‘선생님이 전교조하시다면서요?’ ‘네, 그런데요?’ 전교조에 대해 교육청에서 빨갱이라는 식으로 교육을 했단다. 나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말없이 듣고 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전 이 말씀만 드릴게요. 지금 이대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면 아이들이 효자가 될까요? 불효자가 될까요?” 다들 가만히 있었다. 나는 이어 말했다. “저는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다들 불효자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입시위주의 교육에 내몰려 옆 친구도 생각할 수 없어요.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부모님을 어떻게 볼까요? 힘없고 늙으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할까요?” 나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누르며 그 자리를 떠났었다. 지금 그 부모님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까? 그리고 그때의 내 반 아이들은? 성인들 강의를 다니며 그때의 부모님들 연배의 수강생들도 만나고 그때의 학생들 또래의 수강생들도 만난다. 수강생들을 보면 답답해 한숨이 나온다. 명문대학을 나와서도 이 세상을 보는 눈들이 없다. 나는 강의 시간에 가끔 얘기한다. “저는 서울대를 나온 사람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울대마저도 제대로 된 커리큘럼이 안 되어 있거든요.” 강의하다 보면 서울대를 나온 수강생도 있고 대학원 나온 수강생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는가? 내가 강의할 수 있는 자그마한 실력도 학교 밖에서 공부한 것들이지 정말이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거의 없다. 나는 전교조 활동을 하며 내가 새로 태어나는 체험을 했다. 전교조를 하기 전에는 출근할 때면 교문을 들어서며 내가 왠지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리가 자꾸만 앞으로 구부려졌다. 결제 맡아야 할 서류들이 눈앞에 어른거렸고, 결제 해주실 교장 선생님은 어디 계실까 그 생각부터 났다. 아이들이 결석을 해도 교감 선생님에게 한 소리를 들을 걱정을 했지 학생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런 내가 전교조 활동을 하며 달라졌다. 교장, 교감 선생님, 장학사는 겁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석한 아이를 내내 생각했다. ‘무슨 일일까?’ 아침 조회 시간에 표정이 어두웠던 아이들도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전교조 명단 공개가 불법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명단 공개를 주도했던 국회의원이 불복한다는 선언을 했다. 그를 다른 여당 국회의원들이 동조하고 나섰단다. 아, 이래서 전교조가 있어야 한다! 그 국회의원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그들이 받은 학교교육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마저도 사람의 소중함을 이다지도 모르는 게 우리 교육의 실상이다!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주여, 이들은 자신들의 죄가 뭔지 모르고 있나이다.’ 나는 전교조를 반대하고 불순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이 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제발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보시고 판단해 보시라고.  
2 사람은 똑같다/고석근 [1]
관리자
2041 2010-04-11
사람은 똑같다 성철 큰스님에 대한 일화가 많다. 그 중에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큰스님이 많은 스님 앞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데 두 스님이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단다. 큰 스님께서 대노하시면서 그 두 스님을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곤 두 스님의 뺨을 갈겼단다. 그리곤 다시 설법을 계속하다가 다시 그 두 스님을 나오라고 하시곤 또 두 스님의 뺨을 갈겼단다. “아니? 조용히 있었는데 왜 또 때리세요?” 하니까. “아직 분이 안 풀려서.” 했단다. 나는 이 일화가 가장 좋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정말 이런 모습이 우리들 ‘인간’ 아닌가? ‘큰스님’은 달라야 한다고? 그건 착각이다. 모든 인간은 똑 같다. ‘큰스님’도 ‘인간’이다. 성자와 범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위인, 영웅, 성자’ 하면 근엄하게 앉아 있는 초상화를 연상한다. 얼마나 고귀한 모습인가? 하지만 일생 동안 그런 모습을 몇 번이나 했겠는가? 나머지 인생은 거의 쪼잔하고 후줄근하게 보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뭔가 다를 거라는 것은 착각이다. 우상숭배에 빠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우리 자신한테 솔직해 보자. 우리는 사실 얼마나 초라한가? 그렇다! 모든 다른 인간도 그렇다! 왜 자신은 초라하게 보고 남은 위대하게 보는가? 자신에게 솔직할 때만이 자신(솔직하게 본)을 사랑할 때만이 우리 눈에 진실이 보인다. 우리가 기분 좋은 것은 남도 기분 좋고 자신이 기분 나쁜 것은 남도 기분 나쁘다. 우리가 뛰어나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우리와 종이 한 장 차이니까. 나는 30대 후반에 문학 공부를 했다. 그때 문학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리라고 생각했다. 고매한 인격, 고상한 사상, 뭐 이런 것들을 연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아니? 이럴 수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들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그들도 똑 같은 인간이었다. 종이 한 장 차이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고뇌하고 있었다. 고뇌하며 자신을 뛰어넘으려 애쓰고 있었다. 이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때 운동단체에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들을 많이 접했다. 이름만 대면 다들 존경해 마지않는 어느 운동권 인사가 우리 단체 짱이었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다. 어떤 인물일까? 그런데 가까이서 본 그는 전혀 흔히들 알고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회의 시간에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어리석긴!’ 하며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곤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건 독재’라며 혼자서 두어 시간을 말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 활동가는 ‘언제 짓밟혀봐야 돼.’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를 술자리서 보며, 집에서 보며, 나는 그의 뛰어난 점도 동시에 보았다. 항상 현재의 자신을 넘어서려는 자세. 자신을 넘어서 남에게 다가가려는 마음. 이런 것들을 나는 보았다. 나는 10 여 년째 성인 대상의 강의를 해 오며 많은 걸 느꼈다. 가장 힘든 건 ‘나를 존경한다는 수강생’을 만날 때였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나를 다 존경하는 사람이 있네! 나를 존경하면 뭔가 나에게 좋겠지 하고 막연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나를 미워했다. 존경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을 보니 그게 아닌 것이었다. 아니면 그냥 지나면 좋겠는데 그 분풀이를 꼭 내게 했다. 자신이 사람 잘 못본 것을 왜 내게 화풀이를 하나? 나는 존경이라는 허상의 끝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사람은 똑같다. ‘존경’이라는 허울을 씌워 사람을 사람 아니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존경한다. 죽었으니까. 말이 없으니까. 아니 움직이지 못하니까. 밥도 못 먹고 대소변도 안하니까. 마음껏 존경한다. 존경해서 무슨 이득을 취한다. 진짜 존경한다고? 그건 아니다. 삼라만상을 보면 각자 자신대로 살지 누구를 존경하거나 우러러 받들지 않는다. 각자 똑같이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사람만이 허상 속에 산다. 자신이 텅텅 빈 사람은 남에게서 그것을 채우려 한다. 남을 존경한다면서 남을 이용하려 든다. 사람은 똑같다. 단지 종이 한 장 차이다. 종이 한 장 차이.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 차이를 니체의 초인으로 해석해 본다. 끊임없이 자신을 가꿔가는 것. 다른 사람처럼 허점투성이고 쫀쫀하지만 자신을 넘어서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 이게 초인이다. 그렇다고 인간을 넘어서진 못한다. 인간의 한계를 인간이 어떻게 넘어서나? 넘어서면 인간이 아니지. 사실 진리는 간단한 것 같다. 저 삼라만상처럼 각자 자신 대로 살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게 확연히 잘 보인다. 그런데 인간은 살면서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콤플렉스가 끼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제대로 안 보인다. 자신의 눈이 문제인데 남을 탓한다. 저 바람에 살랑이는 풀잎처럼 생각하면 세상이 훤히 보일 것이다. 만일 풀잎이 큰 나무를 존경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끔찍하지 않는가? 그런 엽기도 없을 것이다.  
1 어머니 살해/고석근 고창근 1717 2010-03-02
어머니 살해 입에 담기에도 끔찍한 ‘어머니 살해’가 요 몇 달 사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돈이 필요해서라거나, 게임에 중독되어 사리분별을 못해 저질렀다는 기사의 해설이 뒤따랐다. 어머니...... 속으로 말없이 불러 봐도 가슴이 에이는 이름. 그런데 어찌해서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자식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어머니에 대한 가슴 저린 기억들이 많다. 지금도 자주 꾸는 꿈 중에 어떤 마을을 헤매는 꿈이 있다. 이집 저집 다녀 봐도 다 빈집이다. 분명히 기억에 선명한 집들인데, 아무도 없다. 빈방들을 바라보다 잠을 깬다. 잠을 깨서도 그 마을이 선명하다. 나는 이 마을이 내가 태어난 마을이라는 걸 안다. 내가 세 살 때까지 산 집.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이 지었다는 초가집,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골목이 되어 있다. 그 마을에 가서 그 빈터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의 어린 시절이 가슴 아리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너무 가난해서 아침 일찍 나를 이웃집에 맡겨두고 일을 나가셨단다. 아마 나는 혼자 집에 가 보았을 것이다. ‘엄마가 있을까’ 몇 번을 가보아도 빈집, 그 아득한 기억이 꿈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이다. 그 아픔은 내 일생의 열쇠가 되어있다. 빈집, 이사, 이방인, 이런 단어들이 내 머리위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 눈이 언제나 무엇을 갈구하는 눈빛이라고 한다. 세 살 때 그 마을을 떠나 소읍 변두리로 이사를 왔다. 여기서 나는 중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어머니는 항상 아프셨다. 학교에 갈 때마다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들 두르고 이불을 쓰고 누워계셨다. 나는 집에 올 때마다 겁이 났다.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학교에서 주는 급식빵을 반만 먹고 반을 가져와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얀 무명저고리와 검은 무명치마를 입으신 어머니의 초췌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외지에 가서 한 달에 한 번씩 다녀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골목에 서 계셨다. 그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내가 어른이 되어 어머니께 효도를 하려 했을 때는 어머니는 이미 늙으셨다. 항상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왜소한 모습이 내 가슴 깊숙이 박혀 있다. 누구에게나 나만큼의 아픈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처럼 가난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항상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힘겨운 어머니를 살해한단 말인가? 어머니는 아이와 한 몸이다. 한 몸이기에 혼자 둘 수 없어 함께 자살하는 어머니들이 많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살해한다는 게 어머니를 살해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일들이 숱하게 일어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존재다. 인간에게 어떤 본성과 감성이 있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신화나 역사, 소설에서 보면 어머니 살해 사건이 많다. 아마 실제로 일어났기에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데 문명화된 지금까지 그런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마음이 우리 마음 깊숙이 남아 있기에 그렇지 않을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어머니 품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옛이야기에 보면 아이들은 부모 품을 떠나 영웅이 된다. 독립된 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어머니 품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 떠남이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고 항상 어머니 치마폭을 붙잡고 있다. 다 큰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해 그 시신을 방에 두고 아이 노릇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를 본 적이 있다. 그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단지 그 마음이 큰가 작은가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아들의 깊은 마음속에는 어머니와 분리되지 못하는 ‘아이 마음’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어머니를 죽여 스스로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그런 살인마가 되게 했을 수도 있고, 세상에 나가기가 너무 두려워 어머니 곁에 있고 싶어(어머니는 세상에 나가기를 독려하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독립해서 살기 힘든 구조다. 그 힘든 구조 속에서 평소에 독립심을 기르지 못한 나약한 인간들은 이런 살인마가 되어 자신의 돌파구를 찾았을 것이다. 이런 나약한 인간에게 강건한 이성을 기대해선 안 된다. 이성의 빛은 감성을 세심하게 가꾼 사람에게 내리비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한 인간을 독립된 존재로 키우지 못하면 이런 비인간적인 살인 사건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어머니 살인의 추억은 너무나 깊은 우리 마음의 근원적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다. 이성을 깨워 이성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으면 비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슴 저리게 그립다. 어머니를 살해하는 아들들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 간절한 사랑은 극단적인 미움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