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들의 가르침

 

초등학교 동기회 모임에 오랜만에 참석했다. 어릴 때 모습은 간곳없고 영락없는 할매, 할배들이었다. 그들 눈에 나도 할배이리라. 어린 시절 이야기 끝에 운동회 날마다 교단에 칼을 꽂으며 행패를 부리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어린 우리의 눈에 그는 몹쓸 짓을 많이 하는 악인이었다. 후에 삼청교육대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무심코 “그 사람 아직 안 죽었어?”라고 물었다.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대답이다. 왜 그런 물음이 무심코 나왔는지 스스로 놀랐다.

 

  아마 마음 속 어디엔가 그는 벌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남아 있어서였을 것이다. 명심보감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공자께서 가라사대 선을 행하면 하늘이 복을 내리고 선하지 않은 자에게는 화를 내린다고 하셨다.(子曰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반드시 그러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말씀을 옳다고 믿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그것이 성자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세상이 온전히 망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공자께서는 또 내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괴롭힘을 당하면 싫으니 나도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의 부정적인 것을 하나씩 줄이면서 선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네거티비즘(negativism)이다. 예수께서는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면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내가 먼저 선을 행하면 그만큼의 선이 되돌아온다는 적극적인 선으로의 의지다. 포지티비즘(positivism)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나신 두 성자가 그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두 타인에 대한 선/사랑을 말씀하신다.

 

  세상은 언제나 바람 잘 날 없고 어쩌면 노자의 말처럼 하늘은 선하기만 한 것이 아닌지도(天地不仁) 모른다. 그러하지만 세상은 온전히 망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스스로 실행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불가사의한 사랑을 가르치고 실행하신 성자이시다. 성자의 가르치심을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살아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 참 좋다. 평화란 말도 참 좋다. 세상은 여러 가지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그럴수록 사랑, 평화,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성자의 가르침이 있어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날 이해인 수녀님과 법정 스님은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며 가까이 지내셨다. 두 분의 모습이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이 가까워온다. 올 크리스마스에도 스님들이 성탄을 축하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서로 배려하고 사랑한다면 세상은 한층 평화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