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자보다 약한 자가 되어라 (니체)


  형(刑)
  김종삼

  여긴 또 어드메냐
  목이 마르다
  길이 있다는
  물이 있다는 그곳을 향하여
  죄가 많다는 이 불구의 영혼을 이끌고 가보자
  그치지 않는 전신의 고통이 하늘에 닿았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하는 시를 배웠다.  

이 시에 의해 우리는 세상을 나눠 보게 되었다. 하얀 세상과 까만 세상. 그래서 하얀 세상을 동경하고 까만 세상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이 세상은 ‘하얀 세상과 까만 세상’으로 선명하게 나눠지는가?

나는 오래전에 모 시의 시장 선거를 도와준 적이 있다. 그 공로로 한 문화 단체의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는 그 자리를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나는 그 때 이 세상의 맨 밑바닥을 본 느낌이었다. 그 뒤 나는 이 세상의 밑바닥을 몇 번 더 본 후 ‘하얀 세상’에서만 살기로 했다.

‘까만 세상’은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많은 ‘부정’에 노출되어 있을 지가 상상이 된다. 그리고 ‘강한 마음’이 느껴진다.

나 같이 겁 많은 사람은 ‘넘사벽’인 자리들.    

한 국회의원은 말했다. “세상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는 걸레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안다. 내가 ‘하얀 세상’에 사는 건, 나의 ‘하얀 마음’을 지키기 위한 절개, 지조 같은 게 아니다. 너무나 겁이 많아서다. 나의 극소심함이 나를 그렇게 살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걸레가 되어 세상을 닦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인 것이다.  

만일 나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속인다면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남들이 나를 고고한 사람을 알아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게 지고 나면 스스로를 약하다고 하지 않고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 자위한다. 약한 자의 정신 승리법이다.

내게도 이런 마음은 깊고 깊다. 무의식에 깊이 쌓였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우리는 세상을 ‘까만 세상과 하얀 세상’으로 나눠보게 되고 까만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죄 지은 자들에게 마구 돌멩이를 날린다.

하지만 그 돌멩이는 실은 우리 자신에게 던진 것이다. 우리의 깊은 마음은 상처투성이다.  

‘여긴 또 어드메냐/목이 마르다/길이 있다는/물이 있다는 그곳을 향하여/죄가 많다는 이 불구의 영혼을 이끌고 가보자/그치지 않는 전신의 고통이 하늘에 닿았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는 항상 죄의식에 시달린다.

죄인을 다스리기는 쉽다.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대체로 무능하고 악한 것은 우리들이 죄인이 되어 알아서 기기 때문이다.

니체는 말한다. “노예의 도덕은 ‘선과 악’이고 주인의 도덕은 ‘좋음과 싫음’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에 빠져 노예로 사는 게 우리 삶의 실상이다. 이제 우리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좋을 때는 좋다고 하고 싫을 때는 싫다고 소리쳐야 한다.

우리의 희망은 ‘촛불 집회’일 것이다. ‘죄인들’이 모여 윗물을 맑히는 일일 것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은 저절로 맑아진다.

어떤 원시인들은 무슨 잘못을 했을 때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한단다. 우리는 다 어쩔 수 없이 악하게 산다. 더러운 물에는 더러운 물고기가 살 수밖에 없다.