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나 혼자 살고 있는 고독의 장소가 있다 그 곳은 말라붙은 당신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단 하나의 장소다(펄 벅)


이십억 광년의 고독
다나카와 슌타로

인류는 작은 공 위에서
자고 일어나고 그리고 일하며
때로는 화성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화성인은 작은 공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혹은 네리리 하고 키르르 하고 하라라 하고 있는지)
그러나 때때로 지구에 친구를 갖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다

만유인력이란
서로를 끌어당기는 고독의 힘이다

우주는 일그러져 있다
따라서 모두는 서로를 원한다

우주는 점점 팽창해간다
따라서 모두는 불안하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지난 수요일 밤 공부 모임에 퇴직한 남자분이 왔다.

‘아저씨’가 공부하러 오면 긴장이 된다.

세상 사람들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서는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오랜 가부장 문화와 군사 문화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퇴직자 분에게 자신을 소개하라고 하자 자신의 삶의 이력을 짧게 얘기하고 나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는 모 시인의 시까지 낭송했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해서인지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사시는 듯 했다.

한 평생 열심히 살아오다 일에서 물러난 남자의 마음은 어떨까?

퇴직한 후 한 순간에 무너지는 많은 남자들을 보면 은퇴자의 속마음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가장 무서운 게 ‘외로움’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외로움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날 것이다.

그런데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니?

(한 때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그 시인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시인은 외로움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고 말한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고 까지 하면서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고 한다.
물론 시적 수사라고 볼 수 있지만 ‘하느님’ 같은 초월적 존재나 ‘산 그림자’ 같은 무생물까지 외롭다고 하는 것에는 훌륭한 시가 갖는 미적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인은 외롭다.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자꾸만 인간을 그렇게 만든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외롭지 않았다.

자본주의 이후 형성된 인간의 특징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인간상이다.

그런데 이 시는 외로운 사람에게 외로움을 극복하게 하는 게 아니라 외로움 속에 주저앉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외로운 사람에게 일시적으로는 위안의 묘약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내 외로움을 넘어서야 한다.

외로움 속에 빠져들면 우리는 ‘피학증 환자(마조히즘)’가 된다.

자신을 학대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 사회의 현란한 밤풍경은 우리의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시는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를 ‘힐링’해 줄 뿐이다.

우리는 단호히 ‘힐링’을 거부해야 한다.

힐링해주는 예술(시)로부터 탈주해야 한다.

외로움에 ‘정면으로 직면(세상이 다 외롭다고 자위하지 말고)’하게 되면 우리 안에서 외로움을 넘어 혼자 무소의 뿔처럼 가게 하는 힘이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운 게 아니라 고독해져야 한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폴 틸리히)’인 것이다.

외로움에 젖지 않고 고독해지면 우리의 깊은 곳에서 ‘인류의 지혜’가 깨어난다.

한 인간의 무의식에는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깨친 지혜들이 깊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독해진 인간은 ‘작은 나’를 넘어서 ‘큰 나’로 나아간다.

외로움에 젖은 인간은 ‘작은 나’에 계속 머물러 자신을 점점 쪼그라들게 한다.

우리는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이렇게도 깊은 고독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우리 자신을 오롯이 맡겨야 한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이렇게 자신의 외로움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러면 우리의 깊은 무의식에서 ‘이십억 광년의 지혜’가 깨어난다.

외로움을 수동적으로 견디며 사는 세상에서는 폭력(남을 향해, 자신을 향해)이 난무한다.

그래서 퇴직한 그 남자의 깊은 외로움이 슬프다.

외로움의 병을 주고 힐링의 약을 주는 우리 사회는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는 ‘이십억 광년의 고독’을 받아들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혼자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남과 함께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